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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4월 전국 성인 1천명(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3%가 ‘차별은 그 해소를 위해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회문제’라는 데에 동의했다.
지난 노무현 정부의 공약이었고 2007년에 발의됐지만 종교계 일부의 거센 반발로 제정이 좌절된 이후,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논쟁을 책임 있게 돌파하는 정치인들의 부재로 10년 넘게 ‘나중에’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라는 여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치권의 움직임을 촉구하고 나선 이는, ‘여성’ ‘청년’ 정치인으로 21대 국회에 진입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다. 장 의원은 6월 29일 정의당 6명(장혜영, 심상정, 배진교, 강은미, 이은주, 류호정), 더불어민주당 2명(권인숙, 이동주), 열린민주당(강민정)과 기본소득당(용혜인) 각각 1명 의원, 이렇게 법안 공동발의 요건인 10인의 국회의원 명단을 채워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런데 법안 발의 이후,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왜곡된 루머가 양산되고 있다. 이에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추진운동본부와 장혜영 의원실은 법안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지금 논의해야 할 쟁점을 짚어내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20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사실 두 개다. 6월 29일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과 6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이다.
홍성수 숙명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이 두 가지 안을 토대로 차별금지법 입법 과정에서 논의해야 하는 것들을 설명했다.
먼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정말 필요한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미 기존 법에도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 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양성평등기본법,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기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홍성수 교수는 “이를 ‘개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한다면, 지금 논의되는 차별금지법은 ‘일반적’ 혹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칭했다.
이어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특정 사유나 영역과 관련하여 특별히 차별을 금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제정되거나 발의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개별 사유와 영역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더라도 공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유와 영역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차별 구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차별시정기구를 단일화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차별 구제 및 차별금지 정책 수행에 유리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개별적인 사유와 영역마다 차별금지법을 각각 제정할 수 없는 것처럼, 차별시정기구도 사유와 영역별로 설립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는 “복합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령 비정규직 장애여성이 일터에서 차별을 겪었을 경우, 피해자는 비정규직 차별금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중에서 어떤 법에 구제를 요청할 수 있을까?
홍성수 교수는 “영국의 경우도 각각의 차별시정기구가 있었지만, 통합형 인권기구를 설립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주장에 따라 2006년 평등법이 제정되었고, 평등·인권위원회가 설립되었다”고 말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 홍성수 교수는 “한국 헌정질서가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기본법’이 제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기본법이란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기본이 되는 사항, 예컨대 기본 용어의 정의, 정책 추진 원칙과 방향, 추진체계, 재원 조달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규정하는 입법의 한 유형으로서, 보통 비슷한 목적으로 제정된 여러 법률들의 우산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홍 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대신 ‘차별금지기본법’이라는 이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차별금지법에선 국가와 지자체의 차별 시정 의무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차별 시정’에 한정하지 말고 “차별 문제에 있어서 차별의 사후 구제뿐만 아니라 사전 예방조치로서의 평등 정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해서 “‘평등증진’이라고 부르고 그 정책을 더욱 체계적으로 법제화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나아가 “차별금지’보다 ‘평등’이라는 말이 조금 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법’, ‘평등과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등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진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차별‘금지’는 차별하는 나의 위치를 알아차리게 해주는 사회적 사인”이 될 수 있다며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이 차별인지 인식해야, 차별하는 사람도 평등을 향한 도전과 실천을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권력의 위치를 인지하고 ‘동료시민과 평등한 관계 맺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차별금지법이 없는 사회는 차별 인식에 대한 역량을 기를 수 없다. 상대방과의 다름을 구조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고 말하며, ‘차별금지법은 시민들이 차이와 차별을 인식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차별의 범위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홍성수 교수는 ‘복합차별’ 규정을 두는 부분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복합차별 규정을 두는 건, 어느 하나의 사유에 근거했는지 각각 입증할 필요가 없게 함으로써 소수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복합차별 규정을 둘 경우, 예를 들어 여성노인이 차별을 받았다면 이 일이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은 것인지, 연령 때문에 차별을 받은 것인지 개별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다. 직접차별과 복합차별을 동시에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 심각하게 대두된 ‘혐오 표현’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혐오 표현’에 대한 내용을 어떻게 차별금지법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 표현이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으로써 그 자체로 차별 구제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는 점에서, 혐오 표현 일반을 차별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건 무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괴롭힘이 차별의 개념으로 규정되고, 특히 환경조성형 괴롭힘이 차별 개념에 확실히 포함된다면, 최소한 고용과 재화·용역의 이용 및 공급, 교육에서의 혐오 표현은 ‘괴롭힘’으로 간주되어 규제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차별금지법이 “여성혐오를 차별 개념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여성혐오와 성차별에 기반한 ‘괴롭힘’은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 방송통신심의원회 심의 등을 통해 규제해왔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성격인 ‘차별’로 규율하지 못한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에서 기인하고 성차별을 심화시키는 혐오 표현을 차별로 해석하고 규제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또한 김신아 활동가는 “현실의 여성들이 교차적인 정체성과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차별의 범주에 이런 교차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여성에 대한 모든 유형의 차별을 해소한다는 것은 다층적이고 교차적으로 발생하는 차별도 함께 아울러야 한다는 뜻이다. 미투 운동에서도 모든 피해자들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피해자들은 취약한 위치로 인해 더 말하기 어려웠다. 청소년여성, 성매매 여성, 성소수 자여성, 이주여성, 장애여성 등 소수자들은 차별, 낙인, 혐오, 불이익으로 인해 말할 수 없었다. 차별금지법에서 포괄적인 사유를 명시하는 것은, 다양한 여성들을 평등권의 주체로 호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피해 구제에 있어서도 하나의 사유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경험된 차별을 그대로 인정받고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차별 행동을 하면 잡혀간다’는 식의 널리 퍼진 오해와 달리, 차별금지법에서 실질적인 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건 ‘불이익조치’(보복)에 대한 부분이다.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차별시정기구에 구제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행한 건 상당히 죄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법안에서도 불이익조치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벌칙으로 두고 있다”며, “2011년 제정된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불이익조치를 상당히 자세히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반영할 여지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차별금지법은 처벌을 강조하는 법이 아니다. 시민들에게 ‘차별’을 인지하게 하고 ‘평등’의 감각을 키우게 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권을 증진시켜주는 법이다. 이제 많은 시민들이 이 법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기독교계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기독청년협의회(ECYK)와 KSCF(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한국여성신학회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민중신학회 등 기독교 단체들은 지난 20일,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성명>을 발표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라는 차별 사유 조항을 두고 반발하고 있어 앞으로 (차별금지법 제정까지) 지난한 과정이 예상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반대가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하면 잡아간다’와 같은 가짜뉴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등법이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호도하며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대표하지도 대변하지도 못합니다. 그리스도교는 혐오가 아닌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국회의원에게 호소합니다. 포괄적 평등법 제정을 위해 담대한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우리가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차별을 조장하고 혐오를 선동하는 일부 종교 집단의 거친 목소리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들이 두려워 하나를 양보하는 순간, 전부를 잃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교 집단의 대표가 아니라 평등을 간절히 바라는 시민의 대표입니다. 모두를 위한 평등법 제정을 위해 당당히 앞장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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