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접근성은 인권’ 에콰도르의 페미니스트들

남미 에콰도르 헌법재판소 판결로 변화의 물꼬 틀까

이와마 카스미 | 기사입력 2022/05/07 [09:55]

‘임신중지 접근성은 인권’ 에콰도르의 페미니스트들

남미 에콰도르 헌법재판소 판결로 변화의 물꼬 틀까

이와마 카스미 | 입력 : 2022/05/07 [09:55]

라틴아메리카의 임신중지 비범죄화 운동은 긴 역사가 있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International Safe Abortion Day)로 알려진 9월 28일은 1990년,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제국에서 전개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위한 9월 28일 캠페인(Campaña 28 Septiembre)에서 유래한다. 오랫동안 이 지역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은 투쟁을 해왔지만, 임신중지가 완전히 비범죄화된 나라는 매우 적고, 조건부로 ‘일부 임신중지를 허용’한 나라가 몇 개국 있는 정도다.

 

2017년 남미 에콰도르로 이주하여 현지 예술계와 소통하며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와마 카스미 씨가 최근 격렬해진 에콰도르의 ‘임신중지’에 관한 운동과 현황을 소개한다.

 

▲ 올해 1월 25일, 에콰도르 키토 국회 앞에서 열린 시위. 안데스 지역 선주민 페미니스트 그룹 여성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왼쪽은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투쟁”, 오른쪽은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해 결정하지 말라”라고 적혀있다. (촬영: 이와마 카스미)

 

임신중지가 엄격하게 금지된 사회

 

가톨릭 인구가 많은 에콰도르는 임신중지가 엄격하게 금지된 국가 중 하나다. 1938년에 모체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 그리고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이 강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라는 매우 제한적인 조건에서 임신중지를 허용했다.

 

원치 않는 출산을 해야 했던 여성들, 출산을 피하기 위해 위험한 임신중지를 감행하다 사망에 이른 여성 등 희생이 잇따랐고, 저항의 목소리가 제기되었으며, 사회적으로도 이 문제는 다각도에서 논의되어왔다.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처음에는 권리의 관점으로 주장을 했지만, ‘여성의 인권’을 표방하는 것 정도로는 여론이 달라지지 않는 게 마치스타(machista, 남성중심주의) 사회다.

 

최근 몇 년간은 임신중지를 ‘공중위생’(public health)의 문제로 접근하는 논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이 곤란할수록 임산부 사망률이 높은 점, 10대 여성의 임신이 이들의 건강과 교육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점, 경제적 취약층과 10대 여성의 임신에 관계성이 있는 점 등을 지적하며, 임신중지를 범죄화하는 것을 공중위생 관점에서 문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작년에 논의는 크게 변화한다. 2021년 4월 29일, 놀랍게도 에콰도르 헌법재판소가 논의 끝에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 임신중지를 범죄로 취급하는 것은 인권침해이다”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제한적인 상황에 대한 결정이긴 했지만 ‘인권침해’라고 명시함에 따라, 단박에 임신중지 비범죄화 논의에 순풍이 불었다.

 

▲ 2017년부터 남미 에콰도르에서 생활하고 있는 필자 이와마 카스미(いわま かすみ) 씨. 아티스트, 번역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것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올해 1월 25일 에콰도르 국회는 임신중지 합법화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일, 수도 키토의 구시가지 인근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앞은 각지에서 모인 페미니스트그룹으로 빼곡했다.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높아지는 긴장과 강해지는 햇살 속에 집회는 이어졌다. 강간에 의한 임신중지의 경우 ‘임신 X주까지’라고 기한을 설정하지 말 것, 의사가 종교적, 혹은 어떤 개인적인 이유로 수술을 거부할 경우 문제없이 실시할 의료기관에 신속하게 소개하는 것을 의무화할 것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무엇보다 ‘임신중지 접근성=인권’이라는 개념이 다시 여론에 오른 후부터, 페미니스트들의 요구 또한 변화했다. 지금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Ley justa y reparadora” 즉, “공정하고 수복적(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음)인 법률”이다.

 

특히 ‘reparadora’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싶다. 간단하게 말하면 ‘수복적’이지만, 앞으로 법률이 달라진들 과거의 법률 때문에 세상을 떠난 사람, 형무소에 들어간 사람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수복적인 법률에서 요구하는 것은 과거가 반복되지 않는 것, 그러한 인권침해가 국가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된 것에 대한 국민, 특히 피해자에 대한 사죄이다.

 

▲ 1월 25일, 키토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와 행진을 드럼 리듬으로 흥겹게 해준 리듬대. 보도블록에 펼친 녹색의 삼각형 반다나는 남미에서 오랫동안 임신중지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을 상징해 왔다. 녹색은 임신중지를 요구하는 테마색이다. “안전, 자유, 무료 임신중지를”, “#공정하고수복적인법률을”, “나의 몸, 나의 결단, 나의 자유” 등이 적혀 있다. (촬영: 이와마 카스미)

 

에콰도르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당사자들을 지원하는 활동가 그룹 ‘라스 코마드레스’의 사라이 마르도나도 활동가는 수복적인 법률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권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느끼지 않고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임신중지 경험은 트라우마, 공포, 죄책감, 침묵으로 우리의 기억과 몸에 새겨지는 일은 사라진다. 우리는 강제된 임신과 모성에 복종하지 않고 다른 인생을 걸을 권리가 있다는 점, 낳을지 말지를 정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주장할 수 있다. ‘인권’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형태가 있는 것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수복’일 것이다.”

 

임신중지 완전 비범죄화 달성까지

 

경찰에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국회 앞은 마치 축제 같은 흥겨움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안전 등을 고려해 평상시보다 운영에 공을 들였다. 차양텐트가 몇 개나 설치되고, 각각에 ‘어린이 공간’, 물, 마스크, 소독용 알코올 스프레이 등을 준비하고 있는 ‘배급 공간’ ‘워크숍 공간’도 정해져 있었다. 또한 지방에서 모인 그룹과 단체는 키토에 오는 것만으로도 비용 지출이 크기 때문에 이를 충당하기 위해 단체의 굿즈를 파는 판매공간도 마련되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도 준비되어 오픈마이크와 랩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

 

이날 에콰도르 국회는 법안 낭독만 했고, 2월 17일에 다시 열린 국회에서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임신 초기 낙태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도시 지역 성인 여성의 경우 임신 12주 전까지, 미성년자나 농촌 지역 여성의 경우 임신 18주까지다.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던 사회에서 변화는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모든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달성할 까지 이곳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은 이어질 것이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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