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보다 사랑이 강하다!

2014 퀴어문화축제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이충열 | 기사입력 2014/06/09 [19:22]

혐오보다 사랑이 강하다!

2014 퀴어문화축제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이충열 | 입력 : 2014/06/09 [19:22]

몸살을 앓았다. 아직도 손목이 아프다. 지난 7일, 제15회 퀴어문화축제(Korea Queer Festival) ‘퀴어 퍼레이드’에서 행렬을 이끄는 무지개 손수레를 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버이연합과 보수 기독교단체로 구성된 동성애-혐오주의자들의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에 의해, 퀴어 퍼레이드 행렬은 4시간 가까이 길이 막혔다. 무지개 손수레는 연세대학교 앞 큰 도로에 나오기 전엔 스피커도 틀지 못한 채 살금살금 옮겨졌고, 차도에 도착해서야 1년 중 겨우 하루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퀴어’들처럼 간신히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나와 손수레를 함께 밀었던 파트너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매니큐어를 바른 파트너와 나  © 이충열

이 대목에서, 나와 내 파트너를 당연히 동성애 커플로 이해한다면 이 또한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여성적’으로 잘(?) 훈련되어 온 ‘여성’이고, 나의 파트너 역시 ‘남성적’으로 학습되어 온 ‘남성’이다.

 

게다가 나는 30년 가까이 개신교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등의 활동을 했고, 파트너는 태어나면서부터 20년간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날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며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양 심판하려 드는 기독교인들에 맞섰다.

 

통성기도를 하며 드러눕는 기독교인들 바로 앞에 ‘동성애 혐오에 반대한다’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귀가 열려있다면 “당신들의 주장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하는 하나님 말씀의 핵심은 ‘혐오’나 ‘응징’이 아니라, ‘구원’과 ‘사랑’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날 나는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욕설 세례를 받았다. 그들은 또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한 외국인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했다. 퀴어 페스티벌이 저지당하자, 안타까운 마음에 그들 사이로 들어가 “No!” 라고 외친 외국인 두 명은 앉아있던 중년여성에게 얻어맞았다.

 

성경의 일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할 일이다. 또, 동성애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에 동성애가 들어오는 것을 극복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은 동성애자들과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악마’라 규정했고, 그들의 존재를 부정했고, 폭력을 행사했다.

 

‘세월호 추모제’를 가장한 동성애 혐오 농성

 

▲  오후 2시경 신촌역 앞. "동성애는 사랑이 아니라 끊어버려야 할 죄악입니다" 등의 피켓을 든 사람들.   © 이충열

가장 분노스러웠던 것은 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세월호 추모제’로 가장했다는 것이다.

 

오후 두시쯤 신촌역부터 연세로에 가득한 퀴어 페스티벌 행사부스들을 인파에 섞여 즐겁게 둘러보았다. 그런데 연세대 방향으로 좀더 걸어가자 경찰들이 보였다. 그 너머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노란 리본과 세월호 관련 현수막이 걸려있어서 ‘추모 문화제인가보다’ 생각했지만, 퍼레이드의 경로를 막고 있는 것이 의아했다. 가까이 가보니 참여한 사람들은 무대에 집중하지도 않았고, 주말마다 볼 수 있었던 ‘세월호 추모제’의 분위가와는 달랐다. 아무도 노란리본을 달지 않았다.

 

“퀴어 퍼레이드가 5시 반에 있으니 7시까지 이 자리를 지켜서 그들을 막읍시다!” 진행자의 발언을 듣고서야 그들의 정체를 알았다.

 

서명지도 돌리고 있었는데,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 집회 반대 서명’이었다. 어떤 여성분이 서명지를 내밀어서 “저는 안 해요.” 라고 했더니 화를 내며 “해야 한다”고 더 들이밀었다. 그 광기어린 눈빛을 보면서 퀴어 퍼레이드가 쉽지 않겠다는 것을 예감했다.

 

하지만 이들이 4시간이나 연좌하고 기도하며 누워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특히 세월호 추모제로 둔갑해 있다가, 이들로 인해 길이 막힌 퀴어 퍼레이드가 경로를 바꾸었을 때 본색을 드러낸 것이 정말 무서웠다. 군가를 틀어놓고, 연좌해 앉아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짝짝짝 짝 짝’ 박수를 칠 때는 집단적 광기에 소름이 끼쳤다.

 

▲  퀴어 페스티벌 행렬을 막고서, 드러누워 기도하는 동성애 혐오주의자들   © 이충열

 

연좌의 앞자리에 가장 어린 사람들을 앉힌 것도 놀라웠다.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의 여성과 60대 이상의 남성들이었는데,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불러내어 맨 앞에 앉히는 과정을 보았다. 촛불집회에서 경찰들과 대치할 때, 어른들은 학생들을 안전하게 뒤로 오게 하려하고, 오히려 학생들이 맞서겠다며 앞으로 오는 상황과 반대되는 풍경이었다.

 

손피켓을 들고 서 있는 나에게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있었는데, ‘khTV’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후원회원 15명의 유령방송이었다. 퀴어 페스티벌을 취재하는 대부분의 카메라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태도와 비교되었다.

 

사랑이 이긴다! Love Conquers Hate

 

“대~한민국!”을 연호하다가 기도하기를 반복하는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나의 가족 모두 교회에 다니고 있고, 어쩌면 저들 속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퍼레이드가 진행되기를 기다리며 즐기고 있는, 1년 내내 기대하고 준비한 행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에게 화도 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다.

 

▲  오후 6시경 이대 방면, 동성애 혐오주의자에게 막힌 퀴어 퍼레이드 행렬   © 이충열

 

원래는 퍼레이드 후에 가질 예정이었던 무대 공연을 하며 퀴어 페스티벌 참여자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저녁 9시 40분쯤 드디어 다시 방향을 바꾸어 원래 경로인 연세대 앞쪽으로 퍼레이드를 시작했지만, 5분도 안 되어 멈추었다.

 

목발 짚은 남성이 무지개 손수레 앞에 누워 퍼레이드를 막고 있었다. 참여자들은 그를 끌어내지도 않고 ‘비켜주세요’라고 요청했다. 보다 못한 기자분이 경찰에게 항의했지만 경찰은 그를 일으키거나 제지하지 않고 ‘기다리라’고만 했다.

 

이때 한 외국인 남성이 그분 옆에 누워서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이 따라 불렀고, 심각했던 대치 상황은 웃음으로 바뀌었다. 잠시 뒤에 길을 가로막고 있던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의 무대 차량이 이동하면서, 무지개 손수레는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역대 퀴어 퍼레이드 최장거리라곤 하지만 언제 또 길이 막힐 지 몰라 빨리 이동해서 20여분 만에 끝이 났다. 예전에 퍼레이드에 참여했을 땐 천천히 걷다가 멈춰 춤추며 즐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양 옆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계속 걷기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 퍼레이드는 진행되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Love Conquers Hate)를 슬로건으로 한 퀴어문화축제답게, 긴 시간 좌절하고 분노했을 퀴어 퍼레이드 참여자들은 혐오주의자들과 싸우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고, 기다렸고, 결국 해냈다. ‘혐오보다 사랑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약자를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본분 아닌가

 

▲  퀴어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도 퀴어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 김재상

연세로로 돌아와 퀴어 퍼레이드를 마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도 누워있을 ‘기독교’인들과 이곳에서 함께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며 각자의 선택을 지지하고 축복하는 ‘기독교’인들이 대한민국에 공존한다. 그리고 아직도 ‘인권’의 개념이 없고, 개인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에 내가 살고 있다.

 

나 역시 이성애만 강요받고 살았고, 지금 이성애를 하고 있으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성별을 바꾸기를 원할 수도 있고, 언젠가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이 동성일 수도 있고, 또 내가 무성애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우리의 정체성은 계속 변화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시키면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배제하고 억압하려는 것은 사실 자존감의 부족과 두려움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억압의 근거로 성경을 ‘이용’하는 것은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참회해야 할 일이지, 계속 그렇게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이천년 전 예수는 불평등한 사회의 구조와 율법의 모순에 저항했다. 이천년 전 기록되어 언어와 문화에 따라 번역되고 기득권 세력에 의해 끊임없이 변형된 성경 안에만 ‘하나님’을 가두지 말고, 의식을 일깨워 현존하는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이 크리스천의 중요한 본분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

 

‘약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와 체제가 만든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다. 예수의 뜻을 따라 진정으로 약자를 사랑하려면, 불의하고 불평등한 기준들에 맞서야 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당위적으로 주장하며 자신들의 편견과 모순을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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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모 2014/11/27 [14:45] 수정 | 삭제
  • 성소수자 보호해라! 허용하고 차별마라! 마약하는 사람도 소수자다,보호해라! 차별말고 권장해라! 도박하는 것도 취향이다! 소수 도박자 보호해라! 소아 강간범도 소수자다! 보호해라!보육시설 직원 채용에서 차별말라! 성범죄자 취업불가 부당하다! 흡연자 차별말라! 흡연이 해롭다고 말하는 것도 차별이다! 인간답게 살게 해라! 나쁘다고 말하는 혐오다, 차별이다! 소수자 사랑해라!
  • z 2014/06/22 [17:55] 수정 | 삭제
  • 서대문구청은 동성애혐오단체의 지속적인 업무방해(2, 3일동안 하루종일 민원전화넣어서 업무를 마비시킴)로 인해 퀴어퍼레이드측에게 승인취소를 했지만, 서대문경찰에 신고한 집회신고는 유효했으며 문제가 없습니다. 원래 집회신고를 한 번 받으면 같은 시간 혹은 2, 3시간 이내에 인근장소에서 열리는 집회는 신고를 받지 않는 것인데 동성애혐오단체가 서대문구청에게 한 것처럼 끈질기게 업무방해를 해서 서대문경찰서가 마지못해 반동성애단체의 집회신고도 받아준 것 뿐입니다. 그리고 불법행위는 반동성애단체가 더 많이 했죠. 상복입은 모 남자(모 교회 장로라죠?)가 맥주병을 깨고 인근 행인들에게 휘두르거나 폭행을 했죠. 이것은 경찰도 달려왔고요. 서대문경찰서에 증인도 있습니다. 불법은 반동성애단체가 저질렀으면 저질렀지 그 반대는 아니네요.
  • 자강 2014/06/16 [00:34] 수정 | 삭제
  • 글 잘 읽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처럼 살려고노력하는게 기독교인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사랑은못할망정 무슨 권리와 자격으로 동성애자들을 단죄하고 그들에게 욕설하고 행패부리는지 분노가 치밉니다약자와 소수자에게 배려없는 이사회가 싫군요
  • ~ 2014/06/10 [13:31] 수정 | 삭제
  • 세월호 추모를 이용해서 혐오하는데 이용하다니.. 그들이 더 끔찍하고 역겹네요..
  • 아기고양이 2014/06/10 [11:30] 수정 | 삭제
  • 서울시 지원금 0입니다.
  • 쿼티 2014/06/10 [04:07] 수정 | 삭제
  • 전국의 행사들은 잘만 진행되고 있는데 퀴어 퍼레이드만 못하게 막는건 엄연한 차별이죠. 서대문구청이 반대한게 아니라 개독교 집단의 아우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월호 핑계를 댄겁니다. 이건 서울시에서도 투자한 축제에요. 그리고 쪽팔려야 할 사람은 포비아들입니다. 세월호 추모식을 가장해 잠복해서는 지옥에나 떨어지라며 사람들에게 욕하고 폭력을 행사했으니까요. 행사가 늦어진게 대체 누구 때문인데 적반하장으로 누가 누굴 욕하는건지 어이가 없네요. 본인들이 인권 챙기려면 먼저 타인의 인권부터 챙기세요. 먼저 차별이란 차별은 다 해놓고 나중에 소수자 탓 하지말고. 퀴어퍼레이드의 취지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큰소리만 내는게 다라고 생각합니까? 정말 창피하네요.
  • 저기요 2014/06/10 [02:12] 수정 | 삭제
  • '정의'님 님 말대로 서대문구청이 정당한 이유를 바탕으로 거부를 한 행사였으면 시작도 못 하게 했겠죠 왜 그게 이뤄지게 그냥 뒀겠습니까? 본인을도 세월호 핑계로 거부하긴 했지만 말도 안 되는 거 아니까 민망해서 그냥 둔 거 아닙니까. 왜 민망하냐고요? 그 똑같은 장소에서 바로 그 전 주말에 다른 축제는 아무런 탈 없이 진행이 되었거든요 근데 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난 후에 하는 축제가 세월호 핑계로 캔슬이 된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퍼레이드가 그렇게 늦어진 건 누구 때문입니까? 무식한 불법 반대시위자들 때문 아닙니까? 그 인간들만 없었어도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아무도 그 늦은 시간에 그 큰 음악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을텐데요? 그럼 그 사람들을 욕하셔야죠 무슨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펼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누가 보면 다들 빤쓰입고 나왔는 줄 알겠네요 그날 모인 만명 넘는 사람들 중에 한 5명 그렇게 입었을까말까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왜 그 빤쓰바람을 하고 다니는 줄 아세요? 그 사람들이라곤 노출증이 있어서 자기 몸 과시하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세요? 그날을 제외한 나머지 364일을 억눌려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그 하루만큼이라도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서, 본인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날 하루로 나머지 364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그러는 겁니다. 평소에도 LGBTAIQ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줘 보세요. 그럼 저러는 사람들도, 아예 퀴어 퍼레이드 같은 것도 없어질 겁니다.
  • 정의 2014/06/10 [01:46] 수정 | 삭제
  • 이번 동성애퍼레이드는 서대문구청도 거부한 행사입니다. 그리고 집회신고도 저녁 7시까지 였습니다. 그런데 밤 10시넘게 주무시는 신촌주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늦은 시간에 빤스입고 음악 크게 틀어놓고 고성을 질러대며 불법시가행진을 했습니다. 차들은 빵빵대고 난리도 아니였죠ㅎ 경찰은 같은 불법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 편에만 서서 서대문주민들도 포함된 시민들을 연행해 갔죠. 당신들이 서대문경찰 맞으시면, 주민들 인권도 챙기시기 바랍니다ㅎ
  • 사랑가 2014/06/10 [01:20] 수정 | 삭제
  • 정말 잘 읽었습니다, 애쓰면서 살아가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은 아직 좀 힘든가봅니다,사회적 약자며 소수인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될 일인 것 같은데 이번 몰지각한 행동은 국민으로서 낯부끄럽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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