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활동가들이 장애인 시위에 연대하는 이유

[재생산의 정치]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김보영 | 기사입력 2022/04/28 [17:48]

‘낙태죄’ 폐지 활동가들이 장애인 시위에 연대하는 이유

[재생산의 정치]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김보영 | 입력 : 2022/04/28 [17:48]

외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 4월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멀게만 보이는 국회 앞을 누구나 자신이 겪은 차별을 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목적지로 이동시켜주는 수단이었던 지하철을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을 감각할 수 있는 현장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노란 리본을 달고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고, 낙태죄가 폐지되었건만 여전히 임신중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낸 사람들도 있다. 4월의 서울은 곳곳이 투쟁 현장이었다.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

 

4월에는 ‘연대’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처럼 여러 단체가 모인 단위 이름에 붙은 ‘연대’라는 글자의 무게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사전에서 ‘연대’의 의미를 찾았다.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과 같은 뜻이라고 나온다. 연대라는 건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이고, 도모하는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연대’의 의미를 설명하는 문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지만, 함께 연결되고자 하는 현실의 시도는 어렵고 고단하다.

 

▲ 지난 4월 20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에 참여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활동가들의 모습. ©셰어

 

세상의 차별과 불평등을 줄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연대’에 기반해 활동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해 겪은 각자의 고통을 나누고, 그 구조를 평등의 방향으로 함께 바꾸기 위해서일 것이다. 연대의 과정이 쉬울 리 없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대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기에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라고 계속해서 물을 수 있기에 연대가 시작되고 계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계속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살아가고 싶게 하는 마음은 결국 ‘나는 당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언제까지나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우리는 계속해서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함에도 계속해서 그것을 알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함께 겪기 위해 서로에게 가닿고자 하는 시도가 연결을 만들 수 있다. 그 시도가 실패를 이어가더라도,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되어줄 것이다.

 

재생산의 정치는 어떤 연결을 만드는가

 

한국의 ‘낙태죄’ 폐지 운동은 연대를 통해 재생산권 운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재생산 정치를 확장한 사례이다. 사실 ‘낙태죄’를 폐지하고자 하는 운동은 여러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다. 예컨대 장애나 질병이 있다고 진단된 태아를 출산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한국의 ‘낙태죄’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짚어내고, 임신중지를 죄로 규정하는 사회가 어떻게 장애인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낙태죄’ 폐지운동이 ‘모두’를 위한 행동이 될 수 있도록 애써온 연대 단위이다.

 

모낙폐 이전에도 ‘낙태죄’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물론 있었다. 2010년 결성된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이하 임출넷)도 ‘낙태죄’를 사회적 이슈로 제기한 연대체다. 여기에는 여성단체뿐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진보정당 등이 참여했다. 임출넷이 만들어진 시기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임신중지 시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면서 ‘처벌 정국’이 형성된 때이기도 하다. 임출넷은 여성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러 상황이 있음을 강조하며, 임신중지를 하는 당사자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임출넷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모자보건법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도입해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받을 수 있는 허용 범위를 넓히자는 정도의 제안에 머물렀다. 이는 ‘낙태죄’의 존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 부합하는 특정한 사유에 한해 국가가 임신중지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에 머무르며, 다양한 위치성을 가진 당사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담아내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 2017년 9월 28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 모습. 참가자들의 발언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https://stoprape.or.kr/702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러나, 몇 년 후 상황은 달라졌다. 폴란드의 ‘검은 시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불붙었고,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낙태죄’ 완전 폐지를 외치면서 사회적 여론도 변화했다.

 

특히 2017년 발족한 모낙폐를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 운동은 재생산 정치를 좀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확장시켰다. 그 힘은 무엇보다 함께 모인 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는 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모낙폐 발족 기자회견에서는 장애여성, HIV 감염인,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동안 익숙하게 접해왔던 경험담이 임신중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이의 말로 이어졌고, 각기 다른 말들은 붉은 끈으로 연결되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공통된 사건을 겪더라도 그 경험이 똑같지 않으리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통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안에서조차 각자는 다른 경험을 한다. 모낙폐가 펼쳐온 운동은 우리가 같은 ‘여성’이라거나, 우리가 임신중지를 겪었기 때문에 같은 고통을 갖고 있으리라 단정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 운동은 더욱 급진적이고 포괄적일 수 있었다. 100명의 사람에게서 100가지의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기에, 이 시기의 한국 ‘낙태죄’ 폐지 운동은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 이상의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붉은 끈으로 잇고자 했던 ‘낙태죄’ 폐지 운동은 ‘재생산 정치’가 차별받는 이들을 잇는 하나의 이음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연대는 힘을 모으는 것이지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다

 

작년에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에 관한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SNS에 그 소식을 올렸는데, 어떤 이가 댓글로 질문을 남겼다. 단체 이름에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가 버젓이 써 있는데 그게 대체 세월호와 무슨 상관이냐는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와 비슷한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는 불평등과 차별, 폭력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세계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는 가치들이다. 그러니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폭력에 저항하는 싸움에 우리가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냐고.

 

▲ 2017년 9월 28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참여자들이 임신/출산에 있어서 국가의 통제를 겪은 자신의 경험을 발언하였다. 발언과 관련된 날짜가 적힌 하얀 티셔츠를 입고 붉은 끈으로 연결된 참여자들의 모습. ©한국성폭력상담소

 

나와 같은 페미니스트들을 두고, 여러 의제를 ‘쓰까먹는다’(섞어먹는다)며 일명 ‘쓰까페미’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이 지면을 빌어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은 건, 연대는 여러 문제를 섞어 요구를 흐릿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연대는 우리의 고통이 엮여있는 지점을 발견하게 만듦으로써, 고통을 양산하는 구조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힘을 선사한다.

 

장애여성의 경험을 알지 못했더라면, 모자보건법과 ‘낙태죄’를 통해 우생학적 가치체계가 우리에게 어떤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의료기관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어렵고, 출산 여부와 이주민으로서의 지위가 긴밀히 얽힌 이주여성의 경험을 알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의료체계 속에서 임신중지를 포함한 성·재생산 권리가 얼마나 보편적으로 침해되고 있는지, 이주와 젠더 정책이 인구정책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의 경험은 ‘낙태죄’ 폐지를 위한 중요한 힘이 되었다. 그것이 연대의 힘이다.

 

지금의 세계는 다른 이의 삶을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쉽게, 그리고 익숙하게 지니게 한다. 다른 이의 삶을 알고 싶다는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 마음이 없고서야 이 세계의 문제는 그 무엇도 해결될 수 없다. 연대의 가능성을 믿는 일, 이 세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갈 동료를 만드는 일은 나의 삶을 넘어 다른 이의 삶에 질문을 던질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필자 소개] 김보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서 활동하고 있다. 근간 『턴어웨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자들』(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지음)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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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숏좆 인셀남들ㅉㅉ 2022/06/08 [15:04] 수정 | 삭제
  • 위에 한남 지는 그 더러운 여자한테서 태어난 주제에 누구보고 더럽다고 하는지 역시 파오후 인셀남 답네 지들은 여자들 강간하고 죽여도 처벌 제대로 받지도 않으면면서 여자들 더럽다 하는거보면 괜히 잠재적 범죄자들이 아님. 102030남자들 진짜 개쓰레기들이다
  • 페미는냄새나 2022/05/10 [08:50] 수정 | 삭제
  • 더러운여자들 에효 이미 한해 수만명을 낙태로 죽여도 무죄다
  • 독자 2022/05/01 [13:09] 수정 | 삭제
  • 연대의 마음에 대한 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마음을 내는 것이 먼저이고, 연대의 지점은 사실 찾아나가는 것일 수도 있죠.
  • 2022/05/01 [03:46] 수정 | 삭제
  • ㅇㅇ아 찐따처럼 살지마라
  • 초이 2022/04/30 [11:04] 수정 | 삭제
  • 가끔씩 낙태죄가 폐지되었다는 게 현실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승리의 역사를 쓴 것이.
  • S 2022/04/29 [12:49] 수정 | 삭제
  • 낙태죄 폐지됐는데 왜 대체입법 안함? 민주당 너무 실망스럽고 무력한 정권이다.
  • ㅇㅇ 2022/04/29 [11:34] 수정 | 삭제
  • 타인의 권리를 빼앗아 가면서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꼴이 역겹기에 여론이 이따구지.. 낙태도 똑같음. 야스는 즐기면서 책임을 지지않는 쾌락주의를 바탕으로 하는거잖아 ㅋㅋ 전형적인 언더도그마의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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