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궁금하겠지, 너는.
학교에서 왜 혼자 밥을 먹어야 하고, 쉬는 시간에도 놀 친구가 없어서 서성이게 되는지. 아무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니 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도 따질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게 될 거야. 우리를 보는 눈길이 조심스러워지고 원망스러워지겠지. 하지만 어김없이 넌 우리를 보고 웃게 될 거야. 비굴한 웃음을, 친해지고 싶다는 웃음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되묻는 웃음을, 혼자여서 괴로운 웃음을.
그러면 우리도 마주 보고 웃어줄 거야. “안녕!” 하고. 그 환한 웃음에 넌 더욱더 몸 둘 바 모르겠지.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지고 자기 느낌을 의심하게 되겠지. 우리를 미워하다가 다시 사랑하게 되어 더욱 어쩔 줄 모르게 되겠지. 넌 잘 때도 우리 꿈을 꿀 거고, 날마다 우리를 뇌리에서 지울 수 없을 테지. 그래서 더욱더 우리의 우정을 갈구할 거고, 우리는 더욱 상냥하게 안부 인사를 할 거야. 때때로, 간헐적으로, 네가 우리와 멀어지려 할 때마다, 네가 정말 우리를 미워하기 전에.
그렇게 희망을 이따금 떨어뜨리면서 네가 그 씨앗을 허겁지겁 줍고 열심히 가꾸려고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겠지. 우리가 내민 손을 네가 잡으면 우리는 악수를 거둬들일 거고, 네가 등을 돌리면 우린 네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얹을 거야. 우리는 여전히 친구잖아,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너는 더욱 알 수 없겠지. 너는 우리를 피하는 대신 스스로 미워하게 될 거고, 우리는 네 자신보다 더 뚜렷한 존재로 네 마음에 새겨지겠지. 우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다정하며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니까. 너는 마치 무력한 어린아이처럼 말을 더듬으며, 우리의 거침없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며 시선을 둘 곳을 찾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릴 거야. 넌 우리의 포로니까.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때로 무례해도 너는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겠지. 친구가 되고 싶으니까. 우리만 한 친구는 없으니까. 너와 놀아줄 친구가 없다면 넌 완전히 혼자일 테니까. 혼자라는 건 너에게나 우리에게나 끔찍한 일이지, 안 그래?
그래, 그렇게 네 덕분에 우리는 완전히 외롭지 않은 우리가 되었어. 네가 있어서 우리의 울타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우리는 우리끼리 더욱 활기차게 지낼 수 있었어. 우리는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너의 흉을 보며, 우리 중 누군가가 너의 친구가 되는 것을 경계하며 서로의 일상을 샅샅이 나눔으로써 진정한 우리가 되었어. 네가 없는 우리는 상상할 수 없고, 우리가 없는 너 또한 무의미하지. 그렇게 우리는 너에게 영원한 애착을 느껴.
너는 우리를 찾아왔지. 그리고 물었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냐고. 우린 ‘네가 잘못한 건 없다’고 말해줬지. 그런데 너는 다시 한 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 나와 놀지 않는 건, 나한테 뭔가 화가 났기 때문이고,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우리는 놀라 되물었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냐’고 우리는 너를 달랬지.
너는 혼란에 빠져 울먹거렸지. 우린 말했지. 우리는 너의 친구라고, 네가 잘못 생각한 거라고, 예민한 거라고, 우리는 그저 농담을 했을 뿐이라고 눙쳤지. 너는 너의 느낌을 의심하며 너의 괴로움을 스스로 짓밟으며 뒤돌아서야 했지. 그 뒤에서 우리는 서로 가만히 눈짓을 교환했지. 네가 무력해져서 우리는 강력해졌고, 네가 스스로를 믿지 않아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를 확신하게 되었어.
궁금하겠지, 너는, 따돌림의 이유가. 이유는 없어.
네가 그 자리에 있어주어 우리는 우리가 되었고, 네가 슬퍼서 우리의 기쁨이 뚜렷해진 거지. 그렇지, 빛과 그림자처럼. 네가 있어서 우리는 기를 쓰고 서로 다 같은 존재가 되지, 너의 자리로 대신 갈 누군가로 몰리지 않기 위해. 그게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지.
이를테면, 네가 잘난 체를 했다거나,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다거나, 네가 예쁘다거나, 네가 자기 주장을 잘 한다거나, 아니면 네가 주눅이 들어 자기를 방어할 줄 모른다거나, 선생님의 무시를 받는다거나, 못생겼다거나, 말을 잘 못한다거나 모두 그 이유가 되겠지. 네가 우리를 좋아했거나 우리를 싫어했다거나 네가 잘살았다거나 못살았다거나 모두 원인이 되겠지. 네가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어 섣불리 다가왔다거나 네가 우리의 인사를 받지 않고 지나쳤다거나 그 이유가 되겠지. 우리 중 하나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거나 우리에게 무관심했다거나 모두 이유가 되겠지.
넌 우리 비위에 거슬린 거야. 다르기 때문이지. 그리고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해주자면 다른 사람이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한 거야. 왜냐고?
이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건데 말해줄게. 우리는 우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소녀들의 심리학>(원제: ODD GIRL OUT: The Hidden Culture of Aggression in Girls)은 소녀들의 따돌림에 대한 책이다. 학창 시절 따돌림을 겪은 레이철 시먼스는 성인이 되어 300여 명의 인터뷰를 통해 따돌림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리고 소녀들의 관계적 공격성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여성화되는 방식-경쟁심, 질투,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 여성-과 관계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계층적으로 소녀들은 어떻게 다르게 훈육되며 이것이 어떻게 따돌림의 양태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연구했다. 중산층 소녀들은 여성다워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속에 수동적이고 간접적인 태도를 익히는데 친구를 관계를 통해 따돌리고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도 그중 하나가 된다.
저자는 학교의 공적 규칙을 통해 이러한 따돌림에 대처할 방안을 모색하며, 가시화되지 않는 따돌림을 어떻게 드러내고 이해하며 공론화할지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이들 소녀들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어 공통적으로 고통을 당한다고 이해한다. 따돌림이라는 잔인하고 가슴 아픈 양상을 상세히 묘사하며, 그녀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닌 젠더의 관점을 통해 소녀들의 태도를 분석한다.
“우리는 여자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함으로써, 여자는 공격적이지 않다는 틀에 박힌 믿음을 지속시킨다. 또한 공격을 병적이고 사적이며 은밀한 것으로 만들어서 자기 주장적인 여자들을 문화적으로 억압하는 공모자가 된다. 또한 소녀들이 서로 따돌리는 방법과 이유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막는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우리가 서로 이방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 논의를 사적이고 정서적인 영역으로 한정함으로써, 우리를 따돌린 가해자들을 시궁창에 처박고 벼랑에서 떨어지게 하는 상상에 머묾으로써, 대체공격에 대한 바람직한 논의는 차단되고 더 솔직한 우정을 나눌 가능성은 박탈된다. 공개하면 모두 비열하고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여자이며, 친구이다.” (209p)
“우리 문화는 진실 말하기와 분노의 표출을 “좋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고, 소녀들은 이것이 아주 나쁜 줄 알고 있다. 우리는 가장 상처를 덜 입히는 것이 정답이라고 배워왔다. 가장 불편한 감정을 “관계의 공기와 빛”에 노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소녀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중심에 있는 분노와 욕망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를, 우리의 관계를, 우리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어지럽고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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