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에 찾아온 지서장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0화

김담 | 기사입력 2015/01/19 [10:47]

종가에 찾아온 지서장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80화

김담 | 입력 : 2015/01/19 [10:47]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장서방은 제일 먼저 양 고래로 되어있는 자신과 소향의 방 아궁이에 불을 활활 지핀다. 막차를 타고 또 함창에서 태봉까지 걸어오느라 겨울 한밤이 깊을 대로 깊었지만 냉기 줄줄 흐르는 방에 불부터 때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무 말도 없이 담요를 가슴팍에 끌어안고 따라온 소향은 집에 오자마자 자신의 방에 들어가 쥐죽은 듯 소리도 없다. 아마도 방에 쓰러져 누웠을 것이다. 감옥에 사흘이나 있었으니 잠인들 제대로 잤을까? 지금은 그저 몸을 눕히고 쉬는 것 이상 또 무엇이 필요하랴? 장서방은 아궁이 앞에 엉덩이를 내리고 앉아 하늘에 청명한 별무덤을 올려본다.

 

고요한 집안이다. 건넌방 태섭은 오늘도 늦는다. 오든 가든 장서방이 챙길 일이 아니지만 소향의 일이 벌어진 이후의 종가의 처사가 장서방의 눈에 미운 오리털이 되었다.

그래도 자신은 머슴이 아닌가? 일어서서 집을 옆으로 돌아 건넌방 아궁이에도 불을 넣는다. 태섭이 안 오면 빈방에 온기만 남을 것이지만 그것은 그저 머슴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담 너머 별채에서 뒷간 가려던 태광이 종가에서 비춰지는 아궁이 불빛을 보고 장서방이 온 걸 알았다. 소피를 보고 허리춤을 치켜 올리며 태광이 종가의 마당에 들어서는데 장서방이 가마솥에 부울 물을 들고 정기에서 나온다.

-장서방! 운제 오싰는교?-

-아! 광수아버지. 안 자고 이 밤중에 어찌 오셨소? 방에 불을 넣었는데 솥에 물이 없는 것도 모르고 있었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오. 허허- 하고 물을 가마솥에 쏟아 넣는다.

-소향이는 우찌 됐능교? 들리는 얘기로는 곧 넘어간다고 하던데?-

검찰로 이송될 거란 말을 들은 참이다.

-소향이? 넘어가요? 어디를? 글쎄올시다. 지금 소향이는 방에 있는데? 오늘 면회 가니까 다짜고짜 형사가 석방이라고 해서 같이 막차 타고 왔는데…. 지금 자고 있을 거요-

장서방은 태연하게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밀어 닫으며 말한다.

-오이? 소향이가 왔다고? 장서방?-

한 발 가까이 다가서며 태광이 끼고 있던 팔짱을 풀어 내리며 고개를 앞으로 빼내 묻는다.

-나도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소향이 지금 방에서 자고 있다니까요?- 하고는 물동이를 들고 정기로 걸어간다.

 

태광은 장서방의 뒷모습을 보며 머릿속에는 시선과는 다른 생각으로 얽힌다. 당장 날이 새자마자 소향을 이집에서 내보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동네에는 이번 사건은 종가와는 무관한 일이며 또한 소향도 김씨 집안과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말해놓았으니 한시라도 빨리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태광은 성큼성큼 걸어서 집으로가 잠에 취해 활개치고 자는 마누라의 종아리를 발로 툭툭 차며 -야! 야! 일나봐라. 일라보라카이!- 역성을 내며 태광이 담배를 뽑아든다.

 

-자는 사람을 와 깨우노? 안 자고 뭐 합니꺼?-

이불을 끌어당기며 모로 돌아눕는 광수에미를 더 이상 채근하지도 않고 태광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소향이 왔단다- 한다.

광수에미는 누운 채로 고개만 바짝 치켜들고 놀란 듯 서방을 보고 -누가예? 소향이?- 하고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고 한손으로는 머리맡에 놓아둔 비녀를 찾아 머리에 꽂으며

-왔다고예? 소향이? 누가 캅디꺼?-

-누군 누구겠노? 장서방이 델꼬 왔다 카더라-

광수에미는 윗목에 있던 치마며 저고리를 주섬주섬 걸치자 태광이 가재미눈으로 쳐다보며

-뭐 하러 옷을 입노?-

-가볼라고예-

치마끈을 매다 말고 광수에미는 서방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맵다.

-아아들도 있는데 우째 그리 피워샀노? 코가 맵다 매봐!- 하고 일어선다.

-무신 상전이라고 가노? 놔도라! 내일 아침에 행님 보고 보내라 칼끼다. 집에 우환 들기 전에-

광수에미는 도로 주저앉으며 서방을 보고

-케도… 그건 서울 있는 행님이 알아서 할 일 아입니꺼? 델꼬 온 것도 행님이고…. 카이 보내는 것도 행님이 해야 할 낀데. 서울에 있으이-

-우짜든지 우리가 알아서 할 끼이니 니는 고마 모른척하고 자거라-

태광이 담배를 비벼 끄고는 벌렁 뒤로 자빠져 누워버린다. 광수에미는 측은한 소향을 어찌 모질게 내보내나 하고 혀를 끌끌 차더니 도로 치마저고리를 벗어놓고 눕는다.

 

어수선한 마음에 잠이 안 드는 광수에미는 등 돌리고 누운 태광의 등짝에 대고

-당신. 소향이 보내자고 하는 거… 아주버님이 소향이 방에 들이니 고까워서 카제? 안 글라?-

마누라의 엉뚱한 발상에 아직 잠이 들지 않았던 태광이 확 돌아누우며 -이기! 주딩이 있다고 아무 말이나 다 하노? 디비 자거라 고마!- 하고 확 돌아 눕는다.

광수에미는 태광의 등짝을 힘껏 꼬집어대며

-내 다 안다! 니 말 안해도!-

-아야! 이기… 와 카노? 정말?-

눈을 부라리며 광수에미를 돌아보지만 벌써 광수에미는 이불속으로 숨어버렸다. 그저 할 일없는 동네 개들만 컹컹 짖어댄다.

 

겨울아침은 그저 느긋하다. 소죽 끓이는 김이 가마솥에서 슬슬 새나올 때쯤 급할 것도 없고 오히려 가는 시간이 더 느리게만 느껴진다. 한겨울 농부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아낙들은 비로소 솥전에 눌어붙은 보리밥 누룽지를 긁기 시작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집집마다 뒷전 초가에 붙어있는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라올 때쯤 난데없이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린다.

 

태광은 담 너머 종가에 신발이 있나 없나 살핀다. 어젯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던 태섭이 들어왔는지 보는 중이다. 댓돌 위에 놓인 구두를 보고 담을 돌아가려는데 종가의 정기에서 누가 서성이는 모습이 보이더니 곧 소향이 물 묻은 손을 털어대며 마당으로 나오는 것이 보인다. 어차피 내보낼 건데 하며 대문을 들어서서 바로 건넌방 앞에서 부른다.

-행님 . 접니다- 하고는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직 기침도 하지 않고 누워있던 태섭은 상체를 일으키며 -와?- 하고 묻는다. 무슨 할 말이 있지 않으면 이렇게 일찍 찾아올 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 든 태섭은 눈을 채 뜨지도 않은 채 -뭔 일이고?- 귀찮은 듯 묻는다.

-행님! 소향이 내보내이소. 자를 집에 뒀다가는 무슨 환란이 생길지도 모립니더- 하고 태섭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광을 태섭은 엉거주춤 마주본다.

-감옥에 들앉은 아를 오데로 내보내노? 나오든가 말든가 해야지- 하고는 길게 하품을 한다.

-자가 지금 집에 있다 안 캅니까? 어젯밤에 왔심더. 장서방이 델꼬 왔다 아입니꺼?-

 

태섭은 정신이 번쩍 난다. 이불을 잡아 젖히고 정좌의 자세로 앉고는 -소향이 집에 왔다고?- 묻는 동안에 밖에서 떨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태섭은 앉은 채로 허리를 굽혀 문을 열어 내다보니 정말 소향이 마당을 걸어가고 있다.

 

도로 문을 닫은 태섭은 태광을 응시하며

-우찌 된 일이고?-

태광은 찌푸린 얼굴을 더 찌푸려대며 -우찌 되고 안되고 간에 동네에서 더 시끄러운 소리 나기 전에 당장 오늘 아침에 자 내보내이소-

태광의 말이 건성으로 들리는 태섭은 영문도 모르게 소향이 집에 돌아온 것이 여간 어색하지가 않다. -장서방 좀 오라 케라- 하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양손가락으로 매만진다.

 

태광이 역시 허리를 길게 뻗어 문을 열고 큰소리로 부른다.

-장씨! 장씨! 좀 들오소!-

마침 물지게를 지고 샘에서 돌아오던 장서방이 대문간에서 태광의 말을 듣고는 눈을 마주쳐 알았다는 듯 신호를 보낸다.

물을 정기 독에 들이붓고는 장서방이 건넌방으로 들어가니 두 형제가 아래위로 앉아있다.

-우찌 된 일이고? 장씨?- 태섭이 물어댄다.

-저도 어제 그저 소향이 먹을 것이나 챙겨줄 요량으로 면회를 갔는데 다짜고짜 석방이라고 해서 막차 타고 왔을 뿐이라 모르겠습니다. 저는 회장님이 손을 쓴 줄 알고 있었지요. 회장님 아니면 누가 그럴 사람이 있을까 해서요- 하고 태섭의 얼굴을 빤히 보는 장서방이다.

 

동네 어느 귀퉁이에서 나는 시끌시끌한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태섭은 자기가 손을 써서 소향이 방면되었을 거라는 장서방의 말에 아무 대꾸도 안하고 그저 장서방의 얼굴만 쳐다본다.

-뭐 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 난립니꺼? 행님? 여비 줘서 보따리 챙기라 하고 보내민 되지!-

태광은 거의 성화를 내다시피 하며 다리를 꼬고 말을 내뱉는다.

장서방의 눈에 비치는 형제의 꼴이 하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긴 바보천치 같고 또 하나는 철없이 날뛰는 망둥이 꼴이다.

 

그때 밖에서 큰 헛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십니까?-

태광이 문을 열고 내다보니 검은 제복을 입고 허리에는 혁대를 두른 지서장이 서있다.

-아이구, 지서장님이 우짠 일입니꺼? 이 아침에?-

태광은 일어서서 문을 열어둔 채로 마루로 나온다. 태섭도 지서장이란 태광의 말에 일어서서 마루로 나오고 장서방도 마루로 나와 봉당으로 내려선다.

-회장님 계시서 다행입니더. 잠깐 들어가서 말씸 좀 드리도 되겠심니꺼?-

지서장의 깍듯한 태도에 평소에도 유지모임에서 안면이 있는 터라 태섭은 반기는 모습으로 팔을 내어 어서 올라오라는 시늉을 해댄다.

-그리 서있지 말고 어서 올라 오시오. 태광아, 니는 뭐… 마실 거라도-

소향에게 시키지 않고 태광에게 부탁을 하는 태섭이다.

 

지서장이 검은 구두를 곱게 벗어 댓돌 위에 나란히 놓고는 정중한 태도로 태섭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윗목에 자리를 잡고 태광도 궁금하여 따라 들어왔다. 장서방은 아무 관심도 없는 듯 물지게를 지고 다시 샘으로 가버린 후 이미 장서방의 주문을 들은 소향이 수정과가 담긴 잔을 작은 소반에 올리고 건넌방으로 들였다.

 

-우선 회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올리겠심니더- 하고는 지서장이 느닷없이 방바닥에 두 손을 대고 허리와 고개를 숙여 반절을 해댄다.

황당한 태섭은 엉덩이를 들어 두 손으로 지서장의 팔을 잡아 말리며 -무신 말씸을…. 와 이캅니꺼? - 하고 정색을 하지만 영문 없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허리를 숙여대는 지서장의 태도에 어쩔 줄을 모르는 태섭이다.

 

-저희들이 심문을 한다고 했지만 처자가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 불찰이었십니더. 이해하이소, 회장님-

또 머리를 조아려대는 지서장을 보고 태광은 어안이 벙벙하다.

-좀전에 사건 당사자들을 다 잡아 들랐십니더. 심지어 같이 있던 사람들도 다 잡아들랐십니더. 말리지 않고 방관했다는 죄목으로 말입니더-

묻지도 않았는데 지서장을 혼자 열심히 말을 늘어놓는다. 그럼 아까 동네에서 난 시끄러운 소리가 순경들이 동네사람들을 잡아가는 소리였단 말인가?

 

-처자가 마이 고생했을 낍니더. 그저 회장님이 너그러이 생각하시고 저희가 조치하는 것 보실 때꺼정 살펴봐주십사 이렇게 왔심더- 하고는 또 목을 숙이는 지서장이다.

-물론 사람들이 상처를 입긴 했으이께네. 그기 좀 복잡하긴 하지만 처자한테도 정당방위라는 기 있심더. 카이… 우짜든지 처자는 아무 일 없심더-

도무지 뭘 살피고 뭘 너그러이 생각하라는 말인지 태섭도 태광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지서장은 목이 달랑거리는 입장이라 따질 겨를이 없다. 어젯밤에 상주 본서로 호출을 받은 지서장은 경찰서장으로부터 온갖 험한 말을 다 들은 참이다. 그동안 목에 힘주고 허리 꼿꼿이 세우며 거리를 활보했는데 느닷없이 감찰실장 백을 등 업은 자가 이 지방에 있을 줄이야. 지서장을 후려치던 경찰서장의 말이나 표정에서 시골 촌동네 지서장 목쯤이야 닭 모가지만도 못하다고. 지금 지서장은 그 엄청난 감찰실장을 등에 업고 있는 태섭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중이다.

-서울 경무부에도 말씸 좀 잘해주시고. 담에는 절대로 이런 실수는 없을 낍니더. 회장님!-

 

태섭은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일을 가늠해보려 하지만 도무지 모르겠다. 태광도 역시 어안이 벙벙하다. 갑자기 다 잡아들여? 그리고 소향은 집으로 방면되고?

지서장 혼자만 지껄이게 둘 수는 없어서 태섭도 무슨 말인가는 해야 할 판이다.

-아이구. 무신 말씸을…. 공무 보시다 보민사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 다 잘하시고자 하는 거 아입니꺼?-

들으면 그럴싸한 말이지만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

-그저 서울 본부에 말씸 좀 잘해주이소. 경찰서장님이 당부를 했심더. 회장님께 용서를 빌라고. 아! 카고… 경찰서장님도 조만간 찾아 뵐 거라 했심니더-

필경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확실한데 태섭이나 태광은 통 모를 일이다.

-그럼 지는 이만…. 오늘이나 낼 중으로 취조 마치고 다시 말씸 올리러 오겠심니더-

깍듯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지서장은 일어서서 뒷걸음질까지 해대며 나간다.

 

소향이 정당방위라 했던가? 그럼 소향이 무죄도 될 수 있단 말 아닌가? 아니 무죄란 말 아닌가? 태광은 어안이 벙벙하다. 집안에 화근을 들이지 말자고 당장 내치자고 태섭에게 종용하러 아침부터 자는 사람까지 깨워 닦달을 해대던 참인데 느닷없이 지서장이 제 발로 와서 머리를 조아려대며 소향이는 아무 죄도 없다, 다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잘못이다, 옳게 취조하지 못한 순경들을 너그러이 용서해라, 상주 경찰서장도 찾아와 뵐 거다?

 

지서장을 배웅해 보낸 태섭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태광도 따라 들어와 앉았다.

-행님, 지 모리게 행님이 무신 조치를 했심니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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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ㅅㅎ 2015/01/20 [21:23] 수정 | 삭제
  • 정말 너무 재미있어요. 맨날맨날 연재해주셨음 조
  • 백작 2015/01/19 [13:35] 수정 | 삭제
  • 흥미진진!! 어떻게 전개될지 뒷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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