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 아니라, 숫자 너머의 ‘집’을 보는 방법

줌마네 기획전 <구경하는 집>과 소책자 <살 만한 집>

박주연 | 기사입력 2022/07/08 [10:44]

부동산이 아니라, 숫자 너머의 ‘집’을 보는 방법

줌마네 기획전 <구경하는 집>과 소책자 <살 만한 집>

박주연 | 입력 : 2022/07/08 [10:44]

생전 본 적 없던 부동산 관련 유튜브 영상을 최근 몰아보게 됐다. 혹자는 ‘브루투스, 너 마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영상을 보면 관련 영상을 계속 추천하는 알고리즘 탓이다. 아니,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집을 사야 하나?’라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 없음 상태가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지난 몇 년 간 ‘혼란의 부동산 대한민국’을 목격했고, 지인들도 하나둘 집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니 초조함이 가중된 것이다.

 

그렇게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이런 저런 정보들을 얻긴 했다. 부동산에서 중요한 키워드인 ‘재개발’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어떤 집과 땅을 구매/투자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정보들을 접할수록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한테 필요한 게 정말 이런 걸까?’ 커다란 물음표가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 지난 6월 24~26일 서울 망원동 낙랑파라에서 열린 ‘줌마네’ 기획 전시 <구경하는 집>은 집에 대한 욕망의 재배열을 위한 옴니버스 기획으로, 7팀이 참여했다.  ©일다

 

집이 대체 뭐길래 날 이렇게 불편한 감정으로 몰아넣는 걸까 고민하던 때, <구경하는 집>이라는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망원동 낙랑파라에서 열린 전시는, 여자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돕는 ‘줌마네’가 기획, 진행한 것. 줌마네는 2019년 [집에 대한 욕망의 재배열을 위한 ‘집’담회]를 시작으로 집/주거권 관련 프로젝트를 4년째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7팀의 창작자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진, 영상, 소설, 그림 등으로 집에 대해 질문하고, 또 각자에게 맞는 답을 찾으려는 전시를 보고 돌아온 밤, 줌마네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3년에 걸쳐 진행한 집담회 기록을 재구성한 자료집 <살 만한 집 -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집 이야기>(엮은이 줌마네|이숙경, 최규정, 김혜정, 심은애, 오보경, 김경서)를 찬찬히 읽었다. 밑줄도 여러 군데 그었다. 부동산 관련 유튜브에서 찾지 못했던,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여기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취향’을 아는 것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집이라는 공간과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정말 내 ‘취향’이었던 집은 없었던 것 같다. 원가족과 살았던 집들은 나에게 선택권이 없었고, 혼자 살았던 집들 또한 내가 고른 집이었음에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 머물 수 있는 랜덤한 공간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다. 왜일까?

 

▲ 전시 <구경하는 집>에 참여한 김래희 작가는 “장막도시”라는 이름으로, 신도시 아파트가 지어지는 과정들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작가는 자신이 주목한 것이 “장막”, “정확히는 장막이 주는 선명한 경계의 이미지”라 설명한다. “거대해진 장막은 마침내 한동네를 완전히 삼켜버리고 사람들은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다. 도저히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의 욕망은 결코 이 지리한 경주를 끝내지 못할 것”이라는 작가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일다

 

취향을 가지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훈련을 할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맞는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시간이 쌓이는 거”지만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 아파트에서 사는 삶이 성공한 것’이라 외치는 사회에서 뒷전으로 밀린다. ‘취향’ 따위를 얘기했다간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한 소리 들을 지도 모른다. “한 동네를 완전히 삼켜”버리고 들어선 아파트들은 ‘취향’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소멸시킨다.

 

“동네 골목길을 보면, 그곳이 그냥 길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 흔적들로 가득해요. 이런 길을 싹 밀고 아파트를 세워버리는 것은 특정 브랜드, 특정 스타일로 삶의 방식과 취향을 정해버리고, 우리한테 ‘돈 주고 여길 사라’고 통보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오솔)

 

가구 등 살 필요 없이 간단한 짐만 가지고 오면 된다는 풀옵션 집들은 또 어떤가? 집을 빌리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 것을 가정하지 않는 이런 집들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공간일 순 있다. 하지만 이런 집들이 늘어나고 언론, 방송 등에서도 그런 옵션이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우리의 집에 대한 취향과 생각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기 기준에 맞는 걸 찾을 수 있는 감각을 스스로, 능동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사회로 가자’라는 메시지가 방송에서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냥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구나, 방송매체가 집에 대한 욕망을 그런 식으로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랑)

 

월세, 전세, 매매, 투자 등에서 등장하는 숫자들. 청년을 위한다고 하는 5평짜리 집에 등장하는 숫자. 이 숫자에 가려진 우리의 집에 대한 취향은 정말 묻혀도 괜찮은 걸까?

 

그 집엔 누가, 어떤 가족이 살 수 있나요?

 

부동산으로 이야기되는 집엔 ‘누가 살 것인지?’라는 중요한 부분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집의 가치는 오로지 ‘얼마나 가격이 오를 수 있는가’니까. 한편으론 ‘누가 살 것인지?’가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다수의 공인중개사들이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것, ‘누구랑 살아요? 혼자 살아요?’ 이런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정상가족’ 범주에 벗어나는 이들은 당혹스럽다.

 

▲ 전시 <구경하는 집>에 참여한 조혜경 작가는 “유기식물”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진행했다. 반려식물 인구도 늘어나는 만큼 유기되는 식물도 있다는 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사람과 사물의 관계성, 소비되는 식물, 생명을 돌보는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는 작가의 말을 통해, 집에 살고 있는 생명과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일다

 

<살 만한 집 -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집 이야기> 속엔 다양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퀴어인 사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 아버지와 같이 사는 사람, 이혼한 사람, 비혼인 사람, 비혼을 선호하는 건 아니었지만 싱글로 오래 지낸 사람 등. ‘정상가족’ 범주를 벗어나는 이들에겐 집이라는 공간이 다른 의미로 작동한다.

 

“여성과 소수자들에게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욕망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불안정’이 아닐까 해요.” (지수)

 

여성과 소수자들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거의 전쟁터”라서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집”이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만큼은 나로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부동산의 나라’에선 안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보장받기 쉽지 않다.

 

“집을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환경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물건이라기보다 권리인 거죠. 공간에 존재할 권리. 그러면 집을 지을 때도 ‘아, 이게 사람이 살아야 되는 공간이니까 최소 10평은 되어야 하고 부엌이랑 거실은 분리가 되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텐데.” (노라)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은 다른 방식의 ‘함께/살기’ 도모한다. 사회주택, 쉐어하우스, 공동체주택 등에 살아보기를 도전하고, 나에게 맞는 구성원을 찾기도 한다. 정말 함께 살기도 하고, 느슨한 공동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때론 성공하고 또 때론 실패하지만, 집과 사람과 관계에 대한 상상과 실험을 이어나간다.

 

▲ ‘줌마네’ 기획 전시 <구경하는 집>에 참여한 지수 작가는 주거권 운동을 하는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쫓겨나는 중입니다”라는 이름의 작품에선 여성청년이 겪고 있는 주거 문제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보증금 바로 못 줌, 곰팡이, 전세사기, 관리비, 야 너 임마의 돌림판” 속에서 때때로 ‘출렁거림’을 경험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다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집 이야기, 욕망과 출렁거림

 

이런 도전이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좋으련만, 때때로 마주하는 ‘출렁거림’을 피하긴 쉽지 않다. 주변 지인이 주식/코인/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들에게만 유산을 남겨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택과 아파트의 차이를 접하게 됐을 때, 주변의 시선을 접하게 되었을 때 등. 나 또한 집 없음 상태에 대한 초조함으로 수차례 ‘출렁거림’을 경험했고, 그럴 때마다 신세한탄에 머물곤 했다. 어떻게든 ‘영끌’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주식/코인 투자 등을 해서라도 돈을 불릴 방법을 고심해야 하는지.

 

다행히도?! 이런 출렁거림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었다. 출렁거림과 동요 속에서 대처 방안, 전략도 찾고 있었다.

 

“첫 번째는 ‘공공선’을 생각해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도를 바꾸는 활동을 하면서 힘쓰는 활동가들이 있는데 그걸 생각하자. 역시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이 맞지. 두 번째로는 나이 들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운명이 그렇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하면서 체념하는 것도 있고. 세 번째로는 공동체를 꾸려서 같이 사는 방법을 궁리 중인데 그것에 집중하자며 마음을 달래고 있어요.” (민수)

 

신세한탄 대신 누구를 향해 화 내야 하는지 찾아내기도 한다. 주식을 통해 결국 돈을 버는 건 누구인지, 집 값을 올리는 이들이 정말 누구인지 파악하고, “난 저기에 도움을 최대한 주지 말아야겠다, 친구들에게도 그런 거 하지 말자고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차분히 자신의 속도대로 집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방법이다. 함께 살 동거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집에 대한 의미를 찾는 거다.

 

<살 만한 집 -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집 이야기>를 정리한 얄리는 에필로그에서 “어떤 사람은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다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또 일상에 하염없이 지치고 안정을 향한 욕망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는 후자인 것 같다.

 

줌마네의 프로젝트 전시 <구경하는 집>과 자료집 <살 만한 집 -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집 이야기>엔 “그런 애매한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37명의 여자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보니, 이제 ‘출렁거림’에 덜 휘둘리고 집에 관해 숫자 너머의 것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용기를 얻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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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아 2022/07/12 [05:41] 수정 | 삭제
  • 줌마네 기획팀 짱아입니다. <살만한 집>에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해요. zoomanet@naver.com으로 연락드릴 번호 포함해서 메일 한번 주시겠어요?
  • 2022/07/09 [20:55] 수정 | 삭제
  • 소책자 구할 수 없나요? ㅠㅠ 어떤 글이 담겨있는지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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