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은 거짓말해요” 계약서에만 있는 3시간 휴게시간
니몰(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씨는 같이 일했던 미등록노동자들에 비하면 운이 좋았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니몰 씨는 사업주의 임금체불에 대해서 노동청에 신고할 수 있었으니까. 다른 미등록노동자들은 사업주에게 밀린 월급을 달라고 울며 빌었지만, 돌아온 건 “너 불법인 거 신고한다”라는 사업주의 고함이었다. 결국 미등록노동자들은 자신의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노동청에 신고도 못하고,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사업장을 떠났다.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하루 근로시간 11시간 중에서 휴게시간이 3시간이므로 노동자들은 8시간 일해야 한다. 현실은 달랐다. 니몰 씨의 하루 근로시간 11시간 중 실제 휴게시간은 35-40분에 불과했다. 따라서 점심시간 약 1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근로시간은 10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3시간을 휴게시간”이라는 근로계약서 문구 때문에, 노동자들은 근로시간 11시간에서 휴게시간 3시간을 뺀 8시간만 일한 셈이 되었다.
어느 농장도 노동자에게 하루 3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주지 않는다. 담당 공무원들도 이들이 하루 10시간 일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이처럼 간단한 계산도 맞지 않은 근로계약서는 고용노동부의 지침 아래, 전국 대부분의 고용센터에서 ‘견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니몰 씨의 사업주도 “표준근로계약서는 안 맞지. 계약서대로 다 하면 아무도 농사 못 짓고, 얘네들 전부 보따리 싸서 고향에 가야 해.”라며 이런 현실을 인정했다. 모두들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쉬쉬했다. 이 구조에서 노동자들만 하루 2시간씩 공짜 노동을 하고 있었다.
니몰 씨의 계약서에는 한 달에 226시간 일을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2016년 4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실제로 일한 평균 노동시간은 308시간이었다. 더운 여름에는 한 달에 330시간 넘게 일했다. 한 달에 2번 쉬고 28.5일 일한다고 하면, 하루 평균 10시간 48분 일한 셈이었다.
니몰 씨는 이주민 지원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 사업주의 임금체불 문제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곳 김이찬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노동자가 월 노동시간이 330시간이에요. 그런데 근로계약서에 226시간 써 있어요. 약 100시간이 날라갔는데요. 사람이 이렇게 일하면 죽을 것 같아요. 게다가 임금은 130만원이네요.”
2016년 기준, 최저임금 6,030원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약 190만원-200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 니몰 씨가 받은 것은 120만-140만원이었다. 사업주에게 2년 4개월동안 받지 못한 임금은 약 2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노동지청의 조사에서는 이 모든 금액이 인정되지 않았다. 니몰 씨가 손으로 쓴 글씨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니몰 씨는 퇴직금을 포함해 750만 원을 받고 합의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는 운이 좋았다. 어쨌든 합의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체불임금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더라도, 합의를 하지 않고 노동자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버티는 사업주들도 많다.
니몰 씨가 옮긴 사업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로계약서에는 하루 11시간 일하고 3시간 쉰다고 했지만, 어느 사업장에서도 하루 3시간을 쉬지 않는다. 니몰 씨가 휴대폰으로 노동시간을 기록했는데, 그만 사업주에게 들키고 말았다. 사업주가 화를 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업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날 그녀의 방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서가 붙여져 있었다.
근무시간 및 휴식시간표였다. 오전에 50분씩 일하고, 10분씩 쉬어서 1시간 휴게시간, 점심에 1시간 휴게시간, 마찬가지로 오후에 50분씩 일하고, 10분씩 쉬어서 1시간 휴게시간으로 총 3시간의 휴게시간이 적힌 표였다. 그 아래에는 수상한 문구도 있었다. 노동자들이 3시간을 쉬지만, 하루에 요구되는 작업량 깻잎 15박스(15,000장)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사업주는 이것이 맞다는 의미로 노동자들에게 서명을 강요했다.
“거짓말인줄 알지만, 모든 노동자들이 그냥 일해요. 다른 곳도 마찬가지예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문제가 생기면 일 못해서 시간낭비, 월급 못 받아서 돈낭비잖아요. 여기 사장님들이 모두 다 똑같이 계산해요. 노동자들이 하루 10시간 일을 하는데, 8시간만 계산해서 월급을 줘요. 똑같이 일을 쭉 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수 없이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참고 일을 합니다. 만약 한국의 변호사나 공무원이 도와주면, 노동자로서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캄보디아로 돌아가서 임금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요?
짠나리(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씨와 소팔(가명, 캄보디아 30대 여성)씨는 2017년 9월부터 2018년 8월까지 경기도 양평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11개월 동안 일했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사업장 말고도 다른 20개의 비닐하우스에서 상추, 적겨자, 청겨자, 로메인, 적치커리, 적근대 등 쌈채소를 따서 상자에 차곡차곡 넣는 일을 했다.
원래는 계약서에 적힌 사업장에서만 일을 해야 하지만, 사업주는 인근 농장에서 일손이 필요하면 불법으로 이들을 보냈다. 농한기에는 약 150시간, 농번기에는 300시간 넘게 일했다. 바쁠 때는 하루에 12-13시간, 한 달에 1-2번 쉬면서 일했다.
열심히 일해서 돌아오는 대가는 참담했다. 사업주는 몇 달 동안 임금을 전혀 주지 않았다. 밀린 임금만 각각 약 1,100만원이 넘었다. 노동청의 조사 후, 근로감독관은 이를 확인하는 체불금품확인원을 발급했다. 그러나 사업주는 밀린 임금을 주길 거부했다.
이 사건은 재판에 넘겨졌다. 2019년 9월까지 밀린 임금을 모두 주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업주 고소를 취하하겠다는 합의서도 작성했지만, 사업주는 이 노동자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양평군 법원에서는 짠나리 씨와 소팔 씨에게 체불된 임금과 연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업주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짠나리 씨는 2020년 7월에 비전문취업비자(E9) 만료를 앞두고,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기타비자(G1)을 신청했다. 그러나 출입국사무소는 기타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담당자는 캄보디아에 돌아가서 사업주가 임금을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짠나리 씨는 “제가 한국에 있어도 사장님이 밀린 월급을 주지 않았는데, 캄보디아에 돌아가면 어떻게 사장님이 월급을 줄 수 있어요?”라고 항변했다. 법률구조공단의 절차를 밟을 동안만 한국에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여, 기타비자를 발급받았다.
휴지조각이 된 합의서와 판결문을 들고서 법률구조공단을 찾았다. 재산명시 결과 “사업주가 제출한 재산목록상으로는 집행가능성이 있는 재산이 없는 것 같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래서 사업주의 재산조회 신청을 했고, 올해 1월에 다음과 같은 통보를 받았다.
“재산조회 결과 유감스럽게도 채무자 소유로 확인된 재산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재로선 강제집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추후 1-2년 경과 후 다시 재산명시 및 조회절차를 진행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짠나리 씨는 3월에, 소팔 씨도 4월에 비자만료로 앞두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캄보디아로 곧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1-2년 후에 다시 사업주의 재산명시 및 조회절차를 신청할 수 있을까? 재산명시 신청을 하더라도 또 다시 사업주의 재산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면, 이들은 임금을 받을 방법이 없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차등’이 아니라 ‘차별’인 이유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오전 6:30분부터 오후 5:30분까지 10시간 노동을 한다. 점심시간을 1시간 주면 다행이지만, 많은 농가에서는 관행대로 40분만 준다. 정오가 되면 집에 와서 밥을 대충 챙겨먹고 방에서 땡볕이나 추위로 고단한 몸을 잠시 뉘였다 가면 좋으련만, 서둘러 다시 밭으로 가야 한다.
하루 10시간 일하지만, 사업주는 이상하게도 8시간 일한 것으로 계산해 월급을 준다. 이주노동자들은 매일매일 2시간씩 공짜 노동을 강요 받고 있다. 2021년 최저임금으로 계산하면 매일 17,440원이다. 한 달 28.5일 기준으로 497,040원을 받지 않고 공짜로 일해야 한다. 모두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현실에 눈을 감는다. 고용센터 직원들이 감독을 나오지만, 알면서도 넘어간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은 매일매일 출퇴근 시간을 노동자가 입증할 수 없다며, 사업주의 손을 들어준다. 사업주들은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 (문제제기를 한) 쟤만 유난 떠는 거다”라고 되려 하소연한다. 현장에서는 “관행이다”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가고, 원래 그런 것이니 문제삼지 말라고 했다. 모두들 눈을 감는 통에, 이주노동자들의 착취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매년 최저임금 책정을 두고 보수 언론과 경영계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한다. 사업주들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다. 2019년 9월,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 캄보디아 EPS(고용허가제)센터 여동수 지사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원조’가 아닙니다. 내국인이 일하지 않는 곳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저임금으로 노동력을 공급받으니, 오히려 우리가 더 혜택을 보는 것입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최저임금보다 더 낮게 임금을 주는 것은 차별입니다.”
선주민(내국인)이라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지 않을 곳에, 이주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촘촘히 메우고 있다. 여동수 지사장의 말대로, 한국과 사업주들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으로 구하지 못할 노동력을 이주노동자들이 제공하니, 더 혜택을 보는 셈이다.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지급”은 “차등”이 아니라 “차별”일 뿐이다.
사업주들이 한국사람과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캄보디아 20대 여성인 비스나 씨는 눈을 부릅뜨며 반문했다.
“그래요? 우리가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최저임금의 절반만 준다고요? 그럼 우리가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세금도 절반만 낼게요. 우리는 못 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음식값도, 버스값도 절반만 낼게요. 그러면 될까요?”
비스나 씨의 지적대로, 이주노동자들이 “못 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한국사람들보다 최저임금을 더 적게 책정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이 “못 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식비, 주거비, 교통비, 각종 세금도 더 적게 내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것이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급여를 줘도 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최저임금은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적, 인종, 성별, 성적지향 등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저”기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 돈을 떼이고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들
농업관련 사업장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하루 10시간 일하게 하고,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8시간만 계산하여 최저임금을 준다. 이런 최저임금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곳이 비일비재하다. 2020년 10월 13일 연합뉴스 보도를 인용하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외국인 노동자 임금체불 신고현황’을 보면 국내의 외국인 근로자 임금 체불 신고액은 매년 급증해 지난해 처음으로 1천억원을 돌파했다.”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에게 밀린 임금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 정부가 알선한 사업장에 임금체불 문제 생기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정부가 발행한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 합의서, 판결문, 집행문 등과 같이 아무도 약속해주지 않은 휴지조각을 들고 말없이 본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탈 뿐이다.
(다음 기사는 한국사회를 향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이 기사는 필자가 서울시 청년허브 공모연구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이동의 제한이 이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2018년 사진전 <이주하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을 열었고, 2020년 <HYPHEN-NATION> 전시에 참여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주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내고 싶고, 그 이야기의 힘이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 기사 좋아요 2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국경너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