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탄생을 알리다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34) Lowell - LGBT

블럭 | 기사입력 2014/09/24 [17:46]

또 한 명의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탄생을 알리다

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34) Lowell - LGBT

블럭 | 입력 : 2014/09/24 [17:46]

음악칼럼 ‘블럭의 한 곡 들여다보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블럭(bluc)님은 음악평론가이자 음악웹진 “웨이브”(weiv)의 운영진입니다. [편집자 주]

 

주목할만한 신보, 로웰의 <We Loved Her Dearly>

 

▲  Lowell의 Palm Trees” 뮤직비디오 중에서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서는 “First Listen”이라는 코너를 통해 좋은 신보를 가장 먼저 소개한다. 어떤 앨범을 들려줄 지는 다양한 장르와 영역에서 전문가들이 선정한다. 9월 7일, 이 코너를 통해 로웰(Lowell)이라는 아티스트의 신보 [We Loved Her Dearly]가 소개되었다. 그런데 이 앨범을 설명하는 문구가 꽤 인상적이다.

 

“비욘세(Beyonce)는 무대에 섰고, 거대한 스크린에 ‘FEMINIST’라는 단어를 띄웠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그녀가 페미니즘을 가혹하게 판단했다고 했고, 실현하는 것 없이 페미니스트의 자세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팝스타 둘이 성숙되었다는 듯 ‘성 정치’를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고취시킨 건 감동적이고 생산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아티스트가 커리어의 시작 지점에서 페미니스트의 관점을 온전히 채우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로웰의 음악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그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캐나다 등지를 이동하며 자란 그는 토론토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스트립 클럽 댄서로 일을 하게 된다. 나중에 음악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생계를 위해서였다. 그 뒤 음악을 쓰기 시작했고, 여러 프로듀서의 눈에 띄게 되었다.

 

유명한 음악 제작자들에게 초대되어 런던에서 작업을 시작하며 금방 안정적인 길을 찾는 줄 알았지만, 로웰은 그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비전과는 다른 길이었던 것이다. 음악도 좋지 않았다. 런던에서는 소위 말해 ‘팔릴 만한’ 음악을 작업하려고 했고, 거기서 서로간의 합이 맞지 않았다.

 

결국 올해 초, 그는 독자적으로 EP를 만들고 첫 싱글 “Cloud 69”을 발표했다. 그는 신곡을 계속 발표하며 정규 앨범을 준비했고, 마침내 [We Loved Her Dearly]를 세상에 선보였다.

 

Lowell의 Palm Trees [Official Video] 보기

  

음악으로 힘을 얻는 것

 

▲  Lowell의 앨범 [We Loved Her Dearly] (2014)

여러 곳에서 호평을 얻고 있는 로웰의 이번 앨범은 팝 음악의 문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팝은 외국음악 전체를 이야기하거나 유명한 곡을 말할 때의 팝이 아닌, 신스팝(synyhpop)이나 드림팝(dreampop) 같은 장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로웰의 보컬은 팝 음악의 색을 강하게 띠고 있다. 여기에 자신이 영향을 받은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으며 자칫 뻔하게 느껴질 수 있는 팝 음악에 독창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정체성이 되는 부분은 바로 가사다. 굉장히 정치적인 이야기를 팝 음악에 자연스럽게 섞어내는 것이야말로 로웰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그는 “팝 스타 조명 따위보다 나를 움직이는 건 사람들 삶에서의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한다. 그가 하고자 하는 건 보다 현실적인, 피부에 와 닿는 임파워링(empowering,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곡을 발표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퀴어(queer)들을 위한 곡이다. “L.G.B.T. L.O.V.E”, “Don’t hate our love(우리의 사랑을 증오하지 마세요)”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이 곡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LGBT 이야기를 풀어낸다.

 

곡의 초반부와 중반부는 백보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몽글몽글한 질감을 통해 ‘귀엽다’, ‘예쁘다’ 혹은 ‘발랄하다’ 같은 수식어를 연상시킨다. 귀로 잡기 쉬운 구조, 밝고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도 균형 잡힌 사운드를 지니고 있으면서 후반부에는 은근히 빨라지는 속도와 힘있는 전개를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면서도 드럼 라인과 이펙트를 통해 마냥 가볍고 예쁘게만 보일 수 있는 곡을 비틀었다. 스스로 바이섹슈얼(양성애자)임을 공개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 곡에 담았고, 싱글로도 따로 발표했다.

 

Lowell의 “LGBT” 듣기

 

로웰은 성 정치, 성차별, 강간, 낙태, 여성인권 등을 가사에 녹여낸다. 가장 장점이 되는 부분은, 가사와 음악 간의 괴리가 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예쁜 팝 음악에 자극적인 가사를 입혀 어색한 모양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은근히 분위기를 비틀어놓은 곡 위에 태연하게 올려져 있는 가사를 보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음악뿐만 아니다. “The Bells”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성적 대상으로서 상징되는 학교 치어리더를 비틀어 호러 영화와 섞어버리는 등의 시도를 통해 기존의 관념을 비틀었다. 또한 ‘절대로 금기시되어서는 안 된다’며 성판매 여성들의 임파워링을 주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를 짚어내면서도 로웰은 절대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과도하게 메시지를 담아내거나, 주장이 앞서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 자체가 가질 수 있는 매력과 즐거움을 지켜낸다.

 

Lowell의 "The Bells" (Official Video) 보기

 

로웰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건, 오직 음악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운동을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활동가가 아닌 음악가이며, 동시에 음악으로만 행동할 수 있는 방식에 충실하다. 음악 자체도 훌륭하다. 그는 팝이라는 장르 고유의 아름다움을 애써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애매하지 않게, 뚜렷하게 구현한다. 로웰이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평등을 사수할 때도 당신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는 음악을 하고 있다. 로웰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나도 나의 투쟁을 즐겁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로웰이 말하는 방식의 임파워링이다. 사회적 투쟁은 진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만큼 웃으면서 질기게 유지하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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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4 [23:05] 수정 | 삭제
  • 기대되는 뮤지션이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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