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우울증과 모성 이데올로기

[재생산의 정치] 산후우울증을 무사히 겪어내기 위하여

김보영 | 기사입력 2022/07/26 [21:35]

‘엄마’의 우울증과 모성 이데올로기

[재생산의 정치] 산후우울증을 무사히 겪어내기 위하여

김보영 | 입력 : 2022/07/26 [21:35]

산후우울증에 관심을 처음 가진 건 10여 년 전이다. 지금보다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이 덜 흔하게 사용되었지만, 출산 후에 시작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은 많았다. 그 고통의 이야기들은 죄책감이라는 결론으로 수렴되곤 했다. 이러고도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를 묻는 사람들의 글에는 본인이 이미 좋은 엄마가 되기에 실패했다는 절망이 있었다.

 

▲ 출산 후 정신적 고통을 겪는 여성들이 적지 않지만, 이 고통은 스스로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은 죄책감을 동반하곤 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엄마 탓’하는 사회

 

출산에 대한 계획도, 열망도 없는 내가 산후우울증을 찾아보기 시작한 건, 출산 후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보다는 오히려 탄생을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위치에 나의 어린 시절을 대입했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둘러보며 나를 낳고 키운 엄마가 산후우울증을 겪었던 건 아닐지, 그로 인해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 건 아닐지 의심했다. 그러니까 ‘영유아기에 애착 형성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문제 상황에 봉착했을 때 문제에 대한 공부부터 냅다 시작하는 버릇 덕에 내가 앓고 있는 정신과적 병에 대해서도, 병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고, 나름의 공부를 이어오며 내린 잠정적 결론은 병의 원인을 하나로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병의 원인을 찾는 일에 거의 관심이 없지만 진단 초기에는 계속해서 원인을 찾고싶어 했던 것 같다. 원인을 찾으려고 과거의 기억을 하나하나 추궁해보던 차에 만난 게 산후우울증이었다.

 

내 병의 원인으로 계속해서 양육자의 양육 태도를 지목하는 일을 그만두게 된 건 모성 이데올로기, 그러니까 여성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모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그것이 발현된다는 생각이 일종의 이데올로기라는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면서였다. 《양육가설》을 쓴 주디스 리치 해리스처럼, 양육 태도가 아이의 성장 방향을 절대적으로 결정짓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를 알게 되면서였다.

 

당연하게도 아이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부모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태어나고 성장한 국가의 법과 제도, 문화도 중요한 영향요인일 것이다. 모든 양육자가 문제가 없다거나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아이가 겪는 고통이 너무 쉽게, 그리고 전적으로 ‘엄마 탓’이 되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다.

 

산후우울감을 증폭시키는 것

 

아이가 겪는 모든 문제를 양육자, 특히 엄마의 문제로 국한하는 문화 속에서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들은 자신 때문에 아이가 혹여나 잘못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강한 죄책감을 경험하곤 한다.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우울증에 걸릴 수가 있냐고 책망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서도 정당하게 자리잡을 수 없다는 절망을 경험한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이자 산후우울증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온 마우트너는 “여성들은 아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기와의 유대감이 바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 모유 수유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아기를 돌볼 책임이 너무 커서 겁에 질릴 수도 있으며, 혼자 아기를 돌보는 게 힘들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럴 수 없거나 어머니로서 실패했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단점을 알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의 <2021 산후조리 실태조사> 결과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산후조리 실태조사는 「모자보건법」 제15조의 20에 따라, 산후 산모‧신생아의 건강 및 안전 증진 정책 수립에 필요한 기초 통계자료를 구축하기 위해 3년 주기로 실시되는 조사로 2018년에 처음 시행되었다. 설문에 참여한 사람 중 52.6%가 산후우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산후우울감에 영향을 준 요인은 양육부담감(88.6%), 환경변화에 따른 스트레스(82.4%), 산모의 신체 건강상태(81.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아이가 내 삶에 존재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돌봄이 전적으로 나에게 맡겨져 있고 주변인들은 내가 훌륭하게 그 임무를 수행해내길 바라며, 그 역할을 거부하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심대한 비난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의 고통은 숨겨져야 하며 양육의 과정은 순조롭고도 매끄러워 보여야 한다.

 

마우트너는 여성들이 출산 후에 경험하는 부정적 감정이 우울증으로 변화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침묵이라고 말한다.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거부당하거나, 내가 스스로 그 고통을 외면하고자 할 때, 그리하여 그 결과가 침묵으로 이어질 때 정신적 고통이 더욱 강화된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비난하지 않는 주변 집단이 매우 중요하다. 지지적인 의료인이나 같은 경험을 한 출산 당사자들과의 대화가 도움이 되는 이유다.

 

당사자 중심의 지원체계가 필요한 이유

 

캐서린 조의 《네 눈동자 안의 지옥》은 산후정신증을 겪은 작가의 가족과 성장기, 출산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겪은 일, 그 이후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통 산후 단기간의 경미한 기분장애를 가리키는 산후우울감, 우울감이 지속되고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을 기준으로 진단할 수 있는 산후우울증, 드물지만 환각과 망상 등을 동반하는 산후정신증이 있다.

 

▲ 캐서린 조는 출산 후 3개월 무렵 산후정신증을 앓은 경험을 토대로 책 《네 눈동자 안의 지옥》(부제: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을 썼다. 김수민 역, 창비, 2021년

 

캐서린 조는 출산 후 3개월 무렵에 망상, 환각을 동반한 산후정신증을 앓았고 입원 치료를 받게 된다. 영국에 사는 작가가 미국에 방문했을 때 병의 증상이 나타났고, 미국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 작가는 영국과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비교하며 영국에 있었더라면 다른 치료를 하게 되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퇴원 후 영국 런던에 돌아온 작가가 의료시스템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작가는 런던의 정신건강 위기 대응팀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임신 관련 증상을 전문으로 다루는 정신과 의사와 상담했고, 위기 대응팀이 매일 아침 작가를 방문했다. 위기 대응팀은 작가에게 매일의 목표와 해야 할 일을 적은 목록을 만들게 했고 작가는 침대에서 나오기, 차 한잔 끓이기, 피아노 연주하기, 전화하기, 아기 안아주기처럼 어떤 사람이 보기엔 전혀 어려울 것 없는 일들의 목록을 적었다. 아주 짧은 방문이 매일 이어졌는데 그 방문이 매우 소중했다고 회고한다.

 

작가에게 도움을 준 위기 대응팀과 의료진, 그리고 주변인들은 작가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섣불리 ‘정상’으로 되돌려놓으려 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충분히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영국에는 산후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산전의 정신건강까지 포함한 ‘산전 산후 정신건강에 관한 지침서’(Antenatal and postnatal mental health: clinical management and service guidance)가 있다. 기본 전제는 산모 중심의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환자 중심의 관점에서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과 임산부, 배우자와 가족, 산후 도우미 간의 의사소통이며, 이에 따라 산모를 돌보는 배우자, 도우미, 친척에게도 산모의 욕구를 지지하기 위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산후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지원 방안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주요하게 참조하고 소개하고 있지만, 출산 후 여성의 정신건강 증진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출산 전후의 정신건강에 대한 다양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문제 해결의 방향은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다.

 

▲ Shades of Blue Project는 산후우울증이나 불안을 경험하는 유색인 여성을 지원하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이다. 2022년에 열리는 흑인 여성을 위한 모성정신건강 주간행사 포스터이다. 출처: Shades of Blue Project 홈페이지

 

고통을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자

 

2019년엔 미국 FDA가 산후우울증에 대한 치료제인 줄레소(Zulresso)라는 약을 승인했는데, 산후우울증 치료제에 대한 첫 승인이다. 이 약은 한화로 거의 4천만 원에 달한다. 뉴욕의 재생산 관련 정신과 의사인 마라 애커먼은 기존의 우울증 약물이나 치료법이 효과적이지 않았던 중증 산후우울증 여성들에게 이 약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산후우울증은 다른 우울증보다 호르몬 변화와 더 많이 연관될 수 있고, 이 약물이 그러한 호르몬 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에 대한 약이 개발되고 도입되는 것은 산후우울증이 하나의 병으로서 진지한 연구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나, 산후우울증을 포함한 우울증을 호르몬의 변화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자로부터 한계를 지적받아온 내용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병을 경험하는 이유도, 병의 증상도, 병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할 것이다. 단 하나의 명쾌한 해결책이 없는 만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출산을 경험한 사람의 고통을 평가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온전히 그 고통을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부터 말이다.

 

[참고 문헌]

-이진희, 2015, <페미니스트 관계적 관점에서 본 ‘좋은’ 어머니되기와 산후우울증>, 《페미니즘 연구》 15권 2호.

-Jessica Porten, 2019, “With First-Ever Postpartum Depression Drug, Progress May Not Equal Access”, Rewire News Group

 

[필자 소개] 김보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출렁이는 시간[들]』, 『아프면 보이는 것들』을 함께 썼고, 『턴어웨이』를 번역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공감 2022/07/27 [14:17] 수정 | 삭제
  •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모성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많은 산모들이 우울감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죄책감 없이, 이상하다는 두려움 없이, 마음의 고통을 쉽게 꺼내놓을 수 있어야 엄마에게도 아이와 다른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지-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 비비 2022/07/27 [10:12] 수정 | 삭제
  • 양육가설이라는 책 읽어보고 싶네요. 양육에 대해 심리적인 접근이 많아진 건 반가운 현상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또래집단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차에 반가운 글이네요.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