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짊어지고 국경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삶의 변화를 꾀하며 사회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천해가는 여정이 전개됩니다. –편집자 주
심리치료라는 여행을 시작하며
나: 삽입하고 나서 조금이라도 아프면 온갖 이미지가 떠올라요. 영화에서 본 강간 장면, 어린 시절의 추행당한 일,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들이 당한 성노예 상황까지… 그러면 순식간에 기분이 곤두박질치고 제가 지금 강간을 당하고 있는 듯이 비참해지고 남자 성기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들어요. 내가 아픈데 이걸 집어넣으면서까지 섹스를 해야 하나. 섹스가 뭘 위한 건가? 다 때려치우고 싶다 등등…
A: 남자 성기가 무서운 거예요?
나: 공포라기 보단 혐오에 가까운데요. 페니스 혐오랄까? 페니스에 관련된 다양한 비유가 있잖아요. 방망이, 관통한다 (penetrate), 불끈불끈… 다 좀 공격적인 것 같고 불쾌해요.
치료사 A와 나눈 대화의 일부다. 나는 스물아홉 여성, 현재 독일에 살고 있고 이곳에서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의료보험사에 보험을 청구할 때 쓰는 나의 질환명은 ‘성기능 장애’(Sexual functional disorder)로 잠정 결론이 났다. ‘성기 삽입을 해야만 섹스’라는 강박감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나의 상태에 쉽게 ‘장애’라고 이름 붙이는 것에 문제의식이 있다. 그러나 심리 상담(카운셀링)과 달리 질환, 진단, 치료 쪽으로 가면 공공의료 서비스에 포함되어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좋은 치료사를 만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수년간, 어쩌면 살아온 시간 동안 내내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위해 무수한 방법을 시도해왔고 그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 여행 구간은 심리치료다.
그 ‘흔한’ 성폭력과 나의 성기능 장애
이 글의 독자라면 성폭력 피해 경험이 남 얘기가 아니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잘 알다 못해 통감하고, 또 억울화고 화가 나 가슴에 얼마쯤 한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흔한’ 성폭력을 어릴 때 겪었다. 경험이라는 건, 특히 고통이라는 건 지극히 주관적이라 서로 견줄 수도 없지만 그저 기계적으로 수위를 말한다면 내가 겪은 일은 성추행의 범주에 들어가는 덜 심각한 것이었다.
아파트 경비와 사촌오빠가 각각6살, 9살의 나에게 기분 나쁜 사건을 일으켰다. 성인이 되어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고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 그래 다들 알겠지. 그 경험이 나를 형성했으니까. 남성에 대한 인식과 관계 맺기, 성에 대한 인상, 성행위에 대한 나의 접근…. 두 사건의 경우 모두 부모님은 내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보통의 한국부모와 학교가 그렇듯 여성의 몸조심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성교육, 또 엄마의 남성 혐오도 나의 자유로운 섹슈얼리티 형성을 가로막은 요인이다.
지금 파트너(남성)는 일년 넘게 만나고 있고 처음으로 동거하는 파트너이기도 한데, 그 동안 우리가 만들어온 관계의 깊이와 폭이 예사롭지 않다.
전에 만난 사람들은 남녀 국적 불문(나는 양성애자다) 학계에서 종사하는, 지적이지만 다소 소극적인 유형이었다. 책으로 배운 게 많아 파트너 간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섹스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나의 ‘삽입섹스 거부’를 넘어서지 못했다. 상대방을 이해해주고 강요는 안 하니 삽입을 제외한 섹스를 주로 해왔다. 물론 그들 대부분이 삽입을 안 했으니 우린 제대로 된 섹스를 ‘아직’ 못했다는 사고의 프레임에 갇혀있었다는 게 함정.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졌던 일말의 미안함이나 부채감이 억울해서 이불킥이 나온다.
반면 지금의 파트너는 철저히 실전(?)에서 좌충우돌하며 배운 사람이다. 성경험이 너무 많아서 탈일 지경. 처음 섹스에 관한 내 심리를 털어놓았을 때, ‘내가 지금까지 같이 자본 여자 중에 성폭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냐’, ‘나도 10대 때 매일 성 학대를 당했던 시기가 있었다’는 솔직한 답이 바로 날아왔다. 그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나고 전율이 왔다. 아, 이번엔 다르겠구나 라는 직감. 비로소 나는 점점 더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 대화 이후 나는 삽입을 자주 시도해보았다.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아파도 상대방이 사정할 때까지 참곤 해서 이후에 부어올라 얼얼한 건 물론, 찢어지거나 상처 난 질 때문에 몸 고생 마음 고생을 했다. 아파도 당장 그만두지 않았던 것, 계속 시도했던 건 어처구니 없지만 역시 흔한 이유에서다. ‘분위기 깨기 싫어서’, ‘말하기 민망해서’ 혹은 ‘하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그래도 삽입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슬슬 나를 몰아붙이다가 어느 시점에 곪아터졌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이유
삽입섹스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실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심각한 트라우마를 주거나 생활에 엄청난 지장을 주지 않지만, 섹스라는 일상 행위의 일부로 오래 지속된다. 계속하기엔 괴롭고 아주 그만둘 수도 없고. 드러내놓고 말 못하니 해결도 쉽지 않다. 강간 피해 등 다른 문제에 비해 사소하다고 여겨져 별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여성 성기능 장애(Female Sexual Dysfunction, FSD)에 대한 기사나 산부인과 광고가 나오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 기혼여성의 부부생활 차원에서, 폐경기 여성질환으로 소개된다. 즉 (미혼)여성이 성결정권을 갖고 독립적인 주체로 사는데 지장을 주는 요인으로 보는 담론은 없다는 얘기다.
나는 <일다>를 오래 눈팅해 온 언니들,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알아서 어디 가서 여자라고 기죽지 않는 언니들,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며 섹슈얼리티에 대해 열의를 갖고 공부하며 금기 없는 표현과 실천을 하는 게 목표인 언니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유롭지 못한 구석이 있는 언니들(바로 나!)과 연대하고 싶은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통계는 믿지 말자
사회과학연구자로서, 통계가 얼마나 허울좋은 신기루인지 잘 알고 있다. 특히 섹스 관련 조사는 더 그렇고, 그 중에서도 ‘여성’에 관한 통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도 막막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성교통’, ‘여성 성기능장애’, ‘삽입 시 통증’ 같은 검색어를 모조리 쳐봤다.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이…’ 어쩌고 하는 통계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면서도 내 상황에 들어맞으니 ‘아,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작은 위안은 들었다. 하지만 기사와 자료들을 읽어도 읽어도 결정적인 답 같은 건 없고 점점 공허해졌다.
그래서 대신 주변 사람들과 과감히 벽을 허물고 대화해봤다. 좀 친하다 싶은 친구들에게 ‘삽입할 때 안 아프냐’고 대놓고 물어봤다. 이 인터뷰들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 결론은 (각종 성교통을 비롯해) 아무런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제한 없이 섹스하는 여성은 대다수가 결코 아니라는 거였다.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프고 씁쓸하고 답답해졌지만, 한편으로 자궁 속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번지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굳이 준 건 아닌데 혼자 동지애를 마구 느낀 거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그럴듯한 통계는 집어치우고 나의 주관적 조사치를 진실로 믿기로 했다. 달랑 숫자와 퍼센트만 나오고 그 숫자를 만든 가려진 이야기들과 구조적 문제는 말하지 않는 속 빈 강정 같은 ‘공적 담론’ 말고, 나와 내 주변의 구술사가 진짜다. 그러니까 말해야겠다. 큰 소리로 계속 떠들어야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이 “고통은 악이지만 유일하게 좋은 부분은 인식을 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성기공포와 삽입통증이라는 고통을 통해 영혼의 눈 껍데기가 몇 번 더 벗겨질만한 생각거리를 얻어가는 느낌이다. 고통을 피하고픈 연약한 존재의 하나로서, 시각화하는 상상력이 쓸데없이 발달한데다 감정이입을 잘하는 ‘오지랖녀’로서, 내게 일생일대의 순간들이 또 한번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이 기사 좋아요 1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관련기사목록
|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