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과 상호돌봄이 있는 ‘다른 공동체’를 만들 거예요Everyday Feminism 설립자, 한국계 미국인 산드라 김 (하)[하리타의 월경越境 만남] 독일에 거주하며 기록 활동을 하는 하리타님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출신 국가와 인종, 종교와 계층 등 사회의 경계를 넘고 해체하는 여성들과 만나 묻고 답한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영어로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제목의 기사들을 봤을지 모른다.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가 첫 데이트 때 물어야 할 10가지’(10 Things Every Intersectional Feminist Should Ask On a First Date), ‘아시아 여성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5가지 아시안 여성 페티쉬’(5 Ways ‘Asian Woman Fetishes’ Put Asian Women in Serious Danger), ‘사회운동 언어가 연애에서 폭력적일 수 있는 7가지 방법’(7 Ways Social Justice Language Can Become Abusive in Intimate Relationships) 등.
온라인 홍보의 공식을 따르면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 전략을 알려주겠다고 손짓하는 이 기사들은 Everyday Feminism이라는 교육 플랫폼에서 발행한 온라인 매거진(everydayfeminism.com)에 실린 것이다. 한국계 여성 ‘산드라 김’(김수정)이 2012년 설립해 지금도 150개국 이상에서 매달 수백만 명이 찾는 디지털 미디어다.
1983년 미국 워싱턴 D.C. 교외에서 태어난 한국계 이주민 2세 산드라 김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 철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돌봄과 치유 문화를 만들고 실천해온 경계인이다. 트럼프 정권 시기에 <내재화된 백인성을 치유하기>라는 독특한 강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인종주의에 반대하고,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과 분노, 좌절, 죄책감, 내적 갈등을 겪는 백인 시민들을 만나는 자리였다. 1편에 이어 그와 대화한 내용을 계속 풀어본다.
“맞아요. 사회문화적 구조가 그렇게 굳어졌어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기본값이듯, 유색인종과 부와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은 기득권은 백인이 ‘정상’이고 유색인종은 그와 다른(different) 존재라고 오랫동안 선전해왔어요. 무수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 머릿속에 주입돼 온 메시지는 유색인종 시민들과 이주민들이 게으르고, 속임수를 쓰고, 도둑질이나 마약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못 살아도) 다 본인 잘못이라는 거예요.
우파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사회복지를 축소하려고 하는데, 그럴 때 이런 프로파간다가 효력을 발휘해요. 기초생활수급자의 대부분이 사실 백인 저소득층이에요. 백인 인구가 가장 많으니까 당연한 얘기죠. 그런데 사람들 머릿속 이미지는 ‘게으른 흑인’이죠. ‘내가 낸 세금이 그들 때문에 낭비되고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박혀 있는 거예요. 정치인들도 그런 식으로 말하고요.
결국 궁극적인 해법은 구조적인 억압에 도전해서 부와 자원을 재분배하는 거죠. 인종주의나 백인우월주의를 편견이나 차별 문제로만 보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러면 개개인이 내리는 결론은 ‘유색인종도 존중해야겠다’ 정도예요. 성차별도 마찬가지에요. ‘여성과 퀴어를 차별해선 안 된다.’ 물론 그래야죠. 그런데 그게 무엇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가를 봐야죠.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사재기 하는 기득권 때문에 사람들은 정작 자기 자신, 자기 공동체를 위한 결정을 못 내려요. 법도 이들을 위해 디자인되어 있지 않고요. 기득권층이 더 착취하고 지배하게끔 만들어져 있죠. 코로나 이후 미국 억만장자들의 자산이 더 늘어났다는 발표가 있었어요. 그런 기득권의 거버넌스(협치) 구조를 봐야 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기득권의 식민주의 논리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도요. 제가 비판하는 ‘백인성’(Whiteness)은 사실 이런 시스템 전체예요.”
Q. 재난 시기에 빈익빈부익부가 더 심화된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에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죠.
“소비에트 체제에서는 줄 서서 빵을 배급 받으면서 고마워하는 인민들이 많았다고 해요. 왜 그런 방식으로 식량을 배급 받는지 질문하는 능력을 상실하고서. 그런데 지본주의 사회에서 지금 우리도 그와 비슷하지 않나요? 생활을 위해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지 묻지 않은 채 초과노동을 하고 번아웃과 우울, 자살충동을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경제불황을 걱정하는데, 경제가 잘 굴러가든 아니든, 이 사회 시스템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돌봐주지 않아요. 그런 환상을 버리고 대안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됩니다. 젊은 세대는 이미 기성세대보다 훨씬 이쪽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우선, 분노는 불의에 맞설 때 적절한 반응이죠. 남의 비난이 두려워서 잘못된 일을 지적하고 나서지 못하는 것은 사실 측은지심(compassion)을 억지로 끊어버리는 거예요. 분노하지 않으려고 할 때 실은 몸에 더 깊게 박혀요. 분노하는 연민, 신성한 분노는 존재해요. 화를 안내는 게 아니라 그 화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예요.
저는 불교신자인데요, 불교의 마음챙김과 심리학의 트라우마 치유 사이에 공통점이 많아요. 보통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조언합니다. 몸 속에 어떤 감정이 차오르는지 가만히 보라고. 생각은 많이 하지 말아야 돼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어야만 했다는 등 ‘생각’이 많아지면 그게 머릿속에서 빙빙 돌며 점점 커져서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화를 억누르고 없애려고 하거나 다른 대상으로 주의를 돌리는 것도 사실 다 내면의 고통을 외면하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분노를 마주하고서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내 몸 어디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 같나?’ 배 속에 불이 난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분노의 감각을 인지하면 그걸 바꾸거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둡니다. 그냥 숨을 쉬면서 내 의식이 그 감각과 함께하도록 하세요. 그 감각을 알아봐주는 게 바로 돌보는 겁니다. ‘마음챙김’ 수련이고요. 사람들과 온라인 치유 모임을 할 때 저는 사람들이 이런 연습을 할 수 있게 이끌어요. ‘난 널 보고 있어. 너도 중요해. 나는 너한테 신경을 쓰고 있어.’ 이렇게 스스로에게 확언(affirmation)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그러다 보면 분노의 에너지가 사라집니다.”
Q. 알아보고 관심을 주는 것이 바로 돌보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아요. 인간관계나 사회 공동체에서도 정당한 이유로 화가 난 사람을 이렇게 인정해주는 게 필요할 것 같고요. 사실 저를 비롯한 많은 활동가나 페미니스트들이 분노했을 때 우선시하는 건 사회적 행동이에요. 나를 화나게 한 상황을 낱낱이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지와 적을 신속히 가려내서 방어하고 반격하며 ‘나’와 ‘우리’를 보호하자는, 일종의 ‘전투 모드’가 작동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전투를 잘 치룬 것 같아도 분노로 인한 고통은 여전하다는 거예요.
재독 한인 여성그룹에서 ‘니하오 캣콜링’(길거리에서 동아시아인 여성에게 ‘니하오’라고 말 걸며 추파를 보내는 행위)에 다같이 분노해서, 우리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웹툰을 만들자고 한 적 있어요. 그때 관련 피해를 가장 많이 겪은 분이 처음에는 적극적이었는데, 얼마 안 가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픈 기억이 자꾸 그 분을 압도했던 거죠. 산드라의 말을 들어보니 분노의 감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잠재우는 작업이 꼭 필요하네요. 그러지 않으면 분노가 도구화되고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고 소외된 채로 남는 거군요.
“하지만 분노를 가만히 응시할 때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있어야 돼요. 예를 들어 정말 피곤하고 배고프고 외로울 때 그 작업을 하는 건 위험해요. 불교에 전해지는 얘기 중에, 소금에 대한 비유가 있어요. 스승이 제자에게 물 한 컵에 소금 한 숟가락을 타서 먹으라고 했어요. 너무 짜서 힘들었죠. 그 다음에는 같은 양의 소금을 호숫물에 넣고 그 물을 마시게 했어요. 그러면 괜찮죠. 트라우마 치유도 이렇게 접근해야 됩니다. 즐거움과 기쁨, 연대와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 같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요소들을 먼저 채워서 우리 내면의 역량이 호수처럼 되었을 때 소금처럼 짠 트라우마를 다뤄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뇌과학도 공부했는데, 그 언어로 설명해도 핵심은 비슷해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압도되었을 때 뇌는 ‘생존 모드’로 작동하기 때문에 보통 때처럼 생각하고 느끼지 못해요. 이른바 ‘파충류 뇌’(the Reptilian Brain) 영역이 주로 활성화되어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얼어버리는(fight-flight-freeze) 식으로 단순하게 반응하죠. 보통 트라우마가 되는 상황은 이런 식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나중에 기억이 떠올라도 그 때처럼 몸이 말을 안 들어요. 그래서 트라우마 치료를 할 때 ‘마음챙김’과 같은 테크닉을 사용해서 관찰자로서 자기 기억에 안전하게 접근하는 거예요.”
Q. 몇 년 전에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이라는 심리치료 기법으로 어린 시절의 성폭력 트라우마를 치료한 적이 있어요. 그 때 말씀하신 과정을 거쳤어요. 먼저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많이 떠올려서 적어두었고, 트라우마 기억을 떠올릴 때는 치료사와 계속 대화하면서 과거와 현재 제 마음을 살피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관련 기사: 내 안의 패트로누스와 디멘터 http:// ildaro.com/7420)
“<내면의 백인성을 치유하기> 세미나를 진행하는 어느 날, 경찰이 비무장 상태인 흑인 용의자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어요. 뉴스를 보고 온 참가자들은 다들 굉장히 화나고 격앙되고 혼란스러운 상태였어요. 다들 그 얘기를 하고 싶어했고, 수업 내용도 따로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저는 맨 먼저 사람들에게 최근에 웃겼던 일을 떠올리면서 한바탕 웃자고 했어요. 행복감을 몸에 채워서 내면의 역량이 커지게 한 거죠. 그 다음에 그 사건에 대해 얘기했더니 다들 여전히 분노해도 한결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었어요.”
“저 스스로를 치유하는 여정의 초창기에 만났던 분이 불교신자였어요. 불교 수련을 통해서 감정을 다루는(emotional processing) 책들을 많이 갖고 계셨죠. 20대에 그렇게 시작해서 절이나 불교 피정을 다녔어요. 그게 페미니즘과도 결합이 되었고요. 그 밖에 다양한 전통, 사람, 책들을 많이 접했어요. 체계적으로 배웠다기보다는 제가 이미 갖고 있던 생각이나 실천이 지식을 통해 확인되고 이름표를 얻을 때가 많았어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저는 항상 여러 다양한 문화 속에서 길을 찾아나가야(navigate) 했던 것 같아요. 이 문화에서 바람직한 게 다른 곳에선 틀리기도 하고요. 엄마는 저를 혼낼 때 ‘눈 깔아’라고 하면서 안 그러면 건방진 거라고 했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에겐 눈을 똑바로 맞추는 게 기본 예의였죠. 저는 다양한 문화를 의식하는 동시에 제 내면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고유한 ‘산드라의 문화’를 만들어온 것 같아요. 어느 하나에만 기댈 수 없었어요. 한국, 미국 어느 문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저만의 기준도 있거든요.
‘권력’이라는 개념에 대한 제 이해를 예로 들면, 미국(주류)에선 권력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아요. 주저하는 분위기죠.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진보적인 유교 철학을 가지고 구성원들과 민주적으로 소통하면서 영향력을 쌓고 권력을 가지는 방법을 알아요. 리더 역할에도 익숙해요. 재미 한인 가족들 사이에서 수많은 사촌들 중 가장 맏이로서 리더십을 훈련을 하면서 살았죠.”
Q. 한국의 나이주의는 집단의 연장자에게 자동으로 권력을 부여하는데, 그게 리더십 역량을 쌓는 기회가 됐다는 해석이 재미있네요. ‘눈치’는 어떤가요? 산드라도 이 단어를 알죠? 한국에선 다들 눈치 기술을 발휘해서 권력 관계를 파악해요. 역시 이로 인한 폐단이 많지만 어떤 민감함, 감수성인 것만은 분명해요. 이 기술이 많이 부족하면 ‘너는 눈치가 왜 이렇게 없냐’고 욕 먹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덕목이기도 하죠. 산드라는 어쩐지 이것도 강점으로 활용하고 살아왔을 것 같은데요?
“눈치 덕분에 제가 어느 조직을 가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어요! 내가 가진 권력이 얼마큼, 어디쯤에 있는지 지도를 그릴 수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계산적으로 누굴 속이려 든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각각 뭘 하고 어떤 관계망을 가졌는지를 파악하면서 누구나 친절하게 대하고 지지하려고 했죠. 그렇게 영향력을 넓혔어요.”
Q. 현재 ‘다시 인간이 되기’(Re-becoming Human)라는 인터넷 플랫폼을 설립해서 강의활동을 계속하고 계신데요, 향후 5년 간 어떤 비전으로 무엇을 실현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요.
“대안 영성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어요. 평소 사람들에게 ‘돈과 권력을 축적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이 시스템 안에 머무르려고 애쓰지 말자’고 말해왔어요. 가진 것을 서로 내놓아 필요한 것이 모두 생기는, 서로 돌보는 생태계로 가자고요. 그런 ‘다른 사회’를 만들고 키워나가는 작업을 계속하려고요. 저희는 정서적 지원, 실용적 지원, 경제적 지원, 그리고 즐거운 활동을 하는 그룹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공동체 일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상호돌봄과 교환, 나눔을 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해요. 과도한 임금노동으로 존재가 소진되고 모든 필요를 재화로 구매해야만 되는 악순환을 끊자는 거죠.
지금 저에게는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제 활동이 그 분들 삶에 기여하는 바가 커서 그 보답으로 제 생계를 돕겠다는 거예요. 제가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맞교환 형태가 아니고요. 핵가족을 꾸리고 부부가 교외에 큰 집과 차, 아이 둘, 개 한 마리를 다 갖추고 사는 것이 성공이자 행복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얘기죠.”
Q. 대안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해요. 그게 저에게는 내 집 마련보다 현실성 있는 얘기로 다가와요.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의 전형적인 성공이 지금 시대엔 거의 불가능해졌잖아요. 북미, 유럽, 아시아-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소득도 점점 ‘있을 법한 얘기’, ‘어쩌면 필요한 제도’로 담론의 위치가 이동하고 있어요.
“네, 사람들이 모여서 유휴지를 기증받고 거기에 공동주택을 짓고 소득을 공유하며 살 수도 있겠죠. 법적 결혼이나 혈연 가족으로 묶여 있지는 않지만 대안적인 가족으로서. 제 주변에서는 대안공동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영성 모임이 늘어나고 있어요. 실현 역량도 커지고 있는 거죠.”
“미국 대선이 끝난 뒤로는 좀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 연말연시는 치유의 공간에서 회복과 즐거움, 기쁨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외부 활동을 잠시 멈추고 제 몸과 주변에 아끼는 이들을 돌보면서요. 저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낸다면 그게 신성함을 불러온다고 생각해요. 먹을 때, 요리할 때, 음악을 듣거나 쉴 때도 자신의 온 존재로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순간을 음미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에요.”
[필자 소개: 하리타 (정세연). 독일과 한국, 그 밖에 매일 여러 경계들을 넘나들며 사는 경계인 페미니스트 작가. 이렇게 다른 경계인 여성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쾌감이 크다. 세계 곳곳에 멋진 여자들을 오래,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독자들의 감상과 인터뷰이 추천도 늘 기다린다. haritamoonrid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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