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청년 여성 7인이 띄운 ‘페미니즘 정치’[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지방 페미니스트들의 선거 도전기※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청주시의원 선거에 단체로 출사표 던진 청년 페미니스트들
“청년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걸고 지방선거에 떼거리로 나가면 너무 재밌지 않겠니?”
이 말을 들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분명 재밌기야 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이의 눈빛이 너무나도 “네가 그중 하나야”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언론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며 정치를 접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나는 정치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비판해야 하는 영역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대통령 선거라는 빅이슈를 맞았다.
2017년 19대 대선 때만 해도 ‘나는 페미니스트인 편’이라며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했던 정치인들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글을 SNS에 공유하기도 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에 앞다투어 가담했다. 의도적으로 ‘이대남(이십대 남성) 신드롬’을 일으켜 여성을 배제하고, 모든 사회적 위기를 ‘젠더 갈등’이라고 퉁치기도 했다. 마치 여성은 유권자가 아닌 것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답이 1과 2밖에 없어 보이는 정치 속에서, 나는 제3의 답을 찾고 싶었다.
얼마 후, 내가 속한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 안의 백래시 대응팀으로부터, 청주시의회 의원 선거 예비후보에 떼거리로 나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는 작년 11월에 발족한 곳으로, 지역 내 페미니스트들을 연결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발족 당시는 30여 명이었던 회원이 현재는 두 배로 늘어나 청주에서는 제법 큰 활동력을 가진 네트워크이다.
지방선거 출마 제안을 받고서, 나처럼 다른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지만,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안티-페미니즘 공격에 맞서 페미니스트로서 얼굴을 드러내고 정치에 도전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말했으나, 사실 나에게는 그것보다는 ‘정치’라는 것 자체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의회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고려 대상이 되어본 적이 1도 없었으며, 여태 투표만 해봤지 선거가 어떻게 치러지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하기에 나는 무척이나 샤이(shy)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함께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준 동료들이 있을 때 기꺼이 그 손을 잡고 이 사회에 페미니즘 정치를 외치고 싶었다. 정치의 시혜와 보호의 대상으로 갇히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에서 더 나아가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적극적인 정치의 주체로 서고 싶었다. 그렇게 손에 손을 잡고 ‘청주페미니스트연대’가 구성되었다.
거대양당 정치 떠받치고 있는 선거제도 속에서 고군분투
선거는 정말 힘들었다. “정말 힘들었다”라는 말로는 그 힘듦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우리가 선례가 없고, 표를 얻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기존의 선거 제도는 유권자보다는 거대 양당 정치를 떠받치고 있었다.
첫 번째 관문은 ‘연대’라는 이름 사용하기였다. 무소속이 연대를 구성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무소속 후보와 당적이 있는 후보가 함께 연대체를 꾸려 선거에 도전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무소속 6인에 노동당 소속 1인이 함께 ‘청주페미니스트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명함·포스터 등에도 이 명칭을 사용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회의가 길어졌다.
결론적으로 예비후보 기간에는 당적에 상관없이 연대체를 꾸려 7인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비후보로 결의한 사람들은 학생, 직장인, 활동가 등 다양했는데, 재정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모두가 본 후보까지 갈 수는 없었다. 이들 중 무소속 2인과 노동당 1인만 본 후보에 등록하기로 했다. 본 후보 등록 이후에는 청주페미니스트연대와 노동당이 함께 활동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활동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주페미니스트연대’ 활동을 한 데에는, 지난 대선 막바지에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정치를 개혁할 단 하나의 답인 것처럼 떠올랐던 정세도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은 ‘이대남’ 환심 사기에 여념이 없다가, 이들의 표심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막판 페미니즘 벼락치기를 시도했고, 실제로 이것이 유효타가 됐다. 2번을 막기 위한 선택지가 1번뿐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으며,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면 ‘사표’라는 담론이 우세해져 소신 투표를 막았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당사자들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서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페미니즘 정치 활동의 확산을 위해 ‘청주페미니스트연대 777인 지지 서명 캠페인’을 진행했다. 77명은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정말 많은 사람이 우리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서명해주었다. 페미니스트임을 전면에 내걸고 얼굴을 드러내며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안다며, 응원을 전하는 유명인들도 있었다. 고심 끝에 진행한 해당 캠페인은 8일만에 784인의 서명을 달성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진짜 문제의 최종 보스는 따로 있다. 바로 선거 제도이다. 최근 선거 제도가 많이 바뀌어 청년들에게도 선거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이 그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아등바등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단 기탁금 제도가 그렇다. 후보자 난립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데, 일정 금액을 납부해야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은 ‘있는 사람만 후보 등록을 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기탁금이 가장 적은 시의원 후보가 납부할 금액은 200만 원이다. 그나마 이번 지방선거부터 장애인과 청년 후보자의 기탁금 기준이 완화되어 후보자가 장애인이거나 선거일 기준 29세 이하인 경우 기탁금의 50%, 30~39세인 경우 70%만 납부하면 된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년에게 100만 원은 부담스러운 돈이다. 돈은 기탁금만 드나? 하고 싶은 말과 내걸고 싶은 공약을 넣어 공보물을 만들려면 몇백이 훌쩍 넘는다. 여기에 현수막, 명함, 함께 선거를 도와줄 선거 운동원이나 선거사무소도 꾸릴 생각이라면 집 보증금을 빼도 모자랄 수 있다. 득표율이 5%를 넘으면 쓴 돈의 반을 돌려준다고는 하지만, 제3당도 5%를 넘어본 적이 없는 진보 정치의 불모지에서 정치 기반이 하나도 없는 청년이 후보로 나와 그러한 득표율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선거 운동원을 꾸리는 것도 ‘정상 가족’의 구성원인 경우는 수월하다. 직계존비속과 배우자는 따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선거 운동원으로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지 않거나, 가족이 없는 사람은 돈을 지불하고 선거 운동원을 구성해야 한다. 현실이 이러니 마음먹고 정치로 뛰어들어도 자본과 인맥이 받쳐주지 않는 청년들은 튕겨 나올 수밖에 없다.
청주페미니스트연대는 청년 여성이 정치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갖은 난관을 헤칠 수 있었다. 연대의 이름 없이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다면 많이 괴로웠을 것 같다.
발로 뛴 공약, 점자 공보물과 러시아어 현수막
우리가 활동하며 가장 신경 썼던 부분 중 하나는 공약이다. 지역사회의 선거판에서 여성 공약은 대부분 출산과 양육으로 귀결됐다. 여성 공약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 의제가 사라졌다. 누군가의 표심에서 벗어나, 페미니스트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였다.
7인의 후보들이 관심 갖는 의제를 하나씩 선정해 공부했다. 성평등한 지방정부를 위한 내용부터 여성폭력, 재생산권, 장애인, 농민, 이주여성, 기후정의 등 저마다 말하고 싶은 내용에 대해 직접 발로 뛰며 현황을 조사했다. 현장을 방문해 들은 지역의 실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청주에는 인권기본조례조차 없으며, 성별 임금 격차는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청주 시민들은 임신중단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충북 내의 여성장애인 성폭력상담소는 단 한 곳,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없다.
소수자들의 삶이 가시화되지 않으니 시스템이 마련되긴커녕 의제로도 선정되지 않고 관련 통계도 없다. 하지만 못할 일은 아니었다. 직접 당사자들을 찾아가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듣고, 관련 기관을 찾아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성평등국 설치, 스쿨미투 대응 전담체계 구축, 여성 재생산권리센터 설립 등 우리만의 공약을 만들었다. 사실 이 공약들은 시의원이 이행할 수 있는 공약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 실현을 위해 이것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도지사 후보들보다도 다양하고 탄탄한 공약에 “공약 팔까?”하는 이야기도 장난스레 나눴지만, 가능하다면 의회 안의 누구라도 벤치마킹해서 실현해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이외에도 소수자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이주민처럼 유권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당신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했다.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명함이었다. 정치인의 명함에는 공약보다 자신의 연고와 치적을 알리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 관례를 버리고 우리의 공약 중 자신의 지역구에 특히 더 필요한 공약을 골라 넣었다. 여기에 점자를 찍어주는 곳을 수소문하여 일부 명함에는 점자를 찍었다. 모든 명함에 점자를 넣었으면 좋았겠지만,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일부만 넣을 수 있었다.
공보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공보물은 무료로 점자를 넣어주는 제도가 있지만, 지방의원 후보의 경우는 점자 공보물 제작이 의무가 아니어서 많은 후보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보물 제작에 소홀히 한다고 했다. 점자는 글씨보다 지면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명함을 받는 사람마다 점자 명함은 처음 받는다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 뿌듯하기도 했지만, 작은 노력도 하지 않는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가 일기도 했다.
러시아어로 현수막을 달기도 했다. 공약에 대한 피드백을 듣기 위해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를 방문했을 때, 지난 보궐 선거 당시 걸렸던 이주민 혐오 현수막으로 인해 많은 이주민이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난 대선 때 청주에서는 상당구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졌다. 후보로 등록한 사람들 중 한 후보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이주민 혐오 공약을 보란 듯이 내걸고 ‘불법체류자 OUT’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곳곳에 달았다. 명백한 혐오이지만, 선거 현수막이기 때문에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고 했다. 이주민들의 노동과 ‘여성성’을 착취해 국가를 유지하면서 혐오를 정제하지 않는 이 나라에 환멸이 났다.
상처 받았을 이들을 위해, 당신들의 편이 있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었다. 마침 내가 출마하는 지역구에 이주민 집성촌이 있었고, 함께 출마하는 후보의 친구가 노어노문 전공이라고 했다. 선관위에 물어보니, 선거 현수막에 외국어를 병기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상위 기관과의 회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며칠 뒤, 선관위의 허가를 받아 “우리는 이주여성의 권리를 위한다”라는 문구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걸었다.
더욱 단단해진 우리
공약부터 선거운동까지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지금의 정치가 성장과 배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엄, 평등, 연대임을 인터뷰마다 얘기했다. 우리의 활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고민했던 순간도 있다. 하지만 감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당장 나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역이 난무하는 페미니즘에 대해 이를 바로잡아 줄 언어가 생겼다. 이런 나를 보는 가족들과 친구들도 페미니즘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건만, 청주페미니스트연대의 후보들에게 1,640명의 시민이 투표하기까지 했다. 정치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지금, 투표율이 50%를 겨우 웃도는 상황에서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지지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경쟁이 난무하는 선거판이지만, 다음엔 더 큰 불꽃을 일으켜 새로운 상상력을 가진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세상은 아직 견고하다. 나쁜 쪽으로. 새로운 사람이 정치에 뛰어들기 어려울 정도로 양당 체제는 공고하고, 겨우 일궈놓은 우리의 권리를 후퇴시키려는 보수 정치는 더 큰 권력을 얻었다. 하지만 우리는 숨지 않을 것이다. 더 크게 페미니즘을 말하며, 끝까지 생존하여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악의가 벽보에 칼집을 내고 현수막을 찢어도, 우리의 연대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안 지금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함께함으로 더 단단해진 우리는 삶 속에서 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갈 것이다.
[필자 소개] 현슬기. 충북청주경실련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며 활동가가 되었다.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에서 활동하던 중 지방선거 출마 제안을 받았고, 청주시의원 선거 아선거구에 출마하여 606표를 받아 아깝게 낙선했다. 선거 이후로도 생활에서 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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