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위하여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①

하리타 | 기사입력 2016/01/17 [22:07]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위하여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①

하리타 | 입력 : 2016/01/17 [22:07]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짊어지고 국경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삶의 변화를 꾀하며 사회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천해가는 여정이 전개됩니다. –편집자 주

 

심리치료라는 여행을 시작하며

 

: 삽입하고 나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온갖 이미지가 떠올라요. 영화에서 본 강간 장면, 어린 시절의 추행당한 일,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들이 당한 성노예 상황까지… 그러면 순식간에 기분이 곤두박질치고 제가 지금 강간을 당하고 있는 듯이 비참해지고 남자 성기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들어요. 내가 아픈데 이걸 집어넣으면서까지 섹스를 해야 하나. 섹스가 뭘 위한 건가? 다 때려치우고 싶다 등등…

 

A: 남자 성기가 무서운 거예요?

 

: 공포라기 보단 혐오에 가까운데요. 페니스 혐오랄까? 페니스에 관련된 다양한 비유가 있잖아요. 방망이, 관통한다 (penetrate), 불끈불끈… 다 좀 공격적인 것 같고 불쾌해요.

 

치료사 A와 나눈 대화의 일부다. 나는 스물아홉 여성, 현재 독일에 살고 있고 이곳에서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의료보험사에 보험을 청구할 때 쓰는 나의 질환명은 ‘성기능 장애’(Sexual functional disorder)로 잠정 결론이 났다. ‘성기 삽입을 해야만 섹스’라는 강박감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나의 상태에 쉽게 ‘장애’라고 이름 붙이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다. 그러나 심리 상담(카운셀링)과 달리 질환, 진단, 치료 쪽으로 가면 공공의료 서비스에 포함되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좋은 치료사를 만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수년간, 어쩌면 살아온 시간 동안 내내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위해 무수한 방법을 시도해왔고 그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 여행 구간은 심리치료다.

 

그 ‘흔한’ 성폭력과 나의 성기능 장애

 

 ▶ 아동성폭력은 흔하디 흔하다.    © [출처] 경찰청 공식블로그

이 글의 독자라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남 얘기가 아니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잘 알다 못해 통감하고, 또 억울화고 화가 나 가슴에 얼마쯤 한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흔한’ 성폭력을 어릴 때 겪었다. 경험이라는 건, 특히 고통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라 서로 견줄 수도 없지만 그저 기계적으로 수위를 말한다면 내가 겪은 일은 성추행의 범주에 들어가는 덜 심각한 것이었다.

 

아파트 경비와 사촌오빠가 각각6살, 9살의 나에게 기분 나쁜 사건을 일으켰다. 성인이 되어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고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 그래 다들 알겠지. 그 경험이 나를 형성했으니까. 남성에 대한 인식과 관계 맺기, 성에 대한 인상, 성행위에 대한 나의 접근…. 두 사건의 경우 모두 부모님은 내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보통의 한국부모와 학교가 그렇듯 여성의 몸조심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성교육, 또 엄마의 남성 혐오도 나의 자유로운 섹슈얼리티 형성을 가로막은 요인이다.

 

지금 파트너(남성)는 일년 넘게 만나고 있고 처음으로 동거하는 파트너이기도 한데, 그 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관계의 깊이와 폭이 예사롭지 않다.

 

전에 만난 사람들은 남녀 국적 불문(나는 양성애자다) 학계에서 종사하는, 지적이지만 다소 소극적인 유형이었다. 책으로 배운 게 많아 파트너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섹스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나의 ‘삽입섹스 거부’를 넘어서지 못했다. 상대방을 이해해주고 강요는 안 하니 삽입을 제외한 섹스를 주로 해왔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삽입을 안 했으니 우린 제대로 된 섹스를 ‘아직’ 못했다는 사고의 프레임에 갇혀있었다는 게 함정.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졌던 일말의 미안함이나 부채감이 억울해서 이불킥이 나온다.

 

▶ 나도 진심 즐기고 싶다. 삽입섹스를 형상화한 드로잉. © [출처] Mark Anthony Jacobson 작품

반면 지금의 파트너는 철저히 실전(?)에서 좌충우돌하며 배운 사람이다. 성경험이 너무 많아서 탈일 지경. 처음 섹스에 관한 내 심리를 털어놓았을 때, ‘내가 지금까지 같이 자본 여자 중에 성폭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냐’, ‘나도 10대 때 매일 성 학대를 당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솔직한 답이 바로 날아왔다.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나고 전율이 왔다. 아, 이번엔 다르겠구나 라는 직감. 비로소 나는 점점 더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 대화 이후 나는 삽입을 자주 시도해보았다.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아파도 상대방이 사정할 때까지 참곤 해서 이후에 부어올라 얼얼한 건 물론, 찢어지거나 상처 난 질 때문에 몸 고생 마음 고생을 했다. 아파도 당장 그만두지 않았던 것, 계속 시도했던 건 어처구니 없지만 역시 흔한 이유에서다. ‘분위기 깨기 싫어서’, ‘말하기 민망해서’ 혹은 ‘하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그래도 삽입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슬슬 나를 몰아붙이다가 어느 시점에 곪아터졌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이유

 

삽입섹스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실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심각한 트라우마를 주거나 생활에 엄청난 지장을 주지 않지만, 섹스라는 일상 행위의 일부로 오래 지속된다. 계속하기엔 괴롭고 아주 그만둘 수도 없고. 드러내놓고 말 못하니 해결도 쉽지 않다. 강간 피해 등 다른 문제에 비해 사소하다고 여겨져 별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여성 성기능 장애(Female Sexual Dysfunction, FSD)에 대한 기사나 산부인과 광고가 나오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 기혼여성의 부부생활 차원에서, 폐경기 여성질환으로 소개된다. 즉 (미혼)여성이 성결정권을 갖고 독립적인 주체로 사는데 지장을 주는 요인으로 보는 담론은 없다는 얘기다.

 

나는 <일다>를 오래 눈팅해 온 언니들,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알아서 어디 가서 여자라고 기죽지 않는 언니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며 섹슈얼리티에 대해 열의를 갖고 공부하며 금기 없는 표현과 실천을 하는 게 목표인 언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유롭지 못한 구석이 있는 언니들(바로 나!)과 연대하고 싶은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통계는 믿지 말자

 

▶ 신문 기사를 가장한 한 산부인과의 홍보자료.

사회과학연구자로서, 통계가 얼마나 허울좋은 신기루인지 잘 알고 있다. 특히 섹스 관련 조사는 더 그렇고, 그 중에서도 ‘여성’에 관한 통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도 막막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성교통’, ‘여성 성기능장애’, ‘삽입 시 통증’ 같은 검색어를 모조리 쳐봤다.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이…’ 어쩌고 하는 통계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면서도 내 상황에 들어맞으니 ‘아,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작은 위안은 들었다. 하지만 기사와 자료들을 읽어도 읽어도 결정적인 답 같은 건 없고 점점 공허해졌다.

 

그래서 대신 주변 사람들과 과감히 벽을 허물고 대화해봤다. 좀 친하다 싶은 친구들에게 ‘삽입할 때 안 아프냐’고 대놓고 물어봤다. 이 인터뷰들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 결론은 (각종 성교통을 비롯해) 아무런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제한 없이 섹스하는 여성은 대다수가 결코 아니라는 거였다.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프고 씁쓸하고 답답해졌지만, 한편으로 자궁 속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번지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굳이 준 건 아닌데 혼자 동지애를 마구 느낀 거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그럴듯한 통계는 집어치우고 나의 주관적 조사치를 진실로 믿기로 했다. 달랑 숫자와 퍼센트만 나오고 그 숫자를 만든 가려진 이야기들과 구조적 문제는 말하지 않는 속 빈 강정 같은 ‘공적 담론’ 말고, 나와 내 주변의 구술사가 진짜다. 그러니까 말해야겠다. 큰 소리로 계속 떠들어야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이 “고통은 악이지만 유일하게 좋은 부분은 인식을 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성기공포와 삽입통증이라는 고통을 통해 영혼의 눈 껍데기가 몇 번 더 벗겨질만한 생각거리를 얻어가는 느낌이다. 고통을 피하고픈 연약한 존재의 하나로서, 시각화하는 상상력이 쓸데없이 발달한데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오지랖녀’로서, 내게 일생일대의 순간들이 또 한번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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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여린 2016/10/14 [23:47] 수정 | 삭제
  • 흥미진진하고(공감이되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연재의 글을 이제서야 발견하여 찾아 읽습니다!
  • herstory 2016/01/26 [11:33] 수정 | 삭제
  • 경험담 고맙습니다.
    포르노배우나 성매매종사자가 아니어도 남자를 사귄다는 이유로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아파도 상대방이 사정할 때까지 참곤 해서 이후에 부어올라 얼얼한 건 물론, 찢어지거나 상처 난 질 때문에 몸 고생 마음 고생..."이런 이야기 이런 현실은 늘 분노하게되네요.
    여성질과 남성성기발기 각도가 일치하므로 (실제로는 휜 남성이 많다는데) 남성의 삽입은 옳다 등의 속빤히 보이는 성폭력의 정당화들..
    막상 결혼한 여자들 '속'얘기는 남편은 걍 박는 것을 선호하고, 아내는 뭉근히 돌려야 그나마 느낄까말까해서 결국 거의 안하게된다는데요.
    결국 이성간에는 더더욱 산넘고 바다건너야 서로를 이해할까말까한 가부장이데올로기의 골이 있기에, 삽입방식으로 둘이 함께 느끼기는 어려운듯하네요.
    남자는 여자에게 입으로, 여자는 남자를 손으로 해주는게 무난한 정답이라고들합니다(저 자신도 그렇고요.).
    '삽입'은 차라리 여자가 남자한테 전희로 하는게 서로 만족도가 높다고도하고요.
    학교에서 성교육프로그램으로 특히 남자가 여자한테 삽입하는건 임신 감염 등 위험이 크고 여자쪽의 만족도는 적거나 없으므로 서로 원하는 상대를 만나 합의하에도 반드시 콘돔사용하고 조심해야함을 알려주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남성들은 남성자신의 내부성기에 삽입되는것을 경험하는 교정프로그램이 정착되는게 해답일듯합니다.
  • 이성애자여성들도 성소수자 2016/01/23 [01:40] 수정 | 삭제
  • 여성도 남성도 외부성기와 내부성기가 있고, (동성애자 이성애자 모두 개인차가 있어서) 이성애자여성들도 자신의 내부성기에 대한 삽입이 불편한경우도 많고,
    이성애자남성들이 오히려 자신의 내부성기에 결핍감을 많이 아쉬워하는듯도합니다.
    (서구는 대중매체에서도 이성애자남성의 내부성기에 대한 인정과 비유가 많고, 일본은 동성애자인권지수와는 별개로 남색문화공존, 한국도 특히 중년이상의 남성들은 목욕탕에서 대놓고 엉덩이에 물줄기를...라고 예능방송중에도 많은 증언이 있었지요.)

    "사랑하는 관계에서" 남성의 성욕해소를 위한 여성에 대한 삽입행위가 남성의 권리이리자 여성의 의무라고 주장한다면, 여성의 성욕해소를 위한 남성에 대한 (딜도, 손가락 등의) 삽입행위 또는 "삽입하지않는 방식도" 여성의 권리이자 남성의 의무이겠지요.

    문제는 후손에 대한 본능이라며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기삽입만을 정상성으로 보장하는 가부장페니스파시즘,
    남성의 (아빠가 되어 돌봄노동하려는 본능이 아닌) 단지 성욕해소용인 포르노나 성매매에 여성들이 내몰린 원인인 가부장주의 자본주의 문제를 은폐(북유럽과 프랑스는 인정, 성매수자만 범죄화)하고 여성성별의 선천적 숙명으로 왜곡하는 남성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열등성이지요.

    실제로는 여성이 성매매자나 포르노배우가 되는것은 어쩌면 대리모보다도 생물학적으로 비합리적입니다. 단지 (변태)성욕해소 또는 (병리적)파워게임인 포르노나 성매매는 차라리 남남간의 행위로 한정하는것이 문화인류학적으로도(남성들간의 성욕해소 또는 통과의례적 유사성행위, 여성은 생명 종족보존 숭배적 존재) 타당하겠지요.

    데이트성폭력 부부간성폭력을 남성의 권리(여성의 의무)로 묵인해온 대한민국 대법원이 얼마전 (장기별거상태 아닌)부부간성폭력을 인정한 기념비적 첫사례의 피해자가 '남편'이었지요. (아내가 능동적으로 남편을 성폭행한건 -남편과 이혼하려는 쇼였음에도- '심기가 불편'했나봅니다.)

    드라마에서 남편 남동생 호칭을 '도련님'이 아닌 삼촌이라했다고 ('심기가 불편'해진)국어국립원이 방송시작화면에서 정정(사과)을 강요하는 한국. (그리하여 여전히 운전기사 가사도우미 등의 고용인들과 함께 남편가족을 도련님이라고 호칭하는 드라마속의 한국여성들.)

    어머니성별을 여전히 식민지노예화하고, 남성의피임=여성의임신중절(리모콘피임)해온결과, 동남아원정아동성매수할때도 콘돔착용 싫어하다보니 (성매수로 발생한 현지의)생물학적 친딸을 성매수하는 사례들 이미 발생한것으로 (또한 친딸과의 사이에서 친손주 발생가능) 인권단체 탁틴 등에서 공론화해왔지요.

    이러한 결과로 일본군성노예 '이슈'를 대부분 낯설어하고 '불편'해하는 한국남성들.
    한국남자아이들의 여성에 대한 상식으로, 한국어른들의 공동체에 대한 상식으로 지구촌에서 공존할수있을지 의문인 요즈음,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골무 2016/01/21 [11:12] 수정 | 삭제
  • 쉽지 않은 이야기 입밖으로 꺼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자들이 앞으로 더 많이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민되었던 문제를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고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 소오스 2016/01/20 [16:28] 수정 | 삭제
  • 기대할께요
  • 빙수 2016/01/20 [14:20] 수정 | 삭제
  • 솔직한 얘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 2016/01/18 [19:40] 수정 | 삭제
  •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여성의 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해보고싶네요
  • ㅇㅁ 2016/01/18 [13:17] 수정 | 삭제
  • 흥미로운 연재가 될 것 같네요. 기대하면서 읽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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