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국, 혈통을 떠나 ‘공생의 감각’ 가진 사회를 꿈꾸다

이주배경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다나카 이키

구리하라 준코 | 기사입력 2022/07/10 [10:11]

출신국, 혈통을 떠나 ‘공생의 감각’ 가진 사회를 꿈꾸다

이주배경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다나카 이키

구리하라 준코 | 입력 : 2022/07/10 [10:11]

일본 도쿄도 훗사시(福生市)에는 ‘청소년 자립지원센터 YSC 글로벌스쿨’이 있다. 이주 배경이 있는, 외국 출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전문적인 교육 지원 사업을 하는 곳이다. 교실에서는 필리핀 등 다양한 출신지와 다양한 혈통을 가진 어린이와 청년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일본어 교육 외에 진학 상담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어디에서든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로부터 “교장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다나카 이키(田中宝紀, 1979년생)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다나카 이키. 일본 도쿄도 훗사시에 있는 청소년 자립지원센터 YSC 글로벌스쿨 책임자. 저서로 <해외혈통 어린이 지원-언어, 문화, 제도를 넘어 공생으로> 등이 있다.   ©오치아이 유리코

 

집단 괴롭힘을 피해 떠난 필리핀에서 친구들을 만나다

 

다나카 씨는 열여섯 살 때 혈혈단신으로 필리핀 유학을 떠났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많아서 저에게 학교는 계속 힘들었어요. 고등학생 때 필리핀에 놀러 갔는데, 아버지가 ‘일본 학교가 안 맞으면 여기서 학교에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대로 두면 제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아버지도, 저도 생각했었으니까요. 이렇게라도 피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유학을 갔어요.”

 

다나카 씨가 지낸 곳은 물소가 논에서 활보하는 작은 마을. 그곳의 한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았다. 전기는 하루 8시간 들어오면 다행이었고, 우물에서 물을 직접 퍼서 쓰는 생활을 하며 학교에 다녔다.

 

“언어를 모르니 시장에서 과자밖에 사질 못했어요. 그런 제 모습을 보다 못한 학교 친구들이 돌아가며 자기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초대해줬어요. 그래서 굶어죽지 않고 살았죠. 학교나 마을에서 저를 추어올려주며 참견하고,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게 기뻤어요. 그때 경험이 이 활동의 원점입니다.”

 

이후 다나카 이키 씨는 스무 살 때 다시 필리핀으로 가서 세부에서 살았다. 그곳에 있는 NGO 사람들과 슬럼가를 돌며 아이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으로 귀국한 후에 대학에 진학해,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필리핀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NGO를 설립한 것이 지금까지 왔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무렵 필리핀 출신의 중학생과 만났는데, 그 소녀가 갈 곳도 없고 지원을 받는 것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그래서 도쿄도의 지원금을 받아서 어린이들의 일본어 교육을 특화시킨 프로젝트를 실행했죠. 그게 정부의 ‘무지개 다리잇기 사업’ 취지와도 맞아서, 보조금을 신청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무지개 다리잇기 사업’이란 문부과학성이 정주 외국인 어린이의 취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약 2천만 엔이라는 거액의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법인 자격이 필요했기 때문에 NPO법인 청소년 자립지원센터 산하에 들어갔다. 보조금을 토대로, 2010년에 정주 외국인 지원사업부를 개설해 YSC 글로벌스쿨(YSCGS)을 만들고 책임자가 되었다.

 

글로벌스쿨 창립 당시에는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현장에 있었지만, 지금은 전체 조직을 운영하거나 홍보하고, 문부과학성 ‘외국인학교 보건위생환경에 관련한 전문가회의’ 위원으로서 국회에서 지원에 대해 제언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다.

 

“정부의 무지개 다리잇기 사업은 2015년에 끝이 났어요. 무료 지원을 유료화하고, 지원의 질과 양을 줄이지 않고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길을 택했어요. 기부금을 모으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정에는 독자적인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 지급했죠. 이걸로 힘을 기른 학생이 진학을 하면 기뻐요. 지금 우크라이나 출신의 청소년도 있어요. 난민이나 장애인 등 보다 곤란한 상황의 어린이에 대한 서포트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청소년 자립지원센터 YSC 글로벌스쿨 홈페이지 https://www.kodomo-nihongo.com

 

최근, 일본 정부는 외국 국적 아동에 대한 일본어 교육에 예산을 확대하지만, 지원 체제는 충분하지 않다. 문부과학성 조사에서 의무교육 연령에 해당하는 외국 국적 어린이 중 취학을 못 할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는 약 1만 명. 그런데 여기에는 비정규 체류 어린이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없으면 진학도, 취업도 어려워요. 말을 못 해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공부할 기회와 지낼 곳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과거의 제가 그랬듯,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으면 살아갈 힘이 끓어오릅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강한 일본 사회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이도 많기 때문에, 부모가 취학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본 사회에는 앨라이(ally, 사회적 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의 존재나, 차별을 없애기 위한 긍정적인 목소리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교육에서 다문화의 감각, 공생의 감각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죠.”

 

경계를 짓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과 손 잡는 삶

 

다나카 이키 씨는 중학생 때, 자신도 조선인 혈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 국적인 저에게는 크게 와 닿지는 않아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왔어요. 저의 부모님은 생각한 바가 있었는지, 혈통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았어요. 혈통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중요성도 알지만, 혈통에 관심을 갖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나카 씨의 부모는 사설학원을 경영하면서, 등교 거부를 하는 아이들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집 근처 아파트에서 지내도록 하셨다.

 

“그래서 저는 매일 스무 명 정도의 언니, 오빠들과 밥을 먹었어요. 오빠도 소외된 청년들을 지원하는 NPO를 설립했는데, 콩 심은 데 콩이 난 건지… (웃음)”

 

다나카 이키 씨는 현재 열세 살, 아홉 살 자녀가 있다. 육아와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지 묻자, “별로 안 해서 아이들에게 ‘정말 죄송할 따름입니다’ 뭐 그런 정도? 남편이 육아를 더 잘해요. 저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비영리단체 활동은 빨리 사회 문제를 깨닫는 사람이 오래 활동을 하고, 젊은 사람은 적어요. 다음 세대에 바통을 넘길 타이밍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과제를 사회화하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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