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소는 없다

[선거 개혁이 필요해]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①

보코 | 기사입력 2022/05/20 [10:24]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소는 없다

[선거 개혁이 필요해]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①

보코 | 입력 : 2022/05/20 [10:24]

※형식적 투표권이 있으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투표소까지 직접 가서 이를 수행한 실질적 권리는 모두에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 법적 성별과 성별 표현이 다른 트랜스젠더, 적합한 공보물과 투표 시설을 안내 받을 수 없는 발달장애인, 투표소까지 이동할 수 없는 시설 거주인, 투표소에 가려면 너무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지역의 교통약자, 선거일에 유급휴일을 보장받을 수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등. 이들에게 투표는 큰 벽이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맞아, 거대 양당 중심의 기울어진 한국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선거법 개혁 운동을 해온 녹색당이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연속 4회 인터뷰를 기획했다. 녹색당의 지방선거 공직 후보자가 투표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대화를 청했다. 거주지에서, 일터에서, 투표소까지 이동하는 길 위에서 박탈당하는 투표권의 문제에 대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했다. [기록자: 보코]

 

▲ 김유리 녹색당 서울 은평구의원 후보(아 선거구: 구산동, 대조동)가 김기백(오른쪽), 남태준(가운데)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활동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바다 보조 활동가(우측에서 두번째)의 도움을 받았다. ©녹색당

 

-인터뷰어: 김유리(녹색당 서울 은평구의원 후보)

-인터뷰이: 김기백, 남태준(피플퍼스트 성북센터 활동가) 조바다(보조 활동가)

 

‘처음’이라고 했다. 발달장애인과 이렇게 긴 시간 대화를 나눠본 것은. 김유리 녹색당 서울 은평구의원 후보(아 선거구: 구산동, 대조동)가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의 김기백, 남태준 활동가에게 건넨 말이다. 그들의 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이었다.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나누는 이야기를 집중해 듣고 받아적는 일은.

 

인터뷰를 앞둔 테이블에는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인터뷰를 청했을 때 먼저 응답했던 기백 활동가 외에도, 즉석에서 참여 의지를 비치며 즉흥적으로 만남이 성사된 태준 활동가가 있었고, 우리의 대화를 연결 지어 줄 조바다 보조 활동가도 있었다. 모두 약간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난 3월에 치러진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 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 청구소송'이 있었다. 기백, 태준 활동가가 속해있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를 비롯해 7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이 제기한 소송이다. 법원은 ‘강제조정’ 결정을 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모든 장애유형에 투표보조를 허용한다고 지침을 변경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 지침이 삭제된 후, 소송 끝에 약 2년 만에 되찾은 지침이다. 하지만, 대선에서 여전히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를 거부한 차별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했다.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인 권리옹호운동을 가리키는 말이며, 한국에서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여 2016년 11월 한국피플퍼스트를 출범시켰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참정권 운동을 하고 있는 기백, 태준 활동가에게 녹색당 서울 은평구의원으로 출마한 김유리 후보가 만남을 청했다. 은평구는 서울에서 장애 인구가 3번째로 많은 자치구다. 김 후보는 ‘15분 동네’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학교, 시장, 직장, 공원과 같은 주요 시설에 자전거나 도보로 15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계획이다. 특히 장애인의 보행권을 가장 중요하게 꼽고 있다.

 

▲ 지난 5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대통령선거 시기 발달장애인 참정권 차별에 대한 집단진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기백, 남태준 활동가도 피켓을 들고 참여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김유리(이하 유리):은평구 구의원 녹색당 후보자 김유리입니다. 은평구 구산동에는 장애복지법인과 시설, 학교, 병원, 재활시설 등을 중심으로 은평구 내에 가장 많은 장애인구가 거주하고 있어요. 구산동과 인접한 갈현2동에는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탈시설’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요. 장애 의제가 중요한 지역인 만큼, 저의 첫 번째 공약 ‘15분 동네’는 장애인의 보행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요. 제가 장애 의제를 두루 살피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을 미리 밝히며, 피플퍼스트의 제안과 당사자들의 경험을 듣고 배우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김기백(이하 기백): 피플퍼스트에서 참정권과 관련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는 작년에 개소했고요. 저는 그때부터 쭉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정권, 권리 옹호, 탈시설, 그리고 장애 차별 이슈에 항의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태준(이하 태준): 저는 인권 운동을 하고 있고요. 관련한 집회가 열리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참여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유리: 두 분은 어떻게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활동하게 되었나요?

 

태준: 저는 과거에 성북구에 살았었는데요. 피플퍼스트가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던 장애인부모연대의 자조 모임에 참여하면서 만나게 됐어요.

 

기백: 저는 피플퍼스트 센터를 만나기 전에는 딱히 활동 경험이 없었는데요, 장애인 일자리 포털 사이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피플퍼스트와 퍼플퍼스트 서울센터 외에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요. 현재는 성북구에 있고, 광진구에도 있긴 한데요. 광진구는 광진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려요. 성동구에도 생길 예정으로 알아요.

 

유리: 사실, 많은 이들이 비슷할 것 같은데… 발달장애인이 투표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수준의 질문을 드리는 것이 죄송한데요, 발달장애인이 겪는 투표 현장은 어떤 모습인가요? 

 

기백: 일단, 투표소라는 공간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요. 발달장애인이 투표하기 힘든 이유가 좁은 공간이라 찍기 힘든 것일 수도 있고. 낯선 공간이라 힘든 것일 수도 있어요. 손 떨림이 심해서 작은 칸 안에 찍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여러 상황이 있습니다. 손 떨림처럼 신체적 어려움일 수도 있고. 낯선 공간에 혼자 들어가길 꺼리거나, 좁은 공간을 싫어하는 사람처럼 정신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죠.

 

유리: 투표보조가 온전히 이뤄지면, 당사자의 의견에 따라 동행한 보조인이 도장을 찍어주는 형태로 보조를 받는 건가요?

 

기백: 그렇죠. 보통은 그렇게 보조를 받죠. 그런데 발달장애인 중에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동행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낯선 사람보다는 기존의 활동 보조인이나 가족이 동행하는 게 낫죠.

 

유리: 동행한 투표 보조인이 당사자의 의견에 간섭을 하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도 있는데요.

 

기백: 많이 받아본 질문인데요. 그럼 장애 당사자, 가족 동반인 1명, 선관위 직원 1명이 들어갈 수도 있죠. 선관위 직원이 투표 보조인의 간섭을 제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참관자처럼. 장애 당사자가 직접 찍을 수 있으면 상관없는데, 그런 상황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투표 보조인과 선관위 직원이 동행한다면 간섭 없이 자유롭게 찍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겠죠.

 

▲ 지난 1월18일,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이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 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그림투표용지, 이해하기 쉬운 공보물, 투표보조 등의 핵심적인 사항을 적어 피켓팅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유리: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가 공직선거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법원에서 임시 조치로 지난 대선 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결정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죠. 결국에는 선거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상황인데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기백: 지방선거가 있는 6월 1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 때까지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국회에서 계류 중이기도 하고. (국회의원들이) 자기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이번 지방선거까지 개정되기는 힘들 것 같고, 다음 선거 때까지 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유리: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아도 중앙선관위가 지침을 내리면 바뀔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쉬운 공보물을 제작하는 것이나, 그림 투표용지 같은 것들이요.

 

태준: 맞아요. 그림 투표용지가 필요한 이유는 눈이 몹시 나쁘거나, 문자 이해가 어려운 이들에게 용이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글씨를 크게 적을 필요가 있습니다. 보고 읽어야 투표할 수 있으니까요.

 

기백: 정당 로고나 후보자의 이미지가 들어가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편할 거예요. 어르신 중 글을 읽기 어려운 분들도 있잖아요. 이주민의 경우, 한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림 투표용지가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노약자나 이주민 모두에게 다 필요한 것입니다.

 

쉬운 공보물과 관련해서도, 비장애인이 봐도 알기 쉽게 정책을 설명해달라는 건데요. 이 이슈를 가지고 지난 대선 때 정당별로 항의를 했어요.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알기 쉬운 선거 정책 자료를 만들었는데, 국민의힘은 반응이 없었죠. 그때, 알기 쉬운 선거 공보물은 각 정당이 의지만 있다면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유리: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보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공보물 자체가 쉬워져야 한다는 말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이미 공보물을 제작했는데… 어렵게 읽힌다고 말씀하셔도 열악한 재정 속에서 지금으로서는 바꿀 수가 없는 상황이라 죄송합니다.

 

기백: 바꿀 필요 없어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온라인에 올렸거든요. 각각의 정책마다 쉽게 볼 수 있도록.

 

유리: 녹색당이 여력이 없다고 하지만, 과정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아서 못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요즘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공부하면서, 모두를 위한 접근방식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됩니다. 혹시 다른 나라나 지역의 사례 중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 있나요?

 

기백: 많은 유럽 국가들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에게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선택적으로요. 이집트도 그림 투표용지를 쓰고 있습니다.

 

▲ 지난 2월 14일, 국회 앞에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자료 정당별 제작요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 이후 각 정당을 방문해 질의서를 전달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유리: 지방선거제도 자체의 문제도 중첩되다 보니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지방선거는 일곱 번의 투표를 하잖아요.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광역비례, 기초의원, 기초비례, 교육감. 이렇게 한 번에 여러 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입니다. 광역이나 시장 선거에 반해, 지자체의 선거는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그런 면에서 선거제도 개선과 장애인 참정권 문제도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아요. 

 

기백: 공감해요. 2018년 지방선거에서 투표했을 때. 좀 어려운 편이었어요. 후보자도 잘 모르겠고. 총선의 경우 후보자의 정보가 알려지는 편인데, 지방선거는 구의원 후보에 대한 정보를 알기 어렵고. 직접 찾아봐도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일곱 명을 다 따로따로 알아봐야 하는 것도 어렵고요. 사실, 처음 투표했던 구의원 선거는 잘 모르는 상태로 그냥 찍었어요. 그사이에 이름이 바뀐 당도 있었고요. 구의원 선거는 공보물 자체도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유리: 결국, 한국 사회가 중앙집중화되어 있는 문제로 귀결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결정 권한을 가진 의회나 행정부에 자신이 직접 들어가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더 많은 활동가와 시민이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정당에도 가입하고, 정치에 참여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장애를 가진 정치인, 정당에서 활동하는 장애인들도 많아졌으면 합니다.

 

기백: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활동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요. 정당에 대해 생각만 해봤지, 내가 직접 정당 활동을 해보겠다는 생각까진 안 해본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 참정권, 하면 장애인 당사자만 먼저 떠올리는 듯 한데요. 장애인을 위한 장치들이 사실 모두에게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태준: 오늘 이렇게 만나서 그림 투표용지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과 관련해 답답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향후에 피플퍼스트 센터 공간이 넓어지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을 초대해 이야기 나누며 활동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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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O 2022/05/26 [08:58] 수정 | 삭제
  • 집에 온 공보물을 읽다가 이 기사를 떠올렸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서 공보물을 더 유심히 읽어보게 된 것 같아요. 뽑아야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짜 헷갈리고, 많이들 그냥 찍겠구나.. 그래서 순번이 중요하고.. 거대 여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보물을 찬찬히 다 비교해가면서 보니까, 공약 설명이 많은 것보다는 후보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싶었고, 더 쉬운 공보물을 어떤 식으로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서 거기에 가까운 공보물도 찾아보게 되었어요.
  • 독자 2022/05/23 [13:13] 수정 | 삭제
  • 정책을 더 쉽게 설명하고 그림을 넣은 투표용지를 만든다면 이주민 분들, 시력이 약한 분들한테도 엄청 도움이 되겠어요. 솔직히 지방선거는 찍어야 하는 후보가 너무 많아서 헷갈려요.
  • OnDa 2022/05/22 [18:32] 수정 | 삭제
  • 인터뷰어, 인터뷰이, 조력자분, 기록자분 모두를 떠올리며 읽은 인터뷰입니다. 발달장애인이 투표를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함께 꿈꿔봅니다.
  • 시나몬 2022/05/20 [15:43] 수정 | 삭제
  • 아이가 커서 투표를 하는 장면을 이번 선거때 상상해보았는데, 그림투표용지에 투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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