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하자,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하니까’

[박주연 기자의 사심 있는 인터뷰] 소설가이자 아키비스트 한정현

박주연 | 기사입력 2022/07/31 [18:18]

낙관하자,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하니까’

[박주연 기자의 사심 있는 인터뷰] 소설가이자 아키비스트 한정현

박주연 | 입력 : 2022/07/31 [18:18]

2년 전 어느 날,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 2020)을 읽고 느꼈던 충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이 사람 뭐지? 이 작가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라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흔히 정사(正史)라 불리는 역사 속에서 보기 힘들었던 소수자들의 순간을 포착해 문학에 등장시키는 건 물론, 절묘하게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현실의 우리들에게 ‘지금의 이야기’로도 인식하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거듭할 뿐.

 

이후에 그보다 먼저 출간되었던 장편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 2019)를 읽고서, 시대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라는 공간을 오가는 와중에 이어지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올해 초 출간된 장편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를 읽는 동안엔 ‘추리’라는 장르까지 더해져 발휘되는 작가의 장기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 지난 달 출간된 책 <마고>와 한정현 작가의 모습  ©일다

 

그리고 얼마 전, 새로운 중편 소설 <마고>(현대문학)의 발간 소식을 들었다.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개 만으로도 기대감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마고>엔 “불온의 상징이었으며 마녀들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기도 한 ‘달’을 활용한, ‘세 개의 달’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탐정과 세 여성 용의자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사람들이 미군정기를 겪어내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라에 비극이 일어나면 “가장 위험해지는 건 여성과 어린아이, 노인이나 변태 성욕자, 길거리 노동자처럼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바로 좌익으로 몰릴 만한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위태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한정현 세계관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다.

 

소설가이자 아키비스트(archivist,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들을 수집하고 정리, 기술하는 사람)인 한정현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사심 가득한 질문을 가지고 작가를 만났다.

 

-작가님 책을 처음 읽고 나서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연구자가 쓴 기록 같은데 그냥 기록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거든요. 어떻게 이런 걸 쓸 수 있었을까 궁금했어요. 그동안 어떤 것들을 공부했는지 듣고 싶어요.

 

“뉴질랜드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계속 거기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한국에 돌아오게 됐어요. 사실 대학원 갈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데, 문학창작 전공이라는 게 있다고 해서 가게 된 거죠. 근데 학교에 가 보니, 예술을 배우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권력 관계가 수직적이고 보수적이더라고요. 좀 놀랐어요. 그래서 석사 과정이 재미있진 않았지만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더라고요. 석사 땐 꼭 소설을 써야 한다, 등단해야 한다 생각 했는데, 박사 과정은 소설 때문이 아니라 연구를 하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공부했던 건 문학 텍스트에 문화사적 의미를 분석하는 거에요. 한번은 문화사 연구를 하는, 제가 좋아하는 연구자와 대화할 일이 있었는데 그 분이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 실린 소설 중 하나인 「괴수 아키코」에서 언급된 이성욱 작가의 <쇼쇼쇼 – 김추자, 선데이서울 게다가 긴급조치>(생각의나무, 2004)를 선물해 주더라고요. 책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나도 한번 이런 연구를 해 봐야겠다 싶었죠.

 

▲ 한정현 작가의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민음사, 2020)와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스위밍꿀, 2019)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문학과지성사, 2022) 표지 이미지

 

그리고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사건(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대표적인 사건, 최초로 노조 여성지부장이 선출된 사업장이었으며, 농성 중 경찰이 투입되어 강제 해산시키려 하자 노동자들이 상의를 탈의하고 저항한 사건과, 사측의 사주를 받은 남성 조합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똥물을 투척한 사건이 널리 알려져 있음) 있잖아요. 시위 사진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벗어놓은 옷이 쌓인 사진은 있는데 반해 그들이 정말 상의를 탈의하고 시위하는 사진은 거의 없더라고요. 그렇게 비어있는 자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여성들을 노동자로 본 게 아니라 ‘여성의 몸’으로만 봤구나, 노동 시위로 본 게 아니구나’ 라고요.

 

이외에도 많은 여성 노동 운동들의 자료가 부재하죠.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된 김경숙 열사 이야기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잖아요?(관련 기사 시리즈: 전태일은 알지만 김경숙은 모르는 당신에게 https://ildaro.com/8532) 이런 거에 좀 충격을 받아서, 관련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국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던 저의 경험들로 인해 여성 노동 운동 이야기에 공감 되기도 했고요.”

 

-<소녀 연예인 이보나>부터 퀴어, 빨치산, 기지촌 여성, 성폭력 피해여성, 데이트폭력 피해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왔어요. 이런 소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지 않은, 때로 ‘이상한 사람들’로 여겨지죠. 작가님도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요?

 

“빨치산 관련해 국가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있는 집안이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 집이 사회에서 이상한 집으로 낙인찍힌 게 있었어요. 근데 우리 식구들이 그런 말에 기죽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저도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가족들은 오히려 제 특이함을 ‘얘 천잰가봐’ 이러면서 칭찬해 줬고요.

 

근데 밖으로 나오니까 다르더라고요.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로 항상 자퇴서를 품고 다녔어요.(웃음) 이상하지 않은 사람으로 연기도 했고, 친구도 잘 안 만났어요.”

 

-그럼, 학창 시절에 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낸 건가요?

 

“아뇨. 그때 홈페이지 만드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블로그도 열심히 했고. 그러다 보니 온라인에서 나이나 지역을 떠나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저한테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공산주의자였으며 근대 미술과 페미니즘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를 알려 준 것도, 일본 문화나 일본 영화 등을 알려 준 것도 그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나랑 맞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찾아다녔어요. 그래서 오히려 바빴죠.(웃음) 학교 끝나고 빨리 집에 가야했거든요.

 

학교에선 조용히 지냈어요. 학교에서 나를 이상하게 여긴다는 걸 본능적으로 좀 알게 된 이후론 거의 말을 안 했거든요. 학교 밖 활동을 많이 했죠. 타로 카드도 배우고.(웃음) 그렇게 어떻게든 잘 지냈지만, 그 ‘이상하다’는 말이 학생의 말을 막아버린 거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전 학창 시절을 좋게 그릴 수 없는 것 같아요. 뉴질랜드 갔을 때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그곳이 유일하게 나한테 이상하다고 하지 않은 곳이었거든요. 선생님들도 ‘넌 이상한 게 아니라 독특하고 좋은 거’라고 했고, 친구들도 그랬고요.

 

‘이상하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썩 좋은 말은 아니죠.”

 

▲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사적인서점’에선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소설가 한정현 기획전이 열렸다. 한정현 작가의 글쓰는 공간을 재현한 모습.  ©일다

 

-그런 경험들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한정현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겠군요.

 

“저뿐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국가폭력 피해자인 가족들도, 나한텐 너무 좋은 사람들인데 사회에선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라 그랬거든요. 퀴어 이야기를 왜 많이 쓰냐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데, 그들도 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거든요. 또 팬픽을 쓰고 향유했던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사랑 이야기는 퀴어 서사였어요. 오히려 이성애 서사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퀴어인 친구들이랑 지내면서 나와 이들과의 관계엔 문제가 없고 서로 안전하다고 느꼈는데, 점점 커가면서 알게 됐죠. ‘사회에서 이들이 퀴어인게 드러나면 공격을 받을 수 있구나, 이상하게 여겨지는 구나’라고요. 이건 제가 어렸을 때 가족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해요. 소수자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공격 받는 특징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왜 이런 걸 숨겨야 할까?’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저한테는 이런 이야기가 특별히 결심하고 쓰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인 거죠. 아직 이걸 ‘특별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 거고요.”

 

-작가님 소설을 몇 편 안 읽었을 땐, 이야기 속의 캐릭터가 ‘여자였던가? 남자였던가?’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성별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읽게 되더라고요. ‘내가 그때 그때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이야기를 구성할 때 캐릭터들의 성별에 대해서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고정된 성별을 믿지 않는 편이에요. 어렸을 때 ‘넌 성격이 남자애 같다', 넌 입만 다물면 괜찮다’는 등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어렸을 때 좀 통통했는데 유치원에서 남자같다는 놀림을 당해서 결국 유치원도 그만뒀거든요. 주변에서도 엄마한테 ‘정현이는 살을 좀 빼야겠어요. 얼굴이 남자애처럼 생겨서 머리를 좀 길러야겠어요’라는 말을 했고요. 유치원 다니는 어린 아이였는데 말이죠.

 

그냥 난 나대로, 내 성격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변에 좀 ‘여성스러운’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괴롭힘을 많이 당했거든요. 또 반면에 우리 둘이 같이 다니면 ‘사귀냐’는 얘기를 듣고. 이런 일들 때문에 성별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고정된 성별 인식이 너무 싫더라고요. 지금은 일부러 ‘그녀’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등단작에선 ‘그녀’라는 말을 안 썼었어요. 의도가 있었던 부분이죠.

 

제 소설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요즘 느끼는 건, 이성애 중심 사고가 강한 분들은 어떻게 써도 남자와 여자가 나오면 이성애 관계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정말 신기하게도요.”

 

-퀴어 서사로 만들었는데도 이성애로 본다고요?

 

“그렇더라고요. <마고>에서도 운서와 가성의 지정성별이 나오다 보니까, 그냥 이성애로 보더라고요. 그리고 결론이 해피엔딩, 그러니까 결혼을 해야 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 분들 입장에선 그래서 책이 재미가 없는거죠. 이해도 안 되는 거고요.”

 

▲ 독립서점 ‘사적인서점’에서 주최한 소설가 한정현 기획전 중 책 속 작가의 코멘터리.  ©일다

 

-그동안 기록되지 않았던 소수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역사가 소설의 주요 플롯이잖아요. 작가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왜 그런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제가 살고 있는 현실이 싫어서 사극이나 SF, 판타지 이런 걸 되게 좋아했어요. 현실에선 내가 ‘이상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한계에 부딪히다 보니까 조금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우리 가족의 역사, 기원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나에겐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 밖에선 왜 ‘빨갱이’라 불리는지 궁금했거든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거죠.

 

페미니즘의 영향도 있었어요. 강남역 살인 사건, 미투운동 이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저들이 폭력적인 거’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이 폭력적인 환경을 지금 당장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순응하지 않고 살아가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소수자들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을 텐데요.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재현은 피하려고 했어요. 그게 제가 봤던 거랑 다르기도 했고요. 불쌍한 사람, 우울하고 인생이 파괴된 사람, 그런 우울함으로 인해 타인을 해치는 사람 등으로 재현되는 건 하지 않으려고 했죠.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 더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주변 당사자들한테도 많이 물어봤고요.”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생물학적 제인」을 쓸 때 특히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기지촌 여성들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요.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 당사자 분들도 많잖아요. 성판매 여성에 대한 시선과 낙인이 너무 강력하니까, 분명 피해자인데 본인을 피해자로 생각하지 않는 거죠. 외부적인 요소 때문에 자신의 피해자성을 부인하는 거에요. 이런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에선 퀴어이면서 가해자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사실 이성애자들 사이에선 불륜이나 치정이 너무 흔한 이야기인데, 퀴어 서사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안 좋은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던 거죠. 퀴어에 대한 편견이 많은 세상인데, ‘내가 이런 걸 재현해야 할까?’ 싶은 고민 때문이요. 그래서 참 어려운 캐릭터였는데 그래도 전 다양하게 그릴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시니어 대상 창작 수업을 했을 때, 어떤 분이 ‘선생님 소설엔 특이하게 퀴어가 자주 나오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게 보이는 거’라고 했어요. 전 이런 인물들이 우리 사회에 익숙한 존재가 될 때까지 계속 쓰려고 해요. 그들이 제 주변에 있었던 사람이고, 제가 좋아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들을 빼고선 제 이야기도 할 수 없고요.”

 

-최신작인 <마고>는 작가님에게도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이야기한 걸 보았는데, 특별히 재미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 전 주인공 캐릭터보다 주변 캐릭터들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마고>에선 송화의 이야기를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쓰면서 ‘송화의 감정이 뭘까, 송화의 가성을 향한 감정은 어떤 걸까’ 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이 감정선이 궁금해서 빨리 마지막까지 가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가성과 운서나 에리카의 감정은 명확하고 본인들도 자신의 감정을 잘 알고 있는 것에 반해 송화는 그렇지 않아서요. 전 그게 재미있었는데, 독자 반응을 보니까 아무래도 주인공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 독립서점 ‘사적인서점’의 소설가 한정현 기획전 중 책 <마고>의 한 구절이 담긴 엽서  ©일다

 

-한정현 소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낙관’을 이야기한다는 부분인데요. <마고>에서 “항상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아픔을 살피고, 조선의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또 손을 잘 씻고… 그리고 낙관할 것.”이라는 문장이 굉장히 낯설다 싶었어요. 그런데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서도 “(중략) 간호원이라는 인식을 가질 것, 협동할 것, 환자의 험담을 하지 말 것, 이름을 기억할 것, 조선 여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것, 그리고 낙관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죠. 이런 문장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항상 낙관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살아야 하니까, 하루라도 더 살고 싶으니까요. 저도 ‘아, 정말 못 살겠다’ 싶은 날들이 많아요.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왔을 때도 정말 힘들었거든요. 밖을 못 나가겠더라고요. 지금도 힘들어요. 지하철, 버스를 탈 때도 나를 밀치는 사람들, 쳐다보는 시선들… 너무 싫죠.

 

한번 친구가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다가 ‘그래도 잘될거야’라는 말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제가 또 문학하는 사람이잖아요?(웃음) 그래서 ‘우리 낙관하자’라고 했거든요. 나중에 친구가 그 말이 너무 좋았다고, 감동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낙관을 이야기하는 건, 세상에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하니까’에요.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낙관하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살려고 하는 말인 거죠. 소설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인물들도 너무 힘든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이들을 살리려면 낙관하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제 주변의 어른들을 봐도, 작은 일에 행복해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선 낙관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어요.”

 

-낙관과 함께 항상 사랑도 이야기하시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건가요?

 

“서로를 살리는 거요. 하루라도 더. 성애적인 이성애의 사랑이 아니라도,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나를 살게 하는 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도의 결합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요. 그래서 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에서의 신바와 설영의 관계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어떤 분들은 이들이 성애적인 관계인지 아닌지가 궁금한가 보더라고요. 우리 사회의 이성애 관념은 되게 강력한 것 같아요.(웃음)”

 

-어떻게 낙관과 사랑을 계속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요?

 

“어렸을 때부터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잖아요. 소수이긴 했지만. 그들에게 배운 친절과 호의 덕분인 것 같아요. 전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이라도 저한테 친절하게 해 주면 사랑을 느끼거든요. 정말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 덕분에 더 살고 싶어지는 것 같고,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요즘 생각하는 건, 사람들을 살게 하는 건 호의와 친절 그리고 거기서 오는 귀여움인 것 같아요.”

 

-올해 벌써 장편과 중편이 하나씩 나왔는데, 또 뭐가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나요?

 

“올해는 앤솔로지가 나올 것 같은데 단독저서는 더 나오진 않을 것 같아요. 독자들도 책을 읽어야 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내년에 새로운 책이 나올 것 같은데, 사실 6개월도 안 남았잖아요.(웃음) 

 

그런 말 있잖아요. ‘남성 작가들은 큰 주제를 다루는데 여성 작가들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걸 쓴다’는 말이요.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이 너무 별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한번 ‘큰 걸’ 써 보려고요.(웃음) 예를 들면,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던가? 그치만 제가 쓴다면 그동안 정사(正史)로 여겨졌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쓰게 되겠죠.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부분들도 있고요. ‘큰 것’에서 작은 것들을 찾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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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O 2022/08/06 [17:49] 수정 | 삭제
  • 사람들은 퀴어서사도 이성애로 본다는 말, 그게 뭔지 너무 알 것 같아서 웃었습니다.
  • Chun 2022/08/03 [21:34] 수정 | 삭제
  • 낙관에 대한 이야기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좋아요!
  • 빛나바 2022/08/01 [11:47] 수정 | 삭제
  • 나도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처음 읽고 반해서 줄리아나 도쿄를 읽었는데... 인터뷰 읽으니 좀 가려운 데 긁은 기분이~ 진짜 호들갑 떨만한 소설이에요. 작가님 절 받으셔요 라고 했음
  • 꾸ㅂㅓ 2022/08/01 [07:46] 수정 | 삭제
  • ㅎㅎ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큰 걸 써보겠다는 얘기에 빵터졌네. 근데 엄청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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