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6일, 여성환경연대 주최로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가 ‘여성X기후위기’를 주제로 열렸다. 서울시 성평등기금 지원을 받아 진행된 이 행사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5명의 여성들이 강의한 내용을 연속 기고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목화씨 뿌려 1년…목화솜 누벼 조끼를 만든 경험
“우리가 입는 옷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 물음 하나로 7명이 모여 목화 농사를 지었다. 경험도 없고 배울 곳도 없어 시행착오 끝에 수확한 솜은 겨우내 일일이 손으로 씨앗을 뺐다. 그렇게 1년을 공들여 얻은 목화솜을 놓고 누벼서 조끼 한 벌씩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수고롭고 불편한 과정을 거쳐 ‘내 손으로 무엇을 짓는 행위’가 삶을 변화시켰다. 옷은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다음부터 옷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옷뿐 아니라 내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물로 확장되었다. 가능하면 아껴 쓰고, 만드는 이의 수고로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애 처음 목화솜을 만지고 내 손을 사용하며 사물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던 그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목화학교를 해오고 있다. 나는 이를 ‘옷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 본다’라고 표현한다. 이 땅에서 농사지은 목화솜에서 씨를 빼고, 실을 잣고, 염색하고, 그 실로 작은 직조를 해본다. 목화솜을 놓고 누벼 옷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이렇게 목화를 만지고 놀면서 슬로패션(Slow Fashion)을 경험하다 보면 옷을 소비하는 태도가 바뀌게 될 것이다. 옷을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패스트패션’에 관한 불편한 진실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의 역사는 40년 정도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패션이 산업이 된 것이다. 자유무역과 함께 필요 이상의 옷을 만들어 전 세계로 유통하게 되었다.
유행을 따라 1, 2주일 단위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고, 1년에 최대 50번의 사이클로 새 옷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렇게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다양한 옷을 만드는 만큼 옷의 품질은 떨어지기에, 쉽게 버려진다. 심지어 너무 많이 만들어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는 비율도 높다.
[수입 목화와 패스트패션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목화재배 면적은 전 세계 농지의 3~5%에 불과한데, 전 세계 농약의 약 10%, 전 세계 살충제의 25%가 목화재배에 사용된다. -농부들은 씨앗을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GMO(유전자변형)나 실험실에서 개량된 종자는 기후변화 적응력이 낮다. -목화재배로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된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목화재배를 위해 아랄해로 들어가는 강물을 대규모로 끌어다 쓰면서 아랄해가 사라져간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에서 목화 생산자는 가난한 소농이거나 소작인이다.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 산업은 선진국들이 양보하지 않는다. -면섬유 제품을 만드는 데는 20여 단계의 가공 과정을 거친다. 후발 개발도상국 즉, 폐수 유발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낮은 곳에서 생산하고 있어 환경오염을 가속화한다. -패션 산업은 전 세계 20%의 폐수와 10%의 탄소배출량을 차지한다.
그뿐 아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약 40만 명의 소녀들이 옷을 만드는 노동자인데, 그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2013년에 지상 9층 빌딩인 라나플라자가 무너져 1,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금이 간 건물에서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공장주가 바깥에서 문을 잠그고 일을 시키다 붕괴 사고로 이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패스트패션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의 어린 임금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다. 즉, 패스트패션 산업은 농약, 살충제, 폐수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뿐 아니라 인권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메이드 인 페루” 라벨이 붙은 청바지는 미국 텍사스에서 농사를 짓고,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실을 뽑고 직조한다. 그리고 페루에서 재단과 재봉을 하고, 멕시코에서 워싱을 하고 전 세계로 판매된다. 왜 이렇게 많은 나라를 옮겨가면서 만들어야 할까? 패스트패션은 더 싸게 만들고 싶은 사람과 더 값싸게 사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다.
‘슬로패션’을 실천하는 세 가지 방법
패스트패션 산업의 홍수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실천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입어야 할까? 더디긴 하지만, 패션산업 안에서 갖게 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슬로패션으로 나아가고 있다.
슬로패션은 유행을 좇아가지 않고, 오랜 기간 입을 수 있는 옷을 말한다. 단순하게 토양, 물, 에너지, 생물 다양성 등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도 슬로패션이지만, 그걸 넘어서 목화 농장이나 공장, 운송회사나 점포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슬로패션이다. 또 나아가서 우리의 소비 습관을 바꾸고, 재사용하고 수선하고 재활용하는 것, 세탁하는 방법까지 모두 슬로패션의 폭넓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옷을키우는목화학교는 일상에서 슬로패션을 실천하는 3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1. 직접성을 더 많이 복원하자: 내 손으로 옷을 만드는 더 많은 과정을 경험해보자. 그러면 더 싼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환경 파괴나 노동자의 희생, 노동의 가치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2. 소비에 대한 태도를 바꾸자: 영국의 윤리적 패션의 개척자로 알려진 오솔라 드 카스트로는 “우리는 더 나은 제품만 요구할 게 아니라, 더 나은 구매 습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한 달만이라도 물건을 사지 않는 미션을 수행해보는 건 어떨까. 식재료를 제외하고 한 달 동안 물건을 사지 않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오래 입을 옷을 필요한 만큼만 사고, 가죽을 입지 말고, 드라이클리닝을 하지 않는 등 좀 더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든 옷을 사는 노력이 필요하다.
3. 생활 태도를 바꾸자: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4인 가족이 5~6일 정도 사용하는 물을 사용한다. 이렇게 많은 물을 사용해서 만든 옷을 또 열심히 빨게 된다. 땀 나는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한 번 이상 입고 빨래도 모아서 빨고, 세제는 화학성분이 덜한 것을 쓰고, 에너지 소모가 정말 많은 건조기는 좀 덜 쓰거나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래 입고 재활용하고 바꿔 입거나 물려 입자.
기후위기와 생태계의 문제가 심각할수록,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처음 목화학교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인터넷에서 슬로패션을 검색하면 기사나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엔 슬로패션으로 나아가는 긍정적 변화가 더 빨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재미있는 건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H&M의 경우에도 중고 의류를 판매하고 재활용 소재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빠른 패션보다 옳은 패션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결과이다. 여러분이 목소리를 내야만 가능한 변화이기도 하다. 지구가 자정 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나부터, 작은 것부터, 실천을 해보자.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말이다.
[필자 소개] 최기영. 옷을키우는목화학교 손작업자. 2018년부터 도시에서 목화 농사를 지으며 패스트패션의 문제점을 알리고 슬로패션을 실천하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솜을 만지고 놀면서 사라져 가는 손기술을 조금씩 살려내는 활동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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