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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2학년이 되면서 2주간 농가 실습을 가게 되었다. 학교의 오랜 전통이었다. ‘때는 이 때다’ 하며 집과 가장 먼 곳으로 가려하는 아이들에게 경미언니 집이 있는 해남은 인기였다. 그때 나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덕분에 경미언니와 만나게 된다.
농가 실습 선생님이던 경미언니를 8년 만에 다시 만났다. 언니를 만나자 그때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나를 감쌌다.
한여름 땀을 진탕 흘리고 누우면 찬 공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두껍고 단단한 흙집, 까만 밤길을 걸어 잘 짜인 판잣집 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면 큰 창에 별이 한 가득 떠 있던 화장실, 배고플 때마다 풀에 휘감겨진 텃밭에 용케 들어가 따내서는 감자 위에 삶아낸 그 빛난 옥수수, 널따란 고구마 밭과 길고 길던 고구마 순 작업, 가톨릭신자인 경미언니와 남편 덕분에 오전마다 쉴 수 있었던 꿀 같은 주일, 농사일을 거들며 나누던 수많은 수다….
다시 만난 경미언니, 언니는 땅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짙어진 살갗도 그렇지만, 이제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사꾼으로부터 “고구마 박사”라고 불린다. 농사꾼에게 듣는 칭찬만큼 달콤한 말이 또 있을까.
농사를 짓는다는 건 한 곳에 뿌리를 내려 보겠다는 뜻이다. 언니는 다음 해, 그 다음 해들을 내다보며 농사꾼으로써 온전히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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