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

12번째 일본군‘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 일본서 개최

양징자 | 기사입력 2014/09/22 [13:40]

세계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

12번째 일본군‘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 일본서 개최

양징자 | 입력 : 2014/09/22 [13:40]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 출범 이래, 일본군 ‘위안부’ 연행에 강제성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다는 주장과 “고노담화 재검토” 발언이 이어졌다. 고노담화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시인하고 사과한 담화이다. 아베 정권은 고노담화 재검토는 철회하였지만, 작성 과정을 검증하는 등 담화의 의미를 훼손하는 시도를 꾀하였다.

 

그런 가운데 일본에서 국회 회기 중이었던 5월 31일부터 6월 2일 사이, “아베 정권의 폭주를 용납할 수 없다, 세계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원한다!”는 제목을 걸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이하 아시아연대회의)가 일본에서 열렸다.

 

아시아연대회의는 1992년 8월, 한국 서울에서 1회가 개최된 이래 이번이 열두 번째를 맞는다. 여성을 전시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일본의 전쟁범죄 행위를 민간법정에 회부했던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이 개최된 것도, 아시아연대회의의 결의에 따른 것이었다. 2012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11차 회의에서는 매년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정하였다. 이 날은 1991년 김학순(1924~1997) 씨가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이다.

 

일본에서는 네 번째로 개최된 이번 12차 아시아연대회의 내용과 의의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인 양징자 씨가 보고한다. [편집자 주]

 

아베 정권의 폭주를 멈춰 세우기 위해!

 

올해 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회의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가 “아시아연대회의를 열고 싶다”고 제안하였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가 침략당할 경우 이를 자국에 대한 침략 행위로 간주하여 반격할 수 있도록 유엔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권리이다. 일본은 1946년 공포한 평화헌법(헌법 제9조)에 따라 방위를 위해서만 군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지만,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해석을 변경하여 무력 사용 범위를 확대해나가려 하고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는 아베 정권의 폭주를 멈춰 세우지 않으면, 다시 전쟁의 피해자들을 낳게 될 것이다.

 

“두 번 다시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절실한 마음을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에 직접 전하고,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제평화에 공헌하도록 호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아시아연대회의 개최지는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7개 대학서 증언…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피해자 6명과 중국의 유족 2명이 참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였다. 이틀 동안 진행된 회의와 원내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750명에 달한다.

 

▲  6월 2일 원내 집회에서 발언하는 에스테리타 데이, 민체, 스리 스칸티, 이용주 (앞줄 왼쪽부터)  © 페민

 

회의가 끝난 후 6월 3일~4일에 7개 대학에서 증언모임이 열렸다. 1천5백 여명의 학생들이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아시아연대회의를 일본에서 개최한 것에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피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고 싶다는 배경도 깔려 있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온 두 명의 피해자는 이번이 첫 일본 방문이었다. 스리 스칸티 씨는 겨우 아홉 살 때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나흘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지만, 생식기에 상처를 입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후 ‘원숭이 퇴물’(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여자를 칭함)이라고 불리며 사회에서 경멸을 당하고, 가난하게 살아왔다.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피해자 민체 씨는 열너덧 살 때 같이 놀던 아이들 열 명 정도와 함께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트럭에 실려가 감금 생활을 했다. 민체 씨는 6개월 후 간신히 그곳을 도망쳐 나왔지만, 일가에서는 일본군에게 성폭행 당한 딸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민체 씨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일본인에게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불행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두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에, 학생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증언모임이 끝나고 학생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보는 것과, 피해자를 앞에 두고 그 존재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는 등의 소감을 전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란 무엇인가?

 

이번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에 주는 ‘제언’을 정리하는 것이 화두였고, 격렬한 논의가 펼쳐졌다.

 

제언의 근간이 된 것은, 일본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간에 진행해 온 “법적 해결이란 무엇인가” 라는 논의이다.

 

2011년 8월,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을 만한 해결책을 좀처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이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러한 상황에 애태우면서도,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만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들과 법학자들이 함께 법적 논의를 거듭해왔다.

 

이제 그 내용을 각국의 피해자와 지원자들과 함께 다듬어, 일본 정부에 제출하는 것이 이번 아시아연대회의의 핵심이었다. 그 기본적인 방향은 일본의 역대 정권이 답습해온 고노담화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담화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 발전시켜 해결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12 일본군‘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

 

기본적인 입장은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소’를 입안, 설치, 관리, 통제하였다는 사실과, 피해여성들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졌다는 것, 당시 법률에도 반하는 인권침해였으며, 식민지와 점령지에 막대한 피해를 미쳤고 지금까지도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책임을 명확하게 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인식해야 할 사실’ 입증하는 자료 제출

 

6월 2일 원내 집회를 개최한 이후, 일본 정부에 주는 ‘제언’과 아시아연대회의 결의, 그리고 제언에서 다룬 ‘일본이 인식해야 할 사실’을 입증할 자료 53점을 일본 정부에 제출했다. 또한 고노담화 발표 후 20년 남짓한 사이에 민간의 노력으로 새롭게 발굴된 자료 529점도 함께 제출하였다. 일본 정부가 인정해야 할 사실들의 근거 자료를 보강함과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한층 더 강하게 호소하였다.

 

일본 정부에 있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아시아 외교의 열쇠를 쥐는 일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번 아시아연대회의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제언’과 근거 자료들을 일본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시하면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자 한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