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의 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교수로, 작가로 활동 중인 잔드리아 F. 로빈슨(Zandria F. Robinson)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시스터 로제타 사프와 프린스의 자손이자 모든 장르의 소유자”라고 오늘 소개할 음악가를 평한다.
프린스(Prince)는 2016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 배우다. 일찌감치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인 스타일 아이콘이었고, 뛰어난 기타 연주 실력은 물론 훌륭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서 음악을 제작하는 역량을 지녔으며, 록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1980년대 팝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여기에 시스터 로제타 사프(Sister Rosetta Tharpe)는 1930~1940년대 초기 로큰롤 장르가 형성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흑인 여성 음악가이며, 음악사에서 당대에 저평가된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일렉트릭 기타가 지금만큼 잘 쓰이지 않았을 때 일렉 기타를 활용한 음악을 만들었다. 백인 남성 중심의 로큰롤 음악이 시작되던 시기에,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미국 남부에서, 바이섹슈얼임을 오픈하고 음악 활동을 했던 그의 행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처럼 새로운 음악의 한 갈래를 개척한 음악가들과 비교되는 인물 브리트니 하워드(Brittany Howard)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1988년 생인 그는 미국 남부의 흑인 여성 정체성을 가진 뮤지션이다. 2019년 발매한 화제의 앨범 [Jaime] 수록곡 “Goat Head”는 어렸을 적 겪었던 인종 혐오범죄를 이야기하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아버지의 차 뒷좌석에 피가 흐르는 염소 머리를 두고 타이어를 펑크 냈던 사건이다. 단지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알라바마 주는 미국 남부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래 가사는 “토마토는 초록색이고(미국 남부는 녹색 토마토를 튀겨 먹는다) 목화는 흰 색이다(목화는 과거 노예제를 상징한다). 나의 영웅은 흑인인데, 왜 신의 눈동자는 파란 색인가(백인)”로 시작하며, “난 5분의 3의 한 방울인데, 그렇지 않은가”로 마무리된다. ‘5분의 3’은 1787년 헌법을 만들면서, 흑인 노예의 수를 백인 자유인의 5분의 3으로 적용하기로 한 것을 의미한다. 또 ‘한 방울’은 18세기 말~19세기 초 미국 남부 지방에서 조상 중에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였으면 흑인으로 규정한 법안을 의미한다. 정확히 그는 어머니가 백인, 아버지가 흑인이며, 그 가운데 자라면서 숱한 인종차별을 겪었고, 이를 노래로 풀어낸 것이다.
*브리트니 하워드 “Goad Head” 라이브 https://youtube.com/watch?v=iP2SwpuqoF4
브리트니 하워드는 솔로 활동 이전에 알라바마 셰익스(Alabama Shakes)라는 밴드의 프론트로 이름을 처음 알렸다. 알라바마 셰익스는 록 음악, 그 중에서도 루츠 록이라고 하는 과거 원형에 가까운 록 음악을 하는 밴드다. 이들은 2013년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상을 비롯해 2018년까지 총 아홉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쥐었다. 초기엔 록 밴드의 프론트가 흑인 여성이라는 점만으로 많이 언급되었지만, 실력과 작품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의 정체성으로 이 밴드가 거론되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알라바마 셰익스는 한 가지 음악을 고집했던 탓에, 브리트니 하워드는 작곡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밴드는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그는 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과거와 내면, 서사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탐험하고 새롭게 만나는 과정을 겪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앨범 [Jaime]다. 제이미라는 앨범 이름은 브리트니 하워드의 언니 이름이다. 어릴 적 소아암으로 일찍 사망한 언니에게서 그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헌정하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앨범은 알라바마 셰익스의 음악과 달리, 여러 장르가 동시다발적으로 혼재되어 있다. 위키피디아에 정리된 장르만 신스 록, 블루스, 네오 소울, 사이키델릭, 훵크, 힙합, 컨템포러리 알앤비, 전자음악, 재즈 퓨전, 아방가르드 재즈, 트랩, 노이즈 록, 파워 팝 등 10가지가 넘는다. 특정 장르를 계산해서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영향 받은 것들을 서사와 감정에 맞게 풀어내는 과정에서 이렇게 많은 장르가 쓰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난해하거나 조잡한 것은 물론 아니다. 여러 장르를 음악가 한 사람이 체화하여 풀어냈다는 것이 놀랍다는 평가 받으며,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발견인 동시에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을 탐구하여 만든 작품이 타인에게도 탐구할 무언가가 된 것이다. 거기에는 음악가의 정체성이라는 큰 토대와 삶의 경험이 큰 맥락을 차지한다.
*브리트니 하워드 “Georgia” 라이브 https://youtube.com/watch?v=TPTVl4qiXIM
“Georgia”라는 곡에는 세 가지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데, 하나는 지역으로서의 조지아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것, 나머지 하나는 동성애자의 의미를 모르는 어린 아이가 노부부를 보며 쓴 사랑 노래라는 것이다. ‘조지아’는 통상적으로 여성 이름으로 쓰이며, 가사는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브리트니 하워드는 레즈비언이고, 자신의 또 다른 밴드 버뮤다 트라이앵글(Bermuda Triangle) 멤버인 백인 여성 제시 래프서(Jesse Lafser)와 결혼했다. 조지아 주 역시 미국 남부에 있는 보수적인 지역이며, 알라바마 주 바로 옆이다. 그러한 점들을 생각하면, 이 곡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나는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쩔 수 없어, 난 어린 아이가 아니야 조지아가 날 알아줬으면 좋겠어 / 난 조지아를 원해 부자연스러운가요? 조지아, 이건 쿨한가요?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Georgia 중에서
“13th Century Metal”나 “Tomorrow”는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여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 흐름은 마지막 곡 “Run to Me”까지 이어진다.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에게 달려오라는 명료하면서도 감동적인 메시지가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큰 울림을 준다. 마지막 곡 직전에 앞서 언급한 “Goat Head”,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곡 “Presence”를 배치한 것에서, 혐오범죄의 경험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브리트니 하워드가 이러한 메시지를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꼭 직접 들어야 알 수 있다.
스포큰 워드(spoken word, 말로 쓰는 글)부터 보컬까지, 재즈부터 록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음악은 [Jaime] 앨범이 발매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이 앨범은 다른 뮤지션들에게도 영감을 주었고, 후에 동료들이 리믹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싱글을 발표하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브리트니 하워드는 그래미 시상식 베스트 록 노래 부문에서 두 번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기도 하다.
피부색이 음악을 결정할 수는 없다. 브리트니 하워드처럼 ‘록 음악은 백인이 해야 하고 알앤비 음악은 흑인이 해야 한다’는 오래된 구분을 멋진 작품으로 깨고 있는 사람들 덕에, 변화는 크게 이뤄지는 중이다.
*미 공영방송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https://youtube.com/watch?v=XyW5Zz0w1zg *2019년에 열린 브리트니 하워드의 콘서트 영상 https://youtube.com/watch?v=jKpx4-wlyaQ
[참고 자료]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 “브리트니 하워드는 복수했다”(잔드리아 F. 로빈슨, 2022년 3월 11일) -미국 페스티벌이자 플랫폼 아프로펑크, “퀴어, 블랙 & 블루: 시스터 로제타 사프는 모두의 어머니다”(에린 화이트, 2019년 3월 7일) -미 공영방송 PBS, “시스터 로제타 사프: 로큰롤의 대모”(믹 자키, 2013년 2월 22일) -미 대학 UCLA의 페미니스트 매거진 FEM, “브리트니 하워드, 알라바마 셰익스, 그리고 음악의 다양성”(크리소나 테니슨, 2016년 2월 14일) -미 대학 UC버클리 음악 매거진 비사이드, “브리트니 하워드: 우리 중의 신”(마카이라 하이프너, 2019년 11월 28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브리트니 하워드: 트레일러 파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패트릭 스미스, 2019년 9월 21일) -미국 패션지 GQ, “브리트니 하워드는 개인적인 것을 갖게 되었고, 이제 그녀의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정치적인 것이다”(맥스 세아, 2020년 6월 25일) -미 경제지 포브스, “브리트니 하워드가 흑인 여성들 사이에서 그래미 역사를 만드는 것을 이야기하다: 이것은 대화의 시작이다”(휴 매킨타이어, 2021년 4월 6일) -미국 음악 매거진 피치포크, 브리트니 하워드 [Jaime] 리뷰(셸던 피어스, 2019년 9월 20일) -영국 온라인 매거진 라인 오브 더 베스트 핏, “브리트니 하워드: 높이 오르는 중”(잭 로이드, 2019년 9월 17일)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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