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은 유급 휴일’ 우린 왜 출근해야 하지?

[선거 개혁이 필요해]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②

보코 | 기사입력 2022/05/26 [09:11]

‘선거일은 유급 휴일’ 우린 왜 출근해야 하지?

[선거 개혁이 필요해]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②

보코 | 입력 : 2022/05/26 [09:11]

※형식적 투표권이 있으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투표소까지 직접 가서 이를 수행한 실질적 권리는 모두에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 법적 성별과 성별 표현이 다른 트랜스젠더, 적합한 공보물과 투표 시설을 안내 받을 수 없는 발달장애인, 투표소까지 이동할 수 없는 시설 거주인, 투표소에 가려면 너무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지역의 교통약자, 선거일에 유급휴일을 보장받을 수 없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 등. 이들에게 투표는 큰 벽이다.

 

6.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맞아, 거대 양당 중심의 기울어진 한국 정치 지형을 바꾸고자 선거법 개혁 운동을 해온 녹색당이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연속 4회 인터뷰를 기획했다. 녹색당의 지방선거 공직 후보자가 투표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대화를 청했다. 거주지에서, 일터에서, 투표소까지 이동하는 길 위에서 박탈당하는 투표권의 문제에 대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했다. [기록자: 보코]

 

▲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전길선 녹색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위)가 김하얀 영어학원 강사(우측 아래)와 온라인으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록자: 보코(좌측 아래)   ©녹색당

 

-인터뷰어: 전길선(녹색당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

-인터뷰이: 김하얀(영어학원 강사)

 

녹색당의 전길선 경기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인터뷰 도중 난데없이 퀴즈를 하나 냈다. “대한민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차별이 없는 곳이 어디일까요?” 설마 그런 곳이 있을까 싶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잔잔한 침묵을 가르며 전길선 후보가 말했다. “정답은 5인 미만 사업장!” 정규직도 비정규직과 마찬가지로 차별 받는 곳이라는 부연 설명에 모두의 얼굴에는 허탈감이 스쳤다.

 

헌법에 따르면 근로조건, 즉 일하는 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법률로 정해져 있다. 그에 따라 제정된 법률이 바로 근로기준법이다. 하지만 상시 일하는 사람이 5명을 넘지 않는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10년을 일하든, 20년을 일하든 공식적으로는 단 하루의 연차 휴가도 주어지지 않는다. 출퇴근하는 사람이 적으면 보장해야 하는 존엄성의 크기가 줄어들기라도 하는 것일까.

 

5인 미만의 사업장을 예외로 둔 현행 근로기준법 체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 1989년의 일이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잠시 수면 위로 올랐지만, 영세 사업자의 현실 고려와 국가의 감독 한계라는 명분으로 무산되었다. 30년 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최소한의 기준을 만드는 법이 잘못되니 차별은 지속해서 확산됐다. 이후 만들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공휴일법의 적용 대상에도 5인 미만의 사업장은 쏙 빠졌다. 첫 단추를 단단히 잘못 끼운 셈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공휴일법은 공공영역에 한정되어 있던 공휴일 규정을 민간 영역으로 확장했다. 국민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휴일의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일은 유급공휴일이었다. 역시 5인 미만 사업장만 빼고.

 

▲ 선거 날을 공휴일로 규정한 공휴일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것에 항의하며, 지난 2월 28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주최 집회가 열렸다. (출처: 녹색당)

 

어린이집의 보육교사로 일하며 5인 미만 사업장의 열악한 조건을 경험했던 전길선 후보와, 현재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부당한 노동 조건에 항의하고 있는 김하얀 강사의 만남은 그렇게 성사됐다. 각자가 경험한 공통의 부당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전길선(이하 길선): 녹색당의 경기도의원 비례 후보로 출마한 전길선입니다. 현재 경기도 의왕시에 거주하고 있고, 고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김하얀(이하 하얀): 저는 부산에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직한 상태이고, 직전에 일했던 학원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저의 첫 직장 생활이기도 했는데요. 일을 시작한 후에야 투표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제대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길선: 지금까지 투표에 참여한 경험은 어떤가요? 혹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하얀: 4~5차례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학생 시절에,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재외국민으로 신고되어 있어서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던 상황이 떠오릅니다. 그 사실을 당일에서야 알게 되었는데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행정적 오류가 있었던 모양인데, 약간 억울한 마음도 들고. 제도가 미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선: 투표를 할 수 없는 여러 조건을 경험하셨네요. 최근 대통령 선거가 있었잖아요. 그때도 선거 당일에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나요? 선거 당일의 일터 분위기도 궁금합니다. 

 

하얀: 선거 당일에는 학원이 쉬지 않아서 사전 투표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전 투표 일정 중 가능한 날이 하루밖에 없어서 마음이 촉박했어요. 만약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다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저보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투표하기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선거 날 학원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냥 쉬고 싶다’였어요. 다들 쉬는데 왜 우리만 일할까? 선거 당일에는 그 부당함에 화가 나 있던 게 기억납니다. 선거 당일 유급휴가가 적용된다면, 사전 투표 시기에 마음 급하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선거 날에는 투표하고 쉬고 싶어요.

 

길선: 저도 보육교사로 일하던 때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근무하던 곳은 1년 만근 이후 11일의 연차가 생기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연차에 추석과 설 명절 모두 포함되어 있다 보니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 정말 적었어요. 지금 중학생 자녀가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요, 가까이에서 보니 학원 선생님은 쉬는 날이 거의 없더라고요. 아프거나, 개인 사정으로 쉬어야 하는 날은 어떻게 하시나요?

 

하얀: 학원 업계 대부분 실제 노동 형태가 근로자와 동일해도, (프리랜서) 강사로 등록해 운영하는 실정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아닌, 사업소득자로 계약하게 되면 ‘연차'라는 개념이 아예 적용되지 않습니다. 학원에서 지정한 날만 쉴 수 있어요. 전에 다니던 직장의 경우, 일괄적으로 학원 문을 닫는 날에만 공식적으로 쉴 수 있었어요. 그 외에 노동자가 연차를 직접 지정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아프거나 사정이 생기면 무단으로 결근할 수밖에 없었고요. 한번은 장염에 걸려 급히 병원에 가게 되었는데요. 유급 휴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 수도 없었고, 저로 인한 공백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부담이 가는 구조인 거예요. 휴식 시간 또한 사업주의 재량으로 정해지다 보니, 거의 풀 타임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지난 2월 28일, “모두의 빨간 날, 투표권 보장!”을 외치며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 주최 집회가 열렸다.  ©녹색당

 

길선: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행 근로기준법 11조에 의하면, 적용 대상을 5인 이상의 사업장으로만 한정하고 있죠. 선거 날에 적용되는 공휴일법 역시 마찬가지고요. 근로기준법의 협소한 적용 범위가 문제인데, 개인에게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이지요. 참정권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 어떤 점이 가장 먼저 바뀌면 마음 놓고 투표할 수 있을까요?

 

하얀: 일단 노동법이 포괄적으로 적용되도록 바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사업주)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실제 5인 이상의 사업장인데, 쪼개서 등록하고 법적 효력을 피해 가는 곳도 많더라고요.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가 5인 이상 사업장이라고 한정한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시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상 근로자와 다름없는데, 사업소득자로 분류해 불합리하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저는 출퇴근하는 근로자와 동일한 근무 형태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세금이 부과될 때 확인해보니, 제가 사업소득자로 등록되어 있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4대 보험, 연차, 투표권 등을 보장 받을 수 없는데요. 이런 상황에 부당함을 느껴 현재는 노동청에 시정을 요구하고 진정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길선: 하얀님처럼 앞장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이는 듯합니다.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셨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이었나요?

 

하얀: 권리찾기유니온(unioncraft.kr)의 노무사님 도움을 받아 진행했어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다만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때, 제가 사업소득자로 신고되어 있고 학원도 5인 미만의 사업장으로 등록된 상황이라, 실질적으로 근로자로 근무했다는 것과 사실상 5인 이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게 까다로웠습니다.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문제의식을 느낀 부분이 있는데요. 사업주가 체불 임금을 지급하고 합의하면 없던 일이 되더라고요. 반성도 없고, 재발 방지에 대한 언급도 없고, 밀린 돈만 주면 끝인 거죠. 원래 해야 하는 의무를 사업주가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도요.

 

길선: 노동청에 제기한 진정은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사업주가 처음에는 합의를 제안하면서 조건을 내걸었어요. 동료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말라고요. 저는 노동법을 어기며 운영하는 부분에 대해 반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고를 한 건데요. 제가 조건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하니까, 사업주 측에서는 제가 입증한 야근 근무나, 사실상 근로자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해서 현재 다투는 중입니다. 저의 경우 체불 임금 액수가 그리 크지 않았고, 절실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다른 동료에게 언급하지 말라는 조건을 듣고도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해 합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사람들도 분명 적지 않을 겁니다.

 

길선: 힘드셨겠어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며 노동이 필요할 때는 당연하게 여기다가, 정작 노동자가 부당한 일에 시정을 요구하면 불쾌해하는 경우들이 꽤 있죠.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얀: 공감합니다. 일하는 동안에는 친분을 활용해 일상적인 내용까지 업무 지시를 하다가, 4대 보험 이야기를 꺼내면 돌연 사업주 입장에서 ‘곤란한 부분이 있다’며 거절하더라고요. 다행히 전에 다니던 직장은 인력이 시급한 상황이었고, 퇴사 후 진정을 제기한 거라서 직장 내 괴롭힘까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길선: 노동 조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도, 막상 개선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협소한 근로기준법 안에서 동등한 권리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 점이 속상하기도 하고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됩니다. 하얀님의 문제 의식에 관해 주위 동료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하얀: 저는 주변의 동료에게 적극적으로 문제를 공유한 편입니다. ‘나는 이런 점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면 이런 방법도 있다’ 하는 식으로요. 사실 노동자 개인이 쉽게 행동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주위 사람들과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게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아요.

 

투표권과 관련해서도 처음에는 ‘사전투표 하면 되지’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다른 방법을 찾는 데에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4대 보험, 연차 보장 등 다른 문제와 함께 제기되었을 때 조금 더 심각성을 느끼게 되는 듯합니다.

 

길선: 노동자가 살맛 나게 일하기 위해서 제도적 안전망은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누구나 어딘가에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잖아요.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데 누군가는 차별 받고 소외 당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가 연대하고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부산 지역에서 먼저 목소리를 내주신 하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저도 의회에서 일하게 되면,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가 차별 없이 지켜질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혹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하얀: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은 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노동법을 어기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처벌하고, 그런 부분이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경험한 과정은 피해자가 먼저 찾아가서 진정을 제기해야 하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거나 시정하기 힘든 상황이 많았거든요. 사후적인 대처라도 잘 마련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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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sfsdf 2022/05/27 [15:54] 수정 | 삭제
  • 우리나라는 5인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나 봅니다.
  • OO 2022/05/27 [13:01] 수정 | 삭제
  • 이번 대선부터 공휴일이 적용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배제되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게 슬프네요.
  • 로메 2022/05/26 [14:47] 수정 | 삭제
  • 휴일의 양극화 해소한다면서 소규모 사업장 제외시키는 거 정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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