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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젖먹이 본인의 아이를 데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한수만 건사해야 될 텐데 옆에 본인의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한수에 대한 정성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게 큰아지매의 염려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오는 여자를 아이를 떼어놓고 오랄 수도 없어서 광수에미에게 다른 여자를 알아보라고 했으나 이미 물젖이 된 여자들은 있으나 그나마 신생아를 가진 여자는 인근에 이 여자뿐이라고 들었다.
큰아지매는 팔을 허공에 움찔거리는 한수를 조용히 눌러 이불속에 넣어주며 도닥거려준다. 한수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큰아지매는 양미간의 이마가 자신의 이마처럼 훤하게 넓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니 서방의 얼굴보다 오히려 자신의 얼굴을 더 많이 닮았다고까지 느껴진다. 잠시 소향에게 젖을 물린 것을 빼고는 오늘은 거의 하루 종일 자신의 품에서 지낸 한수를 대견스레 내려다보며 하늘이 도와 자신에게 내린 한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장부로 키울 생각이다.
그러나 큰아지매의 마음속에는 마당 건너 아래채에서 한수에게 먹일 젖이 순간순간 불어 오르는 가슴을 쥐고 있을 소향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날짜를 꼽아보며 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두마지기 값이 남았지. 아들을 낳았으니. 소향이만 떠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한수도 완전히 내 자식이 되리라고 생각하는데 한수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징징대기 시작한다. 얼른 손을 뻗어 한수의 가슴에 대고 토닥거려준다. 그래도 입을 삐쭉거리더니 앵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제까지 단 하루도 한수를 옆에 두고 잔 적은 없다. 물론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한수가 젖을 수시로 먹어야 한다는 것과 또 기저귀를 몇 번은 갈아줘야 된다는 사실에 큰아지매도 어쩔 수 없이 한수를 소향이에게 건네줄 수밖에 없다. 조금은 귀찮은 생각이 들어 소향을 부를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울어대는 한수를 보듬어 안고 일어서서 아래채를 간다. 벌써 이틀째 구들을 지고 있던 태섭도 한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도무지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 태섭은 마냥 풀어헤쳐진 상태다. 머릿속에는 없어진 선거 생각으로 가득할 뿐, 아니 정확하게는 체면치레를 못하게 된 상황이 무엇보다도 태섭을 괴롭히고 있다. 실컷 돈만 날리고 헛발품만 팔고 다닌 자신이 얼마나 우습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다. 마누라가 아래채 문을 닫고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는 태섭이 몸을 일으켜 마누라를 부른다.
-당신, 내 좀 보소- 물론 들었을 마누라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태섭은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올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마누라를 보는 것 대신에 담뱃갑에 손을 대자 -제가 나가면 태우시지요- 하고 어쩌면 냉기가 흐를 윗목에 앉는 마누라다. -안 그래도 당신한테 할 말도 있던 참입니다-
-선거가 없어졌다 캅디다- 순간 큰아지매도 지난 십수일 동안 정신없이 한수에게 매달린 통에 다른 것들은 염두에도 없었던 것을 깨닫고 비로소 서방의 선거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린다. 마누라가 아무 말이 없자 등잔불을 피해 곁눈질로 태섭은 마누라를 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 모습이다. -다음 주에 소향이 갈 겁니다. 그리고 오늘 유모도 왔다갔습니다. 삼칠일이 지나면 날짜를 잡아 집안에 한수를 고할 일도 있고, 또- 하고 말을 아끼는지 아니면 어려운 말이라 꺼내기 힘든 건지 꼬리를 흐린다. 태섭은 선거가 없어졌다는 자신의 말에 엉뚱한 말로 대답하는 마누라가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직 자신의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억한 심정도 든다. 잠시 화를 삭이며 또다시 손이 담배로 가지만 참는다.
-쿠고… 장서방도 간다 캅디다- 이번에는 떠난다는 장서방의 소식을 내놓는다. 이번에는 마누라의 반응이 눈에 나타난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눈길과 함께 -무슨 일로 간다고 합니까? 겨울이고 또 한수도 태어났는데. 집안에 손이 있어야- 하고 태섭을 바라본다. -머슴이야 또 구하모 되지, 아, 간다고 하는데 뭐 굳이- 말하고 싶은 마음도 태섭은 없다. 그러나 마누라가 할 말이 있다고 했었는데 하는 생각에 -당신은 내기 뭐 할 말이 있었소?- -일할 사람을 구하기 전까지는 장서방이 있어야 한다고 하세요. 물이며 군불이며 집안에 마당이라도 매일 쓸어야하는데- 이번에도 다른 말로 답한다. -당신은 내 말은 들은 채도 않고 우째 당신 하고 싶은 말만 하오? 서방이 그리 우습게 보이나?- 기어이 태섭의 화가 터졌다. 여간해서 화를 보이지 않는 태섭이다. 물론 마누라의 말과 생각이 자신 것보다 한발 앞서서 잘 정리된다는 그동안의 경우 때문에 늘 듣는 입장이 되어오고 있지만 오늘은 그냥 화가 목소리를 통해 크게 불거졌다.
마누라는 태섭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마치 태섭의 화난 큰 목소리를 음미라도 하듯 꼭 다문 입속을 오물거린다. 둘은 한참이나 아무 말도 없이 각자 서로의 마음을 정리한다. 태섭은 약간은 후회하는 마음으로 큰아지매는 서방이 왜 큰소리로 자신에게 화를 냈는지를. 습관적으로 남의 말보다 자신의 말을 앞세우는 큰아지매는 태섭의 큰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따지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냥 자신의 말만 내놓는다. -제 수중에 돈이 없어서 드리는 말입니다. 소향이 갈 때 논 두 마지기 값을 주어야 합니다. 마련해 놓으시라고- 하고는 일어나 나가버린다.
대답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통보에 그치는 마누라의 습관적 행동이다. 장서방도 묶어두라고 했다. 두 마지기? 그러면 그것이 얼마냐? 지금 선거 핑계로 금곡이나 인근 땅을 잡혀먹은 것이 얼만데 또 지전을 마련해 두라고? 두 마지기면 적어도 십오만 환쯤은 된다는 말이다. 기가 차다. 아무리 집안일만 챙기고 산다 해도 저렇게나 세상 물정에 어두울까? 하지만 바로 그 어두운 세상 물정 덕에 자신이 운신할 수 있었던 폭도 한층 컸다는 것도 알고 있는 태섭이다.
* * *
엉거주춤하게 취했던 어제 술판 때문에 장서방은 아침 일찍 깨어나 물지게도 저 날랐다. 아침이지만 군불도 돌아가며 더 지피고 마당도 쓸었다. 아직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아 마당을 쓸 때 빗자루 끝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정기에서는 광수에미가 아침을 끓이고 있지만 종가나 그렇고 담 너머 별채 태광의 집은 여전히 조용하다. 농사철이 아니면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배가 고픈 것을 느끼고는 장서방이 정기 쪽을 바라보는데 안방문이 열리더니 큰아지매가 대청을 건너 댓돌위의 신을 신으며 -장서방, 사람 들이기 전에는 있어야 합니다- 하고 소향이 방 쪽으로 걸어간다. 물론 장서방은 금방 알아차린다. 하긴 지금 당장 갈 이유도 뚜렷하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장서방은 아무 대구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소릴 정기에 있던 광수에미가 들었던 모양이다.
손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정기 문으로 고개를 빼내 마당에 있는 장서방을 보며 큰아지매가 소향의 방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다가 -사람을 들이다이? 뭔교?- 하고 나직하게 그러나 들릴만하게 묻는다. 장서방은 씩 웃으며 -별일 아닙니다. 회자정리라… 올 때가 있었으니 갈 때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나저나 아침은 다 되갑니까? 배가 고파서. 광수네 불러올까요?-
-가긴 오델 갑니꺼? 고마 여서 정 붙이고 살모 될낀데. 참, 광수하고 다 불러오이소. 아침 묵구로- 하고 정기로 들어간다.
* * *
아침상은 이상하게 차려진다. 태섭이는 태광이와 함께 건넌방에서 받고 광수, 재수는 안방에서 큰아지매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소향이는 광수에미가 들고 들어온 상을 같이 놓고 먹지만 장서방은 혼자 정기에서 먹는다. -야, 야, 니 그거 아나?- 입에 밥을 한 숟갈 크게 떠넣고는 손으로 입가에 붙은 밥풀을 떼서 입에 넣으며 광수에미는 소향에게 말한다. -장씨아저씨가 간다 쿠더라. 온 아침에 들었다- 입을 오물거리며 눈이 커진 소향을 본다. 숟가락을 손에 쥔 채 소향은 아무 말 없이 광수에미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기어이 숟가락을 상에 놓아버린다. 한수도 없는 방안은 썰렁하게 느껴진다. -와? 고마 무울라고? 더 무라. 아 젖 믹이라모 더 무야 된다- 아무 생각도 없이 내뱉은 말이 소향의 입맛을 가시게 했다는 것 정도는 알만한 광수에미다. -뭐라 카더라? 올 때가 있으모 갈 때도 있다 카더라. 우짜것노?-
소향은 한수가 떠난 방만큼 이미 마음 한 구석은 장서방의 빈자리로 썰렁하다. -장씨아저씨가 그랬심꺼?- 덜렁거리는 광수에미의 말이 행여라도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확인해보지만 이미 낙심하고 있는 소향이다. 이 종갓집에 그래도 살갑게 대해주던 장씨아저씨 아닌가? 삼천포도 혼자 다녀올 정도로 자상했던 아저씨인데. 눈물부터 나온다. 그런 소향의 마음을 알만한 광수에미는 괜히 밥상머리에서 꺼낸 말을 후회하며 -케도 금방 간다는 기 아이고. 자, 자, 숟가락 들고 좀만 더 무라- 하고 무마해보려 하지만 소향은 몸을 돌려 이불을 들추고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냥 머슴이다. 나는 이집에 한수를 낳아주려 온 씨받이 아닌가? 그리고 일주일 후면 나도 갈 사람인데 장씨아저씨가 간다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이냐 하며 애써 마음을 무마하려 하지만 잘되지 않고 오히려 옆에 여전히 남은 밥을 먹어대며 지껄이는 광수에미의 목소리만 윙윙댄다.
갑자기 젖이 핑하고 도는 것을 느낀 소향은 일어나 앉는다. 아니나 다를까? 안방에서 한수가 울어댄다. 참 신기하다. 한수가 소향의 몸과 하나로 엮어진 것을 소향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안방 문이 열리고 곧 한수를 안은 큰아지매가 한수를 들이고 갔다. 품에 한수를 안고 이제는 제법 어려움이 가신 작은아지매 앞이라 그냥 가슴팍을 열어젖혀 한수에게 젖꼭지를 물린다. 자신이 떠난 후일지라도 장씨아저씨는 남아서 한수를 지켜줄 것이라 혼자 생각했었는데 한수야, 장씨 아저씨가 가신단다! 언제 나왔는지 눈물에서 콧물까지 줄줄 흘러내린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광수에미는 아무 말 없이 상을 들고 나간다. 정기로 상을 들고 걸어가면서 소향이 방문을 힐끔 뒤돌아본다. 자신도 마음이 상했었는데 소향인들 그렇지 않으랴. 정기에는 아직도 장서방이 혼자 상을 바닥에 놓고 밥을 먹고 있다. 아침밥을 퍼낸 가마솥에는 숭늉이 펄펄 끓고 있다. 아궁이에 장서방이 불을 지폈다. -불을 지펴놓으니 불기운도 있고 아주 좋습니다- 웃는 장서장을 보며 광수에미는 -그케 말입니다. 쿤데 소향이도 지도 마음에 불기운이 없심더. 가신다 카이께네. 섭섭심더- 하며 주섬주섬 정기 일을 챙기고 치운다.
안방에서 밥을 먹는 광수나 재수는 큰엄마의 눈치를 보아가며 밥을 먹는다. 소향이도 엄마도 심지어 아부지도 밥숟가락 위에 먹을 것도 올려주곤 하는데 큰엄마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눈을 내리깔고 나지막하게 일러주고 고쳐주고 말리고 하는 큰아지매의 태도를 어려서부터 보아온 탓에 둘은 한 밥상위에서 밥 먹기를 싫지만 오늘아침은 어쩔 수 없이 먹는데 심지어 재수도 눈치를 보아가며 조심스레 밥을 먹는다.
-큰엄마. 한수는 우짜고 소향이 아지매가 집에 간다 캅니꺼?- 큰아지매가 숟가락을 놓으며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 동서를 속으로 나무란다. 소향이 그런 소릴 했을 리가 없는 줄 알기 때문이다. -한수는 이 집안의 종손이다. 누구의 자식이 아니고 집안의 종손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말을 하긴 했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밥도 중지하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두 아이들을 보면서 큰아지매는 너무 어렵게 말을 했다고 생각이 들어 -너희들도 이 집안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한수도 그렇고. 그러니 한수를 잘 돌보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알았지?- 하고 광수와 재수를 보는데 여전히 둘은 아무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소향이 왜 가느냐고 물었는데 큰엄마의 대답은 엉뚱하게 잘 지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태광이도 밥상머리에서 장서방에 대해 태섭으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또 선거에 대해서도 들었다. 까짓 선거야 태광이 본인하고는 한 다리 건너 일이지만 장서방 일은 그게 아니다. 동네에 송아지를 풀어 놓은 게 엊그제인데 장서방이 가고나면 그 일을 자신이 다 맡아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머슴을 들인다 해도 태광의 눈에도 장서방만한 머슴은 또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운제 쿠고… 와 간다 캅디까? 혹 새경이 적어서 가는 기 아입니꺼?- 태섭은 그냥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며 아무 말도 없다. 입맛이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태광은 계속 혼자 중얼거린다. -행님, 지가 한번 말해 볼까예? 있으라고. 딱히 갈 데도 없는 걸로 아는데- 사실 태섭의 마음속에는 장서방이 조금은 버거운 머슴이었다. 물론 똑똑한 것은 알지만 머슴 부리는 재미라고는 전혀 없던 인물임은 틀림없다. 태광에게는 장서방은 이름만 머슴이지 오히려 형보다도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었고 한 번도 발설한 적은 없지만 내심 의지하기도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훌쩍 간다니 꽤나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짐을 느끼고 있다.
-행님, 새경을 좀 올리준다 카이소. 그깟 쌀 한 가마 정도는 더 줄 수 있는 거 이인교?- 태섭은 돌아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길게 뿜어댄다. 어쩌면 요즘 들어 마누라가 자신을 더 우습게 보게 된 이유가 어쩌면 머슴이라는 놈이 자신보다 더 반듯하게 하고 있는 꼴을 본 탓 아닌가 생각해본다. -간다고 하는데 뭘 카노? 아, 머슴 구하는 기 뭐 그리 에룹다고? 당장 알아봐라. 울매든지 있니라- 하고 재떨이에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털어댄다. -쿠고 송아지도 인제는 니가 다 알아서 챙기고, 또 죽어나가는 일 없도록! 그기 한 마리에 울맨지 니도 알제?- 눈을 흘겨대며 신경질을 쏟아내자 태광도 어리둥절하다. -와 캅니꺼? 와 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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