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에서 ‘합의’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②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적 행위 편

박주연 | 기사입력 2021/06/17 [18:44]

성관계에서 ‘합의’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②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적 행위 편

박주연 | 입력 : 2021/06/17 [18:44]

※성적 행위에서 ‘적극적 합의’에 대한 개념을 확산하고, 새로운 성문화의 이정표를 만드는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는 반성폭력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진행하는 릴레이 토크쇼로, 6월~9월까지 세 개의 주제로 열립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기획한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에 관한 첫번째 기사 “성적 행위에서 YES or NO를 넘어 ‘적극적 합의’로!”에선 ‘적극적 합의’의 대략적인 개념과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제안하는 다섯 가지 원칙을 설명했다. (기사 링크 https://ildaro.com/9050) 

 

▲ 지난 3일 진행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첫 번째 ‘관계’편 현장 모습     ©일다

 

그리고 지난 3일 저녁, 유튜브 온라인 중계로 릴레이 토크쇼 첫번째 편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토크쇼에선 친밀한 사이에서의 ‘합의’에 대한 오해와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제시되었다.

 

서로의 뜻을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여야

 

이야기를 포문을 연 건, 책 <여자들의 섹스북>(이매진)을 쓴 한채윤 작가다. “잃어버린 합의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시작한 그는 “합의를 잃어버렸다고 전제했지만, 의심을 한번 해보자. 사실 잃어버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적 행위에서의 합의라고 하니까 새롭고 어색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 일상생활의 대부분은 합의”이기 때문이다.

 

“버스 타고 갈까? 밥 먹을 거야? 뭐할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상대화 대부분이 동의를 얻고 합의를 이루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죠. 이런 건 이렇게 쉽게 이뤄지는데, 왜 성과 관련되면 그토록 어려워지는 걸까요? 그 고민부터 시작해 보죠.”

 

국어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합의는 ‘뜻이 맞는 것, 서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의를 잘 하는 건 어떤 것일까? 무엇이 있어야 합의를 잘할 수 있을까? 한채윤 작가는 “합의란 뜻이 맞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내 뜻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 의견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선 뜻을 맞출래야 맞출 수 없어요. 그러니까 합의를 잘 하고 싶다면, 내가 뭘 원하고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섹스를 꿈꾸는지, 어떤 교류를 나누고 싶은지 등 기대하는 바를 생각해야 해요.”

 

▲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첫번째 편에서 한채윤 작가가 성적 행위에서 합의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상대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다음 단계다. 서로의 뜻을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의의 단계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이 합의의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할래?’라고 물었을 때 ‘응’이라고 답하면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성폭력예방교육에서도 묻고 답하면 동의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실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한채윤 작가는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떤 관계냐에 따라, ‘할래?’ 등의 질문을 해선 안 되는 관계라는 게 있”다고 했다.

 

“상대의 의사를 묻는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라, 상대와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사장이 직원에게, 교수가 학생에게, 상병이 일병에게 동의를 구한다? 위력이 작동하는 관계에서는 동의를 구할 수 있는 관계 자체가 성립이 안 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성적 행위에 대한 동의를 구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해요.”

 

커플의 경우에도 한 쪽이 계속 묻고 한 쪽이 답하기만 하는 관계라면 그 또한 제대로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대체 ‘적극적 합의’는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하는가?

 

한채윤 작가는 “커플, 부부 등 친밀한 사이에서 이뤄지는 성적 행위에서의 적극적 합의는 평소에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상대방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내가 알고 있고, 또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주고, 그것을 매번 말하지 않아도 잘 체크하고, 그리고 때로는 늘 좋아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정도가 된다면” 매번 합의를 만들어내느라 분주할 필요가 없다. 결국 “섹스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거다.

 

“부부 섹스는 의무가 아니다, 부부 관계에도 합의를!”

 

책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와온)의 공저자이자 부너미(엄마페미니즘탐구모임)에서 활동하는 이성경 대표는 ‘부부 섹스는 의무적’이라는 통념 때문에 합의가 사라진 부부 관계를 언급하며,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첫번째 편, 이성경 부너미 대표가 부부 섹스는 의무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이성경 대표는 “부부 섹스는 의무라는 통념이 오히려 관계를 망치는 주범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맘카페 같은데 가 보면 남편이 ‘섹스가 의무다, 섹스 안 하면 이혼 사유다’ 이런 얘기한다고 구구절절 쓴 글들이 정말 많거든요.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그러면 보통 거부를 못해요. 또 부부 상담 갔는데 아내한테 ‘당신이 섹스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게 문제의 시발점’인 것처럼 얘기하는 상담사도 있어요. ‘남편이 힘들겠다. 남편이 억눌려 있다’고 하면서.”

 

이 대표는 “부부 섹스를 의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건, 사회적인 구조와 인식의 영향”이라며 “사회에서 남편/남성의 욕망을 당연하고 중요하다고 하니까 아내는 그걸 풀어줄 의무가 있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또한 의무라고 해버리면, “(부부 관계 파탄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데 용의”하다. ‘네가 의무를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바람을 핀 거다’ 등. 게다가 “의무엔 존중이나 노력이 필요 없다.” 동의나 합의의 과정에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말을 거는 등의 과정과 존중, 배려, 협상이 필요한데, 섹스가 의무라고 하면 그런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럼 의무적이지 않은 부부 섹스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이성경 대표는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통 섹스리스를 러브리스로 말하더라고요. 근데 정말 사랑이 없어서일까요? 부부는 10년, 20년 길면 50년도 살아야 하잖아요. 사랑이 식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체력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섹스리스가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애도 키우고 일도 해야 하니까요. 섹스는 몸과 몸이 만나는 영역인데 피로하면, 하기 어려워요. 그러니까 이 피로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질 것인지 합의가 필요해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건, 결국 어떤 일상을 보낼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섹스를 할 때 즐거우려면 일상이 즐거워야 하고, 섹스가 평등하려면 일상이 평등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도 아이 둘 낳고 돌봄을 도맡아 하면서 남편한테 분노가 쌓였거든요. 근데 남편은 남편대로 경제적 부담과 압박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의 에너지를 돌봄이 아니라 돈 버는데 썼는데, 전 그걸 원하지 않았어요. ‘나한텐 당신이 돈 버는 것보다 돌봄을 많이 나눠서 하는 게 더 중요하고, 우리가 얼마나 평등한 관계를 맺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죠. 몇 년 동안 합의점을 맞추느라 고생했지만, 결국 관계가 점점 평등해짐에 따라 섹스도 즐거워질 수 있었어요.”

 

섹스가 ‘상호’ 즐거워야 한다는 것도 꼭 필요한 합의다. 남편/남성 위주의 “빨리 한번만”은 여성에겐 전혀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건 섹스도 아니”라고 지적한 이성경 대표는 “여성들이 섹스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맛집도 자주 다녀보고 그래야 또 가고 싶고 다른 것도 찾아보고 싶지, 먹어보지도 않은 맛집을 상상할 순 없잖아요. 여성들은 소수만이 남성과의 섹스로 오르가즘을 느낀다는데, 이런 상황은 섹스 자체가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그렇기에 “상대방의 욕구를 잘 파악하고 서로 즐겁고 만족할 수 있는 섹스를 하기 위한 합의”를 해야 한다. 이 대표는 그 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엄성, 평등, 자율성,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안녕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섹스에 대해서도 합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타인의 신체를 불법촬영하고 공유하는 남편과는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심쿵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한채윤 작가와 이성경 대표가 성적 행위에 있어서의 합의에 대한 다양한 예시와 실질적인 합의의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이윤소 활동가는 그동안 미디어가 합의를 어떻게 재현했는지, 그 문제점을 짚었다.

 

국내 미디어에서 연인 혹은 썸의 단계에 있는 관계에서 폭력을 로맨스로 미화하는 일은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 벽치기, 기습키스, 손목 잡고 끌고 가기, 스토킹 등등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다.

 

▲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첫번째 편, 이윤소 활동가가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미디어 모니터링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2018년 진행한 모니터링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에서 보여준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 행위 및 태도’ 부분은 강제적 신체접촉이 57.51%로 가장 높았다. 손목, 팔목을 낚아채거나 기습포옹, 기습키스 등이 그 내용이다.

 

특히 ‘손목잡기’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이제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져 구글에서 ‘한국 드라마 손목 잡기’(Korean Drama Wrist Grabbing)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가 뜰 정도다. 이윤소 활동가는 “이 손목 잡기에 대한 비판도 당연히 많다”며 “보기만 해도 아프다, 여성을 인형 다루듯 한다, 남성을 구시대적 인간으로 만든다” 등의 지적을 언급했다.

 

미디어가 이런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왜 문제가 될까? 이윤소 활동가는 “이런 행위를 반복해서 본 사람들은 성적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지 않아도 성적인 의사소통, 합의는 어려운데 미디어에서 그런 소통을 무시한 일방적인 행위를 계속 보여주게 되면 “실제의 관계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 또한 “현실에서 그런 폭력적인 상황이 나타났을 경우, 여성에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문제적이다.

 

최근엔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많은 여성 시청자들 덕분에 로맨스에서의 문제적 장면들이 줄어들고 있고,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장면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이윤소 활동가는 이런 부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키스해도 돼? 너랑 자고 싶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을 “로맨틱하게 연출한다는 점이 한계로 느껴졌다”고 했다.

 

“동의나 합의를 구하는 장면이 마치 달달함을 연출하는 극적인 장치로만 이용돼도 되는 걸까? 이전엔 묻는다는 행위 자체를 찌질하게 그려서 문제였지만, 묻는 행위가 섹시하다, 설렌다는 감각과 연결되는 게 좋은 것인가 의문점이 들더라고요. 동의나 합의는 일상적인 것이 돼야지 특별한 장치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더욱 일상적인 장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미디어는 성적 행위에 대해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 걸까? 이윤소 활동가는 “이야기의 전후 맥락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TV/미디어 속 이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묘사되고 관계가 진행되는지에 따라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그 관계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또한 로맨스물을 좋아해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키스해 키스해’ 이렇게 할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모든 순간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관계가 잘 그려졌을 때죠. 갑자기 키스가 아니라, 관계 맺기를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첫번째 이야기에서 반복되고 강조된 이야기엔 공통점이 있다. 친밀한 사이의 성적 행위도 관계맺기 안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며, 그런 관계맺기엔 소통이 필요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 ‘매번 그걸 어떻게 묻고 확인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상대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한번 돌이켜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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