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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종갓집 대청에는 먹다만 상이 여전히 놓여있고 큰아지매는 서서 담 너머 보이지 않는 을순이네로 길게 목을 뽑아 보고 있다. 소향이도 양손을 앞으로 모아 대문과 담을 보며 봉당위에서 달싹거리는데 함지박만한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광수에미가 활개를 치며 들어온다.
-무시라 무시라. 인간이 우짜모 그런가 모리겠네-
이미 겨우 형상만 보일 정도의 어둠이 내린 집안에 정신이 어디에 팔렸는지 아무도 남폿불도 켜지 않고 서성이는 것을 보며 광수에미는 대청에 털썩 주저 않으며 상위에 놓인 물그릇을 들고 하마같이 들이키는데 큰아지매나 소향이나 그저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입만 쳐다본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길에 숨길이 막혔던지 길게 한숨을 내쉰 광수에미는 소향을 보며 -불 좀 댕기라, 사람 집에 우째 귀신맹키로 살 것노? 아이구, 이, 모기 봐라- 하면서 손을 휘휘 내젓는데도 큰아지매도 소향도 여전히 광수에미만 보고 있다. 개선장군 같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광수에미는 큰일을 하거나 보고 온지라 작은 마을에 큰 이바구 거리는 분명하다. 그런데 도무지 입을 열지는 않고 딴짓만 해대는 광수에미를 보다가 기어이 소향이 참지 못하고 묻는다. -우찌 됐십니꺼? 아지매예!- 마루위의 상을 밀치고 광수에미의 맞은편에 걸터앉는 소향이 얼굴을 광수에미 앞에 바짝 들이댄다. -야는 덥구로, 와 이카노?- 몸을 뒤로 젖히며 한눈으로 여전히 말이 없는 큰아지매를 보며 속으로는 저놈의 여편네가 묻지도 않고 내가 먼저 입을 뗄 때까지 기다리고 있나 하고 마치 무슨 풀지 않은 보따리를 안고 있는 양 은근히 버틴다.
-소향아, 상 치우거라- 큰아지매의 첫말이 상을 치우라는 말이다. 소향이도 광수에미의 얘기를 기다리지 말고 할 일이나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광수에미가 기어이 먼저 보따리를 풀어헤친다. -가시나라예- 하면서 어둠속에서나마 큰아지매의 눈을 보며 반응을 기다리는데 아무 말 없이 방 앞에 드리워진 대발을 들어올린다. -쿤데 아무 케도 죽은 거 같심더- 상을 들려던 소향이 그대로 마루에 도로 앉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신음같이 무슨 말을 하는데 혼잣말처럼 한다. -소향아, 성냥 어디 있나?- 안방에서 큰아지매가 소향에게 남폿불 당길 성냥을 찾자 광수에미는 풀어놓은 보따리에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어진 양 오히려 머쓱해진다. 정기에서 성냥을 찾아 안방에 들인 소향의 손목을 덥석 잡아 마루에 앉힌 광수에미는 이제는 묻지도 않는데 보따리 속을 헤쳐 내놓는다. 안방의 큰아지매도 지척인 마루에서 하는 말을 다 듣고 있다. -쿤데 와 보살님은 안 오시는교?- -아 글쎄. 곧 오시겠지. 우짜모 송장을 둘 치우게 생깄다. 아가 하혈을 마이 해서리-
광수에미는 연신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남폿불 빛을 보며 큰아지매가 물어주기를 기다리지만 아무 말이 없다. 속으로 사람이 나거나 죽거나 하는 중차대한 일에 어쩌면 저리 매정하게 관심도 두지 않는지 서울내기들은 다 저렇게 인정이라고는 없는가 하는 표정으로 입을 씰룩거리는 광수에미는 지금이라도 한 마디만 물어주어도 후다닥 안방으로 들어가 미주알고주알 다 늘어놓을 텐데 하고 있다.
소향은 왜 자신의 속이 이리도 허한지 모르겠다. 손끝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상을 정기 맨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시커먼 대들보를 본다. 그을음에 거슬려 시커먼지 어두워서 시커먼지 한아름이나 될 성싶은 굵은 대들보가 굳게 올려져있다. 누가 죽든지 누가 이 세상에 오든지 상관없다는 듯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마음이 후들거린다. 그 절룩거리는 꾸루와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머리가 풀어헤쳐진 을순이의 히죽하게 웃는 얼굴도 떠오른다. 불쌍하다는 생각뿐이다.
* * *
-보살님 인제 고마 가이소. 살든가 죽든가 다 지 팔잔데- 손에 걸레를 들고 핏물 젖은 치마위의 꼬물거리는 갓난이를 보고 있는 무당에게 창호어마이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당은 아무 말 없이 치마 한 자락을 들고 애기를 이리저리 닦아주다가 -불이나 댕기봐라. 어둡아서 아무 것도 안 빈다- 한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창호에미에게 주문하는 털보무당에게 창호어마이는 버럭 소릴 지른다. -아! 와캅니꺼? 보살님. 고마 가이소. 사람값도 몬하는 것들인데. 죽든가 살든가 다 하늘이 알아서 할 낍니더. 가이소 인제!-
문밖에서 거의 악담 같은 말을 늘어놓아도 어쩐 일인지 무당은 꼼짝도 안 하다가 슬며시 을순이 쪽으로 허리를 길게 뻗어 목 밑에 손을 대보더니 -맥은 있는데 우째 정신이 안 나노?- 하고 밖에 있는 창호네를 돌아보자 그동안 그저 손발만 허공위에 내젓던 애기가 울음을 울어댄다. -응, 그래, 그래, 울어라 울어! 그래야 목이라도 트이제- 하며 무당은 어설픈 모양으로 안아보려 한다.
그때 창호어마이가 화가 난 듯 방안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서서 무당의 손끝에 달린 애기를 덜컥 빼앗아 든다. -와캅니꺼? 보살님? 이 아를 키울라 캅니꺼? 키울라모 가 가이소. 지금! 안 그라모, 여는 다 놔두소. 퍼떡 가이소!- 매몰찬 소리를 들었음에도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지금 무당의 눈이 오직 애기한테만 꽂혀있다. -안 되겠다. 모기가 피 냄시를 맡았는가 자꾸 달라드네. 자네. 물 좀 끼리가 온나! 씻기야 된데이- -내는 모립니더, 보살님이 알아서 하던가. 내는 모립니더! 고마 가라 안 캅니꺼?- 앙칼진 목소리가 드디어 털보무당의 귀에 들린다. 무당은 정좌를 하고 앉더니 어둠속의 창호에미를 보며 -니 이칼래? 이것도 사람 목숨인데, 니 이카모 자가 죄 받는데이- 하며 문밖을 가리킨다. 언제 왔는지 창호가 문밖에 서서 어두운 방안을 보며 서있다. -산사람도 목숨 부지하기 힘든데 아, 지금 사람 구실도 못하는 것들 우짜란 말입니꺼? 내보고?-
무당은 아무 말 없이 피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자신이 앉아있는 방바닥도 피에 젖어있는 것을 비로소 느낀다. -내가 아를 델고 가마- 창호어마이의 귀에 또렷하게 들리는 말이 무겁다. -예? 델고 오데를 간다고예?- -내가 데리고 간다 켔다- 창호어마이는 어안이 벙벙하다. 하긴 윗목에 밀쳐놓고 죽어도 치우는 것 또한 일이고 산다하면 더 성가신 일이다. -아주예? 아주 아주 델꼬 간단 말입니꺼?-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무당도 덜컥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혼미하다. -그래! 내 아주 데리고 가마- 막상 말은 했지만 겁부터 나는 무당이다.
창호어마이는 잠시 아무 말이 없이 그저 어둠속 무당의 얼굴을 보다가 입을 꾹 다신 후 -참말이지예? 아주 델꼬 가는 깁니더? 나중에 지보고 딴소리 안하깁니더?- 하더니 핏덩이를 무당의 무릎 쪽으로 밀쳐놓는다. 잠시 동안 두 여자의 주고받는 말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악을 쓰고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악을 쓴다고는 하지만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겨우 울어대는 울음이 시끄럽거나 성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기롭게 느껴지는 무당이다. 어쩌려고 그런 말을 덜컥 내놓았는지 겁은 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렷다!
-오이야, 니도 나중에 딴소리 안 하기다!- 덥석 아기를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그냥 문을 나서서 무작정 삽작을 나서자 창호어마이도 무엇에 홀린 양 손에는 걸레를 들고 방문을 나서서 삽작으로 걸어가다가 제자리에 한참을 머문 후 걸레를 허공에 털며 뭔가를 지껄여댄다.
* * *
큰아지매도 물어주지 않고 소향도 정기에서 혼자 허탈하게 부뚜막에 앉아있는 바람에 광수에미만 덩그러니 마루에 있을 때 무당이 핏덩이를 안고 들어섰다. -소향아. 오데 있노? 물 좀 끼리라- 손에 무언가 들고 있는 무당, 그리고 물을 끼리라는 말, 광수에미는 순간 어둡지만 알 것 같다. -압니꺼?- 광수에미의 말이 부뚜막 위의 소향을 콩 튀기듯 튕긴다. 후다닥 뛰어나온 소향이 두 여자가 머리를 맞대고 들여다보는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며 - 알라라예?- 하고 묻는다. 꼬물거리는 것이 어둡지만 보인다. -그래, 퍼떡 물부터 끼리라. 씻기야지. 모기가 물어싸서- -물은 아까 저녁답에 끼린 거 있심더. 아직 안 식었을거라예!- 소동 같지 않은 작은 소동에 안방 앞에 드리운 대발이 올려지더니 큰아지매도 나온다.
-보살님, 어떻게 된 사연입니까?- 두 사람 사이에 앉더니 눈길을 아기 쪽으로 준다. -아, 그 창호네란 여편네가, 여간 모진 예팬네가 아니구만, 죽기를 바래는 마음도 알기는 하겠지만… 케도 우째 살아 숨 쉬는 사람을 둘둘 말아서 죽이라고 하는지. 참!- 허리를 펴고 비로소 길게 숨을 내쉬는 무당은 이제 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을쑤이는예?- 광수에미의 물음에 대답하기도 전에 소향이 물을 담은 놋그릇을 마루위에 올리자 무당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오이야. 보재이, 그래! 물은 안 차갑다! 안 글라?- 하며 광수에미에게 묻는 듯 눈을 바라본다. 평생에 아기를 씻겨본 적이 없는 무당은 그래도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본 광수에미에게 확인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광수에미가 물속에 손을 쑥 넣어보더니 -됐심더. 물은- 하더니 자신이 소매를 둥둥 걷어 올리고 핏덩이의 목을 손바닥위에 가누고 몸을 팔위에 올리더니 물속에 천천히 넣는다.
큰아지매는 말로는 수십 번도 더 들었지만 이렇게 갓 태어난 핏덩이를 목욕시키는 것은 본적이 없다. 소향은 본 적이 있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 동내 산파가 향숙이를 목욕시키는 것을 물을 들이면서 구경한 적이 있다. 무당은 자신이 하려 했던 일을 광수에미가 더 능수능란하게 하자 놋그릇만 붙들고 아예 엉덩이도 마루에서 뗀 채 쪼그려 앉았다. -그래도 그렇지. 보살님, 우짜자고 여를 델꼬 왔십니꺼? 을쑤이는예?- 조심스레 귀나 눈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닦아내며 광수에미가 묻는다.
무당도 물에 손을 넣고 핏덩이의 다리를 물로 매만진다. 작디작은 다리다. 큰아지매가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남포를 들고 나와 불을 비춘다. -이목구비는 또렷하네- 하고 무당과 광수에미가 목욕시키는 광경에 눈을 떼지 않던 큰아지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나한테 입힐만한 게 있습니다- 하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꺼내온다. 다 씻긴 애기를 광수에미는 자기 머리위에 걸쳤던 수건으로 토닥거리며 닦아주자 울던 아기가 신기하게도 울음을 멈추고 입을 오물거린다.
무당은 아기의 팔이며 다리며 심지어 뒤집어 등짝도 보더니 떼었던 엉덩이를 마루에 붙여 주저앉으며 -아가 빙신은 아이다. 있을 건 다 있고. 얼굴도 누구 씨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밉상은 아이다- 하자 광수에미는 -인제 됐심더. 델따 주이소. 아가 젖을 물고 싶어서 입을 오물거립니더- 한다.
소향은 남폿불 빛 희미한 아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본다. 환영받으며 태어나고 귀하단 소릴 듣지 못해도 다행스럽게 탈이 없다는 것에 괜히 대상도 없이 감사한다. 큰아지매도 신기하게 들여다보다가 -이거 입혀보게. 자네- 하며 아까 들고 나온 것을 광수에미에게 내준다. 광수에미는 손에 받아든 것을 펴보니 보드랍게 느껴지는 배냇저고리임을 알고 놀란다. -아이구 이런 기? 운제 행님한테 이런 기 있었심니꺼?-
다들 놀란다. 무당도 놀라고 소향도 놀란다. 어쩌면 자기 뱃속에 있는 아기가 태어나면 입히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다. 광수에미가 능수능란하게 아기를 뒤집고 들고 하더니 어느새 다 입히고 배 쪽에 있는 끈을 매어 주면서 -안성맞춤입니더. 쿤데 참 곱기도 한 걸 보이 광목을 아이고 뭡니꺼? 이기?- 하고 묻는다.
소향도 옷을 입은 빨간 아기가 탐스럽고 예쁘다고 생각이 들어 -아지매, 지도 한번 안아볼까예?- 하자 무당이 손사래를 치며 -아서라,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아를 니가 안다가 무신 일이라도 생기모 우짤라고?- 하며 마루에 누워있는 아기를 자기 무릎 쪽으로 끌어당긴다. -보살님, 쿤데, 울쑤이는 좀 우떻심니꺼?- 광수에미의 물음이 사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다. 무당은 눈을 아기에게 맡겨둔채 건성으로 답한다. -글쎄다. 여태 정신이 안 나던데. 맥은 있긴 있어도…. 가마 있자! 소향아, 니 이리 좀 와본나!- 하더니 소향이 목 밑으로 자기 손바닥을 대고 가만히 있더니 -니는 맥이 떡매 같이 쾅쾅 뛰고 또 빨리도 뛰는데. 가는 우째 실낱이 흔들리는 거 맨치로 뛰더라- 하고 주위를 한번 휘 둘러보다가 도로 마루위의 아기에게 주목을 한다.
밤이 제법 깊었다. 장서방은 어디서 저녁을 챙기는지 또 태섭은 무슨 사무를 보느라 기척도 없는지 그리고 별채 태광이는 또 무슨 일로 얼굴도 안 보이는지 몰라도 마루위에 여자들만 한가득 앉아있다. 기어이 큰아지매가 한마디 한다. -여보게 동서, 자네가 아기 데려다주게. 너무 늦은 것 같으니- 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부채로 아기 위를 휘 부쳐준다. -그라까예? 아를 키아본 기 벌써 한 십 년 다 되가이 그런가? 이렇게 보이께네. 또 새롭네예! 이뿌고!- 광수에미가 조심스레 아기를 안아 올리자 아무 말도 않고 어둠속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무당이 광수에미의 손길을 막고는 -가는 내 아다. 인제!- 하고 넌지시 광수에미 손에 든 아기를 자기 손으로 뺏어 옮긴다. 모두 듣긴 들었다. 소향이도 광수에미도 그리고 큰아지매도 들었지만 묻기 전에 무슨 말인지 생각해보느라 아무도 묻지 않는다. -보살님, 지금 뭐라 켔심니꺼?- 제일 급한 광수에미가 묻는다. -내 아라 켔다. 야는 인제 내 새끼라고- 하고 무당은 또박또박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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