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가 웃방에 시퍼렇게 있는데…”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56화

김담 | 기사입력 2014/07/21 [23:25]

“형수가 웃방에 시퍼렇게 있는데…”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56화

김담 | 입력 : 2014/07/21 [23:25]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얼마만인가? 이렇게 형제 둘이서 발걸음을 같이해본 것이? 원래 둘은 사이가 좋았었다. 부잣집 아들들이니 부족할 것이 없었고 부족할 것이 없으니 싸울 일도 없었다.

집안에서 먼저 알아서 키워주고 챙겨주고 하는 사이에 둘의 정도 남달리 깊었지만 각자 새 식구를 맞이하면서부터 알지 못하게 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태섭은 마누라와 일일이 상대하여 갋기 싫어서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예 집안일을 넘기다시피 했다. 그러니 자연히 간섭할 일도 없어지고 간섭할 일이 없으니 얼굴 맞대고 상의할일도 없어졌다.

 

태광도 마누라를 얻고 나서도 한집에 살면서 집안일을 거들면서 형보다는 모든 집안의 금고를 치마 밑에 깔고 앉아있는 형수와 상의를 하거나 또는 거래를 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히 두 형제가 함께 말을 나누는 일이 적었던 것이다.

 

-아지매, 여 탁주 한 되하고… 행님, 이 집이 고기가 맛있습니더. 함 잡사보이소. 수육 한 접시 주이소-

-내는 돼지고기도 못 묵는다-

-행님 요새 와 캅니꺼? 뭐 그리 천 년 살끼라고? 잡수이소!-

-와? 내가 고기나 술 마다하는 거 봤나? 너그 행수가 약 미긴다꼬 술하고 돼지고기, 카고… 닭고기꺼정 입에도 대지 말라 카더라-

-와? 행님 오데 안 댔는교? 와 약을 잡숫는교?-

-안 댔긴. 내가 우떼서? 뭐… 가을도 됐고 해서 진맥을 했는기라 지난번에-

-보약 잡숫는구만 뭐! 아따, 술하고 고기보다 더 좋은 보약 있습디까? 행님도 참!-

 

김이 슬슬 피어오르는 수육 한 접시와 탁주가 나무탁자에 올라오고 그저 바라만 보는 태섭을 무시한 채 태광이 보기 좋게 한 잔 목에 넘긴 후 고기 한 점을 소금에 찍어 입에 넣는다.

 

-행님 내는 참 이해가 안 됩니더-

고기를 우물대며 태광이 말한다.

-아! 보통 여자민사… 넘의 여자를 우째 지 서방한테 앵기준단 말입니꺼?-

침이 목에 넘어가지만 합방 전에 약기운을 꼭 받아두어야 한다는 마누라의 말이 귀에 쟁쟁한 태섭은 눈을 돌려서 딴 곳을 보며 참는다.

-무신 말이고? 넘의 여자라이? 가가 우째 넘에 여자고? 카고… 이기 무신 시악할 일이냐? 아, 후손이 없으이 자슥 하나 두자고 하는 일인데. 따지고 보민 너그 행수가 맘도 크고 넓은기라. 안 글나?-

정색을 한 얼굴로 동생을 보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이빨사이에 낀 고깃점을 훑어낼 양 태광은 연신 볼을 움찔거려댄다.

-하기사… 첩도 들이는 마당에… 그라모 행님, 가는 첩은 아입니꺼?-

-아이다. 그저 아만 놓고 갈 아다. 내도 집안에 두 여자가 울근불근하는 꼴 보기도 싫고. 그저 아들만 하나 바라는 기지-

-참… 행님도… 아! 광수도 있고 재수도 있는데 모하로 그 복잡한 일로 맹굽니꺼?-

청하지도 않았는데 태광은 잔을 태섭이 앞에 놓고 술을 한잔 따르면서 넋두리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말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자신을 들들 볶아대며 푸념을 해온 마누라의 말이다.

 

잔에 술이 가득히 차오르는 것을 보며 태섭도 생각에 잠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아, 가까운 핏줄에서 양자 하나 들이는 게 어디 흉일 텐가? 흔하디흔한 일인데. 또 기생이나 첩을 얻어서 슬쩍 자식 하나 볼 수도 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태우 아니던가?

하지만 이번의 일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벌어지고 있다. 마누라가 마치 무슨 의식을 행하듯이 자기와 심지어는 여식에게까지 약을 지어 먹이고. 날을 받느니 정성을 들이느니 하고 있으니 젊은 처자를 품에 안고 사내놈 욕정을 푼다기보다는 제례를 올리는 기분이다.

 

- 내는 모리겠다. 너그 행수가 하는 일이라-

기어이 술을 들어 입에 붓는다.

-집안의 근본이나 알아보고 구해온 압니꺼?-

그 말을 들은 태섭은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씹으며 말한다.

-이기사 종손의 집안일이다. 니가 와 카노? 종부가 자기가 못 다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일인데…. 내가 안다. 니 처가 광수하고 재수 나누고 너그 행수가 그칸다꼬. 그동안 집안에 발걸음도 안 한다매? 그칼 꺼 엄따-

-아… 지야 그저 좋은 사람인가… 싶어서 물어보는 깁니더. 그건 그렇고 행님. 인자 가을도 마무리 됐고… 해서 디리는 말씸인데. 전답을 울매나 주실 깁니꺼?-

태섭의 눈치가 엉뚱하다는 듯하다.

-울매나? 니 무신 말하고 있노? 그기사 벌써 말 끝난 거 아이가? 지난 여름에 다 말 맞춰놨는데 새삼 무신 말하고 있노? 논 열다섯 마지기하고… 밭은 내 모리겠다만-

태광도 물론 안다.

 

하지만 요새 마누라가 들들 볶는 중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의 심중은 언젠가 광수나 재수가 양자가 되어 종손으로 자리를 누린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계획은 자기들만의 일장춘몽으로 끝날 것이기에 약속하고 약속받은 전답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이제는 종가의 제산을 넘볼 수 없는 지경이니 지금 분가할 때 아예 후하게 챙겨야 한다는 것이 성가신 마누라의 주장인데 그 모든 것을 태광이 더러 앞장서서 진행하라는 중이다.

 

-행님, 생각해 보이소. 비록 지가 장자는 아이지만… 케도 대갓집 아들래미인데… 오데 논 열댓 마지기라 카이… 말이 됩니꺼? 집안땅을 줄 수 없는 기야 지도 압니더. 케도… 만일 아부지가 살아계싰더라민사… 그것보담은 더 주싰을 낍니더. 행님 땅만 해도 울맨데-

눈을 가자미눈처럼 떠서 어림없다는 듯 태섭을 올려본다.

-그기사… 와? 그때 말 안하고 인제 야단이고? 카고… 내도 이해는 간다만… 그건 니가 너거 행수한테 말하거라. 내는 일절 관여하기 싫다-

-아! 행님은 남자가 돼가지고 동생일을 넘의 일 같이 우째 그캅니꺼?-

태광도 형을 통해서 성사될 일이 아닌 줄은 알지만 그냥 역정을 낸다. 이번에는 태섭이 태광의 잔에 술을 부으며 말을 잇는다.

-니가 한 마지기라도 더 얻고싶푸민사… 니하고 너그 처가 행수한테 잘 하던가? 한 달이 넘도록 발걸음도 끊고 살민서…. 요새는 광수하고 재수도 얼굴 안 본 지가 운젠지도 모리겠다-

긴 한숨을 내쉬며 태광이 잔을 들어 단숨에 비운다. 둘은 벌써 얼굴이 제법 올랐다.

-압니더. 알지요. 케도… 열다섯 마지기는 너무 합니더-

 

사실 분가를 제대로 했을 거라면 예를 들어 노인들이 살아있을 때라면 말이다. 아마도 한 오십 마지기쯤은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 부모가 살아계실 때 챙겨두지 못한 게 한스럽지만 때 늦은 일이다. 이제 남은 일은, 능구렁이 같은 형수로부터 어떻게 전답을 더 받아낼 것인가. 그러나 태광은 그동안의 형수의 사람 됨됨이로 보아서는 자기가 형수를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설득당할 것이고 그렇다고 선무당 같은 마누라가 형수를 구워삶을 것은 차라리 엄동설한에 수박 한 덩이 구하는 것이 더 나을 확률로 보일 것이다.

 

-행님. 그런데… 행수가 웃방에 시퍼렇게 있는데… 오데서 갸를 품을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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