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이면, ‘환경인종차별’ 현실을 고발하다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와 엘렌 페이지 감독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8/16 [19:08]

캐나다의 이면, ‘환경인종차별’ 현실을 고발하다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와 엘렌 페이지 감독

박주연 | 입력 : 2020/08/16 [19:08]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요즘이다. 코로나19만 어떻게든 피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폭우에 침수라니. 연이어 들려오는 ‘재난’ 뉴스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하다.

 

다들 기후위기를 실감할 수 밖에 없는 사태가 눈 앞에 벌어지자, 이제야 미래가 어떻다느니 이천몇십년까지가 지구가 버틸 수 있는 한계라느니 호들갑스럽게 관심을 보인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소소하게’ 텀블러 들고 다니면서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육식 줄이기, 새 옷 안 사기 등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볼까 하던 찰나, 이미 와 버린 기후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늦어버린걸까?

 

▲ 엘렌 페이지 & 이안 다니엘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 포스터. 2019

 

작년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후, 올해 3월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There's Something in the Water, 엘렌 페이지 & 이안 다니엘 감독)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희망찬 메시지로 가득 차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아니, 오히려 반대다.

 

‘캐나다의 바다 놀이터’라 불리는 노바 스코샤(Nova Scotia) 지역 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환경오염이 인종차별, 계급차별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파고드는 영화는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그 현실에 맞서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아낸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가족, 이웃을 하나 둘 잃어 간 그들은 자신들의 건강과 안전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나에겐 늙어갈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그들은 슬픔과 상실감 그리고 죄책감을 끌어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미래가 필요하니까”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그들은,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환경오염이 인종차별과 연결되어 있다고?!

 

영화는, 배우로 이름이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감독으로서 <물속에 무언가 있다>를 만든 엘렌 페이지의 담담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차로 한 시간만 움직이면 그림 같은 바다가 펼쳐지는 노바스코샤주의 주도인 핼리팩스에 살았던 그는 모국인 캐나다가 다양성을 포용하고, 자연과 어울릴 수 있고, 열린 마음으로 가득한 곳이라 생각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엘렌 페이지 감독은 영화와 같은 제목의 책 『물속에 무언가 있다』를 읽고, 자신이 봐온 캐나다에선 볼 수 없었던 ‘환경인종차별’(Environmental Racism)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도시에 살아온 백인인 자신이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캐나다의 이면을 알게 된 거다. 

 

▲ 다큐멘터리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 중에서


『물속에 무언가 있다』를 쓴 잉그리드 월드론(Ingrid Waldron) 박사는 엘렌 페이지의 고향인 노바스코샤주의 셸번 카운티 남쪽, 픽토 카운티의 보트 하버(원주민어로는 ‘아섹’), 스튜위악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재난이 인종차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에 주목한다.

 

폐기물처리장이 만들어 지고 제지공장의 오수, 강에 버려질 대량의 소금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는 건, 백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아니다. 오랫동안 흑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 동네이고, 캐나다라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자신들의 땅과 자연을 지켜온 원주민인 미그마 부족이 살아가는 곳이다.

 

백인 중심 사회에서 이들은 ‘주변인’ 취급을 받으며, 그렇기에 기업과 결탁한 정부(국가)의 ‘표적’이 된다. 정치인이나 언론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변부이고 사회적 소수자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보니 기업과 정부의 악행이 조용히 은폐되기 좋은 환경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지만, 사회는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월드론 박사는 이것이 바로 ‘환경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망가지고 오염된 땅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다. 자신들의 영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갈 수 있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모두 암으로 죽었지만 딸은 자신의 다섯 아이와 그 집에 머물 수밖에 없다. 흑인 여성의 낮은 취업률 그리고 임금차별을 생각해 볼 때, 그가 다섯 자녀와 도시에서 버티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인종은 쉽게 환경오염에 노출될 환경에 놓이고, 그들의 삶과 건강은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가난을 벗어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현실을 담아내기 위해 엘렌 페이지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직접 환경인종차별을 겪고 있는 지역을 하나 하나 찾아간다. 그곳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가족과 마을 그리고 모두의 땅과 물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폐기장을 ‘어디에 만들지’ 대신, 폐기물이 안 생기게

 

영화에 등장하는 지역의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하다. 마을의 많은 사람이 이미 암 등의 질병으로 죽었다. 1940년대 쓰레기 폐기장이 생긴 사우스 셸번 지역에서 활동하는 루이즈 덜릴과 함께 차를 타고 동네를 돌 때, 루이즈는 ‘이 집엔 누가 암에 걸렸고, 저 집엔 누가 죽었는지’ 하나하나 거론한다. 유령마을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집집마다 암으로 죽은 사람이 있고 어떤 집은 살아남은 자가 없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가 땅을 오염시키고 물을 오염시키면서, 중금속과 세균이 잠식한 물을 쓰고 마셨던 사람들의 건강은 당연히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 중

 

픽토 카운티의 아섹도 마찬가지다. 현재 보트하버라 불리는 그곳은 미그마 부족에겐 ‘아섹’, 또 다른 방이라는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하지만 바다로 이어지는 그 공간은 1965년 생긴 제지공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아무런 정수 처리 없이 그대로 ‘받아내는’ 곳이 되었다. 제지공장 편에 서서 원주민들을 속이고 이들에게 불리한 계약을 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정부 수자원청이었다.

 

보트하버 복원 프로젝트 활동가이자, 공장 건설 관련 결정을 할 당시 마을 대표였던 할아버지를 둔 미셸 프랜시스데니는 정부와 기업이 공장이 생겨도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거짓을 일삼았던 것에 대해 분노를 터트린다. 그 거짓말에 속은 대가가 너무나 컸다. 미셸은 공장이 생긴 후, 지난 몇 십 년 간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놨다. 돌돌 말린 종이를 펼치면 사망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이 하나둘 보인다. 사망자를 세고 싶지 않다는 미셸은 이들을 생각하며 투쟁을 이어나갈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한다.

 

혹자는 저들이 투쟁을 하는 이유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기 때문에 화가 나서라고만 생각할지 모른다. ‘쓰레기 폐기장도, 공장도 있어야 하는데 그럼 어디에 만들란 말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지역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루이즈 덜릴은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든 이 영화를 보고 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환경을 생각하면서 물건을 사용하는 거예요. 그러면 쓰레기장이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묻는다. 주변 사람이나 가족을 돌볼지 않는다면 사는 이유가 뭐냐고. 주변을 신경 쓰며 살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에 뭐가 있냐고 말이다.

 

땅과 물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서는 여성들

 

스튜위악 지역의 물 보호 환경운동가이자 미그마 족 여성들로 꾸려진 ‘풀뿌리 대모들’(Grassroots Grandmothers)은 슈버나카강에 대량의 소금을 버리려고 하는 올턴 가스사에 맞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 중

 

올턴 가스사가 강 근방에서 천연가스를 보관할 수 있는 지하 소금동물을 발견했고, 그걸 이용하기 위해 강물로 동굴 내 소금퇴적물을 녹인 후 다시 그걸 강에 버릴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버리는 소금의 양이 매일 몇 천톤 정도이며, 물고기들이 생존할 수 있는 염도의 6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강을 죽이겠다는 끔찍한 계획임에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환경오염에 대한 것이다 보니 풀뿌리 대모들의 투쟁은 더 어렵다. ‘아직’ 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는 ‘증거’가 없는 걸로 치부되며, 확실히 손에 잡힐 것처럼 보이는 기업의 이익에 쉽게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풀뿌리 대모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공사의 움직임이 보이자 공사를 제지하고자 가장 먼저 달려왔다. 강 옆에 집을 지어 그야말로 몸으로, 공사를 저지하고 있다.

 

강을 바라보며 강을 지키기 위해 미그마 부족의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풀뿌리 대모들의 모습은 어떤 결기를 넘어서 신성함을 드러낸다. 실제로 그들은 “여성이 ‘물의 사자’임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며 “여성은 생명을 주는 존재(Life giver)”라고 강조한다. 그건 꼭 출산을 의미하진 않는다. 모든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또한 풀뿌리 대모들은 조용히 모여 기도를 하는 집단은 아니다. 정치인, 기업가를 마주하고 “함께 대화하자”며 소리 높여 요구하며, 앞장 서서 시위에 선다. 경찰과 대적하고 체포될 때도 있다. “캐나다는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풀뿌리 대모들의 활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캐나다에서 지난 몇 십년 간 실종되거나 살해된 원주민 여성과 퀴어가 4천명이 넘는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원주민 여성들의 삶과 안전은 늘 위협받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제노사이드’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지만, 피해자들이 ‘원주민’이고 ‘여성’, ‘퀴어’이기 때문에 좀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다. 거기다 기후위기, 환경오염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실종과 죽음 또한 점점 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풀뿌리 대모들의 안전도 위협받을지 모른다.

 

▲ 다큐멘터리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 중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독자들이 이미 눈치챘을 수 있겠지만, 풀뿌리 대모들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두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다 여성이다. 감독이 의도한 바 일수도 있고 혹은 루이즈가 “마을 남자들은 거의 다 죽었다”고 한 말이 액면 그대로 일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미래를 위한 투쟁이 지금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금보다도 중요한 물과 공기, 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포기 않고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와버린건지 모른다. 하지만 미래가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도 이르다. 그렇게 단정해 버리는 건 지금 이토록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이들의 피와 땀, 상처와 눈물을 지워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든 이 영화를 보고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루이즈의 얘기를 다시 떠올린다. 그 ‘누구’는 이제 내가 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려있음을 깨달아야 할 시간이다.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인권활동가인 엘렌 페이지

 

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건,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감독 그리고 인권활동가로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엘렌 페이지(Ellen Page)다. 1987년생으로 30대인 그는 10대 시절부터 배우로 활동했으며 2007년엔 영화 <주노>(Juno,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 2017년 HRC 컨퍼런스에서 참여한 엘렌 페이지의 커밍아웃 연설 영상 중에서.


다양한 상업영화를 통해 경력을 쌓아가던 엘렌 페이지는 2017년 11월, 미국 성소수자 인권단체 HRC(Human Rights Campaign) 컨퍼런스에 참가해 연설을 하던 중에 커밍아웃을 했다. 약 9분 가량의 연설에서 배우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은 그는 “더 이상 숨기는 것에 지쳤고, 말하지 않는 걸로 속이는 것도 지쳤다”며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그는 변화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며 “개인적 의무감과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엘렌 페이지가 말한 ‘개인적 의무감과 사회적 책임감’이 동성애자로서 퀴어 커뮤니티를 향한 것만이 아니라는 게 이번 영화를 통해 드러난다. 그는 소수자로서 차별과 편견을 겪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자신의 경험이 어떤 사회적 힘이 될 수 있는지 파악했다.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는 그런 엘렌 페이지를 볼 수 있어 그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엘렌 페이지 커밍아웃 연설(한글자막) https://youtube.com/watch?v=SCfYrxqLLs4

 

※ 참고 기사

[지구촌 IN] 말없이 죽어간 환경전사들…작년 역대 최다, KBS 2020년 8월 7일자  

Decades of missing Indigenous women a 'Canadian genocide' – leaked report, the guardian, 2019년 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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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플 2020/08/24 [13:40] 수정 | 삭제
  • 영화 잘 보았습니다..보면서 내내 캐나다라는 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네요 내용중 쓰레기 매립지가 들어서고 한 마을이 온통 암환자로 세상을 떠나고, 남은 주민들도 암투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암담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제발 쓰레기를 줄여달라는 호소가 어찌나 심장을 찌르는지요..물건을 소비할 때 신중을 가해달라는 여성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둘리 2020/08/20 [12:33] 수정 | 삭제
  • 쓰레기, 폐기물 3세계로 넘기는 국가(한국도 포함)들이나 소수민족 원주민들 땅에 파묻는 캐나다 살태나 기후위기 환경오염의 피해는 그 주범들에게 먼저 가닿지 않는다는 게 정말 마음 아픕니다. 쓰레기 제로 운동도 대대적으로 펴지 않는 정치도 이해가 안됩니다. 항상 소수의 민간이 애써서 조금의 변화를 촉구해야하는 것인지.. 국내 상황도 참 암담하네요.
  • peony 2020/08/17 [11:59] 수정 | 삭제
  • 캐나다는 선진국 중에서도 자연친화적으로 알려져 있는 국가지만 원주민 차별의 역사는 무지막지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재도 소수민족을 오염물 취급하는구나 싶어서 충격 받았어요. 연휴가 가기 전에 엘렌 페이지의 감독작을 봐야겠어요. 백인특권을 각성하면서 궁지에 몰린 비백인들과 연대하는 그녀... 백래쉬나 하는 사람들 말구, 욕심많은 사람들 말구, 세상에는 행동하는 양심들이 있고 그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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