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섣달이 들어서자 겨울은 완전히 깊었다. 솜을 넣은 누비바지를 입어도 바람이 스멀스멀 스며들고 집집마다 그저 구들장을 지고 등에 온기를 느끼는 것 외엔 별다른 난방이 없다.
오늘도 장씨는 아침부터 장작을 아궁이마다 지핀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그저 잠자기 전인 저녁에나 불을 한 번 때지만 종가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이나 불을 때고 있다. 정기에는 가마솥에 물을 가득 넣고 불을 피우면 소향이 언 손을 녹여가며 아침상을 본다.
장씨는 넉넉히 장작을 넣어놓고 이번에는 집을 돌아 건넌방 태섭의 방 아궁이에 또 불을 넣는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소향과 자신의 아궁이에 불을 피운다. 아래채는 방은 둘이고 고래는 둘로 나뉘어져있지만 아궁이는 하나라 그 위에 지금은 소를 키우지 않아 필요 없는 큰 소죽 쑤는 가마솥이 걸려있어 불을 땔 때마다 한가득 물을 채운다. 그 물은 여러모로 쓰인다. 여자들이 머리를 감거나 소향이 빨래를 하거나 혹은 가끔은 밤에 정기에서 문을 잠그고 철버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 그 물로 누군가 목욕도 하는 줄 안다.
-아저씨예. 그 솥에 지발 물 좀 쪼매만 넣으민 안됩니꺼?-
언제 왔는지 치마폭에 양손을 감싼 소향이 아궁이 앞에서 퍼질러 앉아 불기운을 즐기는 장씨 등 뒤에서 하는 말이다. 장씨는 고개를 돌려 얼굴이 겨울 한기에 발갛게 익은 소향의 얼굴을 보며 문득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왜? 아, 물 많이 끓여놓으면 쓸 수 있어 안 좋으냐?-
나이로 봐도 둘은 그저 딸과 아버지 또래다.
한 파수 전에 장씨가 간단한 보따리를 들고 종가에 들어와서 아래채 방에 들었다. 말이 만석꾼집이지만 머슴이 할 일이라고는 고작 조석으로 불을 땐다든가 아궁이에서 재를 퍼다가 잿간에 넣는다든가 마당을 쓴다든가 하는 잡다한 일 외에는 지금까지 마땅히 힘쓸 일이 없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왜 이 집에 머슴이 필요한지 의심이 갈 정도지만 차차 자기가 할 일이 눈에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집안의 살림을 익히고 있다.
-지가 물 떠오기가 너무 힘듭니더. 이 솥은 커서 한 댓번 이고 와야 채우는데예-
-아… 그렇구나. 내가 그 생각은 미처 못 했다. 그럼… 내가 물을 길러오면 되겠다-
-예? 샘에 우째 남자가 갑니꺼? 지가 이고 오민 되긴 되는데예. 너무 마이 쓰지는 말라고예-
남정네가 샘가에 얼쩡거리는 것이 당치 않다는 소향의 말이다.
-집에는 옹기물동이 밖에 없으니… 아무래도 물지게를 하나 마련해야겠네-
소향이 쫄랑쫄랑 꽁지머리를 흔들어대며 정기로 종종걸음을 치고 가자 장씨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퍽퍽 불똥을 튀어대며 나무는 아궁이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겨울 찬바람은 굴뚝에서 연기를 잘도 뽑아낸다. 너울대는 불길을 보면서 장씨는 이 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떠돌이 생활에 지친 자신이지만 누구에게도 내색할 수 없었고 또 내색 한들 무슨 대수가 생길 리도 없었다. 지금 자신은 그저 몇 년만 더 버티고 딸이 커주기만을 바랄뿐 그 이후의 일은 어떤 것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심지어 저 불길 같은 나락이나 팔한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까짓 한 몸뿐인 자신인데 감당하지 못할 것도 없지 하고 스스로 당찬 생각을 하지만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장탄식이 새나온다.
소향이 아침상을 안방에 들이고 태섭이 대청을 가로질러 아침을 먹으러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장서방도 정기로 들어선다. 아궁이에 아직 남아있는 숯불을 밖으로 끌어내놓고 둘은 흙바닥에 앉아서 아침을 먹는다. 장서방이 처음 온 날 소향이 독상을 아래채 장서방 방으로 들고 오는 것을 장서방이 막았다. 어차피 너도 혼자 먹는 밥인데 나도 따로 상 볼 것이 없이 같이 정기에서 먹자고 미리 정리를 했던 것이다.
-너는 언제 부엌살림 살아본 것처럼 제법 잘한다-
사기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밥을 숟가락이 미어지게 입으로 챙기면서 장서방이 칭찬으로 말한다. 소향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가 급선무라 장서방의 말을 들었지만 대답보다 우선 밥을 삼키는 것이 급해 답은 미뤄놓고 입안의 밥을 삼키고 한편으론 숨 쉬고 바쁜 행동을 마친 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한다.
-언지예. 삼천포 있을 때 어무이가 바쁘몬 가끔씩 하곤 했지예. 그케도 여 와서 마이 배웠심더-
종가에 온 날 소향이에게 다짜고짜 하대를 하고 말을 나눈 장서방이다. 누가 뭐랄 것도 없으리란 생각으로, 또 그저 딸 같은 또래니 그것이 편하다고 생각 들어서 그리 했지만 지난장날 태광이와 장에 갔다 오면서 귀띔을 들었다. 하지만 장서방의 생각은 간단했다. 그저 같이 이집에서 빌어먹는 신세이니 상관없으리라고. 그리고 또 그것이 저절로 식구들 사이의 관계를 정착시켰다.
둘이 숟가락질을 열심히 하는 도중에 밖에서 인기척과 함께 발자국소리가 우르르 들린다.
-장서방!-
목소리가 태광이다. 소향이나 장서방이 정기 밖을 내다보기도 전에 광수와 재수가 정기로 몰려든다.
-오야, 아침 뭇나? 우리 선상님!-
쪼그려 앉은 채로 소향은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담고 광수에게 묻는다. 아궁이 앞에 꺼내놓은 숯불 앞에 광수와 재수가 쪼그려 앉아 불을 쬐면서 주머니에서 유리구슬을 꺼내들고 둘이서 실랑이를 한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지금 막 아침 먹는 중입니다. 아침은 잡수셨습니까?-
장서방도 역시 앉은 채로 정기문간에 서있는 태광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침이 늦었네, 이집은. 아, 어서 드시오. 우린 벌써 했지-
태광의 말끝이 참으로 묘하다. 한순간 하소를 하고 다음은 하대를 한다. 아마도 아직은 편치 못한 관계설정이라고 장씨는 여기면서 속으로 웃음을 머금는다.
-마침 다 먹었답니다- 하고 사발의 물로 입을 헹군 다음
-그런데 어찌 아침부터 오셨습니까? 무슨 일로?-
-장서방이 오늘 바쁜 일 없으면… 내캉 소작하는 사람들 좀 만내보자고… 아무 케도 안면을 터놔야지-
그것이 묘한 정리다.
소작꾼들이 당연히 종가에 인사를 와야 하는데 태광이 그들을 불러들여 머슴에게 인사를 시키는 것이 영 어색하게 생각이 들어 어젯밤에 생각해낸 것이 장서방과 함께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이집 저집 다니며 막걸리나 얻어먹고 하루를 보내자는 것이었다.
엉덩이를 털어내며 일어선 장씨는
-겨울에 소작이 어디 있고 지주가 어디 있답니까? 그래도 광수아버지가 그리 말씀하시니 서로 알아두면 좋겠군요. 그리 하지요.-
하고 같이 정기를 벗어나는데 광수가 태광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면서 조른다.
-아부지. 팽이하고 썰매 좀 만들어도고-
-내도. 아부지-
재수도 덩달아 노래를 부른다.
-알았다. 내 담에 맹글어주꾸마. 지금은 바쁘다-
달래는 것도 없이 귀찮은 듯한 태광의 태도다.
-얘들아, 오늘이나 내일 내가 만들어주지. 아버지한테 귀찮게 하지 마라?-
당부하듯 장씨가 광수와 재수를 달랜다. 할 일도 마땅히 없는데 그깟 팽이쯤이야 양지에 앉아 낫으로 솔솔 깎아내면 재미도 있을 것이다.
-행수요!-
대청 아래에서 안방에 대고 태광이 큰아지매를 부른다. 그런데 방문이 열리며 내민 얼굴은 태섭이다.
-와?-
-그 계시네. 아침 잡샀소? 딴기 아이고. 장서방하고 우리 집 농사짓는 사람들하고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애서리. 우리 좀 댕기 온다꼬-
장서방을 대동하는 허락을 태섭이에게 구하고자 한 것이 아니고 형수에게 말하려던 태광이다. 장씨는 대충 집안의 역학관계를 짐작한다.
-그 카거라! 뭐 밸일이라고- 하고 태섭은 한기가 싫은지 문을 닫아버린다.
소향은 아침상을 설거지할 물도 없는 이유 때문에 숟가락을 놓자마자 물동이를 이고 나간다. 집을 돌아 샘가쯤 왔을 때 언젠가 들었음직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니 을순이 집이다.
남자목소리가 거칠 것 없이 터져 나오는가 하면 이어서 카랑카랑한 여자목소리가 소리소리 악을 쓰더니 사이사이로 언젠가 삼천포에서 네 다리 묶인 돼지를 깔고 앉아 목에다가 시퍼런 칼을 푹 찌를 때 돼지가 내는 그 소리도 나온다. 샘에 다다를 쯤에는 말도 다 들릴 정도로 큰소리가 담을 넘고 있었다.
-와! 내기 지랄이노? 내가 서방질 했나? 집구석에 있었으몬 그런 일도 없었겠지. 맨날천날 나돌고 와서 내기 우짜라고?-
창호어마이가 악에 받쳐서 발악을 한다. 필경 창호아버지한테 얻어맞기라도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할마시 죽고나디만… 안 생기야 될 일도 생기고. 참! 쯧쯧. 저 카다가 아 죽이겠다-
소향이보다 샘가에 먼저 와있던 두 아낙들이 말을 주고받는다.
-근데 객지서 돈 버는 줄 알았는데. 창호아바이는 운제 왔노?-
아낙이 다른 아낙에게 묻는 질문에는 상관도 안하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한다.
-걸뱅이라꼬 하디만서도. 누가 보기를 했나? 당한 아가 알기를 하나? 참! 빙신이 빙신짓 한다디만. 우짜꼬!-
우르릉 쾅쾅거리는 소리가 완력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고 사이사이로 짐승이 내는 울부짖음 같은 을순이 소리가 길게 때론 짧게 흘러나온다. 아낙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계속 말을 나누지만 소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레박을 올리고 내리고 동이를 채운 후 서둘러 집으로 내빼다시피 한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누구라도 눈치 챌까봐 얼굴이 한층 상기된 소향이다.
작은아지매가 마을에 도는 소문을 말해주어서 알고 있었지만 소향은 일언도 반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 그 고구마밭에서의 일을 수십 번도 더 되뇌어보았지만 뒷모습만으로는 누군지 알 길이 없는 소향이다 더군다나 소향이 마을사람을 안다고 해도 그 또한 몇 명에 지나지 않으니. 그날 텅 빈 창호네집에 그냥 을순이를 남겨놓고 왔지만 일철이라 사람들이 다 들에 나가있는 바람에 소향이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 소향이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을순이가 애를 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소향은 속으로 마치 자신이 그렇게 만든 사람인양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리고는 누구에겐가 할 수 있는 그때의 말을 소향은 시간을 놓치고 말았고 그 단순한 이유로 지금 심장이 콩 튀듯 하는 것이다.
물동이를 내려놓고 긴 숨을 내쉰 후 턱없이 부족한 물을 채울 생각도 접었다. 을순이의 비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소향이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온통 그 남정네의 뒷모습 생각이다. 풀숲에 걸려 넘어질 듯 두어 번 기우뚱거리며 나무 뒤로 사라지던 남자를 생각하던 중에 기어이 사기대접을 하나 놓쳤다. 정기바닥에서 조각난 대접을 주어 들고 그냥 부뚜막에 털썩 앉아서 마음을 추스른다.
-누구 안에 있는교?-
해가 한참이나 솟아오른 아침이지만 여자가 남의 집에 첫발걸음을 하는 것이 소향은 의아하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다. 그래, 보살님이다. 소향은 손에 든 사기조각을 그대로 든 채 후다닥 정기를 뛰어나간다.
-보살님! 운제 오싰습니꺼?-
반가운 얼굴이라기보다는 삼천포 소식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향의 눈에 나타난 털보무당의 꼴이 말이 아니다. 구정물이 든 두루마기는 후줄근하게 걸쳐져있고 산발된 머리는 빗지도 않은 모양새다. 광대뼈는 불쑥 튀어나와서 해골이 웃을 지경이고 검디검은 얼굴색은 오뉴월에 콩밭을 매도 석 달 열흘은 맨 것처럼 시커멓다. 무당도 소향을 보자 반가운 내색이다. 소향이 반가워서라기보다는 누군가 집에 사람이 있어서이다.
-그래, 잘 있었나? 니는 우떻노?-
소향에게 말은 하지만 눈은 연신 안방을 향해 두리번거리며 집안 동태를 살피는 듯하다.
-지예? 지야 잘 있심더. 칸데예. 울 어무이는… 점방은예?-
계단을 내려선 소향은 털보무당하고 같이 마당에 선 채로 동동거리며 삼천포 소식을 묻는데 무당은 몸을 사시나무 같이 떨어댄다.
-오이야, 다 개안타-
말이 어금니가 부딪치면서 나올 정도로 추워서 떠는지 아니면 몸이 불편해서 떠는지 소향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을 한다. 그때 안방문이 열리고 큰아지매가 나온다. 소리가 안방에 안 들릴 리가 없었다.
-보살님이 이 아침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기별도 없이?-
대청 끝에 선 채로 얼굴에 웃음기도 없이 인사를 한다. 무당은 우선 두루마기 한 쪽을 잡아들고 계단부터 올라간다.
-예, 기별할 끼 모 있습니꺼? 섣달도 됐고 해서. 정초에 제 모실 꺼 수의도 할 겸해서 왔심더-
벌써 대청 위로 올라선 무당은 안방마님이 방으로 들기만 기다리고 서있다. 큰아지매가 나오는 바람에 삼천포 소식을 듣는 둥 마는 둥한 소향의 속이 온통 감질만 난다.
-아침은?-
여전히 마루에 선 채로 무당에게 묻는 큰아지매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소향을 보고 털보무당은 넉살 좋게 청한다.
-소향아, 내 아침상 좀 봐라. 오니라고 때도 놓치고 댕긴다-
-그래, 보살님 상 좀 들이거라. 들어가시지요-
소향에게 이른 큰아지매는 무당을 보고 방에 들기를 권하는데 벌써 무당은 앞서서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간다.
지난 추석 무렵에 본 보살의 모습도 한물간 생선 눈같이 풀린 동자하며 술기운에 절은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던 것이 소향의 눈에 뭔가 미심쩍은 듯했는데 오늘도 삼천포에서 기억나는 보살님의 모습과는 영 다르다. 소향은 다시 상을 차리면서 개운치 않은 느낌이 가슴에 차오르는 걸 느끼지만 워낙에 바람같이 사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하면서 싸잡아서 염려하는 마음이다.
-니는 와 또 상을 채리노?-
언제 왔는지 광수에미가 정기로 들어선다.
-을쑤이 자가 저 카다가 죽겠다. 창호아바이가 어지간히 해야지. 가가 뭘 안다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