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실습생도 노동자…‘학벌 정치’에 도전장 낸 이유6.1 지방선거 만드는 청년 정치인⑥ 경기도의회 비례 후보, 진보당 신은진만19세, 작년까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신은진 씨는 취업 대신 경기도의원 선거에 진보당 비례 후보로 출마를 선택했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집안 사정을 고려해 취업률이 높다는 특성화고에 입학해 도제반과 현장실습까지 거쳤건만, 졸업 후 그는 정치의 길을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신 후보에게 이번 출마는 무모한 도전이 아니다. 그에게는 기성정치의 무관심 속에 놓인 특성화고의 현실과 학력차별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출마는 마땅한 일이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학생 청소년’이었던 신은진 후보가 만들고 싶은 정치와 미래를 엿보기 위해, 경기도 성남의 한 카페에서 후보를 만났다.
-진보당이 아직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정당은 아닌데요. 진보당과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 집에서 저를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지역아동센터를 많이 옮겨다녔어요. 중학생 때 다녔던 마지막 지역아동센터가 있는데, 거기서 역사와 체육 관련 수업을 주로 들었어요. 그러면서 오산청소년 평화나비 서포터즈(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산 청소년 모임) 활동도 시작했는데, 그 활동을 하면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가기도 했어요. 집회에서 만나게 되는 분들이랑 인사를 나누고 핫팩과 음식도 받고 그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들이 진보당원들이었더라고요. ‘진보당 사람들은 이렇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구나. 나도 같이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입당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5년 정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집안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서, 취업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특성화고에 진학했다고 들었어요. 취업에 대한 기대를 갖고 들어간 학교였을텐데, 학교 생활은 전반적으로 어땠나요?
“경기도 오산에 살고 있는데, 원래 오산에 딱 하나 있는 특성화고에 가려고 했었어요. 근데 제가 졸업한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이 학교를 홍보하러 와서 ‘취업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말에 솔깃해서 수원까지 가게 되었죠. 솔직히 1학년 때는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어요. 통학만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요. 이후 조금씩 적응했고, 2학년 때 전과 했어요. 1학년 땐 ERP 경영과였는데 세무행정과로요. 산학일체형 도제반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죠. 도제반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월급 때문이에요. 도제반에선 일주일에 두 번 실습을 나가고 그 외엔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데, 실습 나가는 걸로 4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2학년 도제반부터 바로 실습을 나간다는 건, 사실상 배운 것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된다는 거네요? 전공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정확한 지적이에요. 실습 나간 친구들이 제일 많이 한 게 영수증 붙이기에요. 학교에서 영수증을 어떻게 붙이냐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어요.(웃음) 옆으로 붙인다, 접어서 붙인다, 위아래로 붙인다 등으로요. 현장에서 막내이다 보니 잡다한 일들을 맡게 되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거나 우편 업무를 하는 등이죠. 실질적으로 업무를 배우거나,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랄까, 교육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거죠.
처음 갔을 때 법인세 등 업무 관련 내용과 학습해야 하는 내용이 담긴 책을 받긴 하는데, 이게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이런 실습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도 없어요. 그냥 회사 재량에 따르는 거죠. 그래도 교육을 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청소만 시키는 회사도 있거든요. 정말 매일 청소만 했다는 친구도 있고요. 갑자기 전화 업무를 담당하게 돼서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어요. 전화 업무가 사실 쉬운 게 아니잖아요. 2017년 통신사 콜센터에서 실습하던 특성화고 학생이 극단적 선택(전주의 한 특성화고 동물 관련 학과생이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사망한 사건)을 한 일도 있었고요. 도제 실습을 하면서 업무과 전혀 관련 없는 일들을 시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특성화고는 아무래도 취업 이슈가 큰 곳이고, 신은진 후보도 취업 때문에 진학을 한 거잖아요. 취업과 관련된 현실도 궁금하네요.
“학교에서 말하는 취업률은 사실 뻥튀기인 곳이 대부분이에요. 식당, 카페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도 다 포함시켜서 통계를 내기도 하고, 정말 기업에 취업된 사례는 많지 않다고 봐야죠. 도제 실습으로 나갔던 것을 취업으로 포함시키기도 하고요. 저 포함 도제반 친구들은 대부분 OO기업 취업으로 되어있어요. 실습이 끝나고 대학을 진학한 친구조차도요. 취업률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실상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설사 취업이 되었다고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안 좋은 일자리’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전국특성화고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건가요?
“처음엔 노동조합이 아니라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였어요. 교육부 주최 직업계고 정책소통단에 참여하고, 전국특성화고 학생 권리선언 등이 했어요. 작년부터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요. 노조도 처음엔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이었다가 현장 실습하는 재학생들도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으로 바뀌게 되었죠.
작년 한 해 여러 활동을 하며 바쁘게 지냈어요. 특성화고 3학년으로 요트 업체에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잠수 작업 지시를 받고 일하다 익사한 홍정운 씨 추모제를 열었고, 현장 실습 중에 성추행 당한 재학생 사건을 학교 측이 묵인하려고 해서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고요.”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학교는 일단 덮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그런 사건사고를 덮으려고 하는 건 (현장 실습을 보내는) 기업처와의 관계 때문이에요. 기업을 발굴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그런 영업을 교사들이 담당하거든요. 교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도 문제죠. 교육청이나 외부 다른 기관이 학교와 기업을 연계해줘야 하는데, 학교에서 그걸 하다 보니 기업이랑 사이가 틀어지는 걸 무척 경계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현장 실습에서 발생한 문제를 제기해도, 참으라는 답이 돌아오는 거죠.”
-상황이 그렇다면, 학생들이 본인의 권리를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학교에서 노동조합 관련 포스터를 붙일 때도 각 반의 담임 교사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더라고요.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고, 노동조합 활동이 나쁜 것도 아닌데, 이조차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거죠. 어느 학교 앞에서 노조 관련 홍보물을 나눠줬더니 교사가 9명이나 나와서 제재를 한 경우도 있어요. 경찰도 부르더라고요. 교외에서 하는 활동엔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요.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해서, 교육청에서 학교 전체에 ‘이런 활동이 정당한 활동이다’라고 알리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어요.
노조 활동을 하다 보니 특성화고의 도제 시스템도 다 같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산학일체형 도제였는데, 경기도형 도제인 친구와 이야기 나누다가 최저시급도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또 산학일체형 도제엔 외부 시험을 통과하면 학생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제도가 있는데, 경기도형 도제엔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다는 것도요. 이렇게 도제 시스템마다 차이가 있는 문제도 바꿔야 하는 거죠.”
-특성화고 노조 활동이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네요.
“일당 5만원이던 현장 실습 임금을 8만원으로 올리는 성과도 있었어요! 노조나 정치 활동을 탄압하는 보수적인 학교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고요. 최근엔 교칙 개정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참정권이나 노동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들도 마련하고 있고요. 이렇게 조금씩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성과들이 있어서 뿌듯해요.”
-그럼에도 아직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더 많은 거죠?
“사회적인 관심과 문제 의식이 너무 낮다고 생각해요. 매년 특성화고 학생들의 산재 사고가 발생하는데, 뉴스 나왔을 때만 잠시 반짝 이슈가 될 뿐이죠. 가장 중요한 안전 대책과 관리 감독 부재 문제, 가해 기업에 대한 처벌은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이에요. 현장 실습생이었던 사람으로서 매우 분노하는 부분입니다.
실습생을 제대로 된 노동자로 보고 있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에요. 재학생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요. 조리과 학생들은 실습하다가 사고가 나는 일이 많은데, 병원에 가게 되면 개인이 비용을 다 지불하고 있더라고요.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죠. 학교 교칙 중에 ‘현장실습 도중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본인 과실이라는 게 밝혀지면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어요. 사실 본인 과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잖아요. 대부분 노동자들도 산재가 발생하면 이 부분을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어요. 그런데 완전히 을의 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실습생 학생이 본인 과실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요?”
-사회의 무관심에 반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를 결심하신 것 같네요.
“작년에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재차 청소년들의 현실과 위치를 파악하게 되었어요. 특히 저와 같은 나이였던 홍정운 씨 사건은 그 현실을 더 실감하게 했어요. 추모제 때 촛불을 들고 있다가 눈물이 나더라고요. 현장 실습의 경험을 떠올리며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노조 활동만으로 학생들의 권리나 안전이 보장되기 어렵다, 정치적인 역할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침 작년 연말에 선거법이 개정되면서 피선거권이 만18세로 하향되기도 했고요. 정치를 통해서 청소년 문제를 더 알리고, 효과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공약들을 준비 중인가요?
“교칙 개정 운동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여전히 학교 교칙엔 말이 안 되는 게 많거든요. 머리카락 펌이나 염색이 안 된다는 것부터, 교사와 교감을 하기 위해서 앞머리를 기르면 안 된다는 것도 있어요. 눈을 마주쳐야 해서 앞머리를 기르면 안 된다는 거죠. 너무 이상하잖아요?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존중하는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부터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보고요. 그래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겠죠.
그리고 학생이라고 하면 모두가 입시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는데, 대학이 아닌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그들이 그 선택으로 차별 받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성적과 공부 능력만이 평가 기준이 되는 사회를 비판해야 하고,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봐요.
그 방법의 하나로,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지원 조례를 만들려고 합니다. 직업계고를 지원하는 예산을 늘리고, 공공부문에 의무 채용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으려고 해요. 워낙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고,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는 건 더 어려우니까요. 저와 같이 도제반에 재학했던 친구들 중에서도 결국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된 이들도 꽤 있거든요. 학교에서조차도 우리 학교 학생이 어느 대학에 갔다는 걸 홍보 수단으로 삼기도 해요. 결국 대학 진학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되는 건, 특성화고 설립 목적과 맞지 않죠. 그래서 취업지원 조례가 필요하다고 보고요.
청소년 기본수당 지원 조례도 계획하고 있어요. 청소년들의 기초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연간 360만원 정도의 바우처가 등록된 청소년증을 발급하는 거죠. 제가 특성화고 진학과 도제반을 선택한 건 경제적인 이유가 컸어요. 적어도 기본적인 생활비를 청소년에게 지원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청년 주거비를 지원하고,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책도 만들려고 합니다. 또한 청소년 대상 ‘놀쉼 센터’도 구상 중이에요. 청소년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거죠.
이 외에도 다양성 교육센터를 설립해서 평화와 인권, 노동, 젠더와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싶어요. 이런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성인지 감수성과 인권 의식을 높이면, 차별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미래 정책 공동협의 기구를 통해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도 만들 생각이에요.”
-청소년과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우리 사회의 인식이 높지 않은 것 같아요.
“사회를 조금씩 바꿔 나가기 위해선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겠죠. 선거 연령을 낮추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면 뭘 모른다’고 하는데, 그럼 20세가 되었다고 갑자기 정치적인 시각이나 의견이 생기나요? 성인 중에서도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있고, 나이가 어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 청소년들의 정치적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불어 정치 교육도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선거를 통해 경기도민들에게, 나아가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저 말고도 이번 선거에 만18세, 만19세의 청소년, 청년 정치인들이 출마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이들의 등장으로 조금씩 변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보당에선 당사자 직접 정치를 강조하거든요. 엘리트 중장년 남성들에 의한 대리 정치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이제 모두들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당사자들이 직접 정치를 해서 문제를 바꿔나갔으면 좋겠어요. 함께 그런 미래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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