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른여덟에 혼자 떠난 배낭여행은 태국과 라오스, 인도를 거쳐 남아공과 잠비아, 탄자니아, 이집트 등에서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혼+마흔+여성 여행자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서른여덟, 꿈을 이룰 때가 왔어’
3년 전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잠자리에 들어 머릿속으로 내가 번 돈을 카운팅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일 년 안에 집을 사고… 대출금을 갚고 하겠는데!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무서워져서 서둘러 잠을 청했다. 집을 사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너무도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는 내가 무서웠다.
그리고 며칠 후,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을 하는데 ‘아. 이제 때가 되었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어린 시절 막연히 바라던 세계여행의 꿈을 이룰 때가….
그 시절 나는 충분히 한국 생활에 만족하던 터였다. 자유로운 직장에, 돈도 그런대로 벌고 있고, 친구들과의 생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서 잘 사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두려울 것이 없는 37세 비혼(非婚) 여성이었다.
그러니, 충분히 떠나도 될 법하지 않을까?
호기롭게 사직서를 낸 다음날, 나는 머리를 반삭으로 짧게 잘랐다. 영업직을 하던 내가 할 수 없었던 그 당시 유행머리!
주위 사람들로부터 협찬과 지원을 받아 세계 일주를 준비하는 백수 시절엔 마냥 즐거웠는데, 우습게도 떠나기 이주 전부터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흔이 되기 전에 돌아와 마흔부터는 한국 생활에 다시 적응해야하는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마흔의 비혼 여성이 이 혹독한 한국에서 다시 직장을 구하고, 전세나 월세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니지, 전세금을 다 빼고 나가는 터이니 돌아올 때는 고시원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마흔의 내가 그 시선을 견딜 수 있을까? 나는 바보가 아닐까?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집을 사고, 한 달에 공연, 영화를 몇 편씩이나 즐길 수 있는 문화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렇게 떠나는 것이 미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정리도 하지 못한 채, 나는 서른여덟 살이 되는 1월에 태국 방콕으로 떠났다. 그동안 주변인들에게 “나 해외여행 가!” 라며 자랑하던 것이 부끄러워, 울며 겨자 먹기로 떠난 것이다.
여행베테랑 언니들과 함께 방콕으로
고백하건대, 나는 해외여행의 경험이 거의 없었다. 친한 언니들과 함께 갔던 5년 전의 이집트 투어관광 20일. 그리고 필리핀에 친구가 있어서 몇 번 다녀온 것 외엔 서른일곱 살 가까이 외국에 혼자 여행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영어가 싫다. 영어는 내게 외계의 언어일 뿐인데. 이런 내가 해외여행이라니, 걱정하던 여행베테랑 언니들이 나와 함께 태국여행을 해주기로 했다. 첫 시작은 그렇게 가족 같은 친구들의 격려로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니 세계여행을 초반에 접을 수 더욱 없었겠지.)
그렇게 설렘과 두려움 속에 도착한 첫 여행지는 태국의 방콕. 세계여행의 시발지이지만, 친구들과 함께했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태국의 카오산 로드. 배낭여행자들의 3대 무덤중의 하나인 곳으로, 잠시 라오스에 그 자리를 물려줬지만 다시 그 명성을 되찾은 곳이다.
외국의 문화와 태국 문화가 자연스레 섞여 있는 곳. 히피스럽지만 깨끗한 곳. 그리고 무엇보다 ‘싸다’. 아. 태국의 마사지는 정말 기가 막히다. 그리고 싸고 맛있는 음식들. 이후 여행을 하는 내내 조금만 심신이 지치면 나는 방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씩은 했다.
방콕 카오산로드에서 친구들과 조금 좋은 숙소에(언니들이 업그레이드 해주어 가능한 일이었다) 머물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지나가다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따라가 뻔뻔하게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들었던 그 음악들…. 그 자유로움은 내가 진정 원하던 것이었다.
‘비움’으로 비로소 채워진 나의 배낭
방콕에서 우리는 북쪽에 있는 치앙마이로 떠났다. 아주 괜찮은 슬리핑 버스를 이용했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치앙마이는 금방 우리 세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동.서.남.북 네 개의 문으로 구분되어지는 치앙마이. 저녁이 되면 각 문 앞의 광장에서는 벼룩시장이 펼쳐지는 곳. 누구나 그곳에서 저글링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물건을 내다 팔 수 있다.
택시로 이용하는 툭툭(오토바이 개조)은 우리나라 버스 이용료보다 훨씬 싸고, 구석구석 찾아보면 꽤 괜찮은 요가, 요리 등을 배울 수 있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몸무게가 90킬로그램 촉박했는데(사실은 100킬로그램이었는데 여행 직전에 다이어트를 해서 90킬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그때 하루 배운 요가에 온몸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어야만 했다.
치앙마이에서는 태국 마사지를 저렴하게 배울 수 있다. 한 달 코스면 세계 어디서도 사랑받는 마사지사가 될 수 있을 터였다. 다시 태국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코스를 꼭 배울 거다.
외국인들이 오픈한 예술 공간도 꽤 있다. 한마디로 치앙마이는 딱 살기 좋은 작은 예술도시로 내게 다가왔다. 여유로운 예술가 흉내를 내던 태국. 그 곳에서 내 가족 같은 언니들과 작별하고 나는 진짜 나 혼자의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이제 정말 배낭여행자가 되는 순간이다. 처음 출발할 당시 내 배낭의 무게는 뒷 가방 14킬로그램, 앞 가방 10킬로그램. 총 24킬로그램이었다. 이 배낭은 일 년 뒤에 정확히 4킬로그램으로 줄어있었다.
자, 그럼 이제 치앙마이의 더 북쪽 빠이로 출발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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