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같은 기후위기 시대, 코로나 시대에 안녕하냐는 인사가 좀 민망하네요. 손어진, 하리타 우리 두 필자는 독일에서 여러분께 ‘기후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독일과 유럽 사회가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특히 정책 영역에서 무슨 갈등과 협동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드리려고 해요. 기후위기라는 당혹스러운 숙제 앞에서 사회적 해법을 모색하는 한편, 개개인이 작게나마 자기 역할을 찾고, 올바른 기후정치에 투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좀 다르냐고요? 독일 역시 산업화 국가로써 최근 온실가스 배출량 6위를 기록했지만, 1인당 배출량으로 따지면 한국보다 훨씬 적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적극 대처하자는 사회적 공감대도 높은 편이죠. 단계적 원전 폐쇄나 노후 경유차 운행 규제 등, 정부가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그린뉴딜과 유럽연합의 그린딜
2020년 한해 국내 기후변화 정책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7월 문재인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과 그 법적 근거로 발의된 ‘그린뉴딜 기본법’입니다. 법안은 ‘탈탄소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목표와 추진전략 수립’, ‘기후위기위원회 컨트롤타워 설치’, ‘기후위기대응기금 설치’ 같은 내용을 포함하며, 일반 시민에게도 와 닿는 ‘녹색금융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립’, ‘기후위기 사회안전망 확충’ 같은 안도 담고 있습니다.
만약 그린뉴딜 기본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나라가 되는데요. 말처럼 정말 새로운 그린인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결국 실패하고 정권교체와 함께 잊혀져 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2010년 제정)처럼 될 것인지 속단할 수 없습니다.
탄소중립사회를 지향하는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정부의 그린뉴딜이 낡은 성장 공식을 답습하고 있고,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이 아닌 경기부양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큽니다.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이 우선 순위로 나와 있고, 대기업이 주도하는 전기차 수출 확대나 신공항 건설,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세부 전략과 맞물려있거든요. 석탄 발전을 늘리면서 탈탄소로 가겠다는 모순에서 드러나듯, 그린뉴딜의 목표가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명확히 가리키지 않는다는 거죠.
저희가 살고 있는 이곳에도 최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정책이 발표됐습니다. 바로 유럽연합이 2019년 12월에 발표한 유럽 그린딜 정책인데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제로로 감축하는 탄소중립”이 주요 내용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 사회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그린뉴딜과 같죠.
예를 들어, 독일 정부는 2019년 9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 55% 감축”을 목표로 ‘기후보호 프로그램 2030’ 정책을 냈는데요. 운송과 난방 부문 탄소 가격제 도입을 비롯해 건물, 운송, 농업, 산업, 에너지, 폐기물 등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조치가 주 내용입니다. 이를 실현하자면 모든 부문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이 조치에는 그런 변화를 담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곳 저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메르켈 정부가 해당 정책에 대해 추가 실시한 기후보호영향평가 조사에서도, ‘기후보호 프로그램 2030’ 조치로는 이산화탄소 5,500만 톤~7,000만 톤 감축이 부족해 2030년 기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어요. 사실 메르켈 정권은 ‘디젤 자동차 규제’, ‘석탄 화력 발전소 단계적 폐지’, ‘유럽 배출권 거래 정책’을 소극적으로 대해왔습니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될까 우려한 것이죠. 녹색당과 좌파당을 비롯한 야당과 학계, 시민사회는 바로 이 점을 비판합니다.
기후보호 프로그램 안에 “2038년까지 독일 내 석탄화력발전을 끝내겠다”는 탈석탄 계획을 볼까요. 독일 정부는 석탄 및 갈탄 화력발전 설비를 2022년까지 30GW 수준으로 감축하고, 2030년까지 17.8GW, 2038년까지 완전 폐지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탈석탄 영향에 노출되는 피해 지역들의 경제와 종사 노동자 및 기업에 보상액으로 총 400억 유로(약 53조 원)를 편성했는데요. 환경오염의 주범인 석탄 기업에 대한 보상금이 과도하다, 그리고 목표 달성 시기인 2038년이 너무 늦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Fridays for future)를 비롯한 기후 운동의 주된 구호는 “2030년까지 석탄 에너지 폐기,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실현, 2035년까지 탄소중립”이지요.
강력한 기후 리더십을 가진 정치가 필요
독일에서 기후보호 프로그램 2030의 실효성을 강력하게 반박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은 녹색당입니다. 녹색당은 정부의 기후보호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어요.
현안에는 이산화탄소 감축 경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해 필수인 ‘중간 목표’가 없으며, 최종 목표만 제시할 뿐, 달성에 실패한 공공기관 및 산업체에 대한 제재가 없어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이산화탄소 고정 가격(2021년부터 톤당 10유로, 2025년 35유로)은 턱없이 낮고 시행 시기도 너무 늦어서 친기업 정책이라고 비판하고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65%로 확대한다는 방침과 모순되는 점들도 짚어냈습니다. 풍력에너지에 대한 제한, 수송 분야에서 자동차 중심 도로 확장, 탄소배출량이 적지 않은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막대한 지원금, 2026년으로 미뤄진 석유 난방 금지 조치가 포함된 채로는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창당 후 3년 뒤인 1983년에 연방 의회에 의석을 확보했고, 당시 확산하던 핵발전 산업에 전면 반대했는데, 관련 의제를 2011년 독일 탈핵 선언 때까지 유지할 만큼 일관된 이슈 파이팅을 들 수 있습니다. 녹색당만의 정치 브랜드가 유권자에게 인식된 것이죠.
*1998년 독일 녹색당은 사민당과 최초로 적록 연립정부를 구성해 1999년에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중단과 기존 핵발전소의 폐쇄를 결정했고, 2000년에 모든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폐쇄하는 “상업적 전력생산용 핵에너지 이용의 단계적 폐지법”(일명 ‘탈핵법’)을 제정했어요. 2009년에 기민당과 자민당 연립정부가 핵발전기 수명을 연장하는 쪽으로 돌아섰을 때 독일 전역에서 반핵 시위가 일어난 것이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메르켈 정부에 강력하게 탈핵 정책을 요구했던 시민들의 여론은 녹색당이 아니었다면 형성되지 않았을 겁니다.
소수정당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가져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연립 정부가 가능한 독일 정치 시스템 덕분에, 녹색당은 양당 구도(기독교민주주의연합, 사회민주당) 속에서도 정치적 영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 등 사회기득권과 유착 관계인 기민당이나 기존 산업구조의 노동자 지지 기반을 가진 사민당만 집권했다면 기후 정치에서 근본적인 전환은 가능하지 않았죠. 녹색당은 환경·기후 분야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의회 정치까지 반영하는 정당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시민사회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녹색당이 발의 및 입안 중인 ‘기후보호’ 정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후보호법 제정을 통해 모든 분야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관련 명확한 계획 수립 ▲유럽 배출권 거래 개혁 및 톤당 최소 40유로 이산화탄소 가격 도입 ▲운송 및 난방 부문에 대한 이산화탄소 가격 도입 ▲100% 친환경 에너지로 확대 위해 신재생에너지법(EEG) 재생에너지 점유율 한도 폐지 ▲철도 및 자전거 교통 우선순위 인프라 확장 ▲화장품 미세 플라스틱 사용 금지 및 약물 잔류물로부터 수역 보호 ▲산업체 배기가스 배출에 대한 엄격한 제한 ▲청정한 실내 공기 유지를 위한 적정 규정.
*2000년 사민당과 녹색당 정부는 최초로 신재생에너지법(EEG)을 제정하여 재생에너지를 의무적으로 구입하도록 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독일의 전체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이 두 배 증가했으며, 기후 보호를 위한 에너지 정책의 좋은 사례가 되었지요. 2014년 기민-기사련과 사민당 정부는 원전 폐쇄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2025년 50~45%, 2035년 55~60%로 확대하고 보조금을 축소했으며, 2016년에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경매입찰제도로 대체하고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의 상한선을 결정했습니다.
기후위기가 점점 현실이 되면서 독일 녹색당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선거 결과를 보면, 2018년 10월 BMW 본사와 공장들이 많은 바이에른 주 선거에서 17.6%로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주 수도인 뮌헨에선 기독사회주의연합이나 사회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우세한데, 이를 제치고 1위를 한 거죠. 2019년 5월 유럽선거에서도, 유럽선거 이래 최고 득표율인 20.5%를 얻었는데 그 중 30대 이하 지지율이 33%에 달했습니다. 젊은 층의 3분의 1가량이 녹색당에 표를 주었다는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반증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탈탄소 사회에 대한 진정성과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국회에서 힘까지 갖춘 정당은 없지요. 다만 녹색당과 정의당, 노동당을 포함한 약 34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연대체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그린뉴딜의 대안으로 얘기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큰 대기업이나 탄소배출 산업에 더 큰 부담을 지우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기후위기에서 받는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정의로운 그린뉴딜을 위한 7대 핵심과제>는 재난구호체제 및 공공의료체제 강화,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기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전환,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신규 석탄발전소와 공항 건설 중단 및 고용 유지와 기후보호 조건을 전제로 할 것, 기간·연도별 탄소예산 할당과 기후영향평가, 탄소 인지 예산제도 실시 등이 포함됩니다.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도 더 과감하게 ‘2030년에 2010년 대비 50% 이상 감축, 2050년 전에 탄소중립’으로 설정해야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협약이 권고한 목표치에 근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의로운 그린뉴딜’은 어떻게, 언제쯤 국회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요?
(다음 편지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줄이기 위한 유럽연합 및 독일의 정책과 다양한 사회 혁신 사례를 주제로 다룹니다.)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 분석 일을 하고 있다.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독일 녹색당 싱크탱크인 하인리히 뵐 재단 자료도 번역한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독일에 왔으며, 베를린의 녹색정치,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하리타. ‘에코워리어’들이 많이 사는 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 거버넌스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탈서울 녹색전환을 위해 독일에 왔다. 다양한 종(種)과 성(性)이 공존하는 대안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소신 있게 사는 것이 일관된 관심사. 관련 저서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 - 모두를 위한 세계환경교육 현장을 가다>(공저,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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