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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태섭도 모를 일이다. 그저 어안이 벙벙한 태섭은 태광의 눈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아무 말이 없다. 태광은 말 없는 형의 얼굴을 대답을 기다리면서 재촉하듯 눈을 더 크게 뜨고 쳐다본다. -니는 알 거 없다. 그저 동네에 시끄러븐 소리나 안 나도록 해라- 태섭은 다리를 꼬아 올리고 재떨이를 당겨 무릎 앞에 놓고 담배에 불을 당긴다. 자신이 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믿는 아우나 사람들에게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니 더 알아볼 수밖에 없는 태섭이다.
-아이쿠!- 비명을 지르며 남정네 하나가 함창지서 바닥으로 쓰러진다. 얼굴을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은 태우다. -내가 뭐라 켔노? 여가 오데라고 함부로 지껄이고 있노? 지금! 우리가 다 알고 조사하고 있는데, 뭐라꼬? 니는 모리는 일이라고?- 반말을 해대며 모자조차 벗어던지고 설치는 것은 지서장이다. 상주 경찰서장에게서 들은 분풀이를 해대는 중이다. -내는 못 봤다고 안 합니꺼?- 바닥에 모로 누운 채로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태우는 지서장을 올려다보며 말을 한다. -그라모,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짓말 했다는 말이가? 다 니도 기냥 웃으민서 구경만 했다 카는데, 심지어 노병구도 그 카던데. 그라모 다 거짓말 하고 니만 참말 한다는 기가? 이 자슥이? 아직 덜 맞았네?- 지서장은 허리를 구부려 태우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린다. -우째 이 캅니꺼? 우째 내만 그냥 봤다고 캅니꺼? 그 있던 사람들 다 봤는데!- 태우는 지서장의 손을 움켜잡고 이제는 사정조로 말한다. 끌려온 사람들을 개 패듯 패대며 취조를 해대고 있다. 지서라는 곳을 사람들은 꺼린다. 그저 꺼린다. 왜정시절부터 순사들이 하던 행패에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지서를 피해 다닌다. 그런 지서에 오늘 아침에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먼발치 동네에 있는 태우까지 끌려왔다.
하나씩 지서장은 직접 취조를 해댄다. 우르르 앉혀놓고 하는 조사가 아니고 미리 상주서장으로부터 들은 사건 내막을 바탕으로 꿰매고 있는 중이다. -그 카이께네. 그 노병구라는 놈이 먼저 소향이라는 처자한테 행패를 부렸고, 그 옆에 있던 아지매하고 또 마루에 있던 너그들 전부가 기냥 보고만 있었고, 또… 응, 그랬지! 그 소향이라는 처자를 노병구가 넘어뜨려서 추행을 할라꼬 하자 고마 처자가 옆에 있던 낫으로 방어를 했다! 맞제?- 태우를 거의 올라타고 있는 지서장은 태우의 얼굴에 대고 구성된 사건을 늘어놓는다. -지는 방에서 막 나오라던 참이라…. 그런 일은 못 봤심더!- -이 자슥이 여태 정신을 못 차릿구만!- 하고는 지서장은 주먹으로 사정없이 태우의 코를 후려친다. 허리에 맨 검은 가죽혁대며 검은 제복이며 손에 들린 곤봉이 흔들거릴 때 사람들은 순경과 지서를 감히 대응하기는 힘들다. -아이쿠! 내 죽네! 고마 하이소! 서장님!- 얼굴을 감싼 태우의 손바닥 사이로 피가 흘러내린다. -아이다. 니 같은 놈은 더 맞아야 주디에서 참말이 나오지!- 이제는 곤봉으로 태우를 후들겨댄다. 몸을 고슴도치처럼 웅크린 태우는 날아드는 몽둥이를 피하며 얼굴을 가린다. -지서장님! 내 다 말할게예! 할게예. 고마 하이소!- -내가 뭐라 켔노? 니는 맞아야 된다 켔제? 그래! 내 말이 틀맀나?- 태우는 차마 말을 못한다. 불과 열 발짝 떨어져있는 유치장에 동네 사람들이 다 들어앉아서 듣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얻어맞는 것도 겁이 난다. 맞아도 하소연할 곳도 없을뿐더러 맞는 자신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와 아픈 사람을 오라 가라 캅니꺼?- 그때 꾸루와이가 지서 문을 열면서 느긋하게 들어서서 바닥에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태우를 보고는 정신이 화들짝 난다. 동가식서가숙하는 개버릇을 어젯밤에도 어딘가에서 행한 노병구는 찾으러 다녔던 순경들이 남긴 얘기를 듣고 느지막이 함창지서로 들어서던 참이다. 아직도 문고리를 잡은 손을 놓지 못한 꾸루와이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금방 알아채고 좀전의 그 여유 있던 표정을 싹 감추며 절룩거리는 다리를 곧추 세워 모은다. -지서장님이 찾는다 케서 왔심더- 하고 곤봉을 든 채 매눈을 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지서장을 보며 말을 하지만 속은 이미 한겨울 문풍지 떨리듯 떤다. -노병구. 니를 처자 추행범으로 체포한다. 김순경! 저 새끼 수갑 채워!- -예!- 순경 하나가 달려들어 꾸루와이를 사정없이 잡아채 돌려세우고는 수갑을 뒤로 채운다.
휘둘리는 통에 몸의 중심을 못 잡는 꾸루와이는 절룩거리는 한 쪽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는 지서장에게 소리를 지른다. -이기 뭡니꺼? 지금? 내기 이 케도 됩니꺼?- 개 버릇 어디 가는 법 없듯이 행패 부리는 것이 몸에 밴 노병구 아닌가? 비록 지서에서 수갑이 손을 옭아매고 있지만 우선 버팅기고 본다. 하지만 명줄이 서울 감찰본부에 달려있는 지서장의 눈에는 두들겨 팰 이유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곤봉을 들어 꾸루와이의 몸통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아이쿠!- -이 새끼가, 오데서 하던 버릇을 여서하고 지랄이고? 여가 니 안방인 줄 아나? -하고는 한 대 더 후려친다. -아이구야! 와 캅니꺼? 말로 하이시더!- 몽둥이를 피하느라 기어이 바닥으로 넘어진 꾸루와이는 위로 보이는 지서장에게 소릴 지른다. 등 뒤로 손에 수갑이 채워진 터라 넘어진 꼴이 성치 못한 한 다리와 성한 다리가 비대칭으로 버둥대면서 겨우 고개만 치켜들고 있어 목 따기 전에 묶인 돼지 형세다.
-증인들이 다 증언을 했으이 니 같은 파렴치한 놈은 피곤한 주디 놀릴 일도 없다. 김순경 저 자슥 처박아 넣어!- 그래도 전쟁에서 상해를 입었다는 핑계로 좁은 지역사회에서 상인군인협회, 반공협회, 청년협회 등등에서 술께나 얻어먹고 사는 게 낙이고 또 시끄럽게 행패를 부려도 누구 하나 대들기는커녕 다 슬슬 피하는데 익숙한 꾸루와이다. 심지어는 지서장과도 그동안의 지역행사를 통해 안면도 있는 터인데 갑자기 이렇게 몽둥이 세례를 받으니 황당한 노병구다. 하지만 일단 곤봉은 피하고 봐야 한다. -지서장님! 내도 말 좀 하이시더. 와 이 카는지- 김순경이 꾸루와이를 옷깃을 잡아 일으켜 세워 유치장으로 밀고 가려 하자 버팅기면서 지서장을 돌아보며 이제는 제법 사정조로 말한다.
창호어마이는 미리 엄포를 당하고 심지어 도박을 장려했다는 죄목까지 들추어대자 지서장이 말하는 사건 전모에 그저 "예, 그랬심더, 예"만 반복하여 일사천리로 마치고 유치장 한 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있고 나머지 남정네들도 따귀 한두 대 얻어맞자마자 지서장의 말에 순순히 동의하고 말았다. 지서의 순경이나 지서장을 상대로 대들어봐야 오뉴월 개 잡듯 두들겨 맞을 뿐, 맞아봐야 아프기만 하고 모욕만 당하거나 체면에 손해만 간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사실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던 것이 왜정시대 순사들이었고 또 어쩌면 그 비슷한 지금의 순경들인데 그날 밤 있었던 일을 다 알고 있는 그들에게 순순히 동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무 하러 간다꼬 나섰다가…. 이기 뭔 꼴이고! 참!- -애당초 발을 들르는 기 아인데- -올해 삼재가 낐다꼬 했디만… 기어이 그 값을 치르네!- -우린 인제 우찌 되제?- -아까 안 카더나? 무신 방조죄라 카더나? 위증죄라 카더나? 그런 걸로…. 우찌 될 끼라고- -참내! 내는 아무 말도 안하고 아무 것도 안했는데 여는 왜 있는지 모리겠다!- -빙신아! 바로 그기다! 암 것도 안한 기 죄다! 이 말이다. 등신아!- -참내… 내 살다 살다… 뭐 하다가 죄 짓는 건 봤지만 아무 것도 안했다고 죄 된다 카는 말은 또 첨 듣는다- -보래이. 여가 오데고? 지서 아이가? 갖다 붙이면 죄도 될 끼고 붙은 죄도 떼뿌모 무죄 아이가? 카이께네. 조용히나 해라. 괜시리 떠들모… 없는 죄도 하나 더 붙을지 모린데이- 웅성거리며 바닥에 쪼그려 앉아있는 동네 사람들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꾸루와이가 김순경에 의해 끌려 들어오자 다들 똥 묻은 개 피하듯 자리를 내주며 피한다.
* * *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고 또 영문도 모르게 풀려난 소향은 장서방의 말마따나 자신을 풀려나게 할 사람은 영감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해가 어느새 하늘 반대쪽으로 기울자 소향은 정기에서 분주하다. 없는 솜씨지만 오늘은 잔뜩 자신을 위한 영감님을 위해 정성을 부려볼 요량이다. 아니 이 집안사람들을 위해 고마움을 갚아야 할 것이다. 제일 먼저 자신을 찾은 고마운 작은아지매며 먼 길도 마다 않고 찾아온 장씨아저씨는 말할 것도 없다.
-몸은 좀 괘안나? 소향아! 소향아! 내 다 들었다. 고생했다- 말을 늘어놓으며 광수에미가 정기로 들어선다. 사실 하룻밤 따뜻한 방에서 자고난 소향은 몸이 가뿐할뿐더러 기분도 좋다. -언지예! 지는 괘안심더. 아지매예. 미안합니더. 괜히 지 땜에- 소향은 물 묻은 손을 함께 잡아 죄송함을 표한다. -아이다. 꾸루와이 그 놈이 직일 놈이지. 또 그 창호어마이년도 그렇고. 망할 년. 우째 한 동네 살민서 그 칼 수가 있노? 그래. 뭐하고 있노? 저녁 끼리나? 저녁은 이르다 일러! 아직 해가 한참은 남았는데?- -아지매예, 광에서 북어 좀 꺼내 주이소. 카고… 오늘 저녁은예 광수하고 재수하고 다 여서 잡수도록 하이소. 지가 하께예- -그래! 그 카자! 식구도 안 많은데 담 하나 사이에 두고 두 상 채릴 거 뭐 있노?- 큰아지매가 서울로 간 후로 사실 광 열쇠는 소향이가 가지고 있지만 아예 광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에 종종 광수에미도 들락거리며 마음대로 들고나가고 있던 참이다. 소향은 그래도 이 집에 큰아지매가 없으면 작은아지매가 그다음의 주인이라는 듯 국 끓일 마른 북어를 부탁하는 것이다. 광수에미가 다듬이 방망이로 잘 두드려 찢은 북어로 소향은 무를 숭덩숭덩 넣고 국을 잘 끓였다. 김장은 꽤나 잘 익었다. 벌써 한 달 이상 땅에 묻혀있었으니 맛이 들대로 들었다. 태섭과 태광은 건넌방에서 겸상을 하고 나머지 식구들은 소향이 방에서 한상에 둘러앉아 먹지만 장씨만 혼자 정기에서 먹고 있다. 장씨가 원해서이다. 그저 혼자 조용히 먹고 싶어서 였다.
정월 초하루가 며칠 남지 않았다. 태섭은 태광이와 제례를 앞에 두고 이것저것 의논하느라 밤늦게까지 건넌방에서 두런거린다. 장서방은 저녁을 마치자마자 아래채 자기 방으로 갔다. 광수네도 갔다. 소향은 방에서 흔들거리는 호롱불을 켜놓고 한 쪽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턱을 고이고 앉아있다. 그동안은 늘 태섭이 소향에게 필요하지 않아도 물을 들이라느니 아니면 먹을 것을 들이라느니 하는 핑계로 소향을 방으로 불러들이곤 했지만 오늘밤 소향은 자신이 건넌방으로 찾아갈 요량이다. 어차피 자신은 이집에서 생산을 위해 온 몸 아닌가? 또 이번일로 영감님에게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야 할 입장이다. 큰아지매가 자신을 위해 비워준 시간들인데 괜한 일로 인해 일주일이나 날아가버렸다. 이참에 겸사겸사 하자는 게 소향의 심산이지만 밤이 깊어도 태광이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건넌방 문이 열리는 것은 듣지 못했지만 마당에 내려서면서 헛기침을 해대는 태광의 소리에 깜박 졸고 있었던 소향이 고개를 든다. 가만히 태광이 대문을 벗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그리고도 한참을 더 기다린 소향이 호롱불을 끄고 문을 열고 나가 정기로 향한다. 어둡지만 정기의 구조는 눈을 감아도 알 만하다. 사발을 찾아서 물을 한 그릇 담아 조용한 발걸음으로 건넌방 앞으로 간다. -소향입니더. 물 떠왔는데예- 장서방도 있고 바로 담 너머 광수네도 있어서 큰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모기소리도 아니다.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소리이고 또 바로 문 앞인데 태섭의 대답이 안 들린다. 벌써 잠이 든 것일까? 아니지. 아직도 남폿불이 있고 광수아부지가 금방 가지 않았던가? 소향이 다시 부른다. -저기… 소향입니더- 태섭이 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첫 번의 부름도 들었다. 하지만 당황하여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설마 소향이 제 발로 자신의 방을 찾아올 것은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이번 소향의 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의 행실에 대한 스스로 조금의 자책도 대답하지 못한 이유에 보태졌다. 두 번째의 소향이의 목소리를 듣고는 태섭은 목을 가다듬는다. -들어오니라- 소향은 조용히 물그릇을 들고 방에 들어가 물을 윗목에 놓고는 쪼그려 앉는다. -이번에 지가 죄송하게 됐심더. 카고… 또 힘 써주시서 고맙심더- 소향이 할 수 있는 사과와 감사의 표시가 달랑 한 마디에 다 실려 있다.
태섭은 당황한다. 하지만 겉은 멀쩡하게 다리를 꼬아 올리고 헛기침을 해대며 당황하는 속내를 감춘다. 따지고 보면 태섭이 한밤중에 묵타령 하는 바람에 이 사단이 벌어졌다. 그러니 태섭이 간접적 원인제공자이다. 그런데도 소향의 영어기간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태섭은 책임을 회피하고 방관한 자이다. 그런데 지금 소향이 고맙다고 제 발로 찾아와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태섭은 그저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다행히도 남폿불이 그다지 밝지 않길 다행이라 생각한다.
-뭐꼬. 그런 말 하는 기 아이다. 다 살다 보민… 그런 일도 저런 일도 생긴다. 우짜든지 욕봤다- 어정쩡하게 대답인지 연설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다. 소향의 감사를 받는 말도 아니고 사양하는 말도 아니라서 태섭은 스스로 잘한 말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우짜든지. 고맙심더- 소향은 또 한 마디를 덧붙여서 고마움을 표하며 고개를 깊게 숙인다. 소향은 이제는 어떡하나 하고 생각한다. 인사치레도 다 했고 할 말도 다했는데. 평소대로라면 태섭이 불 끄고 자자 하는 말이 그나마 자신을 편하게 어둠속으로 밀어 넣어주었지만 오늘은 자신이 찾아온 탓에 태섭은 아직 다리를 꼬고 담배만 피우고 있다.
태섭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계집이란 그저 향기에 취하거나 꿀맛이 달 때 품을만하지 어떻게 마음속에 거미줄 같은 것이 어수선하게 걸려서 너울대는데 계집 구미가 당긴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소향이 오늘밤에는 스스로 왔다. 도무지 동하는 마음이 없다. 그래도 담배를 비벼 끈 태섭은 대님끈을 풀며 고개 숙인 채 방바닥만 보고 있는 소향에게 그다지 높낮이도 없는 건조한 음성으로 한 마디 한다. -불 끄고 자자 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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