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은 지금, 길었던 격리의 삶이 마무리되고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모양새다. 물론 이 시점에도 회복이라는 말이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되지만,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고요했던 밤의 모습도 조금씩 사라진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이들이 찾았던 곳, 때때로 오랜 시간 줄서서 기다려야 했던 코로나19 선별진료소 또한 안녕을 고하고 있다. ‘OO 선별진료소 마지막 운영’이라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정말 엔데믹으로 접어드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살짝 마음이 들뜬다.
이런 시기에 만난 책 <선별검사소 간호사의 일기>(전유경 지음)는 코로나19와의 이별을 기대하느라 잊을 뻔했던 것들, 그리고 알지 못하고 지나갈 뻔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선별검사소를 찾은 사람들
저자 전유경이 일한 곳은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 임시 선별검사소. 낙원동과 인사동 사이에 위치한 탑골공원은 노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노인들의 놀이터라 불리기도 한다. 노인들 뿐만 아니라 익선동과 인사동을 찾는 외국인과 젊은이들로도 붐비는, 세대와 인종이 혼재된 흥미로운 공간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그 특징이 조금 흐릿해지긴 했지만, 탑골공원 앞 임시 선별검사소를 찾은 사람들은 다양했다.
“선거철에는 모든 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 트럭이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트는” 곳, “통곡하는 국회의원의 유세차도 지나가”는 곳, “이 말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하는 확성기” 소리도 들리는 곳, 길 위의 사이렌 소리까지, 온갖 소리가 다 울리는 8차선 도로 옆에 차려진 선별검사소에서 일하는 직원 중 한 명인 저자는 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아가씨가 싸가지가 없었다”며 싸움을 거는 이도 있고, 끈질기게 민원을 넣으며 직원들을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러 번 찾아와 격려 선물을 전달하고 가는 익명의 기부자도 있었다. “저기 선생님 이거 하나 드리면 안 될까?”라며 탑골공원 무료 급식으로 받아온 음식을 나눠주려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마침 조금 한가한 시간이었던 저자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깨닫는다. “감사하다고 말하며 나가는 얼굴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할아버지는 검사보다 얘기를 들어주는 것에 더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저자는 그렇게 잠깐의 즐거움을 찾기도 했다.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때때로 화를 불러오기도 했고, 반대로 즐거움을 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몰랐던 어떤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확진자 수가 30만명이 넘어섰을 때, 전국 선별진료소에선 신속 항원 검사를 시작했다. PCR 검사엔 조건이 붙었고, 검사를 받는 일이 까다로워졌다. 동거 가족이 코로나19 확진이 되었을 땐, 보건소에서 확진자에게 보낸 문자와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해야 가족도 PCR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하루는 한 모자가 찾아왔다. “혼인하지 않은 남편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검사하러 온” 이들이었다. 사실혼 관계인 남편이 받은 확진 문자는 있었지만, 등본이 없었다. 저자는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모자에게 주민센터에 가서 등본을 떼오라고 했지만, 등본엔 남편 이름이 없었고, 이들은 결국 “검사 받을 수 없음을 통지”받았다.
아침부터 줄 서서 검사 가능 여부를 문의하고, 주민센터에 가고, 다시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반복하는 모자를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모자가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들의 밝은 옷은 어두운 외투로 덮혀졌다. 이 모습을 본 저자는 “차별 때문에 반짝였던 색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고 표현한다. 사실 이런 이유로 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가족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고, 서로 돌보고 아끼는 모두가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저자와 달리, 현실의 변화는 아직 더디기만 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질병과 그로 인한 위기는 제도의 틈 사이에 놓인 사람들과 사각지대의 문제를 더 도드라지게 했다.
선별검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선별검사소에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선별검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저자와 동료들은 겨울엔 “핫팩을 생명줄”로 여기고, 하루 몇 백명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된 시간을 보낸다. 때론 검사소에 온 사람들의 사정을 들어줘야 하고, 그 사정을 알면서도 여전히 앵무새 답변만 하며 일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속상함을 맛있는 걸 먹으면서 털어내려고 하고, “따뜻한 밥을 먹으며, 더 따뜻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속으로 바란”다. 노인에게서도, 어린이에게서도 배울 점들을 발견하고 “이후에 다시 검사소에 아이들이 온다면 맛있는 간식도 주고 노하우 있게 검사해 주고 싶다”는 마음도 가진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신속 항원 검사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온 직장인은 7일을 쉴 수 있기에” 테스트기에 한 줄이 뜨면 아쉬워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에 공감하기도 한다.
선별검사소 직원들은 끈끈한 동료애도 드러낸다. 욕설을 하거나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막아주고, “여기 아가씨가 어디있냐, 간호사!”라며 목소리도 높인다. 업무를 도와주러 온 임시 직원에 의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함께 화내고 문제 제기에 나선다. 저자는 이런 동료들을 “든든해” 한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코로나19 확진이 되던 날, 총 인원 6명에서 한 명이 빠졌을 뿐인데 직원들은 “쉴 틈이 없이, 목소리는 갈라지고 화장실을 갈 시간도 없는” 환경에 놓였다. 이후 저자도 코로나19에 확진됐는데, 이때 저자는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확진된 동료들을 걱정한다. “1평 밖에 안 되는 방 안에서 천장만 보고 누워있을 동료들”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재택치료를 하게 되었을 때 “비대면 진료 앱”을 경험하며, “비대면 진료를 설명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노인, 장애인,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에게 설명할 시간과 언어가 부족했다”는 것을.
사실 저자도 고시원은 아니지만 “한 달 단위로 계약하는 단기 월세” 자취방에 머물고 있었다. “선별검사소에서 최대 6개월까지 일할 수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 모두 계속 일할 수 있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언제 없어질지 모르기에 근무 계약 단위가 “한 달 혹은 이주마다여서” 직원들의 거취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월세 재계약은 “늘 신중”해야 했다.
선별검사소 운영 중단, 그 이후
저자는 지난 4월, 서울시 선별진료소 내 신속 항원 검사를 중단한다는 뉴스를 접하며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많은 일이 급하게 시작되고 급하게 없어진다. 관련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덩달아 내 일자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낀 그는 담당 주무관으로부터 인력 감축 이야기를 접한다. “재계약이 안 되면 그냥 서울에서 푹 쉬자는 심정으로, 긴 고민 끝에 방 계약 연장을 결정”한다.
4월 11일, 선별검사소에서 진행했던 무료 신속 항원 검사는 두 달 만에 끝이 났다. “선별검사소에서 신속 항원 검사를 두 달 만에 없애리라고 생각지 못한” 저자와 동료들에겐 “해고의 피바람”이 불었다. 해고된 동료들의 “이미 지불된 월세는 아무도 보상해 주지 않”았다. 저자 또한 “얼마 안 가 해고되더라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정책의 변화를 바라보며 “불길하기도 하고, 옳은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저자는 혼란스럽지만 “코로나와 관련된 일들이 나중엔 추억으로 남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다.
바로 한 달 전 이야기까지 담긴 책을 덮으며, 조금씩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걸 속 좋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했던 문제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긴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한번 드러난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 잊을 뻔했다는 걸, 수많은 보건의료인들의 ‘희생’으로 퉁쳐진 현장이 어떻게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는 걸 알게 됐다.
소소한 일상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담은 일기를 정리한 선별검사소 간호사 전유경의 글은 “우리 모두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로 끝난다. 그 역사의 현장은 미래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어떤 역사의 현장이 될 것인가? 그 몫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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