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이 울어도 선녀는 닭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나무꾼과 선녀

심조원 | 기사입력 2022/01/01 [11:42]

수탉이 울어도 선녀는 닭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 나무꾼과 선녀

심조원 | 입력 : 2022/01/01 [11:42]

<나무꾼과 선녀>는 언제부터인가 ‘옛이야기 속의 여성 혐오’를 대표하는 이야기로 거론되어왔다. 선녀의 몸을 보은의 선물로 주고받거나, 벗은 몸을 훔쳐보고 옷을 숨기는 장면처럼 지금은 중범죄로 여겨지는 성폭력과 약탈혼을 가해자의 눈으로 로맨틱하게 그린다는 혐의 때문이다. 논쟁 덕분에 적어도 ‘착한 남자는 예쁜 여자를 차지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교훈(?)을 갖다 붙이기는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선녀는 그저 젠더 폭력의 무력한 피해자인가? 믿어야 할 점은 그녀들의 삶이 그랬듯이, 수천 년을 이어온 이야기가 그 정도로 허술할 리가 없다는 점이다. 가당찮은 교훈 아래 감춰진 그녀들의 이야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자.

 

▲ 나무꾼은 노루를 숨겨주는 따뜻한 품성을 지녔지만, 힘의 질서를 넘어서는 세상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출처: pixabay)

 

<옛적으 어떤 총각이 산에 가서 나무를 허고 있니랑께 노루 한 마리가 숨이 차각고 뛰어오더니 총각이 히논 나뭇단 속으로 쑥 들어가서 몸을 감추었다. 조금 있더니 포수가 뛰어오더니 총각보고 노루 가는 것 못 봤냐고 물어서 총각은 저어리 뛰어가더라고 힜다.> (『한국구전설화: 전라북도편 1』 임석재 전집 7, 1969년 전북 장수군 배윤선의 이야기)

 

나무꾼은 가난한 산골 총각이다. 노루를 숨겨주는 따뜻한 품성을 지녔지만 총을 든 가부장 사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들 서열의 끄트머리에서 총 대신 도끼를 들고 나름대로 선하게 살고 있지만 포수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산 속에 쫓고 쫓기는 힘의 질서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 연못이 있음을 까맣게 모른다.

 

<총각은 노루가 갈쳐 준 둠벙을 지켜보고 있니랑게 하늘서 선녀가 셋이 내려와서 옷을 벗어놓고 둠벙에 들어가서 멕을 감고 있었다. 총각은 가만가만 가서 제일 어린 선녀으 옷을 훔쳐서 숨어 있었는디 선녀들은 멕을 다 감고 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런디 제일 적은 선녀는 옷이 없어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총각은 선녀한티 가서 하늘에 못 올라강게 나랑 여그서 살자고 힜다. 선녀는 헐 수 없이 총각허고 살기로 했다.>

 

그가 몰랐을 뿐, 연못은 애초부터 산의 일부였다. 산의 몸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은 크고 작은 새와 동물을 기르고, 하늘의 선녀들을 초대해왔다. 평화로운 공존과 환대의 장소였던 것이다. 어둠 속의 사내는 처음 본 아름다운 광경에 매혹되지만, 사랑에 빠진 모습을 수줍게 드러내는 대신, 연못을 발견(?)한 정복자가 되기로 한다.

 

그가 훔친 날개옷은 선녀의 얼굴이자 영혼이지만 사내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다. 그에게는 아내가 되어 줄 몸이 필요할 뿐 하늘과 땅을 오가는 자유로운 영혼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착한’ 나무꾼은 자기가 믿는 세상의 이치에 따라 망설임 없이 ‘사랑하는’ 선녀를 가둔다.

 

▲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연못은 동식물을 키우고,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오가는 선녀들도 머무는 평화로운 공존과 환대의 장소이다. (출처: pixabay)

 

<총각은 선녀를 각시로 삼아각고 살면서 애기를 둘이나 났다. 애기를 둘이나 났잉게 이제는 일없겠지 허고 선녀한티 옷을 내주었다. 그랬더니 선녀는 애기를 하나씩 양 저드랭이다 찌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대부분의 채록본에서 둘의 결혼 생활은 언급되지 않는다. 오죽 답답했으면 아이를 둘이나 데리고 집을 나갔을까도 싶지만, 그녀들은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말한들 그의 닫힌 귀가 새삼스레 열릴 리 없으므로 날개옷을 찾자마자 미련 없이 떠난다. 원통한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하늘 사람의 본색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날아간 것이다.

 

<총각은 각시랑 애기랑 잃어 버려서 실퍼서 울고 있잉게 그 전으 노루가 오더니, 내둥 애기 싯 날 때꺼지는 옷을 내주지 말랬넌디 둘 낳고 주어서 애기를 데릿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험서, 인제는 선녀들이 하늘서 내레와서 멕감지 않고 두룸박을 내려서 둠벙으 물을 질어올려서 멕을 감응께 선녀 두룸박이 내레오면 두룸박 물을 쏟아버리고 두룸박 안에 앉어 있이면 하늘로 올라가서 선녀를 만날 팅게 그리 히 보라고 일러 주었다.>

 

한편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살도록 나무꾼은 아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녀가 왜 어디로 떠났는지 모를 뿐더러 그 연못에 다시 가볼 염두도 못 낸다. 자기 연민에 빠져 울고 있다가 또 다시 노루의 도움을 얻어 간신히 하늘에 이른다. 그래도 선녀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받아들이지만 그가 하늘 사람으로 정착하려면 두 가지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히서 총각은 선녀의 애기들과 같이 지내는디 쟁인과 장모와 처형들은 지상으 사람이 어찌 하늘에 와서 살어야, 하늘서 살라면 그만한 재주가 있어야 허는디 어디 그런 재주가 있는가 없는가 시험히 보아야 허겄다 허고, 쟁인 장모는 내일 아침에 와서 우리헌티 인사를 올려보라고 힜다. 선녀는 총각보고 아버지는 황계수탉이 돼각고 저 담 모통이에 가 있고 어머니는 큰 구렝이가 돼각고 담장 우구가 누어 있일팅게 거그 가서 인사를 허고, 왜 이런 디에 지십니까 허고 데릿고 방으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미물인 부모님께 절하라는 것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상대방이 자기와 다르거나 낯설어도 먼저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사랑의 바탕이자 하늘 사람의 첫 번째 덕목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배필(配)은 닭(酉)과 구렁이(己)가 서로를 봉황과 용으로 섬기는 사이인 것이다. 나무꾼은 문제도 답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녀 덕분에 첫 시험을 통과한다.

 

<그런디 처형들은 (...) 그런 재주만 가지고는 하늘에 살 자격이 없다 허고 (...) 선녀 아버지도 딸들으 말이 그렇겄다고 이 총각보고 내가 화살을 시 대 쏠 테니 그 화살촉을 챚어가지고 오라고 하고서 활을 쏘았다. (...) 그래서 집이 와서 밥도 안 먹고 앓고 드러누어 있잉게 선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내줌서 이 강아지 가는 디로만 따라가먼 화살촉이 있일 티니(...)>

 

<총각은 슨녀가 일르 준대로 즈 믈리 있는 부자집이 가서 딸으 벵을 고치로 왔다고 하니까 그 집이스는 이 총각을 딸으 방으로 안내했다. 총각은 츠녀으 배를 살살 문질릈드니 활촉 시 개가 나오구 츠녀 벵은 담방 낫읐다.> (『한국구전설화: 충청남북도 편』 임석재 전집 6, 1926년 서산군 한기하의 이야기)

 

두 번째 시험은 선녀의 아버지가 쏜 화살을 찾아오는 일이다. 화살은 어둠 속에서 연못을 노려보던 눈초리와도 다르지 않다. 화살을 맞은 사람은 그것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누가 왜 쐈는지 모른다. 가부장제의 젠더 폭력 앞에 놓인 여성의 처지가 이와 같다. 화살을 찾으려면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속절없이 폭력을 감당해야 하는 약자의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무꾼은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선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간신히 시험을 통과한다. 하지만 끝내 하늘 사람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히서 총각은 하늘서 살고 있는디 세월이 지내다 봉게 지상으 고향 생각이 나서 (...) 선녀보고 지상에 가 보고 싶다고 헝께 (...) 선녀는 정 그렇다면 가 보라 험서 말 한 마리를 내줌서 (...) 절대로 내레서 땅을 밟지 말고 또 지상에서 음석을 먹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총각은 그 말을 타고 순식간에 지상에 내려와서 그 전에 살든 데를 여그저그 돌아댕김서 봤다. (...) 한 집이 강게 박속국을 먹으라고 한사발 주었다. 총각은 그 박속국을 받어각고 먹을라고 하는디 박속국 그럭을 그만 엎질렀더니 그 뜨거운 국물이 말으 등에가 쏟아징게 말이 놀래서 훌떡 뛰었다. 그 바람에 총각은 땅에 떨어져 땅을 밟게 됭게 말은 그만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총각은 하늘로 가지 못하게 돼서 하늘에다 대고 꼬끼요 박속으르르르 하고 소리 질렀는디 그 순간 장닥이 됐다.> (『한국구전설화: 전라북도편 1』 임석재 전집 7 1969년 장수군 배윤선의 이야기)

 

나무꾼은 종족의 굴레 속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수탉은 결코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한다. 소란스레 홰를 치며 울어봤자 닭장 안에서 군림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남성이 젠더 사회를 넘어서기가 이렇게 어렵다. 하지만 선녀는 당신의 닭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수탉이 울든 말든 해는 떠오르고, 그녀에게는 날개옷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던, 우리가 되찾아야 할 숱한 날개옷 가운데 하나다.

 

[필자 소개] 심조원. 어린이책 작가, 편집자로 이십 년 남짓 지냈다. 요즘은 고전과 옛이야기에 빠져 늙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 옛이야기 공부 모임인 팥죽할머니의 회원이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선인 2022/01/05 [08:57] 수정 | 삭제
  • 와 너무 좋은 글이네요. 단순히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이야기 속 여성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유자 2022/01/02 [13:32] 수정 | 삭제
  • 잃어버릴 뻔한 우리 옛이야기를 되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어요!
  • 유리 2022/01/01 [22:32] 수정 | 삭제
  • 박속으르르르.... ㅎㅎ 넘 재밌게 읽고 있어요
  • 흑호 2022/01/01 [13:01] 수정 | 삭제
  • 나무꾼과 선녀..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아이 둘 데리고 날아간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제대로 몰랐어요. 역시 재밌는 구전설화네요. 마지막까지 읽으니까 확실히 선녀가 나무꾼에게 넘사벽인 수준의 존재라는 걸 알겠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만찮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다가 연초부터 또 빠져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