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묻다 ‘춤추듯 살아갈 수 있을까?’

줌마네 <생존과 공유를 위한 활력담화> 3. 춤 편

꽃바람 | 기사입력 2016/10/13 [22:57]

여자들이 묻다 ‘춤추듯 살아갈 수 있을까?’

줌마네 <생존과 공유를 위한 활력담화> 3. 춤 편

꽃바람 | 입력 : 2016/10/13 [22:57]

‘생존과 공유를 위한 활력담화’ 연재가 오늘로 마무리 된다. <줌마네>는 지난 7월 21일부터 8월 11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다목적실에서 활력담화를 열었다. 매회 담화에는 여성들이 생존의 현장에서 누구나 한번은 떠올려 봤을법한 질문이 나왔다. ‘인간적인 돈벌이는 가능한가?’ ‘그럼에도 왜 창작을 지속하는가?’ ’함께 춤추듯 살아갈 수 있을까?‘가 그 질문들이다.

 

초봄에 준비를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진 이번 프로젝트에는 줌마네 기획팀(오솔, 짱아, 하리, 루후나)과 11명의 패널, 함께 담화를 준비한 15명의 참가자, 글(꽃바람), 영상(하리), 녹취록 작성(향, 물통)을 담당한 기록자들과 연재기획에 도움을 준 <일다> 편집진까지 30여 명의 여자들이 동참했다. 뜨겁게 만났던 담화의 기록은 이것으로 일단락되지만, 우리들의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세번째 담화의 패널 소개]

 

몸춤(소영, 늘, 몸짓으로, 아름): 네 명의 현대무용가가 만든 춤추는 사람들의 모임이자 생존과 공유의 공간. 자체 프로그램을 열거나 연습실, 워크숍, 모임 장소 등으로 공간을 나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며 천천히 운영 중. ‘몸, 춤, 삶이 일상 속에 함께 어우러지는 관계지향적 공간’을 꿈꾼다.

 

유리: ‘둥지’란 뜻을 가진 아프리칸 댄스컴퍼니 따그(TAG)의 대표이자 댄서, 프리랜서 번역가이다. 심리학과 여성학을 공부한 후 20대 후반에 춤의 세계에 들어왔다. 아프리칸 댄스의 해방감과 무아지경을 많은 이들과 나누며 산다.

 

▶ 이날 활력담화는 춤추기로 시작됐다. 춤을 리드하는 몸춤의 ‘아름’과 한 참가자가 가만히 손을 맞대고 있다. ⓒ줌마네

 

생애전환기, 무언가 바꾸려고 한다면 지금이 적기

 

<줌마네>와 <동화읽는어른>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하다 보니, 나는 몇 개의 감투를 쓰고 있다. 능력이나 책임감이 남달라서 라기보다는 그저 일을 무서워하지 않아서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매주 토론할 책 한 권을 읽어야 하고, 참석해야 할 각급의 회의가 있다. 회의에 따른 보고와 기록도 빼놓을 수 없다. 거기다 이 원고처럼 종종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도 한다.

 

정신없는 날들 사이사이 ‘삶이 고요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동면에 든 곰처럼 방해받지 않고 고립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데 또 한편으론 사람들과 일 벌일 궁리를 멈추지 않는다. 낭독모임, 글쓰기 모임, 동네에 자그마한 공간을 만들 계획 따위를 나름 진지하게 하고 있다.

 

고립되거나, 연결되고 싶은 전혀 다른 두 마음이 주기적으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와중에 냉장고에 붙여놓은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통지서’가 자꾸 말을 건다. ‘생애전환기’라는 말이 나의 현재 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적확한 말인 듯해서 아침저녁으로 곱씹어 보고 있다.

 

생.애.전.환.기.라는 다섯 글자가 나이든 몸을 인식케 하는데 그치지 않고 ‘몸과 마음의 출렁거림을 받아들이라’는 권유이자 ‘앞으로의 삶은 이전과 다를 것’이라는 귀띔이며, ‘무언가 바꾸려고 한다면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살살 꼬드기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나만 그런 걸까?

 

춤추며 사는 삶 “귀에서 사운드 트랙이 들려요”

 

세 번째 활력담화는 춤추기로 시작했다. 둥그렇게 선 채 <몸춤> 운영자 ‘아름’의 지시를 따라하다 보니 어느 새 참가자들은 혼자서 혹은 둘이서 몸 어딘가를 말없이 접촉한 채 느낌과 기척을 나누고 있었다. 약간 쑥스럽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사실 저는 오늘 안 오려고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한숨을 돌리며 던진 개미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춤하고는 안 맞았어요. 제가 몸으로 못하는 두 가지 중 하나가 춤입니다. 그런데 이런 춤은 그냥 추게 되네요.”

 

▶ 유리는 올 7월 세네갈에 있는 국제댄스스쿨 에꼴데사블(Ecole des Sables)에서 사바르댄스를 배우고 돌아왔다. 세네갈에서 맞은 쉬는 시간.  ⓒ유리

기대 이상으로 평범한(?) 모습이었던 <몸춤> 사람들과는 달리 ‘유리’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채 안된 사람답게 에너지를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유리는 올 초 3개월간 세네갈에서 아프리카 댄스의 한 종류인 젬베 댄스와 사바르 댄스를 배웠고 그 후 다시 7월 한 달을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요즘이 아주 좋아요. 이번 세네갈 다녀온 후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생긴, 아주 좋은 상태예요. 그동안은 춤에 절반만 담그고 있었던 거 같아요. 돈은 딴 데서 벌어서 이쪽에 쏟아 붓고. 생계는 과외로 유지하고…. 춤으로만 온전히 살아보고 싶었는데, 의심이 있었거든요. 진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유리는 공부만으로 채워지지 않던 갑갑함이 해소되는 느낌이 좋아서 20대 후반부터 힙합과 재즈댄스를 거쳐 아프리카 댄스까지 꾸준히 춤을 추며 살고 있다.

 

“세네갈 다녀온 후 몸무게가 7kg이 빠졌어요. 확실히 건강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몸이 가볍고 귀에서 사운드 트랙이 들려요. 가벼워지면 더 선명하게 들리거든요. 돌아와서도 그걸 유지하고 싶은데 힘들어요. 맛있는 거 너무 많고 (웃음) 야식, 배달되는 이런 거 다 없어져야 돼요.”

 

자신의 상태와 변화를 이토록 잘 표현하다니! 춤을 추는 사람이라 다르긴 다르다.

 

아줌마가 된 현대무용가들 일내다: 삶과 춤의 순환

 

<몸춤>의 이야기는 소영이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4, 5년 춤을 안 추는 동안 감정조절이 안 되는 거예요. 슬픈 얘기가 아닌데 말하다 눈물이 나기도 하고, 화나는 일이 아닌데 막 심장이 빨리 뛰고….”

 

나 역시 우울증을 의심하며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출산과 육아의 시기에 덫에 갇힌 느낌을 견디기 힘들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었다. 처방은 뜻밖에도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라’는 것이었다. 소영의 한의사가 내놓은 처방도 비슷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쓰러질 것 같아서 바로 병원으로 갔더니 한의사가 운동을 하라는 거예요.(웃음). 심장이 안 좋다고. 그렇게 타고났다네요. 감정조절이 심혈관계가 근육과 관련이 있데요. 제가 원래 무용 선수잖아요. 그게 직업이니까 선수가 메달 따듯이 전투적으로 했어요. 매일 윗몸 일으키기 300개, 점프 300개 씩. 100번은 아무렇지도 않게 됐는데 그 사이 체력이 떨어진 거예요.”

 

나의 의사도 같은 얘기를 했었다. 몸에서 가장 큰 허벅지 근육을 많이 쓰면 뇌에 이러저러하게 영향을 준다고. 그것이 무척 적절한 처방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사실 걷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자주 온다. 원고가 막혔을 때, 긴긴 회의를 마친 후,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대는 서늘한 밤. 물론 돌아와도 할 일은 그대로 쌓여 있지만 걸으면 무엇인가가 분명히 달라져 있다. 조금 과장하자면 원고 1매를 쓰려면 1km쯤 걸어야 한다.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처럼 허벅지 근육으로 뇌를 굴리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는지?

 

소영은 한의사의 처방을 실천하기 위해 집 근처 오래된 건물 2층 공간을 계약했다.

 

“무용은 심장을 다양하게 뛰게 하잖아요. 음악을 들어야 하고 곁에 사람이 항상 함께 움직여야 하고, 사람을 느껴야만 춤을 출 수가 있고 혼자는 잘 안되는 게 춤이라 제가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이가 있으니 그러지 못했죠. 나가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까 공간을 마련하자는 입장이었고, 저는 사회생활의 매개가 춤이다 보니 춤을 추는 공간이 된 거예요.”

 

▶ <몸춤> 워크숍 장면. <몸춤>은 네 명의 현대무용가들이 서교동에 연 춤추는 사람들의 공유 공간이다. ⓒ몸춤

 

이때, 개미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질문했다.


“<몸춤>의 조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전혀 조직적이지 않습니다. 중구난방으로 하고 있어요. (웃음) 평소 눈여겨보던 사람이 있었죠. 춤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한 사람들, 공연을 위한 춤, 테크닉 위주의 춤이 아니고 삶과 잘 순환되는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마침 ‘언니네 무용단’이라는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아름’과 ‘늘’을 알고 있었어요. 공간을 계약하고 ‘늘’에게 전화를 했죠. 늘이 ‘어 그래, 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어.’ 하고 확 물었어요.”

 

소영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몸짓으로’는 제가 애기를 낳느라 모든 사회생활이랑 단절되어 있던 동안 내가 춤추는 사람이란 걸 잊지 않게 해준 사람이었어요. 오래 전 제가 연 워크숍에 수강생으로 왔던 인연이 시작이었는데 <몸춤> 이야기를 했더니 적극적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면서 마지막 멤버가 되었죠.”

 

이렇게 네 명의 멤버가 <몸춤>을 이루었고 작년 9월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들의 연습실이자 워크숍 무대이자 다양한 몸짓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을 ‘몸춤’이라고 이름 붙인 건 ‘삶과 몸과 춤이 잘 순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한다. 각자 삶의 리듬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느릿느릿 준비하느라 5월에 계약해 9월에 문을 열기까지 넉 달이 걸린 셈이었다. 월세는 각자 불러주는 곳에 가서 공연을 하거나 안무를 하며 번 돈으로 함께 나누어 낸다.

 

나만의 리듬을 찾아 ‘서두르지 않기 위해 애써요’

 

<몸춤> 사람들은 그 뒤로도 ‘서두르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말을 몇 번 더 했다. 매월 다가오는 월세에도 조급해하지 않고 공간의 지향을 세우고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며 준비했던 시간이 <몸춤>만의 호흡과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 아니었을까? 그들의 표현대로 서두르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할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속도보다 남의 시선과 사회의 속도에 맞춰 달음질치고 있진 않았던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늘’이 해준 얘기는 <몸춤> 사람들이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주었다.

 

“사람마다 가진 몸의 리듬이 있더라고요. 유난히 기운이 좋고 활동적인 계절이 있고 그 반대로 힘든 계절도 있죠. 또 우리 모두 심장 박동 같은 고유한 파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눈에 보이진 않잖아요. 그 파동이 서로 맞춰질 때, 그게 느껴지면서 같이 호흡하게 되는 것들이 너무 흥미로워요.”

 

남의 시선과 속도보단 자신만의 리듬과 파동을 지킬 필요가 있다는 얘기에 ‘유리’도 거들었다.

 

“저는 아프리카 가면 이뻐져서 돌아와요. 먹을 게 없어서 살이 빠지기도 하지만, (웃음) 그곳 사람들의 피드백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거예요. 아름다움을 굉장히 칭찬하는 문화더라고요. 같은 걸 가지고, 별것 아닌 것에도 계속, 엄청 오바하면서 칭찬해줘요. 근데 한국 오면 바로 짜부라들어요. 바로 어제도 누가 그러더라고요. ‘OO이 너 앞으로 나오지 말래. 너 너무 세 보인대.’ 제가 나가는 모임에 파워 있는 남자가 그랬대요. (웃음)”

 

잠깐, 누군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향한 야유가 쏟아졌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바로 짜부라들 수밖에 없잖아요. 그걸 지켜내는 건 결국 ‘나는 충분히 이쁘거든? 네 시선 필요 없거든?’ 이런 내 안의 중심인 것 같아요. 내 마음 속의… ‘바오밥나무’를 지키는 게 중요하겠다 다짐하고 있어요.”

 

세네갈에서 간혹 바오밥나무가 늘어선 들판으로 수업하러 나가기도 했다며,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떠오르는 듯 ‘유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 활력담화 참가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왼쪽부터 오솔, 유리, 몸짓으로, 소영, 늘.  ⓒ줌마네

 

보여지는 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만의 리듬과 호흡을 찾으라는 메시지일까? 다른 무용공간과 달리 <몸춤>에는 거울이 없단다. 또 바닥에 난방이 들어오도록 했단다. 얘기를 듣고 있던 오솔이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예체능은 굉장히 계급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춤을 추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되고…. <몸춤>에 가보니 이 공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라고 느꼈어요. 사실 <몸춤>에서 돈을 벌자고 덤비면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런데 <몸춤>이 한 작은 선택들, 이를 테면 거울을 없애고 아이가 찾아 올 것을 염두에 둔 그런 선택이 여태까지 없었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소영이 답했다.

 

“이전과 다르게 나를 만나고 내 몸이 어떻게 다른지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이건 재기가 아니고 다시 데뷔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무용계 안으로 복귀가 아니고 제 길을 제가 만드는 거죠.”

 

‘복귀가 아니라 데뷔’라는 소영을 말을 들으니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약간의 떨림과 두려움 탓에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이 가야할 먼 길을 응시하고 선 여행자 같은?

 

활력담화를 준비하면서 참가자들이 나눈 이야기들 속에도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도예공방을 운영했었다는 참가자 ‘티그리스’의 질문은 ‘어떻게 사는 것이 나의 길일까’였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작품 만드는 거, 학생들 가르치는 거 다 좋았어요. 10년 가까이 매달렸는데 어느 순간 보니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내 시간이 너무 없더라구요. 이런 저런 사정이 겹쳐서 문을 닫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게 고민이에요.”

 

지금껏 저 질문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블랙홀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혼자 작품을 만드는 것이나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 어느 하나에만 집중하기보단 조화가 필요할 거 같아요. 사람이 누구나 그렇게 파도를 타는 것 같아요. 혼자 있고 싶기도 하고 여럿이 어울리고 싶기도 하고. 혼자 하는 즐거움과 여럿이 하는 즐거움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티그리스와 함께 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삶이 고요해지길 바라는 한편으로 사람들과 모여 일을 도모하는 나에게도 ‘두 마음 모두를 긍정하고 조화시킬 방법 찾기’는 유효한 답이었기에. 그 즈음 이어진 참가자 ‘박히피’의 고민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저는 결혼 전에 공연기획 일을 했어요. 홍대앞 인디뮤지션들과 젊은 문화예술가들을 많이 만나면서 비주류(?)라고 여겨지는 삶을 살았고, 그런 삶을 동경했죠. 그런데 결혼하고 애 키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류의 삶을 원하고 있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나서 ‘나는 주류 속의 비주류가 되고 싶은 것 같아’라는 얘기를 한참 했어요. 사실, 주류네 비주류네 나누는 것도 우습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어떤 동네에서 살아야 할까… 생각도 많아지고요.”

 

선뜻 말하는 이가 없었다. 관심사도 개성도 다채로운 참가자들이었지만, 누구나 이런 충돌을 경험하며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류 혹은 비주류라고 삶을 구별 짓거나, 내 삶이 어떻게 보일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그저 내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자기의 길을 찾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얘기가 오고가며 사람들은 좀 더 깊은 생각에 빠지는 듯 했다.

 

젖먹이와 함께 춤을…몸으로 추는 삶

 

<몸춤>의 페이스북 소개 페이지에는 “몸으로 추는 삶, 춤으로 사는 몸, 삶을 탐구하는 춤”이라고 적혀 있다. <몸춤>의 길이 어떤 길일지를 알리는 짧지만 강력한 표명이자 선언이다.

 

“제가 사는 무용계는 일상이 없이 춤만 있는 세상이었어요. 그 속에서 저는 나름 일상을 챙기는 편이었는데 아기를 낳고 기르는 세계는 전혀 몰랐던 거예요. 처음엔 젖먹이 애를 데리고 안무 지도하고, 강의를 나갔어요. 젖을 물린 채 안무 지도를 했죠. 그래야 안 우니까. 근데 우리 아기는 가슴 양쪽을 다 내놓고 만져야 돼요. 회의하러 카페에 가서도 젖물린 채로…. ‘창피하지 않아?’ 누가 묻더라구요. ‘안 창피하…할 거 같니?’ (일동 웃음) 창피하죠. 당연히. 어쨌든 그 후로 강의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더라구요.(웃음)”

 

씁쓸한 웃음이 퍼져나가는 사이, 소영의 말이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서 아이를 미루고 싶지 않았고. 아이를 데리고 무용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고, 나아가 삶과 예술이 함께 가야 한다는 사람들하고 같이 일 하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삶과 예술이 함께하기를 바랐다는 말은 첫 번째 활력담화 때 ‘씩씩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일과 삶이 통합되기를 바란다’는 말. 씩씩이에겐 그게 일이었고 소영에겐 춤이었다.

 

“애기가 그렇게 잠을 안 자는지 몰랐어요. 책에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젖 먹이라던데 그런 게 아니더라구요. 너무 힘들어서 그 쪽 전문가인 지인한테 도움을 청했죠. 그 분이 ‘소영 씨, 애기랑 춤춘다고 생각하세요.’ 이러는 거예요.”

 

버둥거리는 젖먹이 아기랑 춤을 춘다니. 돌이켜보니 나도 아기와 그런 일치와 합일의 순간이 있었다. 영혼의 탯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소영’이 아이의 흐름을 살피게 된 순간 육아와 춤이 하나가 되었듯, ‘아름’은 요즘 삶과 춤이 하나 되는 것을 느끼는 중이라고 했다.

 

“예전엔 무대에서 최대한 길어 보이려고 더 꺾고, 늘리고, 몸을 왜곡시키며 전투적으로 췄던 것 같아요. 춤추는 사람들 만나도 경계하고 기선 제압하느라 눈도 안 마주치고 그랬죠. 얘보다 팔을 조금 더, 한 발 더 많이 뛰고, 조금 더 버티고…(웃음)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서… 아름다움을 위한 학대라고 할까요?”

 

▶ 활력담화 참가자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처음의 쑥스러움을 털고 환하게 웃고 있다.  ⓒ줌마네

 

개미가 질문을 던졌다.

 

“남과 비교하면서 훈련하듯 춤췄다고 했는데,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예중, 예고를 다니며 어려서부터 춤을 춰온 ‘아름’의 답은 이랬다.

 

“전투적으로 춤출 때는 항상 ‘언제쯤 춤을 그만둘 수 있을까’라는 말을 달고 다녔어요. 어떻게든 도망갈 구멍을 찾는데 실은 도망갈 데가 없더라고요.(웃음) 그러다가 춤에 대한 접근이 달라지면서 삶도 달라지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조금씩 쉬워지고. 요즘은 춤처럼 잘 만나고 서로 지지해줄 수 있고 그래요. 그리고 죽음…. 몸이니까 어쩔 수 없이 죽음까지 생각하는데 그게 조금 편해졌어요. 이렇게 잘 토닥토닥하다가 마지막엔 잘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요. … 제가 너무 갔나요?(웃음)”

 

진지한 표정으로 빨려 들어갈 듯 이야기를 듣던 ‘유리’가 비밀얘기를 하듯 말을 이었다.

 

“전 요즘 자꾸 출산에 관심이 가요. 제가 서른여섯인데 마흔까지는 애를 낳고 싶단 생각이 종종 들거든요. 노산도 걱정되고 출산 이후의 삶도 고민되고 그래서 언니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미리 미리 이렇게 소문을 내면(웃음) 나중에 외면하지 않으실 거죠? 우연히 만난 것 같지만 우리가 서로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을지 몰라요. 여기 어차피 다 유별난 언니들이잖아요.(웃음) 비슷한 관심사가 있고, 연결 고리가 있어서 아마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유리가 사심(!)을 드러내자 35세 이후 출산 경험자들이 속속 등장해 증언해 주었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유리는 춤추며 몸을 잘 단련한 사람이니 체력적으로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역시 35세 이후 출산 경험자인 소영이 덧붙였다.

 

“유리가 지금 잘하시는 게 이런 지지층을 미리 만들어 놓는 거, 굉장히 중요해요. 임신했을 때 할 것은 태교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웃음) 임신기간 내내 사람과 만나고 애 낳고 놀러 갈 데를 찾고, 주변에 비슷한 처지에서 애기 낳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야 했던 거였어요.(웃음)”

 

그 시절. 나 역시 커뮤니티가 절실했다. 갈 곳은 마트 밖에 없었다. 그렇게 버티다 둘째가 네 살이 되자마자 <줌마네>를 찾아갔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글쓰기를 하고 사진을 찍거나 그림으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터널을 빠져나온 듯하다. 그 때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해 본 경험이 지금 중요한 밑천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내 삶의 질문들

 

이번 담화는 춤추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안고 살아갈 이야기로 끝이 났다. ‘춤추듯’이라는 말은 삶을 보는 방식의 하나로 감흥을 일으켰다. 초대된 패널들은 ‘춤춘다’는 것이 음악을 듣고, 곁의 사람을 느끼고, 기척을 읽어 그와 나의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상대가 젖먹이 아기든, 나의 몸이든, 글쓰기든, 연애든 가리지 않고 춤추듯 할 수 있다는 걸 일러 주었다.

 

세 번의 활력담화 주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 ‘나와 남을 훼손하지 않는 인간적인 돈벌이가 가능한가’ 물은 첫 번째 질문과 ‘창작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함께 춤추듯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솔이 끝인사처럼 말했다.

 

“나와 다른 세대,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을 마주하면 나는 어떤가를 돌아보게 되잖아요. 세 번의 활력담화는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를 가늠해 보기 위해 마주한 세 개의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질문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래서 촉발된 여러 질문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 질문이 우리들의 삶에 파문을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 세번째 활력담화는 유리가 이끄는 아프리칸 댄스를 함께 추는 것으로 끝이 났다.  ⓒ줌마네

 

세 번의 질문과 그로 인한 원고 작업은 나에게도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원고 덕분에 올 여름 내 생활은 조금 더 엉망진창(?)이었고 예상보다 늦어진 마감은 다리에 매단 돌덩이처럼 운신을 어렵게 했다. 도서관과 카페를 전전한 덕분에 작업하기 좋은 카페의 문 닫는 시간을 완벽 파악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원고를 쓰느라 그동안 던져진 질문을 내 삶에 비춰 누구보다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이제 무시무시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건강검진도 해야 하고, 다행히 나에겐 아직 만기가 한참 남은 적금과 짧은 시나리오 한 개, 써야할 동화 기획안 서너 개가 있다. 다음 활력담화가 열릴 때까지, 함께 질문할 또 다른 여자들을 기다리며 답을 찾아야 할 나만의 질문인 셈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생겨난 질문을 나누었던 활력담화에는 ‘생존과 공유를 위한’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지.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하기’만으로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빠지는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은 세상에서 그래도 ‘질문하기’는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고, 속도에 치이지 않게 하는 도구이자 유일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모두 무사히 살아남아서 다음 활력담화에서 만나길 바란다.

 

담화의 끝은 ‘유리’가 이끄는 아프리카 댄스 워크숍이었다. 그가 춤을 시작하자, 아프리카말로 된 단순한 멜로디, 심장 박동과 닮은 북소리가 이진아도서관 다목적실의 마룻바닥을 울렸다. 모두 맨발로 널찍하게 서서 유리가 하라는 대로 발을 내디디며 말처럼 뛰었다. 반복되는 리듬과 하늘과 땅을 우러르는 몸짓이 거듭될수록 마치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모든 참가자들이 날아올랐다. 팔을 품에서 가장 멀리 보내기 위해, 다리를 멀리 내딛기 위해 얼굴이 상기되고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필자] 꽃바람 (자유기고가. 동화작가. 줌마네 회원.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 이 글은 서울시 여성발전기금 후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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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6/10/14 [17:50] 수정 | 삭제
  • 멋진 여자들이 많구나, 나도 힘내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 add 2016/10/14 [16:56] 수정 | 삭제
  • 세 번의 담화 다 잘 읽었어요! 즐거운 담화에 방청객으로 초대받은 기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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