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뭘 그런 걸 물어?’ 가족계획사업의 기억
칠남매 중에 한 명으로 태어나고, 삼남매 중에 한 명으로 태어나고, 외동아이로 태어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어떤 시대에는 집집마다 형제자매가 여럿이고, 어떤 시대에는 한두 명을 낳는 것이 상식이 되는 세상이 된다. 왜 그럴까?
<현대 한국의 인간 재생산>(배은경 지음, 시간여행, 2012년)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당연히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물어?’ ‘결혼하면 다 그래.’ 얼렁뚱땅 넘기는 것이 태반인 여성의 삶에서 질문을 제기하기 그에 대해 답한다. 성관계, 피임, 임신, 출산 같은 이른바 사적 영역의 역사성을 드러내 분석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 한 문장 사이에 여러 얼굴과 기억이 스쳐간다.
‘둘도 많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라는 포스터가 어린 시절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싶어 한참 서서 보았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도 있었다. 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이 둘을 낳고 셋째를 낳았다고 하면 실제로 불이익을 주었다. 주택 입주나 보험 혜택에서 제외시키는 차별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셋째를 ‘낙태’했다고 말하는 어떤 여성의 목소리에는 아직 슬픔이 있었다. 길에서 자기를 닮은 젊은이를 보면 수술한 막내가 아닌가 싶어 나이를 꼽아보게 된단다. ‘한번 수술한 게 평생 죄 밑이다’라고 고백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가족계획사업의 기억은 여자들끼리 쉬쉬하며 은밀히 토로하는 이야기다.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조세영 감독, 2013년)의 첫 장면은 여자들이 둘러앉아 중절수술 이야기를 하고 이웃의 누구도 수술을 여러 번 했다고 수군거리는 것이다. 이런 건 역사로 기록이 안 된다. 내가 옆집 할머니에게 어떻게 피임을 했냐고 슬쩍 물어보았더니 ‘나라에서 루프를 다 해주었다’고 했다. 가임기가 지나고 루프를 빼내는 시술을 할 땐 ‘그동안 잘 했어!’라고 의사가 엉덩이를 철썩 두드렸다고 했다.
섹스와 임신, 출산과 낙태에 개입한 국가
가족계획사업은 국가사업이다. 1960년대 이후 예산과 인력과 지원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인구가 늘어나면 안 된다고 박정희 독재정권은 판단했다. 또 냉전 시대에 미국은 제3세계 인구가 성장하는 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원조 받은 루프를 대대적으로 시술받고 주는 피임약을 꼬박꼬박 먹어야 했다.
미국의 국제가족계획후원회는 먹는 피임약 노리닐 10만 싸이클을 한국여자의사회에 전달하여(1976년) 병원에서 배포하게 했다. 연이어 불임수술 장비를 제공해 무료 시술을 하게 했다. 사업은 ‘돌진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군대식으로 이루어진 사업은 할당량과 실적 수를 앞세웠고 임상실험이 끝나지 않고 부작용이 있는 신개발품을 여성들에게 시술하기도 했다.
행정기관과 보건소에는 ‘가족계획요원’이 있어 출산조절 보급 활동을 했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그 이유는 사업의 표적 집단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근대화된 조국을 이룰 수 있는 이들의 모습은 ‘핵가족’으로 상정되었다. 여성들이 ‘근대적 어머니’로서 자녀양육과 교육에 집중하도록 요구받은 것도 이 시기와 맞물린다.
가족계획사업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그 이후에 일반화된 우리나라의 현대적 모성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를 몇 명 낳아야 할지, 어떻게 피임을 할지, 인공유산을 어떨 때 할지, 언제 성관계를 해야 하는지,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했다. 냉전과 반공주의 시대 속에서 그것은 정치적 문제였고, 여성의 몸을 소외시키며 투입과 산출의 공식이 되었다. 미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재원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농촌 여성들은 의사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하고 ‘부끄러움과 무서움을’ 참아가며 시술을 했다. 인공 피임수단의 부작용은 정신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참으면 고통도 덜해진다는 선전이 있었다. 가족계획사업은 인구통제 정책으로만 추진되었고 1973년의 모자보건법도 그러한 관점에서 제정되었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기획된 모성, 어머니
어떤 점에서 여성들은 가족계획사업을 ‘기꺼이’ 따랐다. 다른 이들처럼, 여성들은 잘 살고 싶어 했고, 계층 상승을 하고 싶어 했고, 가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싶어 했다. 농촌 여성들은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 출산을 조절했다’고 말들 했다.
국가사업 안에서 모성은 기획되고 선전되며 도시 전업주부의 삶은 부러운 꿈으로 만들어졌다. 도구화한 가족계획사업 속에서 여성은 가족 속의 ‘어머니’로 호명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살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국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가족 가치와 모성 예찬의 선전이 아니라 개별 여성의 모성 경험이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사회생활의 방식을 제도화해 내는 작업일 것이다. 출산을 줄이고 자녀 수를 줄이고, 이에 따라 얻어진 소수의 자녀에게 가족의 자원과 자신의 노동력을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투자하는 것을 가족의 계층 상승과 여성의 자아 실현에 꼭 필요한 행위양식으로 만들었던 가족계획사업의 유산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 제대로 극복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그 관계 속에서 아이와 자신을 함께 성장시켜가는 어머니노릇의 가치 역시 단 한 번도 사회적 인정을 얻어 본 적이 없다. (…)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조차 여성의 모성 경험은 늘 국가의 목표를 위해 동원되거나 희생되어야 했다. 여성이 모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여성 자신의 자아와 삶을 오롯이 살아가되, 그 삶이 아이와 성인의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모두를 성숙시켜가는 모성의 경험을 포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해방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한국의 인간 재생산> 마지막 부분에서
여자들이 쉬쉬하며 하는 말, 아예 하지 않는 말
써놓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의 인간 재생산’에 대해서 여자들은 할 말이 많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떠들썩하게 말해왔다. 대가족의 명절 날 북적거리는 부엌에서 며느리들이 주고받는 대화 중에 으뜸은 ‘애 낳는 이야기’였다. 애 낳을 때 있었던 일, 차별적인 언동에 속상했던 일(아들인지 딸인지, 며느리는 시집 사람인지 아닌지),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의 이야기를 한다. 그걸 웃어가며 할 수 있는 것도 자식을 낳아 집안에서 자기 자리가 잡혔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네들끼리 좀더 쉬쉬하며 하는 말들도 있다. 월경주기법으로 피임하는 법, ‘배꼽수술’을 해서 임신하지 않는 법, 몰래 한 중절수술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소리 낮춰 전화통화로, 골방에서의 밀담으로, 적은 지식이나마 나누며 궁리한다.
그리고 아예 하지 않은 말들도 있다. 여자의 책임으로 부과한 피임과, 그마저 여자가 피임하면 ‘밝히는 여자’로 낙인을 찍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번번이 일어나는 현실적인 임신과 ‘낙태’, 출산들.
<자, 이제 댄스타임>에는 ‘낙태’를 한 여성의 인터뷰가 나온다. 차가운 시술 의자, 몸을 헤집는 차가운 수술기구들, 다리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는데 그것이 ‘유일하게 따뜻한 것’이었다고 했다. 유일하게 따뜻한 것을 잃으면서 묵묵히 누워 있어야 하는 심정을 알까. 그게 어떤 경험인지, 잣대를 들이대는 세상 사람들은 알까. 말을 할 때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2010년 인공 임신중절 추정 수는 16만8천738건이었다. 2010년 미혼모는 16만6천여 명이었다. 공식적으로 2010년까지 16만4천894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되었다.
아이를 입양 보내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얼굴을 나는 기억한다. 고개를 쳐들고 방의 천장을 휘휘 둘러보며 “우리 애기가 다리가 길었어요, 아빠 닮아서… 우리 애기는 4kg이 넘었어요” 말하던 고등학생 아이였다. 성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도 없고, 콘돔을 쓰자는 말을 차마 못했던 그애는 쉼터에서 아이를 낳고 나서 ‘평생 비밀을 간직하라’는 다그침 속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일을 겪는 것도, 말할 수 없는 것도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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