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보다 이후 일어난 일이 더 힘들다’

직장내 성희롱 신고 후 불이익 받는 사례 많아…대책은?

나랑 | 기사입력 2014/10/01 [10:32]

‘성희롱보다 이후 일어난 일이 더 힘들다’

직장내 성희롱 신고 후 불이익 받는 사례 많아…대책은?

나랑 | 입력 : 2014/10/01 [10:32]

르노삼성자동차 연구소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2012년 4월부터 1년 가까이 상사로부터 일방적인 애정 표현과 개인적인 만남 제의 등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한 직원은 2013년 3월, 담당 이사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이사는 ‘일을 가장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그만두는 것’이라며 사직을 종용했다.

 

르노삼성, 피해직원을 도운 동료까지 보복성 징계

 

지난 2월 18일 르노삼성자동차 본사 앞.  여성.시민단체들이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 기자회견, 퍼포먼스.  ©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결국, 피해직원은 회사 인사팀에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신고했다. 그런데 신고를 하고 조사받는 과정에서 회사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여자가 먼저 유혹했다’, ‘만남에 동의해 놓고 이제 와서 무고한 사람을 성희롱으로 신고했다.’ 이러한 소문의 출처는 가해자와 인사팀 측이었다.

 

두 달 뒤, 회사는 가해자에게 보직 해임과 정직 14일의 징계를 내렸다. 회사 측의 태도와 솜방망이 징계 결정을 보며, 피해직원은 가해자와 담당 이사, 그리고 인사팀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때부터 회사의 불이익 조치는 공격적으로 자행되었다. 피해직원이 민사소송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동료에게 진술서를 받은 것을 두고, “부하 직원에게 협박성 발언을 하며 강압적인 분위기 하에서 진술서를 강요했다”며 ‘견책’ 징계를 내린 것이다. 또 그 동안 해왔던 연구 업무에서 배제하고, 서무 업무로 전환시켰다.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한 것은 피해직원만이 아니었다.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를 도와 진술한 동료 직원은 상사에게 불려가 ‘피해자와 어울리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 후 근무 태만을 이유로 ‘정직 7일’의 징계를 받았다. 부서의 특성상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이후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사측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사측은 ‘직무 정지와 대기발령’ 통보를 해 피해자와 조력자를 격리시켰다. 뿐만 아니라 사물함에 있는 짐을 싸서 퇴근하는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업무 관련 문서를 빼돌렸다며 ‘회사 기밀문서 반출 절도죄’로 형사 고발까지 했다.

 

올해 3월, 르노삼성 사장의 방한을 앞두고 회사는 피해직원에 대해서만 대기발령을 철회하고 복귀 명령을 내렸다. 회사 측은 ‘징계나 고소는 성희롱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 여성단체들이 노동부에 진정, 고발을 한 상태이나 해결의 기미 없이 현재까지도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가

 

르노삼성처럼 성희롱 피해를 신고한 직원에 대해 회사 측이 ‘불이익 조치’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2010년부터 2014년 8월까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상담실에 접수된 성희롱 상담 사례는 총 718건인데, 그 중 피해자 불이익 조치에 대한 상담은 162건으로 22.56%를 차지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4조 2항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경우 성희롱 가해자는 대부분 사업주인데, 성희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곧장 ‘해고’로 이어지기 쉽다. 올해 한국여성민우회에 접수된 상담 사례 중에는 피해자가 노동부에 성희롱 사실을 진정하자,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폐업 신고를 하고 이 사실을 카카오톡으로 통보한 경우도 있다.

 

여성노동자 세 명 중 두 명이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여성들의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곧바로 고용불안으로 연결된다. 성희롱이 난무하는 회식 자리를 거절하고 항의하자 위탁업체 선정 심의에서 탈락되거나, 성희롱 피해에 대해 회사 측에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 과정에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재계약을 하지 않거나, 하는 등이다.

 

악의적인 소문을 유포하거나, 관리자 옆으로 자리를 옮기게 하여 끊임없이 감시하는 등 간접적인 방식의 ‘불이익 조치’ 역시 지속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성희롱 사건보다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르노삼성 측이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에게까지 불이익을 준 것처럼, 조력자를 해고한다든지 따로 불러내어 취조하거나 추궁하는 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직원은 조직 안에서 고립되고, 성희롱 문제가 직장 내 문화나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되고 있다.

 

13년째 있으나마나 한 ‘불이익 금지’ 조항

 

직장 내 성희롱은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 일다

9월 25일 오후 2시,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러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소희 활동가는 “해고, 채용 탈락, 승진 탈락 외에도 조직적인 따돌림, 업무 미 지시 혹은 업무 과다부여, 인격적 무시 등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 조치가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법은 ‘해고’와 같은 명확한 고용상의 불이익에 대해서만 판단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불이익 조치에 대한 해석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불이익 조치’에 관한 내용이 입법화 된지 13년이 지났음에도, 사건화 되는 경우가 드문 현실을 지적했다. 차 변호사는 고용상 차별에 대한 구제 절차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고용평등위원회(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의 사례를 소개했다.

 

남녀고용평등법의 ‘불이익 조치’에 상응하는 것은 미국 EEOC에서 규정한 ‘보복 조치’이다. EEOC는 ‘고소ㆍ진정하거나, 증언하거나, 조력하거나, 관계법에 따른 조사ㆍ소송 절차ㆍ변론 등 절차에 참여하는’ 행위를 보호하도록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EEOC 매뉴얼은 ‘불리한 조치’(adverse action)에 승진 거부, 고용 거부, 복지혜택 미 제공, 강등, 정직, 해고뿐만 아니라 협박, 징계, 낮은 근무평정, 괴롭힘도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내부 고충처리 절차를 지연시키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행위 역시 불리한 조치로 보고 있다.

 

차혜령 변호사는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서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의 범주에 피해직원뿐 아니라, “피해자가 성희롱 피해를 주장할 수 있도록 돕거나, 피해 주장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는 사람이 모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에 대한 규정은 “해고, 징계 등 인사 상 불이익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근로 조건이나 환경을 악화시켜 근로자로 하여금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주장과 법적 구제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일체의 행위를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주에게 책임을…벌금보다 효과적인 방안은?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에게 성희롱을 예방할 의무와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전제하고, 성희롱 피해직원에 대해 불이익 조치를 한 사업주에 대해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업주가 불이익 조치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제재 방식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벌금 아니면 실형인데, 기업에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우리 법원의 판례들을 봤을 때 매우 드문 현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벌금이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들이 ‘벌금 내고 말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과 같이 직장 내 성희롱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악의적인 인종 차별, 민족 차별 행위에만 인정되던 ‘징벌적 손해배상’을, 1991년부터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도 적용함으로써 사업주의 책임을 강제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 배상은 상한액을 정하는 게 무의미하다 할 정도로 기업에 높은 액수의 손해 배상을 명함으로써, 고용 차별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무엇보다 사업주의 책임을 묻는 고용노동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성희롱이 일어난 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일정 기간 동안 특별 관리ㆍ감독을 하고, 성희롱 사건 발생 사업장은 성희롱 예방 교육을 강화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사측의 성희롱 사건 ‘처리 절차’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체크리스트를 통해 세세한 점검을 실시함으로써, 사업주가 형식적으로 사건을 처리해버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WE SAY NO!” 개인의 문제 아닌 집단적 권리

 

직장 내 성희롱은 개인 간의 사생활 문제가 아니다. 직장 내 권력 관계와 성차별 구조, 가부장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일이며,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최근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가 성희롱 피해로 인해 겪은 정신적인 고통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사례도 있다.

 

피해자나 조력자가 불이익 조치를 받게 되면, 그것을 보고 있는 다른 직원들까지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를 꺼리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불이익 조치’는 해당개인뿐 아니라, 그 구성원 모두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가 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는 “피해자에 대한 구제 절차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재범 방지라는 프레임에서는 실제로 문화가 변하기 어렵고, 개인적인 용기가 너무 많이 필요하다”면서, 최근 UN을 비롯하여 세계 여성폭력 예방을 위한 핵심 슬로건이 “NO MEANS NO(여자의 ‘NO’는 ‘NO’다)”에서 “WE SAY NO(우리는 ‘NO’라고 말한다)”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과 목격자,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어떤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집단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김 씨는 덧붙여 “성희롱은 다른 성차별 관련 사건보다 훨씬 개별적인 사건으로 인지되었고, 집단적 권리 구제라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오지 않은 경향이 있다. 직장 내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인 개입을 하라는 내용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이 이루어지고, 피해자에게 ‘연대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절차들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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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ia 2014/10/01 [20:38] 수정 | 삭제
  • 성희롱 피해 입은 사람이 왜 더 위축되어야 하는지, 기업 문화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 nono 2014/10/01 [15:13] 수정 | 삭제
  • 직장내 성희롱....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한데요. 이렇게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있었다는 게 참 반갑습니다. 특히 개인의 문제 아닌 집단적 권리의 문제로 가져가자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터라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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