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퀴어’로 살게 되기까지 모니카의 여정

[젠더의 경계 위에서] 머리카락 길이와 젠더-디스포리아

모니카 | 기사입력 2021/07/13 [18:44]

‘행복한 퀴어’로 살게 되기까지 모니카의 여정

[젠더의 경계 위에서] 머리카락 길이와 젠더-디스포리아

모니카 | 입력 : 2021/07/13 [18:44]

※ [젠더의 경계 위에서] 시리즈에선 확고한 듯 보이는 성별 이분법의 ‘여성’과 ‘남성‘, 각각의 한계를 재단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경험과 도전, 생각을 나누는 글을 소개합니다.

 

내가 ‘퀴어’로 정체화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범성애자이고 젠더퀴어에 가깝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중이기에 어떤 용어보다 ‘퀴어'라고 소개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편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머리도 숏컷으로 잘랐다. 긴 머리보다 짧은 머리로 지낸 세월이 더 길다는 헤어디자이너 분이 내 머리에 가위를 대면서, 한 번 편안함을 느끼면 다시 머리를 기를 생각이 안 들 거라고 장담하셨는데, 그 이유를 알겠다. 덕분에 샴푸바도 덜 쓰고, 아침에 10분 더 자고 일어나도 씻고 제시간에 출근할 수 있다.

 

‘나는 남성인가? 그럴 리가…’ 성별 이분법 속에서 헤매던 시절

 

사실 숏컷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대 때도 비슷하게 자른 적이 있다. 그전까지는 대체로 긴 머리를 유지하다가, 머리카락이 허리에 닿으면 한 번씩 미용실에 가 턱 위로는 절대 올라오지 않는 길이의 단발로 자르는 게 머리에 주는 거의 유일한 변화였다. 하지만, 사실 나는 하고 싶은 머리 스타일이 많았다. 숏컷도 그 중 하나였다. 중학생 때 유행처럼 머리를 밀고 스크래치를 내던 남자 친구들의 머리도, 2016년 2NE1 활동 당시 산다라박이 했던 한 쪽은 웨이브가 있는 긴 머리, 반대쪽은 모두 민 머리 스타일도 소망하는 것들이었다.

 

▲ 2NE1-I “LOVE YOU” 뮤직비디오 중에서 산다라박의 모습. (출처: 2NE1 유튜브 채널)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기장에 위시 리스트를 적고, 원하는 헤어스타일의 사진을 스크랩하는 게 전부였다. 머리를 6mm로 밀고 스크래치를 낸 여학생을 본 적도 없었고, 산다라박을 비롯한 여러 여자 연예인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스타일을 보여줄 때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이성애자 남성 중심의) 반응이 따라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 숏컷 이미지를 검색하면 여성의 사진이 주를 이룬다. 남성의 머리카락은 마치 귀 아래로는 절대 자라지 않는 것처럼, 짧은 머리가 기본값이기 때문에 굳이 숏컷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긴 머리카락은 ‘여성성’의 상징이기 때문에, 단발머리만 하려 해도 (초면인) 미용실 원장님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걱정하곤 했다. 그러니 반삭을 한다면 주변이 놀라 뒤집어질 게 뻔했고, 나는 그런 주변의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처음 숏컷을 하게 된 건, 그런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에서 결심한 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남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여성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때의 내가 유추할 수 있는 범위는 고작 ‘여성이 아니라면 나는 남성인가?’일뿐이었기 때문이다. 교복부터 출석번호, 학급 임원, 체육활동 등 학교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것들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사회에서 상상력이 제한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젠더 개념을 가르쳐주는 곳도 없거니와, ‘여성성'을 강조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모습만 재현해내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트랜스젠더 남성이나 젠더퀴어, 그리고 논바이너리의 존재 역시 알지 못했다. 이미 나는 의지하던 어른들에게 성적지향을 부정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혼란스러운 마음은 “내가 남자라니 말도 안 돼, 당연히 여자겠지.”로 결론을 내렸다. 지금이야 당시 내가 느낀 것이 성별불쾌감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땐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젠더-디스포리아(성별 위화감)가 심한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이상 고민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외면하며 지내다가, 어느 날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지정성별 여성 퀴어이자 집안의 첫째로 자라면서 ‘안 된다’는 말에 익숙해져 있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답답했던 것이다. 그래서 학원에서 보컬 연습을 하다 말고 뛰쳐나가 숏컷으로 잘랐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낯설었지만,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학원에 돌아오니 선생님과 친구들이 내 모습을 보고 ‘남자같다’며 난색을 표했다. 지금이라면 “어쩌라고” 한 마디 해주고, 위안 삼아 핑크(P!nk)의 2017년 VMAs 마이클 잭슨 비디오 뱅가드상 수상소감 영상을 볼 텐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핑크는 자신의 딸이 외모나 행동이 ‘남자같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딸에게 사회의 요구대로 머리를 기르거나 몸을 만들지 않는 본인이 전 세계적으로 콘서트 표 매진을 이어가는 스타인 것을 상기시키며 “우리는 변하지 않고,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 핑크(P!nk)가 2017년 VMAs 마이클 잭슨 비디오 뱅가드상을 수상하며 소감을 이야기하는 모습. “우리는 변하지 않고,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 (출처: MTV 유튜브 채널)

 

나의 주체적 선택을 지인들에게서 조롱당한 경험은 나를 더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내가 다니던 학원은 모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잘 보이고 싶었다. 나는 다시 머리를 길렀다. 실제로 일 년쯤 지나고, 그곳에서 5인조 밴드의 유일한 지정성별 여성 멤버로 데뷔를 준비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프로듀싱이라는 명목 하에 매일같이 성적으로 대상화되었고, “녹음실에서 몰입이 안 되면 자위를 해보라” 같은 성희롱에도 웃어넘길 줄 아는 ‘쿨한 여성’이 되어야 했다. 언어 성희롱은 성추행으로까지 이어졌다.

 

가해자는 매일 일정을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회사 내에서 나의 데뷔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이 두려웠다. 소문이 빠른 녹음실의 특성상, 소속사를 옮기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참고 버티다가 더 이상 가해자의 얼굴을 보는 것을 견딜 수 없게 될 때쯤 회사를 나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겪은 피해가 사내에 알려졌지만, 나의 ‘피해망상’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앰프를 타고 나오는 밴드의 합주 소리를 참 좋아했는데, 그렇게 꿈을 잃었다.

 

내 이야기를 알아주는 파트너와 만남

 

지금 나는 트랜스젠더 애인이자 동거인 뮤즈와 살고 있다. 우리의 만남에 주제곡을 정한다면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이 빠질 수 없는데, 그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뮤즈를 만나고 다시 꿈을 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묻어둔 젠더 고민을 다시 꺼낼 수 있었던 것도 뮤즈의 영향이 컸다.

 

처음 그를 알게 됐을 때, 트랜스젠더에 대해 아는 게 없던 나는 뮤즈에게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젠더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처음, 젠더를 남성과 여성으로 규정하지 않는,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과거에 젠더에 대해 고민했던 게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나의 성별불쾌감은 주로 사회적인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여자 탈의실을 이용하는 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남자 탈의실에 가고 싶은 것도 아니라 혼란스러웠던 순간같이 성별로 분류되는 게 싫었던 때에 말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원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강력한 압력에 못 이겨 여고에 입학했는데, 여학생 무리에 속해있는 건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아주 어릴 때 목욕탕에서 할아버지를 찾으러 남자 탈의실에 들어갔다가, 날 보는 남성들의 시선에 덜컥 겁이 나 돌아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여고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있으면 안 될 곳에 들어와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나 혼자만 다른 것 같은 기분. 나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급식도 거부한 채 엎드려 울기만 하다가 금방 자퇴를 했다.

 

이런 기억들을 뮤즈에게 하나씩 늘어놓았을 때, 그는 경청해 주었다. 그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기에, 나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다른 이에게,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 경험은 ‘정체화’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퀴어를 타자화하며, 트랜스젠더의 삶을 찬성/반대로 논의하는 혐오 문화가 이 사회에 만연하게 자리 잡고 있어, 대부분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존재를 쉽게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트랜스젠더는 성별이분법의 구조 안에 스스로를 맞추게 되며, 정체화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트랜스젠더에게 흔히 가해지는 혐오 중 하나로 ‘지정성별로 사는 것보다 편할 것 같아서 성별을 바꾼다’는 식의 얘기가 있다. 남의 존재에 대해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성범죄 피해를 겪은 적 있는 여성을,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많이 보았고, ‘여성성’은 나를 억압하고 통제해 온 규범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성혐오에서 벗어나고자 트랜스젠더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차라리 트랜스젠더로 살겠다고 결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트랜스젠더 남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을까?)

 

성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 한, 성소수자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자신이 원하는 젠더로 인식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젠더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거나, 만들어지는 것이다. 젠더를 알아가면서 나는 내가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퀴어’로 정체화 한 이후 모니카의 제주도 여행 사진


그 과정에서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내가 처음 성별불쾌감을 느끼고 ‘퀴어’로 정체화하기까지, 그 사이에 시스젠더 여성으로서의 내가 좋았던 시기도 있었다는 거다. 젠더는 유동성을 띤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져 묻지는 말자. 나의 존재가 그것에 대한 증명이니까. 지금의 나는 그냥, 내가 젠더퀴어에 가깝다고 느낀다. 아무리 이유를 고민해 봐도 정말 ‘그냥’이다. 시스젠더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정성별을 받아들이고 살듯이 말이다.

 

퀴어로 정체화하고 커밍아웃을 한 이후

 

퀴어로 정체화하고 나니, 한여름 땡볕 아래서 장시간 착용한 브래지어를 집에 돌아오자마자 풀어 헤칠 때 느꼈던 기분이 기본 텐션이 된 것 같다. 사실 옷장에서 브래지어가 사라진 지 꽤 됐지만, 그만큼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는 의미다.

 

이제는 머리스타일에 변화를 줄 때 나의 의사 외에는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밀고 싶으면 밀고, 자르고 싶으면 자른다. 중학교 때 부러워하기만 했던 스크래치도 해봤고, 스크랩해둔 사진첩에 있던 산다라박의 머리 스타일을 응용한 긴 머리 투블럭도 해봤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숏컷 스타일을 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는 게 재밌는 일상이 될 줄은 몰랐다.

 

머리카락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먹고 자면 자라고, 가위질 몇 번에 잘려나가는 연약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정성별 여성 퀴어이자 ‘첫째’로 자라며 내게 익숙해진 억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머리카락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더 나아가 사회가 소수에게 가하는 차별과 혐오에 나 자신은 얼마나 동조하고 있으며, 거기에 저항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마다, 뜯겨나간 머리카락을 생각하면 참 고맙기까지 한 털이다.

 

▲ 모니카와 파트너 뮤즈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발라TV" 썸네일

 

여전히 미스젠더링(Misgendering, 트랜스젠더퀴어들이 자신이 정체화하는 젠더와 다른 젠더로 누군가에게 규정되는 것)이 불쾌할 때가 있지만, 나는 행복한 퀴어라 자부한다. 동거인과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발라 TV’에 공개 커밍아웃을 한 뒤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고, 뮤즈와 주변 친구들 역시 나의 성별정체성을 존중해 주는 덕분에 사회적 디스포리아를 느끼는 빈도가 낮아졌다.

 

‘여성성’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된 영향도 있다. 여성이 자신의 개별성을 자유로이 드러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여성스러운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여성성’으로 통제하려는 행위는 이제 소용이 없다. 나는 (젠더) 퀴어스러우니까. 흑과 백,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 때 우리의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그건 다른 어떤 것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나’로 살아가는 과정이다. 우리 모두 나다운 모습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삶을 여행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 소개: 모니카.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퀴어. 트랜스젠더 동거인과 함께 유튜브 채널 발라TV를 운영하고 있으며, 채널 Dr.결희킴TV에서 LGBTQ+ 친화적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Q+(큐플러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ㅇㅇ 2022/03/17 [11:42] 수정 | 삭제
  • 한번사는 인생인데 자기가 끌리는 대로 살았으면 용기있고 먹지게 사시네요!
  • bomi 2021/07/19 [11:30] 수정 | 삭제
  • 이렇게 진실되고 멋진 글을 보고도 동정심 유발 어쩌구하는 인간은 뭐지
  • 2021/07/18 [19:15] 수정 | 삭제
  • 별로에요. 동정심유발하는 기사. 소수자들만을 위한 기사… 진짜 이들의 상처 죽음에는 관심이없죠… 네이버에 여기 기사들이 너무 많네요. 읽고 싶지않습니다
  • 샤이 2021/07/16 [11:17]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감사해요 그리고 모니카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해요 ! 너무 멋져요!!
  • 코라 2021/07/14 [12:32] 수정 | 삭제
  • 젠더퀴어 정체성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된 것 같아요. 저도 모니카님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 학교에서도 성별정체성에 대해서 한번쯤은 고민해보고 이해할 수도 있는 교육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