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사건의 공범자들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21.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김서화 | 기사입력 2016/05/22 [23:33]

강남역 살인사건의 공범자들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21.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김서화 | 입력 : 2016/05/22 [23:33]

‘아들 키우는 엄마’가 쓰는 초등학생 성교육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김서화 씨는 초딩아들의 정신세계와 생태를 관찰, 탐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편집자 주]

 

그녀들의 외침을 무시하는…범죄만큼이나 치명적인

 

심란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17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낯선 남성에게 여러 차례 칼로 찔려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라고 진술했다. 사건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혐오’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를 추모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과 살인을 멈추라고 사회를 향해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해, 이 사건은 여성혐오와 관련 없으며 젠더 문제로 몰고 가지 말라는 여론도 거세다. 오늘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진 정신분열증 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했다. 정신질환에 의한 범행이니까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논리다.

 

▶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는 이번 살인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많은 행렬이 이어졌고,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의견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사회적 발언을 이어갔다.   ⓒ출처: 페이스북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지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이에 대한 반응들을 살펴보던 끝에, 내가 왜 자식의 사생활까지 글의 소재로 삼으면서 이 칼럼을 시작했던가 하는 질문으로 향했다.

 

초딩아들 성교육!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어설픈 제목을 지어 올렸다. 나는 왜 ‘아들’이라는 대상을 놓고 ‘성적인 것’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던가, 겁도 없이. 잘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이 틀을 밀어붙였다. 여러 우려를 제쳐버릴 정도로 어떤 절실함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성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어야만 한다는 절실함. 일단 밀어붙이자. 날것 그대로인 고민이더라도 공유하는 게 그나마 낫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아들 하나씩만 맡아 가르치면 뭐라도 바뀌겠지’ 이런 생각을 한 셈이다.

 

직관적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과 ‘여성’라는 생물학적 집단이면서 혹은 재현된 주체들이면서 혹은 상징적인 가치들인, 그 무엇이건 이 짧은 두 음절인 남성/여성 사이의 젠더 문제에 대한 엄청나게 다른 시간차, 무지막지한 온도차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소통이 될 수 없는 대화들을 누적시켰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한국의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여성혐오, 솔직히 그 무엇이라 부르든 비슷한 의미지만 일단 최대한 가볍게 젠더 문제라고 부를 만한 거의 모든 것들의 민낯과 그 결과들이 그늘 하나 없는 한낮의 아스팔트 광장 위에 등장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이를 응시하면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과거 속, 여성이어야만 했던 경험들을 불러오고 인식을 새롭게 해가고 있다. 그리고 화를 내고 있다. 여성들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 나는 화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싶지 않다. 세상을 바꾸려면 잘못된 사회에 대해 제대로 화를 내는 것이 필수적이니까.

 

현재, 그녀들의 감정을 부인하는 일들이 화를 더 돋운다. 하물며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며 적은 포스트잇에 그녀들이 화를 내는 다양한 이유를 명징한 말들로 기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마저도 부인한다. 젠더 문제를 ‘명징한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남성적 지배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추측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데, 그녀들의 그 명징한 언어마저 부인당해야 하는 이유는 ‘여성이 화를 낸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고 싶지 않아서일 테다. ‘화는 미친 가해자에게나 쏟아 부으라’는 회피적인 생각이나, ‘이런 식의 화가 남녀 대결구도를 만든다’는 게으른 인식 등, 그 노력들은 실로 강력하다. 모두 화의 근원은 보지 않겠다는 의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여성들은 어느 개인 남성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을 가능하게 한, 누적된 젠더 불평등과 문화 전반을 문제시하고 있다. 여성혐오라는 개념까지 불러오지 않았나. 그러므로 그녀들의 외침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려는 시선 속에서 불평등한 젠더 체계의 공범자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그 논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젠더 위계가 어떻게 공고해져 왔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실제 이 사건에서 받는 충격이라면 살인 행위만큼 치명적인, 공범자들의 강고함이다. 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성교육의 절실함을 느낀다.

 

젠더 권력의 파괴력을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자신이 불평등한 젠더 관계와 잘못된 성문화, 여성혐오에 해당하는 인식들을 생성하고 유통시키는 공범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면죄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마도 여성차별이나 여성혐오라는 것을 하나의 체계라고 여기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까? 그런 것은 그저 어떤 개인의 속성, 기질, 한 명의 가치관 정도에 불과하다고. 나는 좋은 사람이므로 무관하다고.

 

우리는 성교육을 받은 일도 흔치 않지만, 대부분 개인과 개인의 만남 속에서 참으로 자유롭고 권력과 무관한 인간들의 만남을 상상하고 배웠다. 그나마 젠더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할 만한 교육에서조차 권력 관계는 삭제되기 쉬웠다. 성교육이라면 다들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성별에 고착하여 그것을 완수하기 위한, 대개는 재생산 기능을 완수함으로써 끝이 나는 그런 식의 완수를 상상한다. 성을 체계라고 배우지 않고 그저 개인의 특질처럼만 배웠다는 말이다. 만약 체계라면 그것은 인류 재생산을 위한 기능적 체계로서만 이해되었던 것 같다. 그럴 때 요구되는 것은 그저 에티켓 정도일 뿐이다.

 

정말이지 이제부터는 성교육에 대해 매우 진지한 자세를 취할 때이다. ‘성’이라는 단어의 굴레와 경계를 의심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일, 그런 질문들에 대한 포용력을 배양하기 위해 성교육이 필요한 것 아닐까. 제대로 된 성교육이라면 성을 완수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성적 체계를 의심하라는 메시지를 줘야 하지 않을까.

 

▶ 여성혐오, 성차별, 여성폭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자유발언대. ⓒ페이스북 <강남역 10번 출구> 페이지

 

내가 성교육을 이성애 남녀 간의 성관계와 그때 필요한 에티켓 정도로만 여겼다면 나는 이 문제를 이렇게 어려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 인간이 어떤 성별/젠더 테두리 안에 갇혀야만 인간이거나 반대로, 그래서 부족한 인간이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인류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성관계에서의 에티켓은 매우 중요하고 반복해서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여성이거나 혹은 남성으로서만 인간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에티켓을 설정하려면, 관계를 맺는 성적인 인간들 사이를 흐르는 권력에 대해 고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근거로 에티켓을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오로지 성 관계의 순간에만 현미경을 들이대는 성교육은 실제 그 교육이 어떤 모래 위에 지어져 있는지 고심하지 않는 셈이다. 아들에게 성교육을 하려했을 때 그제서야 나는 성교육이 서있는 그 ‘모래’의 성질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그저 외우고 따르면 될 뿐인 ‘강간하지 말라’, ‘성관계시 피임하라’, ‘상대를 성적 대상화시키지 말라’, ‘NO는 NO를 의미한다.’ 같은 성관계 에티켓은 왜 그리 지켜지지 않는가? 왜 어떤 집단은 이 지침들을 무시할 수 있는데, 어떤 집단은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요구하기도 힘든가. 에티켓을 요구하는 집단과 무시하는 집단은 어쩜 이리도 일관되게 성별/젠더에 따라 나뉘는가. 그리고 이런 간단한 지침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결과들은 얼마나 파괴적인가. 왜 그 파괴력은 한쪽 집단에만 거의 일방적으로 치명적인가.

 

실제 한 집단의 생사를 가늠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금 보고 있지 않나. 하물며 이번 사건은 일면식도 없던 ‘관계’에서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으니, 에티켓을 요구할 수 없는 집단은 그 존재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집단이 되었다. 가해자는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말했지만 정확히 하자면 자신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부터 무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딸들은 대개 에티켓을 요구하는 입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들을 가르치려 보니 이 녀석이 이 지침들을 배운들 그런 것을 요구하는 입장이기보다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런 말을 무시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에게는 더욱이, 성관계 지침의 중요성을 넘어 요구와 무시를 가르는 권력의 지대를 강조해야만 했고, 네가 그 지대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인지시켜야만 했다.

 

젠더 체계 내 면면히 흐르는 힘의 무게를 인정하지 않고 그 전체를 의심할 수 없다면 성교육이라는 것은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특히 아들에게! 게다가 그 유리함이란 정말이지 환상과도 같아서, 그걸 위해 타인을 짓눌러야 하는 쓸모없는 일에 얼마나 많이 동참해야 하는지도 알려야 한다. 그러니까 아들더러 더 인기 좋은 남자나 되라고 성교육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의 대기 속에서 예기된 살인

 

어떤 살인자가 자신의 행동의 이유이자 그 대상으로 여성을 언급하기까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일조했다. 그들은 대개 남성이지만, 남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숨 쉬듯이 남녀의 젠더 위계를 옹호하고, 남성성을 정상성이라고 여기고, 피해여성에게는 피해를 당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의 사회적 대기는 정말이지 그렇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대기를 형성하는데 최소 하루 한 숨 이상씩 기여한다. 그동안 충분히, 건실히, 튼튼하게 짜여 온 이 대기 속에서 강남역 살인사건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예기되었던 사건이다. 그러니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우발적 범죄라고 치부할 수 없다.

 

▶  20일 저녁,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 < 나는 OOO에 있었습니다>를 진행했다.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이것은 명백히 젠더 체계에 대한 고민없음과 성차별 인식의 포화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내가 주목하는 바는 젠더 위계에서 안정성을 얻기 쉬운 자들의 무지와 게으름이다. 그들은 유독 자신들의 공모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 한다. 아마도 남성성의 위치가 주는 안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남성성의 위치에서 그런 안정감을 보상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대한 화풀이를 애먼 곳에 하는 것이다.

 

지금, 더는 참지 않겠다며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은 남성성의 논리 안에서만 안정감을 얻으려는 사람들로부터 타자화된 사람들이다. ‘타자화된 경험이 없어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도 슬슬 지겹다. 한국남자라면 군대에서 고생하고 온다고 늘 강조하지 않나. 남성성 논리 한가운데에서 쉬이 인권이 무시되고, 타자화되는 모멸감을 겪었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경험을 권력을 사유하고 남성성을 의심하며 타자에 대해 공감하는 원초적 경험으로 이용할 법도 하건만, 어째 ‘나는 복종과 모멸을 견뎠으니 너도 견뎌라’는 식의 논리들이 더 많은가.

 

이 사회는 바뀌어야만 한다, 젠더를 성찰하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은 포스트잇 중에서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는 굉장히 직관적으로 작금의 젠더 체계를 똑바로 응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문구에서 사내 남(男) 글자가 쓰인 것은 살인자는 남자들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내 남(男) 자는 살인의 대상으로서, 어떤 분노의 타자로서 설 일이 없던 이들의 총칭이다. 젠더 권력의 안정적 점유라는 신기루 속에서, 무차별한 타자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들의 총칭이다.

 

더불어 이 말은, 그런 남성성의 논리를 수긍하고 전파할 때만 살아남은 자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성혐오 발언을 유통시키는 자가 ‘단지’ 성별적 남자만을 지칭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말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저지르는 ‘인식’들이 누군가를 생사의 공포 속으로 몰고 있다고.

 

우리가 젠더 권력이나 그 위계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수시로 이를 의심하고, 젠더라는 이름의 억압과 규범에 대하여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배웠으면 어땠을까? 타자를 만날 때 늘 상호간의 힘의 차이가 있다는 걸 배웠으면 어땠을까? 타자에 대한 태도가 성적 윤리를 구성한다고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일일이 성관계 에티켓을 외우라고 시키는 일이 도리어 거추장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자를 억압하면서까지 남성성에 열광하도록 만드는 사회가 모두에게 족쇄임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해냈지만 나는 성별이 남자인 내 자식이 남성성을 지향하기 위하여 자신의 너무 많은 것들을 버리기를 원치 않고, 사람들을 쉬이 타자화하지도 않기를 원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너 역시 자존감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남성성으로서의 ‘남성’이라는 명명을 쫓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고 말할 거다.

 

만약 가능하다면 나와 녀석의 우습고, 미숙한 일상들이 서로를 좀 더 성찰적인 인간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즉, 어떤 젠더의 완수를 위한 성교육이 아니라 젠더 자체를 성찰할 수 있는 성교육을 고민한다. 현재로서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무조건 최선을 다해 ‘해야만 한다’는 긴급함이 더 크다. 나 역시 더는 이런 불평등한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무리 봐도 이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물론 딸에게도.

 

마지막으로 그녀의,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젠더 폭력으로 인해 생을 달리했을 무수한 그녀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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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등이란 2016/09/27 [21:40] 수정 | 삭제
  • 일단 저는 남성입니다. 저는 저 사건을 들었을 때에 "저런 정신병자가 활보다하다니... 참 무서운 세상이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저 사건의 본질이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분명 저의 생각에는 '정신병자'가 여성혐오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여성혐오자'가 정신병에 의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더군요. 미묘하게 다른 두 문장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살인은 근본적인 원인인데요. 그 원인이 절대 '여성혐오'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피해자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라고 반박하실테지만 모든 여성혐오자가 잠정적 살인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성차별과 연관을 짓는 것은 그저 당신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애도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피의자의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가 먼저입니까?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ㅇㅇ 2016/06/03 [16:24] 수정 | 삭제
  • 이 사건을 보고 이런 생각이 안드신다면, 사회 전체로 눈을 돌려보세요 그럼 공감을 하시려나요? 아무리 장문으로 써봤자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 저런.. 2016/06/01 [14:34] 수정 | 삭제
  • 여기서 역차별 운운하시는 분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봅니다..
  • 오리 2016/06/01 [11:49] 수정 | 삭제
  • 동감합니다. 성교육이 인권교육이죠..
  • 과연 문제는 2016/05/29 [03:41] 수정 | 삭제
  • 뉴스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나와서 말하는 내용중에 "각종 여성 정책이나 여성을위한 특혜가 늘어 나면서 상대적으로 남성 역차별이 불어일으킨 혐오" 라고 한다. 사회전반적으로 여성전용이나 여성할당제 심지어는 직장내에서도 여성이면 야근없고 특근없고 칼퇴근이 상식인 나라 여자라서 약자고 배려의 대상이라서 언제나 우선해야한다는 생각 이런걸로 남자들의 상대적인 박탈감 과연 이런 갈등으로 생긴 혐오가 하지마라고 한다고 뉴스에서 떠든다고 당사자들이 생각을 고처 먹을까? 분명하게 해당 범죄자는 인생쫑친것이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넌 남자라서 살아남았다" 이런 멘트을 붇이고 갈등을 조장하면서 남자들에게 그릇된 의식을 바꾸라고 말하면 과연 바뀔까? 국가에서 그러지 말라고 하면 과연 바뀔까? 문제의 핵심은 사회 곳곳에서 실제 벌어지는 역차별 때문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또한 직장에서 나보다 훨씬 업무을 적게하는 여직원이 동일한 월급을 가져가는것이 불만이다. 그 여직원이 내 마누라나 내딸이면 이해하겠지만 정당해야할 경쟁 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여자라는 이유로 배려을 받아야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너무나 불공평하다. 나 또한 이런대 다른 부분에서 역차별이 없다고 불수없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생각을 고처먹길 바라면서 개속 소리치지만 당사자가 마음깊숙히 인정을 해야 바뀌는것이다. 이건 절대로 법을 만든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다. 정당성이 없으면 공평하다고 생각지 않게 되고 그런사회는 분명하게 상대방을 혐오하게 되는것이다. 내가 살인범을 옹호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다. 선진국의 정정 당당한 여성 사상과 전혀 다른 사상이 대한민국 여성들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은 여성들이 노력하고 실력으로 어떤 특혜도 없이 이루어야한다. 직장에서도 똑같이 노력하고 근무하고 못하면 차등 지급 받는것이 당연해야한다. 그러나 자신이 여자여서 차등지급은 불평등이라고 말하고 자신여자여서 적당이 해도 남직원이 뒷치닥거리을 해줄거라 생각지 말아야한다.
  • 현실적으로 2016/05/29 [03:18] 수정 | 삭제
  • 남여는 동반자의 관계입니다. 절대로 대립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 사회는 대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 이사건으로 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불기 시작한 여성운동을 짚어 보았습니다. 유학파들은 대부분이 금수저들이었고 또한 그들은 남성 의존적인 가정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여성사상이 발전 하지 못한것도 사실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성의 차이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서 상호 보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립보다는 타협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대 남성의존적이던 과거에는 남성이 모든것을 좌우하는 사회풍조가 만연했고 여성은 그속에서 업악을 받았지만 또한편으로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회진출을 망설이고 또한 사회생활을 해도 자기 스스로 여자라는 한계을 정해 버리기 일수였습니다. 이런 현실을 서양은 오래전에 해방운동으로 개선하였던 겁니다. 그것이 양성 평등 이었고 물리적인 힘의 우위에 있는 분야까지도 여성이 진출하여 남성을 압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결과로 현재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 여성들은 성의 차이로 남성보다 자신들이 열등하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이건 분명하 사상이고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가지지 못한 개념입니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자신들은 약자이며 배려의 대상이라고 스스로 말해 버립니다. 이건 절대로 선진국적이지도 못하고 또한 공정한 사회구성원으로써 정당성도 잃어 버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곳은 아무곳도 없습니다. 기업가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대한민국만 여성과 남성의 업무 처리속도가 비교시 차이가 심한곳이 많습니다. 그이유는 직중력에 있습니다. 그말은 다른한편으로 의무감이 떨어 진다는 뜻입니다. 이건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하는 객관적인 지표가 되었습니다. 이 이유는 여성사상이 출발부터 그 루트을 잘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은 동등한 능력과 실력으로 정당성을 가지고 사회적 평등을 이뤘지만 대한민국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약자로 규졍하고 스스로 배려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정당성에 어긋나고 평등성도 없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걸 정당화 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잇슈가 생기면 이런 사상을 더욱 부곽 시키고 그로인해 다른 정책을 또 가져옵니다. 일반 기업가들이 말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의무감 결여는 스스로 여성을 차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기업이 여성이라고 차별을 하고있나요? 사실 여성이라서 오히려 좀더 일을 적게 하고도 남성과 동일한 월급을 받는 것이 보편화 되어 버리기 까지 하고있습니다. 그러면서 각종 여성전용제에 공무원할당제등등 사회 전반적으로 실력과 노력이 아닌 특권으로 권리을 요구하는 사회가 이미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식은 개속 자신들은 약자이며 부당한 대우을 받고있다고 합니다. 일반 회사에서도 분명하게 여성기업가 스스로 여성들에 대한 평가가 좋지 못합니다 이건 우리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핑계로 일관 하기엔 그표면적인 결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걸로 여성들은 또 차별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동내 분식점을 해도 일잘하고 충실한 직원을 쓰게 되는것이 현실입니다. 자유경쟁사회에서 그런걸 사업주에게 감수하라고 강요하는것은 한마디로 강도의 마음입니다. 여자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성이라서 배려을 받아야하는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더 어렵고 업악이 심했지만 혐오까진 없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여아 출생률이 훨씬 웃돈지가 오래전이고 여성단체는 1995년도 통계을 들대면서 사기극을 칩니다. 이런 사회적인 여성들의 이중성이 정당성을 잃은겁니다. 경찰입장에서는 저런 조치들이 당연하고 정부입장에서도 화장을 여성전용이 필수던가 안되면 남성걸 없애서 만들게 해주는것이 최선일겁니다 또그러면 거기서 남성은 차별을 받습니다. 감수한다고 해도 이미 우리사회 곧곧에 여성들이 융화와 타협을 멀리하고 노력도 없고 분리만 강조하고있습니다. 이건 절대로 선진국의 여성 의식과 다른 부분입니다. 전 이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려면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능력과 노력으로 평등을 이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배려나 특혜 약자라는 슬로건을 걸어서도 안댑니다."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써 경쟁과 노력으로 평가을 받고 인정을 받으면 그로인해 여성이라는 존재을 하찬게 보지도 않고 인정을 하게 댑니다. 이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자유 경쟁 사회의 자연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평가의 사회에서 여성이 인정을 받아 동등한 구성원으로 살아갈때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나 협력자로 인지 하게 댑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노력이 없이 경쟁도 없이 여성이란 이유로 특혜을 규정화하고 선을 가르고 사회 전반적으로 이익을 요구할때는 지금보다 더욱 심한 혐오가 발생할겁니다. 이건 강요할수도 없고 아무리 언론으로 잇슈을 해도 막을수없는 겁니다. 여성에 대한 여러가지 안좋은 단어들이 생겨난 것은 남성이 여성을 폄화 하기위해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의 기본은 바로 공평성에 있습니다. 결혼시 동등하지 못한 재산구비라던지 데이트 비용이라던지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이 벼슬인것처럼 해온 풍습들이 개념없는것의 대표가 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생겨난것이 된장녀 같은 은어들입니다. 각종 문제들은 자유경쟁사회에서 공정성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처진 사회 문제가 낳은 결과들입니다. 과거에 여성들이 남성을 상대로 여러가지 불만이 표충되었듯이 각종 여성전용이 넘처나고 세계유일 전용 주차장까지 생기고 할당제로 경쟁없이 들어가고 심지어는 군가산점까지 없애 버리고 이런 일련의 여성행동들이 남성으로 하여금 혐오을 불러 일으킨 이유지 여성들이 주장하는 "아직까지 사회가 남성 중심이어서 " 그런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이건 여성들이 이기적기 때문이죠 그리고 미련합니다. 타혐과 노력 그리고 실력으로 동등성을 못만들고 변명과 막장 논리로 우기기만 하니깐 이모양이 된것이지요 이런 현상은 절대로 인위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지도 못합니다. 우리사회 전반적으로 여자라서"난 특별해" 이런 마인드가 개속 되는한 우리사회의 여성혐오는 개속댑니다.
  • 토브 2016/05/26 [09:43] 수정 | 삭제
  • 글 감사하고 공유합니다.
  • 여성혐오 방치해도 공범자겠지요 2016/05/25 [18:03] 수정 | 삭제
  • JTBC뉴스현장, 역시나 중년남성과 젊은여성 구도였지만 그나마 있던 여자앵커 옆으로 치우면서 개편때 들어와서 얼마안돼 그나마 여자앵커는 완전히 사라지고 혼자 그자리 차지한 아저씨인데, 가끔씩 꼭 뭘 잘못 주워듣고와서는 광분하더군요. 전에 필리버스터 보도때는 "아니 왜들 우는걸까요?" 궁금해하더니,
    어제 ‘강남역 살인사건’은 그 사건관련 전문가도 아닌 다른내용 패널들을 앉혀놓고 "성별대결로 간다는게 무슨 얘깁니까?" 그게 또 궁금했는지 성별대결을 화두로 대충 자기들끼리 언급하고 지나가길래 뭐하자는건가 황당해서 방송국에 전화했는데,
    방송 마지막에 김*녀 한남* 얘기하며 아버지 어머니 둘다 있어서 태어난건데 성별대결 말라며 꼰대 호통. 성별대결로 받아들인 '개저씨' 심보가 문제인데 대체 누가 누구에게 호통치겠다는건지. 황당해서 방송국에 또 전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 한남*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기성주류언론 '개저씨'들의 꼰대지적질 바로 받아왔지요. 여성혐오가 한국남성문화로 자리잡은지 10주년 넘어가도록, 페*충에서 맘* 삼*한 에 이르도록 그 오랜시간 그‘개저씨’들은 뭐한걸까요(조건만남?). 수박겉핥기 JTBC보도국 꼰대‘개저씨’들도 모르쇠 공범자입니다.

    생물학자 최재천교수(현 국립생태원 원장)가 왜 포유류가 발생되었는지 참 안타깝다며, 암컷들의 고생은 너무 심하고 수컷들은 잉여라고 했지요. 그래서 실제 개념적으로는 민주주의 인권이 남성들에게 더 중요합니다.
    여성혐오는 여성차별의 변종이라고 하던데요, 민주주의공동체가 되면 잃을게 많다고 착각하는 무개념남들의 공포겠지요.
    인생을 살아본 남자어른들이 어린 젊은 남성들을 안심시키고 교육시키긴커녕, 쌍팔년도 꼰대 '개저씨' 심보만 드글드글 부활해서 성별대결로만 인식하고 되려 조장하는것이 악순환의 원인입니다.

    예전에 어느 남자선배가 한적한 밤길에 앞에 가는 여자 발걸음이 자꾸 빨라지자 "나는 그런 남자 아닌데 기분 나빠져서" 일부러 쫓아가는척 옆으로 따라붙었다가 지나갔다고 해서 욕 많이 먹었더랬죠. 그 남자선배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여자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여자들은 늘 한적한 곳이나 밤길 갈때 누가 뒤에 오면 그사람이 자기같은 여자라는게 확인되어야 긴장이 누그러집니다. 그 마음 서로 아니까 여자들끼리는 괜히 의심받지않게 더 조심합니다. (남자들 중에도 어른스러운 마음 갖춘 개념남들 있습니다만.)

    며칠 전에도 동네 수퍼갔다 짐이 무거워 다들 이용하는 지름길인 좁은 골목길 중간쯤 왔는데 손에 뭔가로 둘둘만 납작한것을 들고있는 *씹은 표정의 50대 동네아저씨가 마주오다 한걸음 우연히(?) 다가오는바람에 너무너무 놀라서 움찔!하고는 많이 쪽팔리는 동시에 모멸감도 심하더군요. 한동안 그 지름길로는 못가겠지요.
    여자한테는 다이어트 화장 웃음 강요하고, 남자는 유치하고 이기적이고 기본예의없어도 상남자라고 해주는 이분화좀 그만하고, 기본 공공질서 특히 좁은 골목길이나 한적한 시간 장소에서는 더더욱 상식있는 태도 지키자는 공익광고라도 해얄텐데요.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들 범죄율은 일반인들보다 낮으니 편견 조장하지말아달라고 전문가들이 우려하고있으니, 그범죄자남성에게 여성혐오를 사주한 여성혐오문화가 죄악인건 사실로 인정하고 모두가 노력해야겠습니다. 이번 희생자를 계기로 예방프로그램 제대로 만들어야겠습니다.

    근대가 현대로 오는 지점에서 유명한 역사적 전환점들이 있지요. 나치 패전 독일에서 녹색당이 어떻게 국회로 들어갔는가, 노사갈등 심했던 스웨덴이 어떻게 보편적 복지국가가 됐는가, 저출산 심했던 유럽국가들이 어떻게 출산율 높였는가..
    한국은 기득권남성들의 유치한 방만함으로 그 모든 근대적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서 재앙으로 돌아오고있지요.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첫 시작은 "김치를 욕으로 쓸정도로 자기혐오 열등감 몰상식 심한 한국남성문화에 자존감과 민주주의 교육"이겠습니다.
    이제 한국도 근대적 남성중심적 정서 심보에서 민주적공동체 공생이라는 현대사회 또는 '오래된 미래'로 전환되지 못하면 지구촌에서 생존할수없다고 전문가들은 예전부터 경고해왔습니다.
  • ㅇㅇ 2016/05/24 [18:48] 수정 | 삭제
  • 편나누기라고 생각하는것부터가 성별나누기 성대결을 조장하는거아닙니까????????....지금 본질은 '여성'이기때문에 '남성'에 의해 억압받고, '남성'에 의해 만만하게 보여짐을 당하고, '남성'에 의해 차별받아온것이 터진겁니다....여성을 차별해온 '남성'으로부터 '여성'이 쉬워보이고 화풀이대상으로 더 쉽게 당해온것에 대해 말하는것입니다. 교통사고, 사기, 강도, 묻지마살인, 어느곳에서나 정신병자를 만나는 모든 범죄는 남녀노소 모두가 만날수있는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라는이유로 성희롱, 강간, 더 쉽게 범죄에 노출되는것들이 있지 않겠습니까......남자분들이 뒤에 사람한명지나간다고해서 몸을움츠러들고 눈치를보고 전화통화를 큰목소리로 하는척하고...항상 손에 호루라기를쥐고 밤길을 걷는것을 해오셨나요? 이걸말하는겁니다..
    상대의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해도 모자랄판에 기분나쁘니 성대결이구나! 하시다니요.....
    왜 여자가 이런공포를갖게되었고 자신들을향해 나쁜손을뻗은 남자들을향해 소리치는지부터 생각해보셔야하는거아닙니까....자신들이 나쁜남자가아니라고 말하며기분나쁜거만 주장하시니...

    우선 '성대결'이라고 하는것부터가 '여성'인간의 공포를 '이해,공감'하지못하고 나 기분나쁘다!!!!하고 덤벼드는 꼴입니다
    똑같은 사람취급이요? 그럼 학교폭력을막읍시다!!라는 표어 아래에 가만있던 학생들, 선생님들도 나 잠재적범죄자로 모는거임??? 하고 화내야하는거아닙니까
  • 32 2016/05/24 [10:18] 수정 | 삭제
  • 절망 스럽다니 참 ㅋㅋㅋ
    남자라서 살인을 안당하는게 아닌걸 아시는데 남자들도 공포를 갖고 살아간다는건 왜 모르실까요? 저희도 또라이들 만날까 무섭습니다. 통계적으로도 남성들이 훨씬 만이 죽었다구요. 그럼 우리는 거의 집안에서 못나올 수준이네요? 거의 0.5배가 더 많은 수준인데?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르는건 그 쪽 분들이 아니신지...
    통계라는 펙트를 쫌 인지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는 남성이 한것이기에 이런 반응이 나올수 있다 생각합니다. 근데 무엇보다 이렇게 댓글을 쓰는 이유는 이번 사건으로 남성 자체를 범죄자 마냥 보는 여자들의 시선 때문에 그런겁니다.
    왜 다 똑같은 사람 취급하시는 거죠? 남자가 열폭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요?
  • 우경화=우매화? 2016/05/23 [21:05] 수정 | 삭제
  • MB정권과 국정원댓글이 결과적으로 한국남성/한국여성들에 초래한 피해 반드시 공론화해야합니다. 언제부턴가 일부(?) 남대생들, 현재 40대 중후반 ‘아재’들 남대생시절 수준으로 되돌아간듯해서 참 허무하더군요.

    일부(?) 이슬람남성들이 이슬람문화에 성차별은 없다고 한다지요. 한국도 성차별은 없고(역차별,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만 있을뿐), 온라인에서 자신들이 만연시킨 여성혐오가 오프라인에서 공론화되자 인정못해서 거리로까지 나왔군요.

    이곳 '일다'에도 기사 판독력도 없어서 "그래서 또 남자 잘못이라는거냐~"며 엄마는 왜 나만 미워해~라는듯이 앵앵대는 열폭댓글 가끔씩 꼭 달리는데 그런 심보(구조적문제 이해못하고 '나=남자 너희=여자'로만 인식 화풀이)들, 정권교체 꼭 성공해서 교육/심리치료 프로그램 정착시켜 도움받을수있게 해야겠습니다.

    “국민 세금을 그런일에 쓸수 없다”는 제창은 잘하는 세력들 아직 그 자리에 있는데, 사회비용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 또한 예방이니까요.
  • 감사 2016/05/23 [16:12] 수정 | 삭제
  • 아들은 없지만, 책임감 가지고 남동생을 가르쳐야겠습니다.
  • ㄷㄷㄷ 2016/05/23 [11:31] 수정 | 삭제
  • 이번 사건의 결말이 또다시 치안 강화, 여성들을 위축시키는 '안전'대책의 남발이 될까봐 두렵습니다. 여성들이 용기를 내서 더 많이 설치고, 떠들고, 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아휴 2016/05/23 [07:16] 수정 | 삭제
  • 댓글들을 보니 절망스럽다... 남자가 살해 안 당한다는 게 아니다. 여자들은 이 나라에서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밤의 골목길에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 있고 강간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거다. 남자들이 이런 공포를 갖고 살아가나? 아무리 설명해줘도, 죽었다 깨나도 모르겠지...
  • 보완 2016/05/23 [03:31] 수정 | 삭제
  • 현재 우리 사회는 젠더위계에 따른 차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완화하려 하고 페미니즘적인 양성 평등을 구현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이 사건의 추모공간을 통해 많은 분들이 젠더위계의 종식을 촉구하는 분노를 표출하고 계시는데
    저는 과연 이런 것이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평소 개개인의 불안감에 대한 감성적인 분출인지
    진정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표출하는 생산성있고 설득력있는 분노인지 의문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어느 개인 남성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 분노를 받을 대상은 당연히 이런 젠더적 차별을 만든 모든 사회 구성원입니다.
    젠더관념을 인지하는 모든 남성들이 포함되어 있고, 물론 여성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성은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나 최대한의 젠더적 평등함을 위해 끊임없이 환기하고 존중하며
    여성은 자기주도적으로 자신을 인지함과 동시에 그것에 걸맞는 행동으로써 가치를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분노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고
    보통은 이렇게 느낀 책임감에서 비롯된 변혁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동시에 정신병자입니다.
    분명히 젠더적 차별에서 비롯된 사건이라 하더라도 정신병자에 의해 엄청나게 비약된 결과를
    들이대 봐야 정상적인 인간은 당연히 사건의 발생 원리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건 곧 인과관계의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인간에게 이해되지 않는 결과로 인한 책임을 요구하면 당연히 분노할겁니다.
    젠더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성이므로 위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다수의 동의가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이러한 설득력의 부재는 매우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적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의견을 달고 있듯
    사회 구성원 전부가 페미니스트는 아니기에, 오히려 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수단으로
    올바른 대의를 퇴색시킬 수도 있는 시기에 너무 감성적인 방식으로 분노를 발산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 데미안 2016/05/23 [02:24] 수정 | 삭제
  • 여성혐오 살인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가해자가 여성혐오를 당당하게 표출하는 것을 더이상 보고싶지 않습니다. 제발
  • ... 2016/05/23 [02:10] 수정 | 삭제
  • 정말로 여자이기에 죽은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피의자가 직접 말했다? 참... 정신병자 얘기를 듣는 분들도 계셨군요. 묻지말 살인으로도 남성들이 죽은 사건도 많고 , 군대에서도 정신병자 같은 놈들이 많아서 피해자들은 자살에 이르기 까지합니다. (살인통계만 봐도 남성이 46%나 앞서는 비율로 살인당한다고 나옵니다.) 이건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이지 왜 자꾸 남자들과 여자들 편나누기 하게끔 만드는지 잘모르겠습니다. 길거리에서 묻지마 살인을 당할 수 있는건 여성분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셨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피의자 같은 쓰레기들 때문에 피해 받는게 너무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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