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를 생각하면 암담하다. 어쩌면 이리도 다양한 성매매 시장이 존재할까 매번 경악한다. 비용이 아주 적게 드는 시장에서부터 매우 고가의 시장까지, 초자본주의의 성매매 시장은 남성들의 구매욕을 세분화하고 계급화하며 날로 증강되고 있다.
가부장제의 성역할을 동반한 자본주의 사회의 성매매는 “젠더화된 착취의 경제”를 강화하며, 13조 혹은 30조로 추산되는 한국 경제 산업의 한 축이 되었다. 악랄한 수탈이 일어나든 인권이 박탈되든 상관없이, 성매매 산업은 이미 세금을 내는 합법적 경제 주체로 편입되어 있다.
그간 성매매의 지배적 담론은 “주로 성판매자 여성, 알선자, 성구매자 남성 간 피해-가해의 정치 문제로만 다루어졌을 뿐, 자본주의 경제 문제의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연구자 김주희는 책 <레이디 크레딧>에서 “성산업이 여성에게 부과하는 부채를 중심으로, 업소 창업 자금, ‘화대’, 술값, 여성들의 수입, 꾸밈 비용, 생계비 등 돈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이 즉각적으로 화폐화 가능한 존재가 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저자의 촘촘한 연구와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기존의 양대 성매매 담론(성매매 반대론과 성매매를 노동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초월한 가공할 ‘빅브라더’를 만나게 된다.
금융 시스템이 여성의 ‘몸’을 수탈하는 방식
“성매매는 당사자 여성들에게 언제나 경제문제였다.”
저자는 각기 다른 상황으로 성산업에 유입된 다수의 성매매 여성을 인터뷰한다. 환경은 달랐지만 이들이 성매매에 유입된 동기는 모두 돈 때문이었다. 곤궁을 딛고 자립하기 위해, 가난한 가족을 조력하기 위해, 비싼 학자금을 벌기 위해 또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생계비가 필요해, 소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산을 증식하기 위해 모두 돈이 필요했고, 다른 노동 조건과 비교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떤 여성들은 진입 당시 목적을 이루고 성매매와 절연하기도 하지만 드문 경우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인터뷰이의 사례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성매매 유입 당시 천만 원이었던 그의 선불금이 반년 만에 5천만 원으로 불어나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급히 필요해 당긴 선불금 천만 원도 수수료와 선이자를 떼고 나면, 그녀의 수중에는 고작 6~7백 정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이 돈이 반년 만에 5천만 원이라는 거액이 된 이유는, 몇 백 프로에 달하는 막대한 고리와 이자가 커지면 원금으로 편입시켜(일명 ‘꺽기’) 다시 고리를 매기는 어마어마한 수탈 금융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성매매는 구매자 알선자 외 금융회사, 신용정보회사, 채권추심회사의 경제 구조 안에서 굴러가고 있으며 “거대한 인구 집단이 성매매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관련을 맺”고 있다.
당신이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면, 그리고 그 대출이 녹녹지 않다는 경험해 본이라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번듯한 신용이 매겨지는 직업도 아닌데, 성매매 여성에게 그렇게 쉽게 대출이 된다고? 결론은 ‘된다’다. 그것도 자주, 많이 가능하다. 왜냐면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빚을 변제하는 것은 물론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제3금융만이 아니라 제2금융권에서도 ‘아가씨 대출’이라는 여성 전용 대출 상품을 버젓이 판매하고 있으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만 대출한다. 금융권에서 ‘아가씨 대출’에 푼 대출액이 292억에 달하며, 큰 물의를 일으킨 ‘마이킹’(대출금 형태로 성매매 여성에게 임금을 선지급한 후 이자를 부풀려 ‘빚’을 통해 인신을 담보로 속박하는 것) 대출 사건도 이와 맥을 같이 했다.
더 놀라운 일은, 자본금이 빈약한 유흥업소 사업주들이 떼돈을 벌어 전도유망한 경영인이 되는 경로다. 성매매 여성들의 선불금 채권(차용증)을 묶어 담보로 설정한 후, 대출된 막대한 돈은 대형 유흥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창업 자금이 된다. 사업주는 성매매 여성의 채권만으로 ‘신용’(미래 수익)을 보증받고 대출금을 받아내 업소를 지어올리고 사업체를 꾸리고 막대한 수익을 얻는다. 경악스런 이 과정이 가능한 것은 여성의 채권(몸)이 즉각 담보화 화폐화되는 금융 시스템에 있다.
성매매 여성은 오직 ‘몸’만으로 유흥 업주는 물론이고 관련된 산업 집단에 상상할 수 없는 돈을 안겨준다. <레이디 크레딧>의 한 인터뷰이가 그간 갚은 이자만 수억이라고 한 말은, 그들의 대출에 부과되는 600에서 700을 상회하는 고리대금을 추산해볼 때, 전혀 과장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부채’는 이들이 한층 더 매상을 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에, 업주는 오히려 빚을 부추김으로써 끊임없이 일하게 하고 또 빚을 지게 하는 악순환을 반복시킨다. 성매매 여성의 몸을 수탈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성매매 산업은 질적으로 변화한 금융자본주의 메커니즘과 한 배에 올라탔다.
성매매 여성들은 파산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저자는 연구조사에 응한 성매매 여성의 인터뷰 분석을 통해, 이들이 부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심리적 경제적 상황을 조명한다. 성매매 여성들이 시장에 유입될 당시 이들은 모두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원이 없는 여성들에게 대출은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곤궁한 처지의 여성들에게 선뜻 급전(선불금)을 제공하는 성매매 업소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마운 존재가 된다. 전주(업주, 일수업자, ‘아가씨 대출’ 금융기관)가 “믿고 빌려준 돈”은 꼭 갚아야 하는 신뢰의 돈으로 둔갑한다.
‘신용’된 것이 상호 신뢰가 아닌 단지 남성의 지갑을 열게 하는 몸임에도, 사회에서 처음 받은 ‘신용’은 이들에게 “남의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는 도덕률을 강력하게 내면화시키며 자발적으로 책임감 있는 채무자가 되게 한다. 여성들은 부채의 규모가 늘어날수록 이를 수탈이나 예속의 징표가 아닌 “자신의 ‘신용’으로 이해”하게 된다. 몸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여성들은 자신감을 경험하게 되고, 대출된 돈으로 “남부럽지 않게, 당당하게, 기쁘게” 소비하는 물적 욕구의 분출을 ‘자유’라 여기며, 욕망을 충족할 수단을 획득한 스스로를 기꺼이 “채무노예”의 상태에 두게 되는 것이다. 이제 성매매 여성들은 더이상 업소를 탈출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파산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일단 성매매 시장에 진입하면, 이들은 곧바로 성매매를 둘러싼 각종 산업의 견인차가 된다. 예전의 ‘고수익 숙식 제공’이라는 업소 유인 광고는 이미 “성형 지원 풀옵션 원룸 제공”으로 바뀌었다. 방조차 외상 구입으로 ‘방일수’를 찍게 하며 임대업자, 일수업자, 부동산 업자에게 상당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매일 미용실에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의상 대여업자에게서 값비싼 ‘홀복’을 빌려 입으며 관련 업자들에게 수익을 준다. 이들이 들이는 뷰티 비용은 남성 구매자들의 ‘초이스’를 높이기 위해서인데, 최대한 상품화된 몸이 되어야만 ‘뺀찌’의 부담을 덜고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성 구매자가 선호하는 마른 몸을 만들기 위한 다이어트약이나 보조 식품을 소비하고 마침내 성형에 이른다.
성형산업은 성매매 산업의 매우 중요한 축이다. 성형은 성매매를 유지시키는 원인이자 결과로 한 끈에 단단히 묶여 있다. 성형을 받고 싶어 성매매를 시작해 성형 비용을 갚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더 높은 수입을 얻기 위해 다시 성형을 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를 추동하는 자금인 ‘성형대출’은 상품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상품성이 높다. 성형대출은 성매매 여성에게 언제나 열려 있으며, 이 대출의 30%가 브로커 수수료로 10%가 선이자로 지급되는 관례가 증명하듯이 성매매 여성은 성형산업의 화수분이다.
언제든 대출되는 돈으로 “재여성화”(아가씨 되기) 작업에 쏟아 부어지는 돈은 언뜻,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 전략”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양한 산업 구성원의 수익원”을 떠받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 여성에게 뿌려지는 대출은 마치 경제적으로 취약한 누구에게나 대출을 해주는 ‘신용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착시를 일으키며, 고리대금의 부채 경제로 전환한 수탈의 금융화를 교묘히 은폐하게 한다.
성매매 여성의 ‘신용’(미래수익)이 발생시키는 부채 관계는 고리의 이자 청구와 합법적 채권추심이라는 외피를 입고, 오늘도 ‘매춘의 사회화와 경제화’를 견인하며, 불평등한 성별 관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더이상 악덕 포주의 얼굴을 하지 않는 성매매 수탈 경제는 성매매 여성을 골방에 가두는 대신 투명 족쇄를 채워 풀어놓은 채, 하렘의 노예가 아닌 적극적 재무 주체로 정체화시키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어마어마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종종 정기적으로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가며 일하면서도, 대출금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할 수단을 갖게”되자 자신의 처지가 자유롭다는 착각에 빠진다.
‘돈’의 흐름을 타고 여성에게 파고든 성매매 시장은 이제 더이상 부도덕하거나 가난하거나 불행한 여성들이 진입한다고 여겨진 과거의 특정한 영역이 아니라, 여성 일반이 자본주의의 부채경제의 구성원으로 유입되어 성매매 생태계를 유지 확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매매를 바라보는 기존의 두 패러다임으로는 금융자본주의가 조성한 성매매 생태계의 해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에 부족하다고 저자가 여기는 이유다. 반성매매 운동이 적극적으로 펼쳐질 때 오히려 성매매 산업이 몸집을 불렸던 아이러니나, 성매매를 노동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는 탈규제의 움직임도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착취해 무한히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입구를 틀어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면, ‘자본주의의 악마의 맷돌’에 가장 참혹하게 갈려온 게 바로 성매매 여성의 몸이라는 생각에 암울해진다. 신자유주의가 인간을 원자화하며 노동을 약탈하고 있다고 경제 구조를 비판하는 이들은 많아도,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결코 예외일 수 없는 성매매 시장은 여전히 ‘해당 여성들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성매매를 이 시대의 ‘여성 문제’로 적극적으로 구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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