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나라 타투 인구는 반영구 화장 등을 포함하여 1천3백만 명에 이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26.9%, 30대 25.5%는 타투 시술을 받아봤다고 답했다. 그리고 당시 국내 활동하는 타투이스트들의 수는 미용 문신과 서화(書畫) 문신을 합쳐서 2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타투는 미용 문신과 서화 문신,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서화 문신을 하는 타투이스트는 2~3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2020년 서화 문신을 하는 타투이스트들이 모여 타투유니온(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산하 지회)을 결성했고, 현재 소속된 조합원은 650여 명이다.
최민정 씨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며 타투이스트이자 타투유니온 초대 사무장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종로에 위치한 타투 숍을 찾았다. 숍에는 서너 명의 타투이스트들이 타투 문양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한창 타투 시술이 진행 중이었다.
해외여행에서 품은 꿈, 타투이스트
타투이스트들의 남녀 비율은 정확하게 집계된 것은 없고, 타투유니온 조합원들의 경우 60~70%가 여성이다. 타투에 접근하기가 쉬워지면서 타투이스트 수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남성들이 많았으나 15~16년 전부터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타투이스트가 되려면 타투이스트가 여는 수업을 듣거나, 타투이스트의 문하생이 되거나, 무작정 타투이스트에게 가서 배움을 청한다. 수강생은 수업료를 지불하지만 문하생은 숍에서 무보수로 일하는 것으로 수강료를 대신한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작업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데뷔하게 된다.
“제가 20대 초반일 때는 SNS가 활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루트가 없어서 막연하게 그냥 무서워만 했는데… 외국 여행을 갔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막 타투를 하고 있는 거예요. 딱히 범죄 같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정 씨는 어릴 때부터 타투에 호기심을 가졌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문신은 조폭이나 범죄와 연관되어 뉴스에 나왔다. 그러던 중 20대 초반 외국 여행에서 타투의 세계를 만났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배지, 화장으로 자신을 표현하듯이 타투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한국에서는 금기시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세계적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꿈을 다시 마음에 품게 된 여행이었다.
사람의 몸에 평생 남을 문양을 새기는 일
민정은 2015년 큰 기업의 정규직 웹디자이너로 취업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일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 고민하던 차에, 고시원 위층에 있던 타투숍과 인연을 맺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2년 동안 타투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 선생님이 상주하고 있어서 계속 물어봐가면서 배우고, 선생님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 연습했다.
타투를 해도 될 만큼 손이 능숙해지자, 친구를 섭외해서 첫 타투를 했다. 하지만 손이 떨려서 30분 동안 바늘을 피부에 찌르지 못했다. 사람을 상대로 한 첫 작업이니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친구가 흡족해해서 첫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017년 타투이스트로 완전히 전업했다.
“지금이야 이 일을 오래 했으니까 편안하게 하는데 처음에는 엄청 무서워요. 사람 몸에 평생 문양을 남기는 것도 부담이고, 한번 잘못하면 그대로 몸에 평생 남는다는 것 자체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그것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도 분명히 있고요.”
하지만 보수적인 부모님은 타투이스트가 된 딸의 직업을 인정하기 어려워하셨다.
“어머니가 서울 올라오셔서 뭐 하려고 그러냐? 그래서 그냥 그림이나 좀 그려보려고 그런다고 했더니, 문신하려고 그러지? 이러시는 거예요.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그전부터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대요. 하고 싶다고. 그때 들키고 울고불고 싸우고… 한 1년 동안 집에 못 내려갔어요.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타투이스트로 산다는 것
민정은 꾸준히 SNS에 그림을 올리는 것으로 홍보를 한다. 손님은 몸에 새기고 싶은 것을 명확하게 요구하거나, 그려놓은 그림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이걸 타투로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하는 손님도 있다. 민정의 손님은 대체로 “이거랑 이거랑 이거를 합쳐주세요”가 많은 편이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아무거나 해 달라’고 할 때다.
“제가 느끼기에 사람들은 모두 원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표현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 좋아요, 라고 할 때는 제가 그럼 이건 어떠세요? 하고 물어보면 이건 좀… 이런 식으로 약간 스무고개처럼 이어지는 거예요. 이럴 땐 원하는 게 뭔지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죠. 이거는 왜 싫으세요? 이런 건 어떤 점이 좋으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여쭤보면서 풀어나가는데 아직 마음속에 못 정하신 분들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손님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결정되면 그때서야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을 전사(轉寫)라고 하는데, 전사 작업이 끝나면 도안 전사를 프린터로 뽑아 피부에 찍으면 몸에 그림이 남는다. 거기에 타투 작업을 한다. 전사지를 피부에 찍기 직전, 손님에게 마지막 선택을 물어본다.
“제가 했던 타자기 타투를 보고 오셔서 너무 마음에 든다고, 타자기로 해 달라고 하며 까만 타자기를 고르셨어요. 작업을 했는데, ‘왜 이렇게 까매요?’ 이러시는 거예요. ‘까만 타자기라서 까맣게 했는데요’ 했더니 너무 까맣대요.”
타투이스트가 만족스러운 작업이어도 손님은 정반대일 수 있다. 타자기 타투에 불만족한다고 했던 손님에게 타투가 아물면 다시 방문하라고 했다. 손님이 올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감은 커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주변에서 타투가 너무 예쁘다고 칭찬했다’며 손님은 만족해했다. 민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비로소 긴장이 풀려 많이 울었다.
민정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작업을 한다. 한 번 시작하면 짧게는 5시간, 길게는 8시간에 걸쳐 작업을 한다.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편이다.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확 줄었어요. 타투를 막 시작한 친구들 중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작업을 하나 더 할 수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할 친구들이에요. 왜냐면 작업하는 게 너무 소중하니까. 그러다 보니 낮은 금액으로도 작업을 해버려요. 그런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시장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 시장 가격이 낮아지는 경향은 더 가속화되었다. 타투로 유입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빠르게 변한 측면도 있다. 시장 가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작업자마다 편차가 있어 평균가를 책정할 수 없다.
‘안전한 타투’를 위해선 법과 환경이 바뀌어야
우리나라는 1992년 대법원에서 타투를 의료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의료인’만 타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 판례는 일본의 판례를 그대로 베껴 온 것인데, 정작 일본은 2020년 타투를 합법화했다. 전 세계적 흐름은 타투를 합법적 예술 행위로 인정하는 추세다. 외국은 법령을 통해 보건위생을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타투 시술을 의료인으로 한정하다 보니 자체적인 위생 규정이 없다. 그 때문에 위생 및 감염 관리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타투유니온과 녹색병원은 타투 작업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타투를 위한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를 제작했다.
“정부의 판단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타투라는 게 단순히 바늘을 찔러 넣는 행위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게 80~90%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부분은 완전히 무시한 채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기 때문’에 의료법에 위반된다고 보고 있어요.”
손님이 신고를 하는 순간, 타투이스트들이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얼마나 순수하게 정직하게 작업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술 후, 신고를 빌미로 협박과 금품 갈취를 하는 손님이 더러 있다.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타투이스트들은 전과자가 될까 봐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쉽지 않다. 성희롱, 성추행 문제는 여성 타투이스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 타투이스트들은 여성 손님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타투 작업을 하다 보면 신체접촉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의도치 않게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와 함께 크고 작은 문제가 늘 상존해 있어 소수든, 다수든 그룹으로 숍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팔에 작업을 하는데 가슴 밑으로 손님 손이 들어왔어요. 손님이 내 가슴을 주물렀어요’ 그러는 거예요. 그 손님이 오래 전에 성추행범으로 지명수배가 내려진 상태였나 봐요. 경찰에서 전화 와서 혹시 이 사람 타투 받고 가지 않았냐? 연락처 아느냐? 이렇게 물어봐서. 너무 위험했을 수도 있고 소름이 돋아요. 이런 것 때문에 개인 숍을 못 차려요. 혼자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어도.”
타투가 불법인 한국을 떠나 해외로 가는 K-타투이스트들
타투에 대한 국민 인식은 많이 변했다. 다리, 손, 팔, 쇄골, 등, 어깨, 허벅지 등 다양한 부위에 타투를 한다. 좋아하는 동식물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 의미 있고 독특한 문양이나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레터링(lettering)을 새김으로써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 타투 하나만 잘 새겨 넣어도 여러 액세서리가 필요 없을 만큼 개성 있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 타투 시술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옛날에는 타투를 한 사람들이 가리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막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니거나, 길에서 타투를 한 사람이 많이 보일 때 반감이 많이 없어졌다는 걸 느끼죠. 연령대가 있는 손님들이 올 때도 많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예전에 따님이 먼저 타투를 하고 가셨는데 아버님이 우리 식구 다 받고 싶다고 하셨어요. 처음에는 따님을 혼내려고 그랬대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나쁜 것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고 그냥 그림을 예쁘게 그려놓은 거잖아요. 가족들이 다 같이 하면 의미도 있고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K-타투는 전 세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SNS 등을 통해 해외 문의가 많아지고 있고, 타투를 하려고 한국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많아졌다. 2015년 고용노동부는 유망한 신직업으로 타투이스트를 선정했고, 국세청은 2020년부터 타투이스트가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도 2021년 4월에 타투유니온 조합원 두 명은 각각 1년 반, 2년 형을 선고받았다. 법과 제도가 따로 놀고 있는 꼴이다. 이처럼 시대와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제도로 인해 해외로 나가는 한국의 타투이스트들이 늘고 있다. 미국 뉴욕과 캐나다의 경우 대형 스튜디오에서 타투이스트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예술가로 인정해주는 해외에서는 타투이스트들이 기량을 열심히 펼칠 수 있게 된다.
“제 주위 친구 중에 반 넘게는 다 외국으로 나갔어요. 외국에서 훨씬 좋은 조건으로 대접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서 살 이유가 없다면서요. 정말 많이 나가는 것 같아요.”
타투이스트들은 주로 예명을 사용한다. 민정은 ‘무미’다. “인생이, 몸이 건조해서 무미예요.” 본인이 지은 예명이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가들과 달리, ‘무미’는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가 별로 없다. 다만 남들의 얘기를 듣고 그것을 그림으로 풀어가는 과정이 좋다. 무미에게 타투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몸에 새기는 일”이다. 자기의 이야기를 평생 몸에 새기는 타투. 미술관에 그림이 걸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무미’는 그래서 타투라는 직업 자체가 좋고 평생하고 싶은 일이다.
인터뷰 후, 최근 ‘무미’는 끝내 친구들이 있는 캐나다로 떠났다. 모국에서 품어주지 못해 떠나는 길이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무미는 캐나다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외국에서 성공하는 동안 국가는 아무것도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다. 한국의 수많은 ‘무미’가 “어떤 것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나고 자란 곳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기를 빌어본다. 그는 헤어지면서 “10년 후면 한국 타투 시장도 더 밝아지고 건강해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 소개] 변정윤.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사무국장.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기를. 『밀양을 살다』, 『얼굴들』. 『숨을 참다』를 함께 썼다.
[연재 팀 소개]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일하고 글 쓰는 여자들의 모임. 『기록되지 않은 노동』(삶창, 2016)이라는 기록집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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