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결집되어 거리에서도 울려퍼지는 시대, 지금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액션을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2017년 4월, 퀴어 페미니스트 청년 예술인 모임 BTF가 시작되었다. BTF(이하 페미건설)는 Built To Feminism의 약자로 퀴어 페미니스트 청년 예술인 조직이다. 예술인이자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행복하고 온전한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작품을 통해 세상에 목소리를 전달한다. 멤버들은 같은 대학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하며 한국예술계 내 여성 혐오와 퀴어 혐오를 인식하며 모이게 됐다.
현재는 기획/연출 전공의 대학 재학생과 휴학생, 연기 전공의 휴학생, 영상 전공의 졸업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극, 영화, 영상, 퍼포먼스, 사진, 콜라주 작업 등 공연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예술 장르를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고 있다. <페미건설>의 첫 시작과 지난 4월 열린 퀴어 페미니즘 전시 “기공식”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휴식을 결정하게 된 이유까지, 멤버 종소리와 죠리퐁 그리고 김개미가 만나 대담을 했다.
공연예술 전공하는 학내 퀴어 페미니스트들 모이다
죠리퐁: 우리가 학교에서 처음 만났던 게 기억이 나요. 공연예술을 전공하던 우리가 “좋은 공연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게 된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친밀해진 계기는 ‘대학 내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였어요.
종소리: 좋은 공연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무엇보다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죠. 그러면서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여성혐오적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고 공감하다가 <페미건설>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나왔고요. 당시 학내에서는 교수에게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하거나, 남성 선배로부터 성적인 의도로 괴롭힘을 당했거나, 클로짓(벽장 속에 있는, 커밍아웃하지 않은) 퀴어로서 살아가는데 학우들의 아무렇지 않은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지쳐있던 사람들이 많았고, 여자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그런 경험들을 나누게 되는 분위기였죠.
우리가 공연예술을 전공하고 있어서 평소 공연이나 페스티벌에 스태프 알바를 많이 나갔잖아요. 그런데 그 알바 기회가 1차적으로 남학우들에게 먼저 가고, 남는 자리만 여학우들에게 주는 형식이었어요. 이렇게 소소한 부분들도 학내에 여성 혐오와 여성 배제적 분위기를 유지시키는 데에 한몫한 것 같아요. <페미건설>은 대학 내 소모임으로 시작했는데, 모임 구성원을 모으는 시기부터 어려움을 겪었어요.
죠리퐁: 대학 내에 퀴어, 페미니즘이나 인권 관련된 모임이 하나도 없었고 여성으로만 구성된 모임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되었어요. 모임 구성원들을 다양하게 구성하면 우리가 받을 까칠한 시선들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학내에 이미 성차별적 분위기가 만연한 상태에서 페미니즘을 내세우는 모임을 꾸린다고 했을 때 받을 시선들이 걱정되었죠. 그래서 남성 구성원도 모집하려고 애썼고요.
종소리: 그런데 결국 일이 터졌죠. 모임 멤버 9명 중 8명이 여자였고 1명이 남자였죠. 그 남성 멤버가 작정을 하고 우리 모임에 접근했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대해 궁금하다고 하면서 한 멤버에게 집요하게 카톡을 보냈고요. ‘성중립 화장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성전용 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면서 개인에게 자꾸만 정답을 강요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모임 시간에도 자기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공격적으로 발언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져서 다른 멤버들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폭력 중 하나였죠.
죠리퐁: 우리가 페미니즘에 대해 척척박사도 아니고 그때까지만 해도 각자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것에 의미를 두던 시기였는데, 그 남성 멤버가 계속해서 공격하는 식으로 묻고 답을 재촉하는 바람에 다들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학내에 여러 가지 여성혐오 사건들(단톡방 내 성희롱 사건, 교수의 강의 내 차별 발언, 남학우들의 여성혐오적 내용의 텍스트 발표 등)이 벌어진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숨을 쉬어보려고 모임을 만들었는데, 우리 모임에서조차 숨쉬기 어려워진 멤버들이 생긴 거죠.
퀴어 멤버들의 경우 자신의 삶을 터놓고 이야기하려면 커밍아웃이 불가피한데, 그 남성 멤버가 모임에 함께 있는 이상 커밍아웃이 힘들 것 같다고 말했고요. 결국 그 남성 멤버에게 모임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그가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면서 일단락되었어요. 그 사건 이후로 <페미건설>은 퀴어, 페미니즘 모임으로 정체화했죠. 아웃팅 위험으로 인해 공개적으로 퀴어 모임이라는 것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학내 퀴어와 페미니스트가 암묵적으로 만날 수 있는 모임으로 재탄생한 거죠. 현재는 퀴어남성 멤버 1명과 퀴어여성 멤버 5명, 그리고 앨라이(퀴어를 지지하는 사람) 여성 멤버 1명으로 자리를 굳혔고요.
종소리: 대학 생활을 하며 남학생들이 가진 같잖은 권력이 징그럽다는 것도 느꼈지만, 대학 자체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학내에서 남학생 단톡방 내 성희롱 사건이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내부고발을 해준 남학우가 공론화를 원치 않았고, 피해자였던 여학우들 또한 그냥 넘기는 분위기였고요. 당시 이 사건을 제보받았던 <페미건설>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고, 결국 공론화하거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가야 했죠. 만약 대학 내에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분위기가 잡혀 있었다면, 내부고발자와 피해자들이 입을 닫아버리진 않았을 거예요. 학교에서 있었던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페미건설>을 끝까지 추진해서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죠.
너희가 뭘 할 수 있는데?
죠리퐁: 대학 내 사회적 소수자 혐오를 부수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추진할 필요가 있었어요. 스스로를 사회적 소수자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결속하는 분위기 말이에요.
종소리: 그러면서 우리 단체의 정체성도 확고해졌죠. 단순히 각자의 이야기를 해소하듯 나누는 모임에서 이제는 무언가를 실천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해졌던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죠리퐁: 그때 당시 주위에서 <페미건설>에게 어떠한 결과물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 단체라면서? 그래서 뭐 하는데? 너희가 뭘 할 수 있는데?’라는 식의 물음들이 우리에게 들려왔거든요.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빨리 해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도 들었죠.
만약 페미니즘 모임이 아니라 다른 성향의 모임이었다면 그런 물음들은 듣지 않았을 거예요. 모든 페미니스트가 너무나 쉽게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잖아요. 우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하고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들이요. 그래서 당시 작업 일정도 빡빡했고 이에 따라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때 개미가 같이 합류하게 되면서, 첫 도전으로 성남여성의전화에서 여성인권 및 여성폭력 문제 전반을 주제로 연 동영상 공모전 “틀 밖을 상상하라”(2017년 4월 1일~5월 31일)에 작품을 출품했죠. 비록 망하기는 했지만.(웃음)
김개미: 저는 영상 편집으로 처음 참여하게 된 거였지만, 오래전부터 공연예술 입시를 하면서 같은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요. 여성혐오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결과물이 좋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었어요. 시간도 부족했고 저도 기술적으로 부족했지만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의 작업과 다르게 운동과 실천의 의미가 있어서 좋았어요. 이 작업을 계기로 <페미건설>에 더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코가 꿰이긴 했죠.(웃음)
오늘은 내가 힘든 날: “다 괜찮아”
종소리: <페미건설>이 단순히 서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터놓고 해소하는 자리에서 확 전환된 시점이 있었죠.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던 때인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껏 나눴던 이야기들을 글로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어보고자 했죠.
죠리퐁: 간행물 <오늘은 내가 힘든 날>은 페미건설 멤버들이 각자 살면서 마주한 혐오와 폭력의 경험담이자 ‘나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확장시킨 첫 번째 프로젝트였어요. 여성퀴어기독교인페미니스트로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냈어요.
김개미: 기독교인이자 페미니스트인 멤버가 쓴 “나는 기독교인이자 페미니스트입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베리의 엄마”, 일상 속 폭력을 나열한 “나는 그저 안전하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등의 수필 형식의 글이 있었고, 서울퀴어문화축제 취재와 참가자 인터뷰 기사도 담았죠.
종소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었잖아요. 지금까지 일상 속에서 겪는 혐오들은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묻곤 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주변 여성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죠리퐁: 대학 동기들이 <페미건설> 모임에 함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활동하는 것들이 결국 옳은 방향이라는 걸 동기들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막상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지 않거나, 페미니즘 모임에 나오지 않는 모순적인 부분들에 대해 힘들어하던 동기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런 동기들을 비롯한 다른 많은 학우에게 <오늘은 내가 힘든 날>을 통해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대학 내 사회적 소수자들이 느끼고 있는 어쩔 수 없는 괴리감과 모순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니까요.
학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 “안전모프로젝트”
종소리: <안전모프로젝트>는 연극계 내 미투 운동과 맞물려 시작하게 되었어요. 실제 연극 현장뿐만 아니라 대학 내 공연예술 전공 내에서도 빈번하게 여성혐오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고요. 앞으로 현장으로 진출하게 될 미래의 공연예술 종사자들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되었죠. 이 프로젝트가 완성이 된 후에는 공연예술 현장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회사, 단체, 모임 등에 적용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가이드라인이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죠.
김개미: 우리 프로젝트가 권력자의 횡포를 그냥 넘기지 않고 대학 및 모든 집단 곳곳에 존재하는 권력적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움직임이 되길 바라며 기획했죠. 포스터 형식으로 디자인을 해서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앞면은 <페미건설> 소개 및 자작시,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가 쓰여있고, 뒷면은 Do Not and Do라고 지칭하며 가이드라인이 쭉 나와 있는 형태예요. 미투 운동과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여서 자신이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긴급도움 전화번호도 수록했어요.
죠리퐁: 당시 우리가 재학했던 학교 말고도 각 대학 페미니즘 및 퀴어 모임에 연락해서 배포 신청을 받았고, 멤버들의 지인 중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께도 붙여달라고 요청하며 다양한 곳에 배포했죠. 그런데 포스터가 훼손되는 일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종소리: 학내에서는 쓰레기통에서 발견하기도 했고.
김개미: 우리는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멈추지 않고 싸워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우리의 프로젝트 결과물이 버려지거나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 상황은 곧 우리가 잘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죠.
Feminar: 페미니즘의 다양한 노선들
김개미: 이전 프로젝트들은 독자와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프로젝트였다면, Feminar는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였어요. 면대면을 통해 소통의 깊이를 더욱 깊게 확장하고 싶었어요. <페미건설> 멤버 외의 참여자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죠.
죠리퐁: Feminar는 페미니즘(feminism)과 세미나(seminar)를 합한 용어로, 페미니즘에 관한 토론 또는 회의를 뜻해요. Feminar를 통해 우리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교집합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기획했어요.
종소리: 각 멤버가 노동, 미디어, 섹스, 몸을 주제로 발제를 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어요. 처음으로 단체 밖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였는데 새롭고 재밌었어요.
죠리퐁: 각자가 가고 싶은 페미니즘 노선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만 여성이 남성중심적 사고로부터 해방되고 퀴어가 가시화되는 우리의 근본적인 목표는 같았기에 이야기가 잘 풀렸던 것 같아요. 다양한 운동 방식을 모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퀴어 페미니즘 기획 전시 “기공식”
종소리: 지난 2년간 <페미건설>의 작업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나감과 동시에, ‘간행물-세미나’라는 물리적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이어왔잖아요. 페미니즘 전시 “기공식”에서는 총 7명의 멤버가 작가로 변신해 각자의 이야기를 따로 또 같이 선보였죠. 기획은 거의 6개월간 진행을 했던 것 같아요. 2018년 10월부터 2019년 4월까지 멤버 모두가 매달려서 이뤄낸 프로젝트였어요.
죠리퐁: 이전 프로젝트는 글이나 말로 표현을 했다면, 전시에서는 더욱더 확장된 방식으로 우리의 메시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진, 퍼포먼스, 영상, 음성 등을 활용해 표현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처음으로 후원 페이지를 통해 후원자분들께 후원을 받고 그것을 토대로 제작에 착수했어요.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라 서툴고 미흡했던 부분이 많았죠.
김개미: “기공식”은 파이를 넓히고자 시작했었죠. 20대 퀴어 여성 페미니스트의 삶을 이야기하는 전시가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물론 예전보다 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맞지만, 전시라는 플랫폼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파이가 적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퀴어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이요. 퀴어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곧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고 존재해 살아나갈 방법이니까요.
종소리: 맞아요. 밀려나지 않고 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퀴어 페미니즘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죠. 전시를 통해 자신의 성 지향성을 커밍아웃한 멤버도 있었고요. 저는 무엇보다 “기공식”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퍼포먼스 작업을 중심으로 선보였는데, 퍼포먼스 안무 중에 관객들 한 명 한 명과 포옹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다들 진심으로 꽉 안아주시고 같이 울어주셨던 기억이 나요. 내가 전하는 말들과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죠리퐁: 기억에 남는 관객분이 있어요. <페미건설>의 “기공식”을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영국 유학생분이었는데, 우리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느꼈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오신 중년의 남성분도 인상적이었어요. 우리 모두 다 감동을 했어요. 정말 감사했죠.
숨 고르고 재충전, 다시 앞으로!
김개미: 우리 지금까지 다섯 가지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종소리: 맞아요. <페미건설> 활동을 하면서 활동가로서 일상을 어떻게 지키고 유지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어요. 서로의 일상 속 폭력을 얘기하고 타인의 피해와 아픔을 듣고 같이 공감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지만, 힘든 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죠리퐁: 우리가 했던 활동들이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있었지만, 우리의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독자들, 관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의미 있는 활동들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김개미: 금전적인 이유도 있죠.
종소리: 맞아요. 모임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들어가는 돈은 후원금 반, 단체 멤버 개개인의 출자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는 인권 관련된 활동들을 활동가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정부와 나라에서 교육과 법을 통해 실천하고 바꾸어 나가는 태도가 필요한데, 현재는 인권 활동가들이 자신을 갈아내며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죠리퐁: <페미건설>이 휴식하는 시간은 지속 가능한 퀴어, 페미니즘 활동을 위해 총알을 장전하는 시간이 될 거에요. 혹시 모르죠, 깜짝 게릴라 퍼포먼스를 어딘가에서 진행하게 될 지도요. 휴식을 충분히 취한 뒤에는 다른 작품으로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 같아요.
종소리: 현재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은 다큐멘터리 영상 작업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예정이에요. 항상 여성의 삶을 담아낸 영상 작품에 대해 갈증이 있었는데, 제가 직접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해요. 휴식 후 나오게 될 작품에 대해 살짝 이야기를 흘리자면 남초 댄스 장르라고 볼 수 있는 비보이(b-boy) 댄스 장르 안에서 비걸(b-girl)의 역사를 따라가 보는 기행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많던 여성 비보잉 댄서들은 어디로 갔는지 파헤쳐보는 작업이 될 거에요.
총알을 가득히 장전해 다시 돌아오게 되면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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