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글쓰기 공동체’를 만났나요?

<책방에서 밑줄 긋기> 어딘 작가의 『활활발발』을 읽고

달리 | 기사입력 2022/04/19 [19:17]

당신도 ‘글쓰기 공동체’를 만났나요?

<책방에서 밑줄 긋기> 어딘 작가의 『활활발발』을 읽고

달리 | 입력 : 2022/04/19 [19:17]

[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청년 여성 작가들의 ‘활활발발’ 기세를 보며

 

글 잘 쓰는 지인이 ‘이슬아 작가에게 질투가 난다’는 말을 했을 때 난 몰래 안도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나만 찌질한 글쟁이가 아니었어! 휴우 다행이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쓰고 잘 써?” 

포인트는 그거였다. 지인의 말에는 질투를 넘어 감탄과 존경이 담겨 있었다. 

“그러게요. 그런데, 많이 쓰면 잘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앞에 놓인 음료 빨대를 쭉쭉 빨며 무심하게 답했지만, 솔직히 나도 그 비법이 무지 궁금했다.

 

작가가 어느 경지에 올랐다고 하여 공장처럼 글이 자동으로 척척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작품의 양과 질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슬아 작가를 비롯해 최근 눈부신 활동을 보여주는 일군의 청년 여성 작가들은 재능과 함께 성실함을 기본기로 갖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SNS로 보는 그들의 글 밖 일상은 예술가의 허세가 아닌 건강한 생활력과 담대한 정치 활동이 동시에 일렁이고 있다. 그들의 ‘활활발발’한 기세를 보노라면, 날마다 모닝페이지를 쓰기는커녕 아침에 일어나 눈곱을 떼는 것부터 우주의 기운이 필요한 나로서는 남은 생에 반성문만 써도 모자랄 것이다.(그 반성문도 입으로만 쓰겠지만.)

 

▲ 책 『활활발발: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어딘 지음, 위고, 2021)   (사진: 달리)

 

“요즘엔 궁지에 몰릴 것 같으면 문득 스승을 생각합니다. 저를 가르친 여자들은 모두 머리가 짧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글도 무진 잘 쓰고 말도 무진 잘했습니다. 그 여자들의 압도적인 지성 밑에 납작 깔려서 옴짝달싹도 못 하며 이야기 쓰기를 배웠죠. 섹스 아니면 강간 얘기 하는 화난 여자애. 스승들은 그 애를 안전한 곳에 뉘어 뻣뻣한 목에 일침을 놓아주고 긴요한 창피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깨부순 자의식의 조각으로 공기놀이하는 법을 가르쳤죠. 무엇이 달라졌는고 하니 지금은 화가 덜 나고요, 밥을 잘하게 됐습니다.” ―‘담’의 글, 「지기의 편지4: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중에서(『활활발발』 90~91쪽)

 

작년부터 같이 글을 쓰며 서로의 글을 보아주는 언니들 중 하나가 어느 날 단체 메시지방에 위의 글을 보내왔다. 멋진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그 청년 여성 작가들’을 키워낸 스승 어딘(김현아)이 그들의 글 수련 공간이던 ‘어딘글방’에 대한 책을 냈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그곳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런 스승을 만날 수 없었을까. 사실 이것이 가장 부러운 점이었다.

 

‘어딘글방’ 환대의 글쓰기 공동체

 

아침 일곱시 반에 등교해 밤 열한시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하는 입시지옥의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세상이 다 싫고 나 자신도 구려 보였다. 십 년 가까이 지나서야 청소년 우울증을 앓았을 수도 있겠다고, 뒤늦게 추측했다. 일학년 내내 교실 뒷문 옆 구석에 앉아 이어폰 끼고 엎드려 있던 애가 바로 나였다. 찰랑거리는 무기력에 발목이 늘 잠겨 있는 듯했던 그 느낌과 감각에 대해 누구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혼자 시라는 것을 끄적였다.

 

백날 엎드려 있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문학 선생이 내 시를 보고는 친절하게 굴기 시작했을 때, 그 선생의 추천으로 백일장에 나가 상을 탔을 때, 무거운 발목이 진창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 아버지의 후배인 시인이자 국문과 교수에게 내 시 몇 편을 보내고 나서 나는 더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그는 내게 친절하고 지독한 평을 보냈다.

“너는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 그런데, 앞으로 산문을 써보는 게 어떠니? 네가 쓴 시보다 동봉한 편지가 훨씬 감동적이었어.”

 

그의 말 한마디에 시작(詩作)을 그만둔 것이 지나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싫고 자신조차 싫던 나에게 시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만큼 잘하고 싶었고, 잘하고 있다는 믿음이 간절했다. 잘하는가에 대한 의심에 확인사살을 한 평을 듣자마자 무기력에 잠겨 있던 발목은 그대로 꺾여 주저앉아버렸다. 서로 사랑한다고 굳게 믿었는데 알고 보니 완벽한 짝사랑이라는 잔인한 선고를 받은 느낌이랄까?

 

나 같은 유리멘탈이 ‘어딘글방’에 갔다면 책의 도입에 나온 어떤 사람처럼 첫 날 울면서 뛰쳐나갔을지도 몰라. 책을 읽는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길가의 돌을 툭툭 차며 걷던 고등학생의 내가 자꾸 어른거렸다. 지금 누군가 내게 같은 평을 다시 한다면, 어딘글방에서 뛰쳐나간 사람처럼 “저에 대해 뭘 아세요?” 대꾸하고 책상에 계속 앉아 시를 쓰는 반전이 일어날 텐데.

 

▲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에서 2021년 상반기에 주최한 <여성 시 필사 모임>  (사진: 이리)

 

매주 수요일 저녁 청소년과 청년들이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모여 각자 글 한 편씩을 내놓는 어딘글방의 풍경은 상상만 해도 두근거린다. 내 글을 보여준다는 건 “내 마음의 우물을 어디까지”(52쪽) 공개할 것인가와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알고 보면 글쓰기는 용기와 관련된 행위다.”(15쪽) 어딘글방의 합평회가 그토록 오랜 시간 유지되고, 이후 또 다른 글방들로 퍼져 나간 것은, 글쓰기 공동체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죽비”(167쪽)임에도 “우리 모두 쓰는 사람”(7쪽)이라는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은 글에 대해 피드백하며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정의하고 그것을 설파하지만, 한편으로는 글쓰기와 작가란 세상의 편견을 지우는 일이자 통념에 저항하는 사람임을 함께 강조한다. 또 자신의 제자인 ‘글방러’들과의 관계와 대화 속에서, 새로운 것을 주저하지 않고 포용하며 함께 걷는 길을 넓혀나간다. 이렇게 스승과 동료, 경쟁자와 협력자로서의 관계와 위치는 끊임없이 교차되고 때론 포개지며 글방은 환대의 공동체로 거듭난다.

 

통증에 시달리는 젊은 환자, ‘다른’ 감각과 소통방식을 가진 장애인, ‘불온하고 낯선’ 이야기를 하는 게이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통해 삶의 다른 층위를 발견하고 연대하는 법을 익혀가는 과정은 글을 ‘잘’ 쓰는 법을 넘어 모두가 ‘주체’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광활한 우주에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 “경계를 구획하는 일은 그러므로 작가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닐까.”(67쪽) “글이 주는 위안이란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고 충돌하고 비껴가고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우주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46쪽)

 

함께 쓰는 글쓰기의 힘

 

시인이 나의 운명이 아님에 슬퍼한 지 십여 년이 지나 지리산으로 귀촌하고 나서야 운 좋게도 나의 글방, 글쓰기 공동체를 만났다. ‘동네 언니’들이 글쓰기 동지가 되고, 함께 잡지와 책을 만들며 우리는 합평회 대신 ‘부흥회’를 가졌고, 마을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했다.

 

▲ 2021년 봄, 우리 지역 여성 글쓰기 모임 '빛날'에서 주최한 글쓰기 강의와 합평회 모습.   (사진: 달리)

 

생생한 날 것의 삶이 스스로를 보듬는 글쓰기와 만날 때,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을 때, 그리하여 언어를 획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아랫배에서부터 힘이 움트고 동시에 세계는 전진했다. 공동체에서 성평등 의제가 점차 활발하고 다양하게 꽃피우는 장면들을 지켜보며, 나는 언젠가 이것 또한 기록해 남기게 될 거라 생각하고, 내 안에 이야기의 샘물이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딘 역시 제자에서 동료가, ‘글방러’에서 작가가 된 그들의 잠재력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시대정신의 핵이 될 것”(127쪽)이라는 예언은 이미 현재 진행 중인 듯하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학생들과 영국을 여행하던 어딘은 브론테 자매의 집과 제인 오스틴의 책상, 베아트릭스 포터의 다락방을 보며 이제 글방 밖으로 나가 성장하게 될 그들의 미래를 떠올린다. “그녀들의 눅눅한 지하방이, 오래된 책상이, 삐걱거리는 옷장이, 자판 위 히읗(ㅎ)과 이(l)가 닳아서 희미해진 노트북이, 훗날 어쩌면 누군가가 오래 들여다보고 가만히 쓰다듬어볼 그런 것들이 될지도 몰라.”(88~89쪽)

 

서로의 글을 오래 들여다보고 가만히 쓰다듬어주는 그 시간들이 쌓여 우리의 세계는 끝없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진다. 혼자가 아닌 함께 쓰는 글쓰기의 힘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모두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세계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도달하게 만든다.

 

[필자 소개] 달리.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의 공동운영자이며 에세이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의 작가이다. 완간된 지역독립잡지 『지글스』를 비롯해 여성들과 함께 글 쓰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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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galong 2022/04/25 [20:48] 수정 | 삭제
  • 날마다 모닝페이지를 쓰기는커녕 아침에 일어나 눈곱을 떼는 것부터 우주의 기운이 필요한 나로서는 남은 생에 반성문만 써도 모자랄 것이다.(그 반성문도 입으로만 쓰겠지만.) 이 부분 읽다 제 모습이랑 너무 겹쳐져서 육성으로 푸하하하 웃음이 나왔어요! 저도 온라인으로 처음 글쓰기 모임을 해보았는데 이 좋은 걸 왜 진작 해보려고 안했나 싶었어요. 너무 괴롭지만 계속 하고 싶은 글쓰기… 모든 글쓰는 여성들을 응원합니다!
  • KuGu 2022/04/21 [17:11] 수정 | 삭제
  • 동네서점들이 많아져서 반가워요. 살롱드마고.. 놀러가고 싶네요.
  • 레몬트리 2022/04/20 [10:40] 수정 | 삭제
  • 저도 생각해보면 자의반 타의반 함께한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글을 가깝게 느끼게 되고 글쓰기를 어렵지 않게 생각하게 된 것 같네요. 어쨌든 정기적으로 글을 써야 하니까 썼지만 그게 습관이 된 것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경험도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글쓰기모임을 이번엔 내가 만들어볼까 하는 마음도 듭니다.
  • 찰나 2022/04/20 [03:48] 수정 | 삭제
  • 청년 여성 작가들의 ‘활활발발’ 기세라는 표현을 보고 너무 재밌어서 막 웃었습니다. 공감한다는 얘기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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