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음악 혹은 음악가를 좋아하는 팬들 중에는 그 음악이 자신과 같은 시대, 같은 세대의 것이어서 공감하고 좋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오늘 소개할 밴드는 그런 면에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독특한 정체성과 음악을 선보이며, ‘어려울 것이다’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는 이탈리아의 록 밴드, 모네스킨(Måneskin)이다. 이들은 2000년생 전후의 또래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고, 10대 중반 시절부터 의기투합하기 시작했다.
치마, 스케이트보드…성별과 물건에 대한 고정관념 허물기
모네스킨의 음악은 전통적인 록 밴드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1970~1980년대 글램 록부터 고스 록, 파워 팝까지의 시기에 흥했던 음악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라는, 1956년부터 시작된 유럽권 최대 규모의 음악 경연 대회에 나가 우승을 거두었는데, 우승 후 최단시간 내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록 음악이 우승 곡이 된 것은 2006년 핀란드의 메탈 밴드 로르디(Lordi)의 “Hard Rock Hallelujah” 이후 15년만이다.
*모네스킨 “Zitti e buoni” (2021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결승 무대) https://youtube.com/watch?v=RVH5dn1cxAQ
이탈리아에 30년만에 우승을 안겨준 모네스킨은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노래로 우승을 차지해 그 의미가 더 컸다. 또한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칸초네와 같은 음악이 아니라, 록 음악으로 승리를 거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우승 곡의 제목인 “Zitti e buoni”는 ‘닥치고 행동하라’는 뜻인데, 자신의 독특함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곡뿐 아니라 모네스킨의 곡 다수가 주체로서 살아갈 것을 독려하며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미에서 사랑을 받은 “Beggin’”은 상대방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이해를 바라는 내용인데, 10대와 20대들의 호응을 받으며 숏폼(Short-form) 플랫폼인 틱톡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I Wanna Be Your Slave”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비정상)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정상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형태의 격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하면 그 의미가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모네스킨 “I Wanna Be Your Slave”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yOb9Xaug35M
사실 영어로 쓰인 가사보다 이탈리아어로 쓰인 가사가 좀 더 공격적이고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영어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밴드 멤버들의 의도는 인터뷰나 의상, 그리고 태도에서 드러난다. 모네스킨의 리더 빅토리아 데 안젤리스가 이탈리아 <엘르>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자.
“고정관념은 우리를 기분 나쁘게 만든다. 어렸을 때 그들은 나를 너무 화나게 만들었다. 이제는 마음이 열린 사람들과 함께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더 평온해졌다. 나는 남성과 여성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섯 살 때 나는 모든 유치한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다.”
“나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머리를 짧게 하고, 소년처럼 옷을 입었다. 치마를 입지 않은 것은 그런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될 기회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록 음악은 그 자유의 물결을 구현했다. (중략) 사회에서는 이성애자가 되는 것이 표준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자동적으로, 그런 식으로 자신을 고정시켜 사랑의 다양한 뉘앙스와 측면을 경험할 자유를 스스로 박탈한다. 나 자신의 확실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는 불안함을 극복한 후, 나는 매우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섹슈얼리티를 살았다. 그리고 그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었다.”
이들은 의상 또한 젠더-프리(gender free), 고정관념을 깨는 옷을 선보인다. 과거 록밴드의 스타일을 참고하지만,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다. 미국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입을 수 있으며, 성별 규범과 물건 사이의 이러한 모든 고정관념을 흐리게 하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다”고 밝히며, “자신에게 기분 좋은 옷을 입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폴란드에서 공연할 때, 멤버 중 다미아노와 토마스가 키스를 하기도 했다. 폴란드는 동성애 혐오가 심한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모네스킨은 공연 중 이러한 장면을 선보이며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렇게 젠더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한편, 여성의 임파워먼트(힘 모으기)와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지지를 표해 왔다.
록 음악의 21세기 르네상스를 가져온 밴드
이탈리아만 해도 록 밴드가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이들은 길거리 버스킹부터 자리가 나는 대로 공연을 해왔고, 이탈리아 내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참가해 우승한 바 있다. 그렇게 실력을 다져온 그룹은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두었다. 사실 최근에는 유로비전 우승자가 음악시장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컸는데, 모네스킨은 달랐다. 곧바로 이들의 곡 “Zitti e buoni”는 영국 음악 차트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영국 차트 10위 내에 처음으로 진입한 이탈리아어 노래가 되었다. 북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해, 얼마 전에는 코첼라 페스티벌이라는 대형 음악 축제의 중요한 시간대에 등장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모네스킨 “Beggin’”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V_7ATay-z5c
모네스킨은 이모(emo)라 불리는, 감성적인 록 음악이 다시 유행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때마침 맞물려, 그런 음악의 팬층까지 흡수했다. 2000년대에 이모 계열의 록 음악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당시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던 이들이 다시금 그때의 음악을 꺼내 드는 중이다. 모네스킨은 지금 유행과는 다른 비주얼은 물론, 음악적으로도 좀 더 과거의 음악을 닮아 있고, 그래서 색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모’ 음악을 좋아하는 요즘의 흐름 덕에 좀 더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BTS의 한국어 노래나 푸에르토리코 가수 루이스 폰시가 부른 스페인어 노래 “Despacito”의 인기를 비롯해, 이제는 북미 사람들도 영어로 된 노래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분위기 덕에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그 기세를 타고 모네스킨은 북미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점점 더 활발한 활동을 하는 중이다.
모네스킨의 인기가 영미권을 흔들며 ‘록 음악의 21세기 르네상스’를 가져온 중요한 밴드가 되어가고 있는데, 한국을 비롯한 다른 언어권에서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들의 에너지와 음악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 자료] -미국 ABC뉴스, “이탈리안 록커들 모네스킨은 성별 고정관념을 흐릿하게 하길 즐긴다”. 2021년 7월 29일, 파올로 산타루시아 -미국 AP통신, “유로비전 스타 모네스킨, 섹슈얼리티와 창의적 자유에 관해 이야기하다”, 2021년 7월 29일 -미국 음악 플랫폼&매거진 지니어스, “모네스킨 I Wanna Be Your Slave 가사와 의미”, 2021년 9월 24일 -미국 문화 매거진 멧차, “로큰롤을 Z세대에 더 가깝게 만든 멋진-고스-글램 모네스킨에 대한 4가지 사실”, 2021년 10월 12일 -이탈리아 기반 유럽 문화 매거진 NSS, “빅토리아 데 안젤리스는 모네스킨의 지배 세력”, 케츠 타론, 2021년 11월 18일 -영국 페미니즘 매거진 뉴 페미니스트, “음악 산업에서 젠더의 전형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다”, 맨디 카우, 2021년 12월 6일 -모네스킨의 곡 “Zitti e buoni” 영문 위키피디아 -“모네스킨” 영문 위키피디아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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