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중심의 서사가 아닌 ‘가해자의 자리를 묻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전후’를 담아낸 권윤덕 작가의 『용맹호』

심아정 | 기사입력 2022/04/18 [17:22]

피해 중심의 서사가 아닌 ‘가해자의 자리를 묻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전후’를 담아낸 권윤덕 작가의 『용맹호』

심아정 | 입력 : 2022/04/18 [17:22]

권윤덕 작가의 전작, 일본군 ‘위안부’였던 심달연 님의 이야기를 담아낸 『꽃할머니』의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들은 두 여성의 응시를 마주하게 된다. 원래는 당시의 국제정세를 반영해서 이라크 여성만 그렸는데, 권윤덕은 베트남 여성을 그려 넣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일종의 다짐”이었다고 말한다. 『꽃할머니』가 한국의 한 여성의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자, 지금도 곳곳에서 전시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

 

“이 장면을 그리면서 『꽃할머니』가 미완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일본군 ‘위안부’였던 심달연 님의 이야기를 담아낸 『꽃할머니』 작가 권윤덕은 10년 후,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의 ‘전후’를 담은 『용맹호』를 펴냈다. (촬영: 박상환)


『꽃할머니』(2010) 출간 이후 베트남전쟁 전시 성폭력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던 당초의 계획은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베트남전쟁 관련 그림책 작업은 10년이나 미뤄졌고, 결국 참전군인의 가해경험과 ‘전후’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으로 그 방향이 바뀌었다. 『꽃할머니』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베트남전쟁 당시 전시 성폭력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서 읽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증언과는 달리, 베트남전쟁과 관련해서는 피해여성들의 증언이 제대로 기록되거나 자료로서 축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참전국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 전쟁이 가해 경험의 역사였기 때문에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다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욱이 권윤덕은 『나무도장』(2016)과 『씩스틴』(2019)이라는 전작들을 통해서 이미 ‘우리 안의 가해자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오고 있었다.

 

“『나무도장』과 『씩스틴』은 『용맹호』로 가는 징검다리 혹은 실마리였어요.

『나무도장』에서는 4.3 때 학살을 수행했던 외삼촌,

『씩스틴』에서는 일인칭 시점의 총, 결국 계엄군을 등장시켰어요.

이렇게 ‘가해자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왔던 거죠.”

 

▲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꽃할머니』(사계절, 2010), 『나무도장』(평화를품은책, 2016), 『씩스틴』(평화를품은책, 2019), 『나의 작은 화판』(돌베개, 2020), 『용맹호』(사계절, 2021) (촬영: 박상환)

 

전시 성폭력에 대한 재현을 고민하며

 

2021년 5월 20일, 베트남전쟁 문제를 고민하는 단체와 모임들이 모여 ‘피해를 품은 가해의 자리에서 베트남전쟁을 말하다’라는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용맹호』의 출간을 앞두고, 미완의 상태에서 독자들의 개입 혹은 참여의 여지를 열어 둔 자리였다. 권윤덕은 『꽃할머니』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성폭력 피해장면을 재현하는 데에 가장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폭력을 그리지 않으면서 폭력인지 알아차리게 해야 하는 거죠.

독자들에게 폭력을 그대로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오히려 상상력을 멈추게 만들어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느낌 너머에 있는 것들을 얘기하려면

직접적인 묘사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거예요.”

 

대부분의 성폭력이 수색작전을 하는 과정에서 자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장소는 집의 뒤뜰로 설정했다. 성폭력 피해장면은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찢긴 옷, 벗겨진 신발, 군인들의 군화, 깨진 그릇들 그리고 현재로 이어지는 용맹호의 방 안 엎질러진 물컵 등 사물들의 표정과 죽임을 당한 닭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번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군화를 신고 먼 나라로 오게 된 이들과 평온한 일상을 지내던 이들을 폭력적으로 만나게 하는 ‘구조’를 함께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권윤덕은 이번 작업이 참전군인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도, 그들을 ‘악마화’하는 사회적 인식에 대해서는 커다란 위화감을 토로했다.

 

▲ 『용맹호』에서 성폭력 피해 상황을 재현한 장면.   ©권윤덕

 

“나는 한편으로 당시 국제정세나 한반도의 정치 상황과 연결된 구조적인 문제가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거대한 뜰채를 빠져나가 홀로 고민하고 갈등하며

그러다가 끝내 구조를 바꾸기도 하는 개인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꽃할머니』를 만들면서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했다.”

(권윤덕, 『나의 작은 화판』 돌베개, 2020년, 278쪽)

 

용맹호의 몸에 들러붙은 피해자들의 ‘살’과 ‘삶’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관련 기사에는 유독 여성의 신체를 훼손한 사진들이 많이 등장한다. 『용맹호』에는 분홍색 살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난 용맹호가 보드라운 가슴이 생긴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있다. 피해여성들의 잘려 나간 살과 빼앗긴 삶이 용맹호에게 ‘들러붙는다’는 설정이다.

 

권윤덕은 살이 들러붙는 발상을 참전미군이 쓴 소설(팀 오브라이언 지음, 김준태 옮김,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한얼미디어, 2004)에서 얻었다. 부비트랩을 밟은 동료를 순식간에 눈앞에서 잃은 병사가 사방의 나무로 튀어 붙어있는 친구의 살점을 본 충격을 묘사한 장면을 참고해서 만들어졌다.

 

조각난 몸들은 피해여성의 것이기도, 참전군인의 것이기도, (피해-가해의 구도에조차 놓이지 못하는) 죽어 나간 동식물의 것이기도 한 것 아닐까. 전쟁의 무참함을 참전군인 개인에게 전가할 수도 있는 위험과 커다란 구조만을 들먹이며 참전군인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위험 사이에서 권윤덕은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 너머의 사유란 무엇일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 『용맹호』에서 가슴이 생겨나 당황한 용맹호가 붕대로 압박하고 출근을 준비하는 모습   ©권윤덕

 

용맹호에겐 어떤 날엔 귀가, 다른 날엔 눈이, 그 다음 날엔 발목이 하나 더 생겨난다. 수류탄이나 부비트랩, 그리고 총검 앞에서 산산조각 났거나 찢긴 누군가의 신체는 수십년이 지난 어느 날 용맹호의 몸에 들러붙게 되고, 눈과 귀, 그리고 발목이 하나씩 더 생겨난 그는 과거로부터 육박해 오는 풍경과 소리 때문에 똑바로 걸을 수조차 없게 된다. 권윤덕은 아래의 컷을 그릴 때 가장 마음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리로 가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그리로 안 가고 있는 거예요.

안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쪽으로는 가 지질 않는 거죠.

저는 이 장면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는 용맹호의 몸짓이 되게 슬펐어요.

너 그리로 가지마 힘들어, 그리로 안 가도 살 수 있잖아…라고 말하면서 그렸어요.

그래도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을 직면해야만 열리는 세계가 있으니

안 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가해자들의 말하기는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까 

 

공개토론회를 앞둔 어느 날, 2018년 베트남시민평화법정에서 증언한 이후 실제 국가배상소송 재판에서도 증언대에 선 참전군인 A를 권윤덕 작가와 함께 만났다. A는 내가 시민법정의 조사팀으로 활동하면서부터 지금껏 만나오고 있는 상이군인이다. 매일 아령을 해서 만들어진 울룩불룩한 팔과 다부진 체격의 A는 외모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용맹호를 쏙 빼 닮았다. 그림책 초안을 넘겨보며 전쟁의 참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A는 ‘의외의 말’을 했다.

 

“나는 그 여자들이 무서웠어. 무서워서 그렇게 못 했어.”

 

용맹한 해병대 첨병이었던 그가 강간의 위기에 놓인 여성들을 보면서 무섭다고 느꼈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엔 무섭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무섭다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에 걸쳐서 전장에 대한 여러 조언을 듣고 헤어졌는데, 이튿날 아침 A에게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잊고 지냈던 일들이 다시 떠올라 몹시 괴로운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 권윤덕 작가는 참전군인 A를 만나 여러 상황들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촬영: 아정)

 

누군가는 이러한 그의 심정을 참전군인들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증상 혹은 진단명으로 깔끔하게 말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참전군인의 가해 혹은 목격의 경험을 단순히 ‘병리화’ 하는 것은 자칫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책임을 소거할 우려가 있는 것 아닐까.

 

권윤덕은 참전군인 A와의 만남 이후에 용맹호가 어린 딸들의 빨래를 빨아 너는 장면을 추가했다. ‘전후’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A는 “어린 딸들을 혼자 돌봐야 했던 시간들”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그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이었다. 전쟁이 전투로만 상상될 때, 육아와 돌봄에 힘겨워 하는 참전군인의 모습은 상상될 수 없다. 베트남전쟁의 ‘전후’는 이제 다르게 상상되어야 하며 그러한 전제 위에서 참전군인은 사회와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야기는 분홍색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용맹호가 길바닥에 쓰러지고, 그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몰려와 구급차를 부르는 장면에서 끝난다. 모여든 이들은 용맹호의 과거를 모른다. 누군가를 살려내는 일은 전력(前歷)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앗아가는 건 우리의 목숨뿐만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일지도 모른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토론회 때 청중들 중 한 사람의 발언으로 추가되었다. “미국이라는 배경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미국을 소거하면 베트남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인지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독자의 이러한 개입 혹은 참여는 “1965 파병기념”이라는 문구와 성조기를 상징하는 문양이 더해진 로고를 그려 넣음으로써 반영되었다.

 

▲ 독자의 개입으로 추가된 마지막 컷. (촬영: 박상환)

 

권윤덕 작가에게 참전군인들이 모인 곳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생각과 마음을 나눠보자는 제안을 했다. 보훈병원이나 상담치료실 혹은 전우회에서는 할 수 없었던 말들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말일까. 가해자들의 말하기는 가해자의 말과 피해자의 말을 부단히 왕복하며 화자와 청자가 서로를 ‘흔들고’ 서로가 ‘흔들리는’ 분열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가해자는 애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가해자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새롭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이제껏 당연시되어온 폭력을 멈추게 할 힘이 깃들어 있다. ‘가해자’라는 사회적 위치를 해체해 나가는 것, 가해자들의 말하기는 이러한 논의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피해’와 ‘가해’는 비대칭적이다.

피해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이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겪게 되지만

가해는 대부분 자리나 위치의 효과다.

그래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가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는 것.

이는 책임을 진다는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만 인식되어, 회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거기에는 연루와 자신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책임을 진답시고 죽어버리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주체성의 결여지만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회성의 결여를 뜻한다.

‘가해자’라는 사회적인 위치를 해체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모여서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아주 중요할 것 같다.”

(후지이 다케시, 공개토론회 ‘피해를 품은 가해의 자리에서 베트남전쟁을 말하다’를 앞두고)

 

[필자 소개]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동물·난민·여성·가해자성을 키워드로 공부와 활동을 이어가면서 대학 바깥에서 새로운 앎과 삶을 모색하는 중이다. 주요역서로 『유곽의 총파업』(논형, 근간), 『일본인 ‘위안부’-애국심과 인신매매』(논형, 2021) 등이 있고, 최근에 쓴 글로는 「외국인보호소와 출입국관리체제의 현재적 계보」(『황해문화』, 2022), 「페미니즘과 생태적 관점으로 다시-쓰는 ‘민’들의 법정의 계보」(『사이間SAI』, 2021), 「가해국 여성들의 피해, 일본인 ‘위안부’문제를 어떻게 ‘문제화’할 것인가」(2021), 「민간인학살 수행 병사들의 PTSD와 가해자들의 말하기」(2020)등이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혜성 2022/04/20 [16:26] 수정 | 삭제
  • 근래 읽은 글 중에서 제일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이었어요. 인용문까지 정말 날카로운 분석이네요.
  • HJE 2022/04/19 [20:21] 수정 | 삭제
  •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증언을 한 참전군인이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네요. 주위에 "참전용사"들만 많이 계셔서요... ㅠㅠ 가해자성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 다시금 곱씹어보려고 합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과 기사네요.
  • 독자 2022/04/19 [14:25] 수정 | 삭제
  • 그림을 통한 서사가 어떤 것까지 담을 수 있는지 내 상상 너머의 상상을 펼치는 작품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네요.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