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활동 예술가’로 생존하는 법

<기록되어야 할 노동> 동네 작가, 지니야

사자 | 기사입력 2022/08/07 [10:48]

‘마을활동 예술가’로 생존하는 법

<기록되어야 할 노동> 동네 작가, 지니야

사자 | 입력 : 2022/08/07 [10:48]

“동네 작가 지니야입니다. 회화를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커뮤니티 친구들과 교류하다 보니 영역이 확장되어 공연도 하고, 글도 쓰고,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여러 가지 하고 있습니다.(웃음)”

 

▲ ‘마을활동 예술가’ 지니야가 <천장산 산신제>에서 사용할 깃발을 제작하고 있다.  ©지니야

 

‘동네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지니야는 극단 ‘이야기 상자’의 대표이자 유일한 단원이다. A부터 Z까지 혼자서 만드는 1인 창작자이면서, 미술 작가이기도 하고, 축제 기획자이기도 하고, 웹사이트 개발자이기도 하고, 성북 예술가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며, 성북동 주민이다. 이 모든 역할에서 본명인 김지희보다 지니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마을활동 예술가’라는 표현은 지니야가 하는 다양한 일을 예술창작과 마을활동으로 나눌 수 있어서 필자가 제안한 것이다.

 

“직업이 무엇인지 (하나로) 특정하기 힘들었는데, ‘마을활동 예술가’ 괜찮은 것 같아요.”

 

지니야는 종종 직업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예술’ 안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인식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일’에 대한 이야기는 예술창작에서 시작해 마을활동 그리고 예술노동으로 흘러간다. 사실 그 세 가지는 지니야에게 있어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1인 수작업, 가내 수공업형” 창작활동

 

공연이나 전시, 애니메이션, 예술교육 워크숍 등 지니야의 작업물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요소는 이야기와 회화이다. “글을 먼저 써야 나머지 작업도 진행할 수 있”다는 지니야는 기존의 신화나 이야기에 자신만의 허구를 더해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낸다. 선과 여백을 살리는 그의 그림과 함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한다.

 

‘이야기 상자’는 그런 그가 잘 드러나는 작업이다. “1850년대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생기기 전, 그려진 그림을 돌려서 재미있게 움직이는 느낌으로, 연사가 나오고, 당시 엔터테인먼트 같은 사업”인 크랭키 박스(이야기 상자)를 아일랜드 여행에서 접하고 많은 영감을 받아, 그를 이용한 여러 작업을 하게 되었다.

 

“공연 만들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 작업하다 보니 그림이나 글이나 노래나, 한정되어 작업할 필요가 없고.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창작하기 쉽고 다채롭게 하게 되더라구요. 공동창작이 되기도 하고.”

 

그 자체로 미술작품인 이야기 상자는 나레이션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공연이 되기도 하고, 작은 ‘이야기 상자 키트’로 만들어져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는 예술교육 워크숍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 '동네 친구'와 함께 <이야기 상자> 공연 중인 지니야  ©지니야

 

평소에 다양한 그림 작업을 하는데, 얼마 전 카페 엘마드레에서 개인전 <위대포의>(5월 30일~6월 12일)를 진행했다. ‘벼슬길에 오르기 전 누추한 차림’을 뜻하는 것으로, 신화를 담은 회화 작품 전시였다. 평소 공부했던 신화와 지난 2020년에 이어 올해 초부터 작업하고 있는 <천장산 산신제>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었다. 창작작업에 쏟는 시간의 안배를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다.

 

“시간 관리가 중요한데 잘 안 돼요. 당장 눈앞에 생기는 일을 하다 보면 창작작업을 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매번 하는 작업을 개별로 할 것이 아니라 길게 테마를 두고 그 요소를 구성하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지니야의 크고 작은 창작물들은 그가 구상하고 있는 ‘도철 이야기’의 요소가 된다. 도철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용의 아들인데, 지니야가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돌 잡화점>(2020)과 <뒷목잡신의 장난>(2021)은 퍼포먼스를 곁들인 전시이면서 도철의 모험 여정 중 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글(이야기)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소품을 만들기도 하고, 공연을 할 때에는 연출과 배우의 몫을 하기도 한다. 더러는 다른 작업자의 손을 빌리지만 대부분의 과정은 지니야가 손수 진행한다. 특히 크고 긴 두루마리나 벽체 등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오랜 시간 공들여 해야 하는 작업이다. 스스로 “1인 수작업, 가내 수공업형”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예술가의 노동, 예술의 공공성

 

사업자등록이 되어있는 사업체(극단)와 생산기술을 갖추고 있으니 따지고 보면 사장인 셈이지만, 지니야는 계속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지금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 예술에 대한 생각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묻는 그는 “모든 예술가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인다. 큰 자본이 움직이는 제작 시스템으로 그림을 생산해내는 팝 아티스트와 자신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엄청, (고가의) 파란 물감 뺏어갈까 봐 칼싸움을 그렇게 잘했다는 소문이 있는데(웃음). 자기를 노동자라고 생각 안 했을 것 같은 거죠. 제자들 데리고 사는 사장이죠.”

 

예술가 스스로의 정체성도 다를 테지만, 사회 안에서 예술이 의미하는 바도 다르다. 과거 특출한 예술가들은 권력자나 재력가의 후원을 받아 그들을 위한 창작을 했다. 작품은 후대에 길이 남아 현재 우리도 향유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특정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소수를 위한 예술이었다. 하지만 현대에서 예술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특정 계층을 위해 생산, 유통되는 예술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술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공공성을 강력하게 띤 예술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거죠”

 

예술창작 작업을 예술가 개인의 필요와 성취의 관점이 아닌, 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 요소로 이해하고 존속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을 공공재로 이해하는 시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활동은 지니야에겐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예술가의 마을활동, 관계망과 안전망 만들기

 

지니야는 현재 ‘공유성북원탁회의’(공탁)라는 민관협치 네트워크를 통해 마을활동을 하고 있다. 성북문화재단과 함께 지역사회의 현안을 논의하고 문화 생태계를 고민하며 마을축제, 지역민과 교류 사업, 예술교육 사업 등을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예술가 입장에서 ‘협치’의 좋은 점은 마을 단위 사업의 기획부터 예산 조성과 편성, 실행까지 함께 논의하고 진행할 수 있고, “크고 작은 마을축제들을 계획하며 개인의 창작이나 동료들과 협업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능동적인 과정은 예술가 생존의 대안이 될 수 있다.

 

▲ '동네 친구들'과 함께 <천장산 산신제>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지니야

 

공탁은 문화기획자, 마을 활동가, 지역 거주 예술가, 지역주민 등이 구성원인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 네트워크”이다. “직함이나 존칭을 생략한 이름이나 별칭을 사용하고, 서로 ‘친구’라 칭하는 것은 평등한 의사 구조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설명한다. “어느 단체의 장이나 대표도 이곳에서는 개별 구성원”이다. 서로 “권력을 줄 생각은 없고, 권위는 인정해 줄 수 있는 관계면 훌륭”하다고 말한다.

 

때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민관 사이에서도, 민민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또 사업을 진행하면서 절차나 방법 상의 문제(어려움)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럴 때 지니야를 찾는 ‘동네 친구들’(함께 마을활동을 하는 동료들)이 있다.

 

“곰인형으로 활동 중이죠. 제가 본업은 정확히 하나로 규정할 수 없지만, 부업은 정확해요. (웃음)”

 

부업이라고 표현했지만 고민을 나누는 수다에 가깝다. 친구들은 “스스로 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다. 그래서 “어느 집에나 있고,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들어주는 곰인형”처럼 듣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오랜 협치와 커뮤니티 활동 경험, 다년간 마을 축제를 기획하며 쌓은 실무 경험 등을 나누기도 한다.

 

“(공탁이) 성인지 감수성이나 문화 다양성 (표준) 인식이 엄청 높은 조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문제가 없을 수는 없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이야기 꺼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거죠.”

 

오픈 네트워크이고 구성원이 많은 만큼, 인식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이럴 때 묻어두지 않고 꺼내 이야기하거나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 중요하다. “일상에서 바로 말할 수 있는 관계성”은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작용한다고 지니야는 말한다. 또 작년에 만들어진 ‘반성폭력 내규’ 역시 “완벽하진 않지만, 만들어진 게 중요한” 최소한의 시스템이다.

 

마을활동 예술가의 시간 안배

 

동네일은 “생각보다 공이 많이 들어간다. 내가 사는 마을이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마을활동을 하며 오롯이 창작과 제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을활동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게 되는데, 한 시즌에 여러 일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있고. 오전에 글을 쓰고 있었는데 오후에 하반기 축제 논의를 해야 한다던가, (전환을) 잘하면 좋은데 잘 안되고. 동네 일이나 제가 관심 있는 일들이 생기면 눈 앞의 일 처리하느라 시간을 많이 쓰게 돼요.”

 

상시 회의부터 비상시적 회의와 모임 등의 기본 활동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이는 대부분 자발성을 토대로 하는 자원 활동이다.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다른 예술가들(공연, 영상, 시각, 기획 등 다양한 장르) 역시, 종종 창작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창작작업과 마을활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창작작업에는 오롯이 창작만 고민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동 시간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해요. 자신의 창작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창작자 자신에게 필요한 영감을 얻기 위한 여행이나 사색, 책을 읽거나 다른 전시나 공연을 보는 등의 준비 작업, 실제 창작과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 결과물의 유무형 여부(공연처럼 일회성인지, 영상물처럼 다회성이 가능한지, 미술품처럼 실물 자체로 소비 가능한지)에 따른 유통 방법 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창작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책정하고 ‘작업비(임금)’를 상정하는 데도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 지니야가 만들어 판매하는 부적. 신화와 기원이 담겨 있다.   ©지니야

 

물론 시장이 크지 않고 실제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 안에서 그것들을 모두 고려한 노동 시간과 작업비를 책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그에 관한 논의를 멈춰서는 안 된다. 지니야는 창작과정과 노동 시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마을활동 안에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좋은지 꾸준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논의가 쌓여 변화되고, 새로운 상식이 되기 때문이다.

 

“안되면 되돌리기 하면 되지, Ctrl+Z” 정신으로

 

최근 다각도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는 지니야는 그동안 작업을 업로드하는 용도로만 썼던 홈페이지(keystory.net)를 자신이 만든 굿즈를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사용한다든지, <위대포의> 시즌 2에서 기술적인 요소를 더 입히는 등의 구상을 하고 있다.

 

“점점 두께가 생기는 느낌인데요.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다차원으로 보이거나 하는 것들을 기술적으로도 좀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문화예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웹사이트나 온라인 지역 매체 등도 고려하고 있다. 실제 실현 가능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동안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추가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친구들이나 동영상 강의를 통해 배우기도 하는데, 기본 원리를 알고 있어 습득이 빠른 편이다. 지니야는 추진하는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가 별로 없고, “안되면 되돌리기 하면 되지, Ctrl+Z”라는 쿨한 태도로 임한다.

 

또, 지역에서의 활동과 마을 축제나 협치 관련한 경험을 모델링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나누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른 지역 마을 축제나 협치에 관한 자문을 맡거나, 관련 포럼이나 강의를 거절하지 않는 이유이다. 공탁 내에서 ‘공유’가 자산이고 힘이듯, 다른 지역에서 경험을 나누는 것도 작은 씨앗이 되어 그 지역의 자산이 되고 힘이 되어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생의 주기가 다음으로 넘어가고 여성이고, 1인 생활자인 것에 대한 불안은 없는지 묻는 말에 “힘든 것은 이력이 났고”, “내가 심하게 낙천적인 부분이 있어”서 “괜찮다”고, “잘 살 것”이라고 쿨하게 답하는 지니야. 인터뷰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예술가들이 예술로 자립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대안 없음’을 많이 호소하기도 하잖아요. 예술가라는 점이 그 대안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살면서, 작업하면서, 자신의 작업 밀도를 높이고, 유대와 관계망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필자 소개] 김지연. 필명 사자.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 연극을 하며 예술노동을 고민하는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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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람 2022/08/09 [19:23] 수정 | 삭제
  • 예술과 노동 사이,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 정말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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