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이 화제였다. 배우자 없이 아이를 출산한 사유리 씨는 한국에선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 받아 임신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한국에선 왜 안되냐’는 의문이 제기되자 보건복지부는 “한국에서도 불법은 아니다”라며, 다만 기혼 부부와 달리 비혼 여성이 인공 임신을 하려고 할 때 지원되는 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계 윤리지침에서 체외수정과 정자공여 등 보조생식술은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 대상으로 시행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유리 씨의 말처럼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이 드러났다.
저출생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며 출산을 장려하고 매번 예산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비혼 여성들은 거기서 제외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11월 25일 저녁, 불꽃페미액션이 주최한 <낙태를 말하는 술담회> 참석자들은 국가가 비혼 여성 출산을 반기지 않는 건, ‘정상가족’을 견고하게 유지함으로써 국가가 가부장 역할을 지속하기 위함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또한 그 가부장(국가)이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것은 결국 ‘낙태죄’를 유지하려는 의도와도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낙태죄’와 비혼 여성 출산 차별의 공통 배경
“자신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비혼 출산에 국가는 동공지진 중”이라고 평한 홍혜은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는 “국가/정부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낙태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고, 또한 여성이 사적인 영역에서 남성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비혼 출산을 이렇게 푸대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아에게서 장애가 발견되었을 때와 같이 어떤 임신중지는 가능하게 만든 것처럼, 어떤 출산은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것의 의미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거다.
홍혜은 대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내세우고 있는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에 대해서도 “이 말에 모두가 해당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누가’라는 말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비혼 출산처럼 ‘불법은 아니지만 지원 대상은 아닌’ 경우는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에 사는 사람 안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국가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저출산 대책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 없이, 가부장 질서로 돌아가는 가족 없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하는 건 현재 정부의 저출산 정책뿐만 아니라 복지 정책이나 노동 정책도 완전히 뒤흔드는 일”이 된다.
“지금 남성생계부양자가 (배우자의 가사노동과 돌봄 지원을 받으며) 주 40시간에 더해 야근까지 하는 게 기본인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그걸 혼자서, 심지어 아이를 돌보면서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죠. 그러니까 이걸 근본적으로 바꿔야죠. 그런데 국가는 남성이 빠진 모델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출생 대책은 ‘노동시간 급격히 줄여라’
이미 현실에선 국가가 기준으로 하는 ‘정상성’을 벗어난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5년 간의 자료를 살펴보면 전체 가구의 7~10% 정도가 한부모가정이다. “절대 낮은 비율이 아니”라고 얘기한 홍혜은 대표는 “이 중 거의 절반인 42%가 기초생활수급가구이며, 또 그 중 10명에 7명은 여성 한부모가정”이라고 짚었다.
결국 출산과 양육의 문제는 노동 문제, 그리고 그 안에서의 젠더불평등과 연결된다. 노동 시장에서 여성이 불안정한 자리(비정규직)에 내몰리고 저임금을 받는 상황은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아이와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노동 환경과 복지 제도 등의 큰 그림을 바꿔야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에도, 임신중지를 처벌한다는 ‘채찍’과 출산휴가와 임신휴가 같은 ‘당근’ 식의 땜방이 여전하다.
홍혜은 대표는 “노동시간을 급격히 줄이는 방안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며, “그럼 경제가 망한다는 소리 말고, 과도한 노동시간으로 인한 돌봄노동의 공백을 지금 누가 채우고 있는지 들여다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낙태죄’는 국가에 의한 여성폭력에 해당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하는 ‘낙태죄’를 유지한 정부의 법률개정안은 각 전문가 그룹과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관련 기사: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은 “평등권 위반” http://ildaro.com/8878)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는 “낙태죄가 국가가 근절하고자 외치는 여성폭력의 일부”라고 말했다.
‘낙태죄’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페미사이드(Femicide)의 일부라는 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낙태죄’라는 처벌과 낙인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위험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었다.
나영 대표는 “‘낙태죄’로 인해 여성들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당하는 건, 엄연히 국가와 사회에 의한 여성폭력”이라며 “‘낙태죄’로 인해 여성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알아서 병원을 찾아가야 하고, 그 경험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낙인이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거기다 이미 국가는 ‘인구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훼손한 경력이 있다.
“제가 실제로 들은 사례에 의하면, 1986년도까지 길을 가던 여성을 가족계획요원이 봉고차에 태워서 배꼽수술(피임 수술을 복강경을 통해서 하는 것)을 시키는 일들이 있었다는 거에요. 어떤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그냥 ‘아줌마 애가 몇이에요?’ 하고 ‘둘이에요’ 하면 데리고 갔던 거에요. 이건 굉장히 심각한 국가에 의한 여성폭력이거든요. 이런 것들에 대해 여전히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요.”
또한 ‘낙태죄’는 페미사이드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가정폭력/데이트폭력과도 연결된다. 임신은 혼자 하는 게 아닌데도 임신중지를 한 여성만 처벌을 받게 되는 이 법은 종종 남성 파트너가 폭력을 행사하고 그걸 은폐하는 수단이 된다.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이 유지되는 한,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어요. 임신중지를 고소, 고발하는 사례 대부분은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 남성파트너, 전남편과 그의 가족이에요. 사실 임신중지를 알고 있는 당사자와 의사 외에 고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실제로 임신초기부터 폭력을 휘두르고 칼을 두고 여성을 위협했던 남성을 피해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이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폭력이 너무 심하니까 여성이 혼자서 임신중지를 했는데, 남편이 자기 동의를 얻지 않고 임신중지를 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고발한 거에요. 그런데 남성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고, 여성만 벌금형을 받았어요.”
준비된 출산을 할 수 없는 사회
‘페미당당’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20-30대 여성의 우울증에 대해 연구 중인 하미나 작가는 “‘낙태죄’를 폐지해 달라는 건 여성이 행복할 때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하며, 아직도 이 명확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한 임신중지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준비되지 않은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그런 환경이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 이어지고,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상황”으로 연결되는 지점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최근 청년 여성들의 높아진 자살률을 사회적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2030 여성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내가 원할 때 임신·출산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 ‘낙태죄’로 인한 낙인과 차별도 빼놓을 수 없을 거다.
<낙태를 말하는 술담회 - 세상에 낙태하려고 임신하는 사람은 없다> 참여자들은 불안한데다 저임금인 노동시장, 여전히 젠더불평등한 환경, 여성폭력 등의 문제와 함께 임신중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밝혔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모든 사안과 연결되어 있기에 임신중지 비범죄화, ‘낙태죄’ 완전 폐지가 중요하다는 것도 재차 강조했다.
홍혜은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는 “국가가 아무리 ‘일하고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외쳐도 이제 젊은 여성들은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부장과 ‘정상가족’만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게 출산과 양육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변화의 시작은 ‘낙태죄’ 폐지부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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