그카지 마이소! 사람한테 그기 뭡니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49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6/03 [11:06]

그카지 마이소! 사람한테 그기 뭡니꺼?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49화

김담 | 입력 : 2014/06/03 [11:06]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가거라 빨리! 냄시 난다!-

물을 올리던 아낙이 역정을 내며 소리를 지르지만 을순이는 그냥 선 채로 멍한 표정이다.

갑자기 아낙이 두레박 속의 물을 손으로 움켜서 을순이에게 뿌린다.

-가라카이! 이기 말귀도 못 알아처묵나!-

연달아 물을 뿌려대자 그제사 을순이는 물을 피해 뒤로 비실거리며 물러난다. 소향은 화가 난다.

-아지매! 그카지 마이소! 사람한테 그기 뭡니꺼?-

 

소향이 눈 속에는 그 언젠가 보았던 눈동자들이 떠오른다.

삼천포 지서 앞에서 쓰러진 엄마와 엄마를 보듬어 안은 자기를 주시하던 많은 주위의 시선들을. 아무도 나서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던 그 눈들 중의 하나가 바로 지금 샘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향이다.

 

-이 아가? 지금 내기 카나? 묵는 물가에서 미친년을 씻기고 내보고 뭐라꼬? 니 정신이 있나 없나?-

-자는 미친아가 아입니더. 그저 모릴 뿐입니더. 카고.. 여는 지가 델꼬 왔심더. 자가 온기 아이고예-

소향은 한껏 역정 오른 아지매를 향해 꼿꼿이 서서 눈을 응시한 채 말한다. 그리고 그 눈을 격멸하며 온통 뒤죽박죽으로 미쳐가는 세상을 미워한다.

-이기… 니, 맺살이고? 새파란 기. 지금 내기 대드나? 말을 하민 들어무야지. 오데? 어른한테… 주디를 함부로 놀리노?-

아낙은 연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소향의 표정과 말을 감당하지 못해 그저 따지기 만만한 나이며, ‘파랗게 어린 것’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젖혔다 숙였다 하다가 기어이 마지막에 주둥이라는 욕설로 맺는다.

 

여전히 몇 발작 근처에 서있는 을순이를 한번 본 소향은 아낙의 역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물동이를 치켜서 머리에 올리고 샘을 떠난다. 뒤에는 뭐라고 중얼거리는 아낙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머리에 무거운 물을 이어 돌아볼 수는 없지만 필경 을순이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물은 독에 부울 시간도 없이 쓰여진다. 벅적거리는 마당에 멍석이 깔려있고 아이들이며 아낙들, 그리고 몇몇의 동네 젊은이들이 분주히 내일로 닥친 추석 준비에 바쁘다.

-소향아, 몇 번 더 길어와야 되것다. 이고 오기 바쁘다. 하도 많이 쓰니…-

작은 아지매가 막 물동이를 내린 소향을 보고 말한다.

-안 그래도 갈라꼬 합니더- 하고 따뱅이를 머리에 올리고 대문 쪽을 보니 을순이가 대문 밖에서 서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무도 을순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동네사람들은 이미 멍한 얼굴의 을순이가 골목에서 또는 공터에서 앉아있거나 서있거나 하는 모습이 너무나 익숙해 이제는 있어도 보이지 않고 없어도 찾지 않을 만큼 그저 돌맹이 같은 존재다.

 

소향은 정기 뒤 담벼락으로 가서 큰 호박잎을 하나 따서 정기로 돌아온다.

-작은 아지매요. 저… 적 부침 한 개만 주이소-

-와? 배 고푸나? 묵거라. 물어보지 말고-

가마솥에 콩을 볶느라 나무주걱으로 솥 밑을 저어대던 광수에미는 소향을 힐긋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언지예. 배는 안 고픕니더. 저기 을순이 줄라꼬예-

을순이라는 말에 광수에미가 의외라는 듯 손을 멈추고

-을순이? 오데 있는데? 갸는 와?- 하고는 대문밖에 있는 을순이를 본 모양이다.

 

혀를 끌끌 차는 광수에미는 다시 주걱을 저어댄다.

-할마시 죽기 전에는 저렇게는 안 뒀는데…창호 어마가 해도 너무하제- 하고는 주걱을 놓고 대소쿠리 속에서 큰 배추전을 꺼내 소향에게 준다.

-아나. 갖다 주거라. 갸도 안 됐다. 아무리 등신이라 케도-

 

호박잎을 바쳐 전을 감싸 쥔 소향은 동이를 다른 한 손에 들고 대문을 나서는데 때마침 마을 뒷동산 편에 있는 제당에서 돌아오는 태섭과 태광 그리고 몇몇의 남정네들과 마주쳤다.

솟을대문 한편으로 몸을 옮겨 길을 비켜주자 태섭은 헛기침을 하고 못본 체 집으로 들어선다.

 

추석이 지났다. 삼천포에서 보지 못하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동생들 생각에 음식은 그저 서걱거렸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불편했던 소향은 추석이 지났다는 것이 마음 편했고 이제 곧 보살님이 오면 더 자세한 집안 소식도 알 것이라 한결 개운한 심정이다.

안방의 큰아지매도 큰치레 다음이라 그런지 기동도 않은 채 대발만 드리운 방에서 있다.

 

물을 빼놓은 논에서는 벼가 익다 못해 이제 서서히 타고 있다. 노랗던 것이 갈색으로 변한다. 미리 도지가 정해져있는 소작꾼들은 곡식 한 알이라도 더 챙기려 참새를 쫒느라 꽹과리를 치며 논둑에 살다시피하고 손바닥만한 논두렁 옆에는 아낙들이 여문 콩을 따느라, 고구마 순을 걷어내느라 쪼그려 앉은 채로 짧은 저고리섶이 올라가는 줄도 모르고 땀을 흘린다.

 

추석 뒤에 광수가 학교를 가지 않았다. 발이 아파서라 했다. 매일같이 들락거리는 안채에도 오지 않고 별채 집에서 누워있다는 소리를 들은 소향은 혹시 자기가 신덕에 데려간 것이 도지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에 담을 돌아 광수네로 갔다.

-광수야-

막상 담 하나로 떨어져있을 뿐 거의 한 집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붙어있는 두 집이지만 소향은 이 별채에 거의 와보지 않았다. 올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코고무신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작은아지매도 있는 모양이다.

-누고?-

방문이 열리면서 작은아지매가 보이고 그 옆에 누워있는 광수가 보인다.

-접니더. 광수가 아푸다고 해서예-

-그래. 발이 매련엄따. 들어 온나. 파리가 날아들어 와사서 문을 닫았디만 울매나 덮던지- 하면서 반쯤 열린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새로 깔아놓아서 그런지 마루가 아직 나무색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소향이 방으로 들어서니 눈만 말똥거리는 광수가 아픈 다리를 이불에 고인 채 큰 대자로 누워있다.

-니 마이 아푸나?-

옆에 앉으면서 다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고개를 숙여 발밑을 보니 광목으로 싸놓은 발이 무같이 부풀어있다.

 

-아지매, 이거 한번 풀어보지예-

-뭐할라꼬? 고약 부치났으이 기대리야 안되나?-

-마이 부웃네예. 한번 볼라꼬예-

광수에미가 다가앉으며 발에 묵인 끈 자락을 찾아서 돌려내며 푼다.

-밤에 잠을 안잔다. 아푸다꼬. 아가 엥가히 아푸면 안 그럴낀데. 아푸긴 아픈 모양이다-

맨살이 드러나고 발바닥에 붙여놓은 종이가 고약에 녹아서 검게 퍼져있다.

발이 얼마나 부었는지 들어가 있어야 할 발바닥이 위로 솟구쳐 있을 정도다. 환부 주위는 하얗지만 중앙은 붉다 못해 거의 검은색이다.

-이이구야… 광수야… 빨리 학교가야지. 이래 가지고 우짤래?-

 

소향은 들러붙은 고약종이를 떼어가며 환부를 들춘다.

-아지매, 아푸다-

-내 함 보자. 내 동생도 이렇게 아플 때 내가 다 돌봤다- 하면서 손가락으로 아픈 곳을 눌러보는 소향은 손가락에 느껴지는 탄력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아지매. 아무 케도 속이 곪은 거 같네예. 아주 깊게 곪은 모양입니더-

-내가 안켔나? 고약 붙있다꼬? 곪았으이 고약이 빨아땡길 때꺼장 기대리야 된다-

말을 들으면서 소향이 자세히 광수 발바닥을 보니 이미 농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손으로 주위를 살짝 누르자 농이 더 짜인다.

-아지매. 고름이 나오는데예? 짜내야 안 됩니꺼?-

-그래? 오데?-

가까이 눈을 대고 보던 작은아지매는

-글레. 광수야! 니 아파도 좀 참으레이. 이거 짜내야 퍼떡 아물고 니도 퍼떡 학교 간데이. 소향아. 저 걸레 좀 가온나-

하고는 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양손으로 환부 양쪽을 꾹 누른다.

-아!- 하고 발버둥을 치는 광수지만 작은아지매의 억센 팔에 잡혀있는 발은 고름만 줄줄 흘릴 뿐이다.

-무시라. 무시라. 마이도 나온다-

연신 누르고 짜고 하는 작은아지매는 요동치는 광수를 넓은 손바닥으로 한 대 후려치기까지 한다.

 

-인제 됐다- 하면서 걸레로 손을 훔치는 작은아지매 대신 소향은 발바닥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아지매요. 피가 안나오는 걸 보이 아직 다 안 나왔심더. 깊게 찔리서 고름이 속에 더 있을 깁니더- 하고는 자세를 고쳐 다가앉는다.

양손으로 발을 움켜잡은 소향은 느닷없이 입을 갖다대고 쭉쭉 빨아당긴다.

광수는 속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지 악을 쓰지만 소향은 연신 입 속을 걸레에 뱉어내고 또 빨아낸다. 그 옆에 있는 광수에미는 입을 휑하고 벌리고 눈은 부엉이 같이 하고는, 놀라서 말을 못한다. 소향이 입가에는 이제야 벌건 핏물이 배어나온다.

걸레에 핏물이 묻는 걸 본 소향은 그제야 툇툇 하고 입을 한껏 비우고

-해가 나왔을 낍니더. 그기 안에 있으민 또 곪는다 아입니꺼. 깊어서 손으로는 안 짜졌을 꺼지만 입으로 빨아땡기몬 다 나옵니더. 엄마도 우리한테 그리 했거던예-

아직도 광수에미는 말을 못한다.

-케도 그렇지. 우째… 니 퍼떡 나가서 입 헹가라-

소향이 입이 더러울 텐데 광수에미는 자기의 속이 역겨움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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