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난민 수용과 ‘공감의 차이’

독일 사회의 전폭적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인종주의 넘어야

하리타 | 기사입력 2022/04/14 [11:20]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과 ‘공감의 차이’

독일 사회의 전폭적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인종주의 넘어야

하리타 | 입력 : 2022/04/14 [11:20]

청년 정치인이자 인디 뮤지션인 친구 마쿠스의 인스타그램에 차 안에서 찍은 동영상 클립 하나가 올라왔다. 영상 속의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지금 밴을 빌려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직접 전쟁 피란민들을 태워 돌아온다는 것이다. 

 

비영리 활동가들을 위한 공유 공간 매니저인 라리사의 소셜 계정에는 회사 마당을 채운 박스더미 사진이 올라왔다. 구호품을 기증받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텔레그램 퀴어 그룹방에서는 트랜스 난민 구호에 집중하자며 모금 링크가 연일 올라온다. ‘엄마와 아이 4명까지 8주 숙박 가능’같은 손글씨 피켓을 들고 직접 기차역으로 피란민 마중 나가는 이웃들도 있다.

 

평소 지역 풀뿌리 활동에 참여하는 일부 시민들만의 행동이 아니다. 동네 구제샵을 비롯한 작은 가게들은 앞다투어 구호품 기증이나 후원금 모금 행사를 하고 있다. 평소 정치색을 띠지 않는 음악대학교도 우크라이나 대학 한 곳과 특별 결연을 맺어 피란 온 학생들 19명에게 기숙사와 연습실을 제공하는 등 수많은 지역사회의 조직과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다.

 

▲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이곳 독일에서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쟁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난민을 전폭적으로 환대하는 분위기다. (출처: pixabay)

 

인구 22만 명이 사는 남부 소도시인 이곳 프라이부르크 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사회 각계각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전’ 목소리를 내고 난민을 환대하고 있다. 아무리 인도주의가 보편 가치라고 해도, 다원화된 사회에서 단일 이슈에 이렇게 이견 없이 많은 관심과 자원이 결집되는 것은 드문 일이라 놀랍다.

 

하지만 독일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데 그곳이 전쟁터가 되었고, 이대로 두면 ‘신 냉전체제’로 더 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지배적이다. 거기에 전범국으로서 교과서에서부터 반전 의식을 크게 강조한다는 점도 상기하면 지금의 상황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리아 내전 때와는 다르다, 왜 이번에만?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나 역시 근래 반전, 인도주의 행동에 고무되고 약소하게나마 참여도 하고 있지만, 2015년 시리아 내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환대 분위기에 이질감을 느낀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중동에서 지중해 발칸 루트로 오랫동안 긴 피란 행렬이 이어졌을 때도 독일 사회에서는 난민을 돕는 시민 활동과 제도적 조치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큰 규모로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여론도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엔 개인, 지역공동체, 국가, 유럽연합 차원에서 모두 뜨거운 논란이 있었는데, 주된 난민 수용 반대 이유는 문화, 종교, 인종적으로 이질적인 ‘아랍계 무슬림’들이 갑자기 대거 들어오면 사회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닌 ‘그들’, 낯선 대상에 대한 경계와 불안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뿌리 깊은 ‘무슬림 포비아’가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인종적으로 백인이 다수이고, 기독교 문화권에 속한 ‘동유럽 국가’ 우크라이나의 피란민들은 ‘우리’에 가깝게 인식되는 것으로 보인다.

 

▲ 프라이부르크 시립 극장은 몇 주째 우크라이나 깃발 색으로 외벽 조명을 켜고, 예정에 없던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를 편성해서 관람료 수익을 기부한다. (출처: theater.freiburg.de)

 

이런 이질감과 의문을 갖는 것은 나뿐 아니다. 이주 분야의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종교와 인종주의에 관해 강의하는 연합복음전도회(der Vereinten Evangelischen Mission) 독일지부 사라 베체라(Sarah Vecera) 차장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도 “왜 이번에만?”이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공감의 차이’(empathy gap)가 작동하는 기제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가면, 백인 유럽인들은 당시에 이미 계몽,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가치를 내세웠지만 그와 동시에 식민지 확장에 힘쓰면서 수많은 사람과 자원을 착취했다. 이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비인간화(dehumanize)하는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당시 철학, 과학, 종교 등 모든 부문에서 이러한 인종주의 이데올로기가 적용됐고 오늘날에도 그 토대는 건재하다는 것이 베체라의 지적이다.

 

전쟁 난민 환대의 차이, 인종차별인가?

 

‘독일 사회는 전쟁 난민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가? 이는 인종차별인가?’라는 쟁점은 독일어권 언론 십수 곳에서 3월 초중순에 다음과 같은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내보내면서 사회적으로 논의된 바 있다. <흑인들은 피란 저지당하나?>, <환대 문화의 차이들은 어떻게 생겨났나>, <좋은 난민, 나쁜 난민>, <난민 대우: 누구를 먼저 도울 것인가?>

 

가장 긴 지면을 할애한 기사 중 하나인 진보성향 일간지 타즈(Taz)의 논평 <서유럽과 그 경계들: 모순된 자아상>(Westeuropa und seine Grenzen: Ein widersprüchliches Selbstbild)을 함께 살펴보자. 필자 모하메드 암자히드(Mohamed Amjahid)는 주류 저널리즘 업계의 사례를 몇 가지 들었다.

 

권위 있는 스위스 신문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eue Zürcher Zeitung)에는 “이번에는 진짜 난민(echte Flüchtlinge)들”이라는 표현이 버젓이 등장했다. 독일의 대표 일간지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의 기사에는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온 대부분의 난민들은 엄밀히 말해 이주자들이었고,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우리 형제자매들과는 다르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독일 민영방송 RTL 채널의 한 프로그램에 나온 게스트도 “(우크라이나는)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는 점에서 독일과 폴란드, 헝가리의 난민 환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이전 난민 위기 때와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해석을 내놨다.

 

▲ 영국 방송 BBC의 한 기자가 키이우 현지 라이브 방송에서 “푸른 눈에 금발 머리 유럽인들이 매일 푸틴의 미사일에 죽임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다”며, 난민을 바라보는 인종차별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내용은 SNS상에서 세계적으로 크게 회자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비판했다. (이미지 출처: 트위터)

 

사실 난민을 바라보는 인종차별적인 잣대는 지역적으로 가까운 독일뿐 아니라, 영미권 저널리즘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영국 방송 BBC의 한 기자는 키이우 현지 라이브 방송에서 “푸른 눈에 금발 머리 유럽인들이 매일 푸틴의 미사일에 죽임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발언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의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CBS에는 “(우크라이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문명화된 나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도 “(우크라이나인들) 이들은 넷플릭스와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문제적 표현이 여과 없이 나갔다.

 

엘리트 집단인 저널리즘 업계가 보여준 행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차별 의식이 구조적, 제도적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일간지 타즈(Taz)에 <서유럽과 그 경계들: 모순된 자아상>이라는 논평을 쓴 암자히드는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떠나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들어온 시민들에 대한 난민 인정 및 체류권 발급 절차가 단시간에 개선된 점을 예로 들었다.

 

이런 제도 개편을 가능케 한 근거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며칠 뒤 발효된 지침인 ‘EU Directive 2001/55/EC’였다. 그런데 이 지침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난민에 대한 대응으로 2001년에 채택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효력이 없었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때에도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유보 상태였고, 법안의 존재조차 크게 공론화되지 않았다가 이번에 우크라이나 지지 여론을 타고 발효됐다는 것이다.

 

피란민 중에서도 시민권 없이 우크라이나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은 이번에 개선된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또 다른 차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수만 명의 나이지리아, 모로코, 인도, 중국 출신 노동자나 학생들이 ‘잘못된 때’에 우크라이나에 있었던 바람에 안전한 피란길을 보장받지 못했다. 심지어 폴란드 국경에 도착한 피란 버스에서 따로 분리되어 별도로 입국 심사를 받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편, 진보성향의 매체 슈피겔(Spiegel) 지는 ‘차별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독일 콘스탄츠 법과대학 교수이며 독일 이주 전문가 위원회 다니엘 팀(Daniel Thym) 부의장은 “합법적인 구별 근거가 있다면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과 맺고 있는 법적 관계들에 각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 이중 잣대가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는 ‘인도주의’가 아닌 국제 정치와 법의 관점에서 본 얘기다.

 

인도주의는 ‘우리 대 그들’ 구도를 넘어서야

 

사회 정체성 이론에서는 ‘우리 대 그들’(Us vs. Them) 사고방식이 진화론적으로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인간의 필요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특정 집단에 대한 비이성적인 편애(favoritism)가 작동해 사회가 분화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질적인 집단 간의 분리에서 더 나아가 위계가 형성되면 ‘타자화’(othering)가 일어난다. 다수 집단은 민족, 피부색, 종교, 성별, 성적 지향들을 근거로 다름을 인식해 다른 집단을 분류하고, 소수 집단을 열등하다고 규정하며 다양한 전략으로 배제시킨다.

 

독일/유럽 사회는 과연 시리아 난민을 ‘그들’이라고 규정했을 뿐인가, 나아가 타자화하고 배제했는가?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인도주의(인간애를 바탕으로 인종·민족·국적의 차별 없이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분쟁과 기후위기 등으로 난민이 갈수록 많아지는 이 시대에 보다 엄정한 숙고와 성찰이 요구된다.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미얀마도 기억해달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40여 곳 이상에서 국가 간, 지역 간 전쟁 및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다. (Heidelberg Institute for International Conflict Research, 2021)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에 주둔한 날(2월 22일)에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미얀마 등에서도 폭격이 있었다.

 

▲ 하이델베르크 국제 갈등 연구소((Heidelberg Institute for International Conflict Research)에서 발표한 2021년 기준 세계 지도. 21세기에도 여전한 국가 중심의 군사주의, 배타적 신자유주의 무역,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 등은 세계 곳곳에서 무력 충돌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속적인 이주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노르웨이 난민 위원회에 따르면, 난민의 숫자는 2020년 기준 75개국에서 24억3천8백만명으로 사상 최대치에 달하지만, 국제 인도주의 기금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hiik.de)

 

독립 애널리스트 샤다 이슬람(Shada Islam)은 이유옵저버(EUobserver)에 기고한 논평 <우크라이나, 맞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도 기억해달라>(Ukrain, yes. But Remember Afghanistan and Somalia, too)에서 “경험적으로 볼 때 어떤 인도주의적 비극이 더이상 언론 헤드라인에 오르지 않으면 국제적인 관심을 덜 받고, 인도적 지원금도 줄어든다. 이는 도덕적 무책임일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패배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유럽연합이 세계의 모든 인도주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되지만, 우크라이나를 돕는 동시에 다른 위기 지역에도 지원을 계속할 때만이 정당한 국제 지정학 행위자가 될 수 있다.”

 

[관련 기사]

1) Sonntagsblatt, Rassismus-Expertin über unterschiedlichen Umgang mit Geflüchteten: “Es gibt eine Empathie-Lücke”(인종주의 전문가가 보는 난민에 대한 다른 대우: “공감의 차이가 존재한다”), Oliver Marquart, 2022년 3월 10일

2) Tagesschau, Schwarze Menschen an Flucht gehindert?(흑인들은 피란 저지당하나?), Jan Pallokat, Attila Poth, 2022년 3월 3일

3) Deutschlandfunk Kultur, Wie Unterschiede in der Willkommenskultur entstehen(환대 문화의 차이들은 어떻게 생겨났나), Teresa Koloma Beck, Korbinian Frenzel, 2022년 3월 17일

4) Zeit Online, Guter Flüchtling, schlechter Flüchtling(좋은 난민, 나쁜 난민), Emran Feroz, 2022년 3월 4일

5) NDR, Vom Umgang mit Geflüchteten: Wem helfen wir und wem zuerst?(난민 대우: 누구를 먼저 도울 것인가?), 2022년 3월 27일

6) TAZ, Westeuropa und seine Grenzen: Ein widersprüchliches Selbstbild(서유럽과 그 경계들: 모순된 자아상), Mohamed Amjahid, 2022년 3월 13일

7) Der Standard, Rassismus gegen Flüchtlinge mit “falscher Hautfarbe”(“잘못된 피부색”을 가진 난민에 대한 인종주의), Irene Brickner, Colette M. Schmidt, 2022년 3월 9일

8) euobserver, Ukrain, yes. But Remember Afghanistan and Somalia, too(우크라이나, 맞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도 기억해달라), Shada Islam, 2022년 3월 15일

 

[필자 소개] 하리타 (Harita Jeong)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창작자. 젠더, 이주, 환경 분야의 교차점과 경계들에서 글쓰기, 인터뷰, 강연,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linktr.ee/haritamoonr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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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나귀 2022/05/03 [18:00] 수정 | 삭제
  • 너무 공감합니다. 같은 난민이어도 피부색과 국적에 따라 차별되는 상황이 답답하네요.
  • ㅇㅇ 2022/04/15 [14:59] 수정 | 삭제
  • 너무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유럽상황을 조금은 알게된 것 같아요. 주변국 난민들을 한마음로 환대하고. 인종차별에 대해 토론하는 독일 사회가 우리 사회보다 1.5배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잘사는 나라임에도 난민 인정은 거의 안하는 한국은 우물 안 개구리같이 폐쇄적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나중에 다른 인종 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국경을 건너올 때 독일은 이번 일을 기준 삼아서 더 수용적일 수도 있게되지 않을까요, 그런 희망적인 미래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면면함 2022/04/15 [09:10] 수정 | 삭제
  • 저도 BBC 기자가 말하는 영상 보구서 너무 충격 먹었는데... 아시안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이 글 보면서 다시 그 영상을 보니까 어떤 심리인지는 알 것 같네요. 현지에 있다 보니 속마음이 나와버린 거겠죠. ㅜㅜ 인종주의는 인도주의의 반대말일 수 있겠구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 2022/04/14 [18:30] 수정 | 삭제
  • 역시 믿고보는 하리타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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