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국회에게

우리 사회엔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1/11/11 [21:32]

차별금지법 제정,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국회에게

우리 사회엔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박주연 | 입력 : 2021/11/11 [21:32]

작년 6월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지 벌써 500일이다. 발의 이후 국회의 더딘 움직임은 많은 시민들을 답답하게 했고 지난 6월엔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등록되기도 했다. 청원은 등록 22일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는 성과를 내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드러냈다.

 

▲ 지난 6월 15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 성사! 국회는 응답하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사실 청원 10만명 달성은 새롭게 나타난 ‘사회적 합의’의 모습도 아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작년에 발표한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82%)고 답했다. 이 문제를 지금처럼 대응한다면 향후 차별 현상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사회적 갈등이 더 심해질 것(72.4%)이라는 응답이, 자연스럽게 완화·해소될 것(32.1%)이라는 응답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차별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책 수립에 찬성한다는 의견도 82.2%로, 반대한다는 12.8%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인권·다양성을 존중하는 학교 교육의 확대 찬성(90.5%)도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렇듯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미 한국 사회의 차별 문제를 심각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선 10일까지 심사 결과를 내놓겠다던 말을 번복한 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사할 필요가 있다”며 차별금지법, 국가보안법 청원을 비롯한 5개 청원 심사를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2024년 5월까지 연장해버렸다. 이는 지난 9월에 이어 또 한번 차별금지법 심사 기한을 미룬 것이다.

 

국회엔 정말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기에 이른 것일까?

 

500일, 아니 14년의 시간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건 2020년 6월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12월 노무현 정부는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한 바 있으나, 개신교 등의 종교 단체의 반대에 못 이겨 뒤로 물러섰다. ‘종교단체의 반대를 이유로’ 발의안 중 차별 범위 항목에서 성적지향, 학력, 가족 형태 등 7개 항목을 삭제하여 누더기 차별금지법을 만든 정부의 태도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큰 공분을 샀다. (관련 기사: 차별금지 항목 대폭 줄인 차별금지법 논란 https://ildaro.com/4109)

 

‘성적지향’ 항목을 삭제하는 것에 대해서 성소수자인권단체의 반발이 가장 컸지만, 비단 성소수자인권단체만 목소리를 낸 건 아니었다. 당시 <여성단체공동성명 -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는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여성 개인들의 성적 지향은 다양하며 학력으로 인해, 병력으로 인해,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한부모 가정에 속했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다”며 성적지향, 학력, 가족 형태 등 7개 항목 삭제가 여성들에게 미칠 영향을 정확히 지적했다. 또한 “’동성애 확대로 인한 결혼율의 감소와 저출산 문제’를 문제 삼은 보수기독교단체의 지향은 여성 몸의 재생산권을 여성의 몸으로부터 국가에 양도하는 가부장적 국가주의 담론과 맞닿아 있다”고 비판했다.

 

▲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촉구 #1110 평등길 행진 마지막은 국회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국제인권 기준이나 외국의 차별금지 입법례, 우리 사회 차별의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성적지향’, ‘출신국가’,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등을 차별의 사유로서 명시적으로 열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신속히 제정되어 차별금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우리사회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평했다.

 

국제 사회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미국, 캐나다, 영국 등지의 시민단체에서 한국 정부와 법무부에 항의 서한을 보내며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인권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도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성진 법무부 장관 앞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선 “차별 금지와 평등의 원칙은, 한국 역시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국제 인권 질서의 기본”이라고 하며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들은 권리와 존엄성에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고, 모든 이들이 동등하게 헌장에 명시된 자유과 인권을 누릴 권한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원칙들은 국제권리장전(International Bill of Rights)과 주요 국제 인권 조약을 구성하는 네 가지 국제 규약(인종차별철폐협약 CERD, 여성차별철폐협약 CEDAW, 고문방지협약 CAT, 아동의 권리에 대한 협약 CRC)에서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차별 금치의 원칙은 기본적인 조약 의무이자, 그 가치를 훼손할 수 없는 규범”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소수자 차별보호 조치는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법 및 기준의 의무 이행 사항 중 하나”라는 점도 덧붙인다.

 

이 모든 이야기는 2021년 현재가 아니라, 무려 14년 전인 2007년에 진행된 것이다.

 

국회는 이제 그만 회피해야 할 때

 

2007년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사라졌다가 2020년에 다시 등장한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2011년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등 10명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고, 2012년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등 10명이 법안을 발의했다. 2013년엔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의 김한길 의원, 최원식 의원의 대표발의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일부 종교단체의 반대로 발의를 철회했다. (관련 기사: 차별금지법 제정 또 무산되나? https://ildaro.com/6333)

 

▲ 2021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촉구 #1110 평등길 부산 출정식 기자회견 모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은 늘 ‘반대’ 의견엔 꼬리를 내리기 바빴고 논쟁을 회피하는 모양만 내비쳤다. 그런 정치권의 회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꾸준히 목소리를 내어왔고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요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양한 연대 활동을 통해 차별금지법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만들고 확산시켜왔다.

 

그런 활동과 요청이 있었기에,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이어, 묵묵부답하던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반응도 나올 수 있었다. 올해 6월 16일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외 23명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을 발의했고, 8월 박주민 의원 또한 평등법을 발의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문재인 정부 또한 뒤늦게 “차별금지법을 검토할 단계”라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전국의 목소리를 모으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30일 동안 도보행진을 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국회에 도착하는 11일 오전, 평등법을 발의한 박주민 의원이 소속된 국회 법사위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또 다시 법 제정의 심사를 연기해 버렸다.

 

차별금지법 ‘사회 적합의’ 시대가 왔다

 

국회와 정치권은 여전히 일부 종교 단체의 반대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 반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뜻을 내비치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또한, 기독교계와의 만남의 자리에선 ‘차별금지법 제정은 신중해야 한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14년 동안 계속되어 온 ‘사회적 합의’를 또 한번 방패막이 삼은 것이다.

 

▲ #1110 평등길 행진 마무리 집회 중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일다

 

매번 ‘사회적 합의’를 언급만 하는 정치권의 무책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국가인권위 보고서에서도 그러했고 올해 5월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다.(관련 자료: 데일리 오피니언 제448호, 2021년 5월 3주) 대다수 시민들(81%)이 ‘만약 직장 동료가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해고된다면 타당하지 않다’고 답할 정도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연령별로 봤을 땐 20대(91%)와 30대(93%)의 응답이 특히 높았다. 흔히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들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수용적이고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하는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더 이상 일부 종교 단체의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옹호법이고 동성애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다수의 시민들에게 통용되고 있지 않다.

 

차별금지법을 자꾸 “나중에”로 미룰거면 (이재명, 윤석열 후보에게) “대통령도 나중에 하라”고, 정의당 심상정 대통령 후보는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가수 이주영이 만든 노래 “사회적 합의를 위한 필수 비트”의 가사에 나오는 “사회 적합의”라는 말처럼, 더 이상 “나중에”가 아니라 차별금지법 사회 적합의 시대에 맞는 정치권의 결단이 시급하다.

 

[참고 자료]

『지금 우리는 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뜨거운 투쟁의 기록』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엮음, 사람생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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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즐넛 2021/11/12 [10:54] 수정 | 삭제
  •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 한국.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에서는 너무 당연한 건데 아직도 차별금지법도 제정을 못하는 나라인 게 후지다는 거 모르나. 그만큼 한국에선 차별이 용인된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