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범죄에 오락가락 판결 논란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대법 판단의 의미와 한계2017년, 해군 성소수자 여군이 자신의 상관인 A(김OO)씨와 B(박OO)씨를 성폭행으로 고발, 고소했다. 가해자들은 1심에서 각각 징역 8년과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군대 내 계급과 권력 관계, 함정 내에서 여군이 놓인 상황과 성소수자라는 취약한 위치 등을 간과한 채 ‘폭행, 협박을 입증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한 재판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관련 기사: 군사법원이 군대 내 여군이 놓인 현실을 모르나! https://ildaro.com/8355)
지난 3월, 대법원은 피고인 A에 대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 판단”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있고, 군인등강간치상죄의 폭행,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런 반면, 피고인 B에 대해서는 “항소심 판결을 확정하는 선고”를 했다. 가해자 한 명에겐 유죄를, 또 다른 한 명에겐 무죄를 선고하는 반쪽 짜리 판결을 내린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지난 5일,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온라인 줌(Zoom)에서 이 문제를 심도 깊게 다루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법적 대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한계를 지적하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고, 군대 내 성폭력 문제의 핵심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군 조직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는다면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군’이라는 곳의 특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공동대표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와 국방부의 ‘군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군대 내 성범죄는 일단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부터 지적했다.
’군의 위계/서열 구조에서 낮은 위치에 있는 피해자일수록 성폭력 피해사실을 신고하기 어렵다’라는 조항에 73.1%의 여군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성폭력 피해 발생 후 신고 의향을 묻는 질문에 ①보고 또는 신고하는 방안을 고민하지도 않았고, 그럴 계획도 없다 47.1%, ②고민은 했지만 신고는 포기했다 33.2%, ③고민 중이다 19.6% 순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은경 대표는 “가해자들이 이번 사건처럼 군생활 내내 같은 부대에서 생활해야 할 상관이나 선배”라는 점을 꼽았다. 그리고 “군 조직의 특성상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가해자 옹호, 피해자에 대한 협박과 회유가 만연하고, 성범죄 피해를 신고하면 웬지 소속 부대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아 피해자를 원망하는 분위기도 있어서 피해자들은 신고를 앞에 두고 더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군대 시스템이 (피해)여군들을 보호해 준다는 믿음이 없다”는 점도 큰 이유다.
전다운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도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사건 당시 군과 부대원들의 태도가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피해자의 25.2%가 ‘축소·은폐’ 당했다, 16.5%가 ‘따돌림’을 겪었다, 14.5%가 ‘신고무마(회유)’ 당했다고 답변”한 점을 언급했다. 이번 사건 피해자의 경우에도 “2017년 가해자들에 대한 고소를 제기한 이후, 조직 안팎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2차 피해를 견뎌야 했다”고 밝혔다.
2차 피해가 지속되는 이유는,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김은경 대표는 “군에 가해자를 처벌하는 사법체계가 군형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징계 훈령도 있”지만, 징계시효가 3년밖에 되지 않는데다 군 지휘관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2021년 육군본부 최초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육군이 최근 5년간 성범죄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군인 군무원 40명에 대해 아무런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징계가 누락된 70명 중 성범죄가 40명, 청렴의무 위반이 16명, 음주운전이 14명이다.”
“다수의 지휘관들이 피해자의 진술을 조직이 지지해 주는 ‘시시비비’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고,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라는 방임형 자세로 임해 가해자들을 옹호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군의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 전역 후에도 계속되는 동기모임, 같은 부대 근무자 모임, 가족모임 등등”을 통해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는 일들이 계속된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군 관련 커뮤니티 안에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해자에 대해 나쁜 평판을 지속 생산”한다는 것. 김은경 대표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선 군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 명은 유죄, 다른 한 명은 무죄?
군대라는 조직의 폐쇄성과 수적으로 매우 열세인 여군의 위치와 더불어, 한국 사회 내 여전히 존재하는 ‘강간’을 둘러싼 왜곡된 통념과 낮은 성인지 감수성 또한 이번 소송의 큰 걸림돌이었다.
대법원은 피고인 A에 대해선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유형력의 행사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보아 유죄를 인정”했다. 그런데 “피해자의 상관으로서의 지위와 관계와 강간 및 추행 당시 피해자를 제압한 유형력의 양태가 매우 유사”한 피고인 B에 대해선 다른 판단을 했다.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모두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업무상 위력에 해당하는 것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강간죄 및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위한 폭행 내지 협박이나, 피고인의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한 것이다.
전다운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성인지 감수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피고인 B(박OO)의 강간죄 및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위한 폭행·협박에 관한 판단에서, 피해자가 당시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나아가 직속 상관인 피고인 B의 행위에 대해 피해자가 절대복종할 수밖에 없는 지위에 있었던 점 등을 간과”하여 “성인지 감수성 판단기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거다.
전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새로이 등장한 특별한 심리원칙이나 감정적 요소가 아니라, 과거 재판에 잘못 개입되었던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 판단 기준을 배척하고 ‘차별과 편견을 배제’하고 심리하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성평등 이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 대법원의 오락가락하는 판결로 인해 “법관이 가진 성인지 감수성에 따라 성범죄 피해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선례”가 될 것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가시화되지 못한, 성소수자 혐오 범죄
이번 사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피해 여군이 성소수자였으며, 가해자들이 그 사실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피해 여군은 조직 내 커밍아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자신의 직속 상관이 소문을 통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말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남자랑 관계를 안 해봐서 그런 것이다.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면서 피해자의 취약성을 이용했다. 또한 피고인 B(박OO)는 재판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피해자와 자신이 연인관계로서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한 쟁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피해자가 폭행·협박을 당했다는 점에 대한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 역시 이러한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피고인 B의 ‘네가 남자랑 관계를 제대로 안 해봐서 그런 것 아니냐’, ‘남자 경험을 알려준다’는 발언 등은 “피해자의 성적지향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이른바 ‘교정’하려는 의도를 갖고 이루어진 것으로, 명백히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이 사건은 “성폭력 사건이자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인데, 판결에선 이런 부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
동성애혐오 강간인 소위 ‘교정강간’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임과 동시에 피해자의 인격의 핵심적인 부분인 성적지향을 부정함으로써 인격권과 존엄성에 심각한 손상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다른 성폭력 범죄보다도 그 동기나 피해 정도를 더욱 엄중히 보아야 함”에도 말이다.
박 변호사는 “고등군사법원과 대법원 모두 이 사건이 갖는 '교정강간'으로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판결들은 큰 오류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 성폭력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할 수 있어야
김은경 젊은여군포럼 공동대표는 군대라는 조직의 큰 규모를 고려했을 때, “어떠한 정책과 제도도 그 힘을 100% 발휘할 수는 없다. 즉 피해자를 100% 보호할 수는 없다는 진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를 넘어,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지휘관의 역량 강화”와, “군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조직학습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한희 변호사는 “피해자가 성소수자인 경우에 법원은 성폭력 사건을 심리함에 있어 지녀야 할 ‘성인지 감수성’과 더불어, 성소수자들이 처한 구체적 현실에 대한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불어 ‘혐오범죄 처벌과 방지에 관한 법률’ 제정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군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2차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론 “높아진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으로 여군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에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성폭력 사건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민간으로 이관”된 점과, “고등군사법원의 폐지”로 군 항소심을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하게 된 것에 대한 기대와 고민이 교차한다고도 밝혔다.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진행될 파기환송심 및 민사소송 대응에도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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